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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완벽하게 해피엔딩
작가 : 달콤슈크림
작품등록일 : 2020.9.6

결혼 프로포즈까지 한 재하의 배신으로 10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은 윤서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살았다. 폐인처럼 살던 어느 날, 윤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기로 다짐한다.

무작정 떠돌며 살던 윤서는 우연히 정민의 쉐어하우스에서 살게 되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는 듯 하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던 재하를 우연히 다시 만나고 재하와의 이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은정도 함께 만나게 된다. 윤서가 이 곳에 정착한 이후부터 윤서를 신경쓰던 정민은 평소답지 않은 윤서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재하를 경계한다.

그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인 줄 알았던 윤서의 변화에는 태도에 정민과 쉐어하우스 메이트들은 몰랐던 윤서의 과거에 대해서 알게 된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였던 윤서와 재하화의 과거를 알게 될수록 정민은 윤서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첫 만남부터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재하 역시 정민과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부탁하지 마세요. 이제 윤서에 대해 부탁할 자격도, 의미도 없지도 없지 않나요.'

 
15화. 부탁하지 마세요.
작성일 : 20-09-30 02:59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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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린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지만 윤서는 보자마자 누구의 전화인지 알 것 같다. 받을까 말까 하는데 벨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윤서는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는다.

 “응.”

 

 잠깐의 침묵 후에 재하가 대답한다.

 “뭐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윤서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왜?”

 “뭐가?”

 “왜 전화했냐고.”

 “아까 제대로 인사를 못한 것 같아서.”

 “인사 챙길 사이 아닌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희주 씨한테 물어봤어.”

 

 윤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람들 다 좋아 보이더라.”

 “응.”

 “내내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윤서가 비꼰다.

 “내 걱정할 시간에 너 여자 친구 생각해. 내내 불안해 보이더라.”

 

 재하는 말이 없다.

 “나랑 통화할 시간에 여자 친구랑 한 마디 더하고.”

 

 재하가 다정하게 윤서의 이름을 부른다.

 “윤서야.”

 

 윤서가 언성을 높인다.

 “그렇게 부르지 마.”

 

 윤서가 깊은 한 숨을 쉬다가 못 참겠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내가 마지막에 말했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너 안 볼 각오하고 놓은 거라고. 나한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도 알지. 그러니까 말 걸지 말고 걱정하는 척도 하지 말고 그냥 모른 척 협조해. 앞으로도.”

 “난 그래도 간만에 얼굴 보니 반갑던데... 넌 안 그래?”

 

 윤서가 아까보다 더 언성을 높인다.

 “반갑다고? 하아....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나한테 반갑다는 말을 할 수 있어?”

 

 윤서의 말에 재하가 말을 잇지 못한다.

 “강재하. 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땅에 떨어지는 기분이야.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심지어 반갑기까지 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니야. 생각할수록 너는 정말 끝까지 나에 대한 배려가 없구나. 여자 친구랑 같이 있는 너를 본 내가 어떨지 생각은 해보고 전화한 거야? 버려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여기까지 오게 하는데 나 엄청 힘들었어. 그러니까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줘. 부탁이야.”

 

 재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미안.... 난 진짜 오랜만에 너 얼굴 봐서, 집 구경하는데 너 물건들이 보여서 옛날 생각도 나고.... 미안.”

 “난 아니야. 추억 팔이 할 거면 혼자 해. 끊어.”

 

 윤서는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터지기 시작한다. 입을 막고 참아보려 하지만 참아지지 않는다. 이내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한다.

 

 

 ****

 

 

 재하가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정민이 나온다.

 “뭐해요?”

 “아. 잠깐 통화요.”

 “담배 한 대 필래요? 담배 피죠?”

 “아. 네.”

 

 정민과 재하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시끌벅적한 거리를 보며 둘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재하가 앞을 보며 불쑥 먼저 말을 한다.

 “감사합니다.”

 

 정민 역시 재하 쪽을 보지 않은 채 묻는다.

 “뭐가요?”

 “윤서 받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민이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아. 방도 하나 비고. 생각보다 애들이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다들 윤서를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는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어요. 그렇게 안 생겼는데 너무 무뚝뚝해서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그래도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재하가 담배 연기를 한숨과 함께 뿜어낸다.

 “훨씬 더 수다스럽고 밝은 아이인데...”

 “그런가요. 지금도 말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닌데...”

 “그렇군요.”

 “아, 대학 친구랬죠. 원래 말도 많이 하고 밝고 그랬나요?”

 “네...”

 

 재하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운을 뗀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였어요. 어딜 가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정도 많아서 사람들도 잘 챙기고. 옆에서 조잘조잘 거리면서 떠들 때 보면 얘는 어떻게 이렇게 항상 할 얘기가 많을까 생각했는데.”

 

 정민은 본인이 모르는 윤서에 대해 말하는 재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쓴다.

 “상상이 안 되네요.”

 “웃기도 진짜 잘 웃는 아이였어요.... 별 것 아닌 거에 잘 웃고 잘 울고.”

 “진짜 친한 친구였나 보네요.”

 

 정민이 재하를 보며 진지하게 묻는다.

 “그런데 어쩌다가 눈도 못 마주치는 사이가 된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제가 잘못해서요. 윤서가 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정민이 다시 고개를 돌린다.

 “헤어질 때 잔인했나보네요.”

 

 재하가 정민을 쳐다본다.

 “네?”

 

 정민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재하를 쳐다보자 재하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네.....”

 “그래서 곁을 안 주는 거군요.”

 “그런가요?”

 “좀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물러서더라고요.”

 

 재하가 말없이 담배만 핀다.

 

 “윤서한테 전화 한 거 에요?”

 “아....네. 제가 윤서한테 전화한지 어떻게 아셨어요?”

 

 정민이 담배를 끈다.

 “안보고 싶은데, 모르고 싶은데 그런 게 잘 보이고 잘 알겠더라고요. 지금 그런 표정으로 들어가면 여자 친구가 걱정할거에요. 이미 눈치 많이 보고 있는 것 같던데.”

 “아. 네.”

 “들어가 보세요. 여자 친구한테 신경 써요. 어쨌든 지금 재하 씨 옆에 있는 건 저 분이잖아요.”

 “안 들어가세요?”

 “집에 가려고요. 윤서 혼자 있거든요.”

 

 재하가 잠시 머뭇거린다.

 “울고 있을 겁니다.”

 “그럴 것 같아서요.”

 “혹시... 윤서 좋아하세요?”

 

 정민이 재하와 눈을 마주친다.

 “좀 됐죠.”

 

 재하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만다.

 “애들한테는 집에 갔다고만 말해주세요.”

 “네. 부탁드립니다.”

 

 정민이 재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부탁하지 마세요. 이제 윤서에 대해 부탁할 자격도, 의미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정민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재하는 걸어가는 정민을 보다 먼저 달려가서 윤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뒤돌아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

 

 

 재하와의 대화 후에 정민은 마음이 급해진다. 서둘러 집에 온 정민은 당장 2층으로 뛰어올라가고 싶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용히 올라간다. 올라가자마자 윤서의 우는 소리가 2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년 넘게 함께 했지만 윤서의 우는 소리는 처음이다. 하지만 소리만 들어도 윤서의 마음이 느껴져서 정민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저 아이가 곁을 주지 않았던 이유를. 웃다가도 슬픈 표정을 짓던 이유를. 가끔 말없이 앉아있을 때 왜 아주 멀리 간 것 같은 표정을 짓는지를. 자세히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지난 사랑에 상처를 받았고 아직도 윤서는 그 상처 때문에 아프다.

 정민은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윤서를 안고 싶지만 그러지 않았다. 윤서가 원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정민은 깨달았다. 윤서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윤서가 웃는 것이 좋았고 윤서와 함께하는 대화들이, 보낸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윤서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것은 명백히, 누가 봐도 사랑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윤서의 우는 소리에 이렇게 아플 수는 없는 것이다. 정민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가 윤서의 방문 앞에 앉는다. 그렇게 정민은 조용해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

 

 

 정민이 2층 거실 소파에 눈을 감고 앉아있다. 준우와 석훈이 2층으로 올라온다.

 “어? 형 벌써 왔어?”

 

 정민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PC방 간다더니 일찍 왔네.”

 “누나 일 끝날 때쯤 된 것 같아서. 전화했는데 안 받길래 일단 집에 왔지.”

 “아직 희주 누나랑 성훈이 형은 안 온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누나는?”

 “윤서 자. 내려가자.”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간다. 준우와 석훈은 평소와 다른 정민의 행동에 조금 당황스러워 서로를 쳐다보다 정민을 따라 내려간다.

 

 정민이 냉장고를 연다.

 “맥주 마실래?”

 “응. 안주로 뭐 먹을 게 남았나?”

 

 준우가 와인 냉장고를 연다.

 “와인도 있는데 와인 마실까?”

 “뭐든.”

 

 준우가 와인과 잔을 꺼내고 정민이 냉장고에서 치즈와 남은 과일을 꺼내 거실로 가져간다. 셋은 와인을 마시며 말없이 앉아있다. 석훈과 준우는 장난치거나 농담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조용히 앉아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정민이 먼저 말을 한다.

 “혹시나 내일 윤서가 평소랑 다르더라도 모른 척 해. 알았지?”

 “응. 그런데 윤서 누나 무슨 일 있어?”

 

 준우가 와인 잔을 돌린다.

 “아까 그 재하라는 사람 때문이지?”

 “응.”

 “뭐야 둘이. 옛날에 사귄 거야?”

 “그런 것 같아.”

 

 석훈이 깜짝 놀란다.

 “진짜?? 정말??”

 

 준우가 석훈의 어깨를 토닥인다.

 “넌 정말 눈치라고는 개미똥 만큼도 없구나.”

 “나는 둘이 친구인데 예전에 심하게 싸웠거나 원수지간이거나 그런 줄 알았지.”

 “윤서 누나 반응을 봐서는 안 좋게 헤어진 것 같은데.”

 

 정민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응. 그런 것 같아.”

 

 석훈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남녀가 사귀다보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얼마나 안 좋게 헤어지면 그래?”

 

 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경우는 보통 바람이지.”

 

 정민이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입을 연다.

 “잘은 모르지만 그냥 바람이나 배신은 아닌 것 같아. 뭔가 사연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윤서가 말해줄 때까지 모른 척 하자.”

 “응. 알겠어.”

 

 석훈이 울상이 된다.

 “속상하네. 진짜 속상해.”

 

 셋은 다시 말없이 와인을 마시고 있다. 그 때, 희주와 성훈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너네도 벌써 왔어? 윤서는?”

 

 정민이 2층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자.”

 “오빠는 왜 먼저 왔어?”

 “윤서 걱정 돼서.”

 

 희주와 성훈이 소파에 앉는다. 성훈이 앉자마자 정민에게 묻는다.

 “정윤서 뭐야. 그 남자랑 무슨 사이야.”

 

 희주는 심각한 표정이다.

 “내가 중간에 슬쩍 재하 씨를 떠봤는데 뭔가 있어. 재하 씨는 계속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고 윤서는 재하 씨한테 완전 찬바람 쌩이야. 그리고 윤서랑 은정 씨도 서로 아는 사이 같아.”

 

 준우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와인 잔을 본다.

 “전 남자친구 인 것 까지는 알겠고.”

 “그치? 그런 것 같았어. 그냥 싸운 게 아니야.”

 

 정민이 짧게 한숨을 쉰다.

 “너네는 왜 이제와? 아직까지 같이 있다 온 거야?”

 “응. 은정 씨가 간만에 사람들을 만났다며 신나서 맥주 한잔 하고 왔어.”

 “은정 씨도 멘탈 장난 아니더라. 재하 씨는 계속 윤서만 보고 있던데 아랑곳하지 않아.”

 

 석훈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랬어? 그 놈이 누나를 자꾸 쳐다봤어?”

 

 준우가 다시 석훈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넌 그냥 가만히 듣고나있어. 어떻게 이렇게 눈치가 없지.”

 

 석훈이 언성을 높인다.

 “내가 뭐!!!”

 

 정민이 살짝 인상을 쓴다.

 “쉿. 윤서 깨.”

 

 성훈 역시 한숨을 쉰다.

 “정윤서 울었지?”

 

 석훈이 또 놀란다.

 “누나 울었어????”

 “응. 집에 와보니까 울고 있더라.”

 “형이 집에 갔다 길래 왠지 알고 가는 것 같았어.”

 

 희주가 인상을 쓴다.

 “집에 오면서 내가 정리를 좀 해봤는데 은정 씨랑 재하 씨랑 만난 지 2년이 좀 지났다고 했잖아. 그리고 윤서가 우리 집에 온지 1년이 좀 지났고. 윤서가 원래 서울에 살았는데 오빠네 회사랑 일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윤서는 혼자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고. 결국 은정 씨랑 재하 씨랑 만나면서 윤서랑 헤어진 거야. 그치?”

 “그런 것 같네.”

 

 정민은 말이 없다. 성훈이 양 손으로 얼굴을 비빈다.

 “그럼 윤서를 두고 재하 씨가 은정 씨랑 바람을 핀 건가?”

 

 희주가 언성을 조금 높인다.

 “바람? 어떻게 알아?”

 “윤서 반응을 보면 그냥 남녀가 사귀다 헤어진 게 아니니까.”

 

 희주가 입을 벌린다.

 “이럴 수가.....”

 

 석훈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속상해. 진짜야. 너무 속상하네.”

 

 희주가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럼 내가 너무 큰 실수 한 거 아니야? 결국 내가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거잖아. 아까 재하 씨가 윤서한테 사과하고 싶다면서 번호 알려 달라 그래서 번호도 알려줬는데.”

 

 성훈이 소파에 기대 누우며 한숨을 쉰다.

 “그래서 통화하러 나간거구나. 그 때 은정 씨 표정 장난 아니었는데....”

 

 정민 역시 한숨을 쉰다.

 “그래서 내가 집에 온 거고.”

 

 다들 말없이 앉아있다. 희주가 얼굴을 무릎에 묻는다.

 “나 윤서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성훈이 희주의 등을 토닥인다.

 “알고 그런 거 아니잖아. 괜히 그러지 마.”

 

 준우가 와인 잔을 비운다.

 “윤서 누나도 절대 그렇게 생각 안할 거야. 알잖아.”

 “그래도... 너무 미안한데. 어떻게 하지.”

 

 성훈이 정민을 바라본다.

 “지금은 그것보다 이제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우리는 모른 척 하자. 윤서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자.”

 “정윤서 혼자 또 속앓이 하겠구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평소처럼 하자. 알았지?”

 

 다들 말없이 끄덕인다.

 “슬슬 자러 가자. 오늘 다들 고생했다.”

 “다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성훈이 희주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지 말래도. 가자, 한희주!”

 

 

 ****

 

 

 정민이 2층으로 올라와 아주 조용히 윤서의 방문을 열어본다. 윤서가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대 잠들어 있다. 정민이 조심스럽게 윤서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잠든 윤서를 바라본다.

 

 “얼마나 운거야. 얼굴 좀 봐라, 정윤서. 자꾸 오빠 속상하게 할래.”

 

 정민이 윤서를 조심스럽게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지칠 때까지 울다 잠들어 정민이 이불을 덮어줄 때도 윤서는 미동이 없다. 정민이 잠든 윤서 옆에 앉는다. 아주 작게 한숨을 쉰 뒤에 다시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온다.

 

 

 ****

 

 

 재하가 술에 취한 은정을 안은 채로 집에 들어온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은정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준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은정이 눈을 감은 채로 재하의 팔을 잡는다.

 “오빠.”

 “응.”

 “오늘 오빠 되게 나빴어. 알지.”

 “응.”

 “나 엄청 속상했어.”

 “미안.”

 “언니 봐서 좋았어?”

 

 재하가 대답하지 못한다.

 “언니는 아닌 것 같던데.... 오빠는 반가운가보더라.”

 “자.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오빠가 언니한테 갈 것 같았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자.”

 “안 갈 거지?”

 

 재하가 이불을 덮어준다.

 “안 가. 자자.”

 

 은정이 재하의 팔을 놓고 잠이 든다. 재하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에 저장하지 않은 번호를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저장할 수 없는 번호를.

 

 

 

 ****

 

 

 재하가 윤서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걷는다.

 “야, 강재하. 어디가?”

 

 재하는 대답이 없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다리 아파.”

 

 재하가 그 자리에 선다.

 “가시네. 진짜 눈치 없어.”

 “잉? 뭐래. 네가 말도 안하고 계속 걷고 있잖아. 술 다 깼다.”

 

 재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큰 나무 아래 벤치를 가리킨다.

 “저기 앉자 그럼.”

 “집에 가는 게 아니고?”

 “거 참 말 많네. 일단 앉아봐.”

 

 윤서가 재하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 앉는다.

 “바람은 좋다. (기지개 피며) 이제야 진짜 술이 좀 깬다.”

 “그러게 왜 그렇게 마시는 거야. 술 잘 마시는 거 자랑하냐.”

 “오늘 바람이 소주 마시기 딱 좋은 바람이었다고. 게다가 애들이 갑자기 달려서 페이스 맞추다 보니 함께 달리게 되었지.”

 

 재하가 짧게 한숨을 쉰다.

 “언제까지 그렇게 쳐 마실래. 다 취해놓고 만날 귀찮게 막판에 오라고 하는 거야.”

 “애초에 너도 처음부터 같이 마시면 되잖아. 늦게 와가지고 제대로 술도 못 마시고! 어디서 뭐하다 오는 거야.”

 “남이사. 내가 못 데리러 오면 어쩌려고 만날 이렇게 마셔.”

 

 윤서가 재하와 눈을 마주친다.

 “왜 못 데리러 와? 무슨 일 있음?”

 “아니 그냥 예를 드는 거잖아.”

 

 윤서가 재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장난끼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데리러 올 거잖아.”

 

 재하도 잠시 윤서를 빤히 본다.

 “응. 데리러오지.”

 “근데 왜 진짜로 처음부터 같이 안 마시는 거야? 너 집에 있다 오잖아.”

 “내 맘이야.”

 “애들이 나 있을 때만 너 안온다고 이제 나 빼고 마실 거래.”

 “잘됐네.”

 “아니 요즘에 왜 그러는 거야? 학기 초에는 같이 잘만 놀았으면서 요즘은 애들이랑 같이 안 만나려고 하더라.”

 “그냥. 내 맘이라고.”

 “애들이랑 싸운 건 아니던데. 내가 있으면 불편해?”

 

 재하는 말이 없다.

 “내가 뭐 불편하게 했어?”

 

 재하가 말없이 윤서를 쳐다본다. 윤서는 무언가 궁금할 때 눈이 유난히 동그랗게 된다.

 “말해봐. 무슨 일이야. 누나가 다 들어줄게.”

 “뭘.”

 “뭐든! 말해봐 봐. 나한테 불편한 게 있으면 그걸 얘기하면 되고 나랑 관련된 게 아니면 그걸 또 얘기하면 되고.”

 

 재하는 깊은 한숨을 쉰다.

 “웬 한숨. 뭔데. 무슨 일이야.”

 

 재하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윤서의 앞에 앉는다.

 “야. 정윤서.”

 “응. 말해.”

 “우리 사귈래?”

 

 윤서가 놀라서 재하와 눈을 마주친다.

 “뭐? 뭐를 해?”

 “사귀자고.”

 

 윤서가 당황한다.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너도 눈치는 채고 있었잖아.”

 

 윤서가 말을 더듬는다.

 “어? 응?”

 

 재하가 윤서의 어깨를 잡고 윤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내가 몇 달 동안 고민해봤는데 안되겠어.”

 “뭐가 안 되는데?”

 “왜 애들이랑 같이 안 만나려고 하냐고 물었지. 너랑 애들이랑 시시덕거리면서 장난 치고 웃는 게 꼴 보기 싫어.”

 “하루 이틀이야? 뭐가 꼴 보기 싫어.”

 

 재하가 다시 한숨을 쉰다.

 “하아. 이 멍청아. 네가 다른 놈들이랑 장난치고 하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윤서가 말을 잇지 못하고 벙찐 표정으로 쳐다본다.

 “처음엔 그냥 그게 내가 예민한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야. 네가 나 말고 다른 놈들이랑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고 웃고 장난치는 거 보면 그냥 빡 쳐. 같이 술 마시는 것도 보기 싫어. 너 술 마시면 더 많이 웃고 더... 하아.... 더 눈이 가.”

 

 윤서는 여전히 입을 벌린 채로 재하를 본다.

 “너도 내 맘 알고 있었을 거고. 나도 너 맘 알고 있었고. 근데 내가 너한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어. 겁이 나서.”

 “뭐가 겁이 나는데.”

 “대학 들어온 이후로 계속 붙어 다녔잖아. 동아리 친구들도 다 겹치고, 가는 가게도 다 겹치고. 노는 동선도 똑같고. 아직 우리 졸업까지도 한참 남았고. 그런데 사귀다 헤어지면 서로 너무 불편할 거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우리가 만나다 헤어지면 그냥 단순히 애인이랑 헤어졌어가 아니지. 너랑 헤어지면 난 남자친구도 잃지만 난 동시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도 잃는 거니까.”

 “나도. 그래서 망설였는데.... 안되겠어. 미치겠어.”

 

 윤서는 말을 못하고 재하를 쳐다본다.

 “헤어질 게 겁나서 이러고 있기엔 너도 나도 서로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재하가 잠시 머뭇거린다.

 “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여유가 없어.”

 “무슨 여유?”

 “네가 다른 놈이랑 웃고 떠드는 걸 보고 있을 여유. 무엇보다 네가 나 말고 다른 놈이랑 잘되는 걸 보고 있을 여유. 네가 나한테 다른 놈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줄 여유. 그런 여유 없어.”

 “그래. 알겠어.”

 

 재하가 윤서를 유심히 본다.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시큰둥해.”

 “응?”

 “평소대로 오버액션 왜 이런 게 없어.”

 “음.... 뭔가 실감이 나지 않아.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재하가 윤서의 손을 잡는다.

 “이러면 실감이 좀 나?”

 

 윤서가 잡은 손을 보며 키득거린다.

 “이게 뭐야. 시도 때도 없이 잡는 손인데.”

 

 재하가 키득거리는 윤서를 쳐다보다 윤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다. 윤서가 순간 놀란다. 재하는 다른 한 손으로 윤서의 머리를 감싼다. 재하가 입술을 떼고 얼굴 가까이서 속삭인다.

 “됐지. 이제 실감 나?”

 

 윤서가 멍하니 재하를 쳐다본다.

 “어.......”

 

 재하가 윤서의 무릎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는다.

 “혹시나 내가 이 손을 놓칠까, 네가 이 손을 먼저 놔 버릴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었는지 모르지.”

 

 윤서가 한 손으로 재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짜? 완전 몰랐는데.”

 

 재하가 고개를 들어 윤서를 올려다본다.

 “난 가끔 네가 덥석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올 때 마다, 날 보면서 웃을 때 마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넌 모를 거야. 나만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 어떤 날은 내가 이렇게 계속 모른 척 하다가 네가 먼저 뒤돌아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 진짜 생각이 많았다고.”

 

 윤서가 피식 웃는다.

 “포커페이스 하느라 고생 많았네, 강재하. 난 완전 몰랐는데. 너 오늘 말 완전 많이 하고 있어.”

 

 재하가 윤서의 손을 잡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힘들다. 이제 집에 가자.”

 “우리 집 갈래?”

 “데려다 줄게. 가자.”

 “자고갈래~?”

 “됐거든. 데려다주고 갈래. 나 오늘 말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다.”

 윤서가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하하하. 그래. 가자! 1일차 자기야!”

 

 재하는 윤서를 보며 웃는다.

 “그러자.”

 

 

 

 ****

 

 

 재하는 문득 윤서와 처음 사귄 날이 생각났다. 너무나도 풋풋했던 스무 살. 윤서는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친구였다. 전공이 달랐지만 윤서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재하와 같은 과여서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었다. 잘 웃고, 리액션 좋고, 오지랖도 넓고 술도 잘 마시는 윤서는 어떤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졌다. 처음에 재하는 그런 윤서가 신기했다. 구김살 없는 윤서의 성격 덕분에 무뚝뚝한 재하도 윤서와 빠르게 친해졌고 친해지면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엔 별로 말이 없는 재하였지만 윤서와 있을 때면 말도 많아지고 장난도 자주 치곤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윤서 없는 학교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고, 윤서 없이 마시는 술자리는 따분하고 재미없었다. 그렇게 윤서에게 익숙해질 때쯤, 재하는 항상 윤서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 윤서와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 짓는 윤서가 너무 예뻤다. 그렇게 둘은 아주 멋진 가을바람이 부는 9월의 어느 날, 연애를 시작했고 주변에서는 자기 일처럼 모두 기뻐해주었다. 재하는 몇 몇 윤서에게 눈독 들이고 있던 놈들의 씁쓸한 미소도 보았다. 재하는 윤서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평생 이렇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까 윤서와의 전화통화가 다시 떠올랐다.

 

 재하가 쓸쓸하게 혼잣말을 한다.

 “내가 엎어버린 거잖아. 강재하. 벌 받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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