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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지금 살리러 갑니다
작가 : 탄탄님
작품등록일 : 2020.9.10

내가 어렸을 때, 미래에서 온 나를 만난 적이 있다.
탄 냄새가 나는 놈과 거래하지 말라던 나의 당부…
하지만 나는 악마와 손잡을 수 밖에 없었다. 살려야 할 사람이 있으므로…
나는 연쇄살인마들로 부터 사람들을 살리러 간다.

#연쇄살인 #프로파일링 #추리 #미스테리 #타임슬립 #탄냄새 #그을음
gracefulwing@naver.com

 
11. 동물의 왕국
작성일 : 20-09-30 00:22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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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얻고 싶었다.

 

 살려야 할 사람도 해결해야하는 사건도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그을음 속에서 나를 노려보며 서 있는 탄내나는 놈에게 물었다.

 

 

 "우리 거래는 어떻게 되는거죠?"

 

 "당신은 표재범을 막는데 실패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이번에는..."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모든 걸 망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고요. 원래 빈집털이범으로 알려진 놈들이라서..."

 

 "변명하지 마세요. 당신에게는 48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오롯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집 앞을 서성이던 놈을 미행만 했어도 그들이 단순히 강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하나.

 

 

 "잠깐. 아직 시간이 있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 표재범의 살인 기록을 찾았다.

 

 

 "유한실업 부사장의 딸이 죽은건 내가 간 과거로 부터 열흘 뒤였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

 

 

 탄내나는 놈은 생각에 잠긴듯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표범파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열흘의 시간을 벌었어요. 한번 돌아갔던 과거로는 다시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열흘 뒤로 가는 건 상관 없잖아요. 내 블로그의 기록으로는 언제고 들어갈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나는 당신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내가 왜 다시 기회를 줘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에 신뢰라는 것이 있었나요? 나는 아직 당신의 정체를 몰라요. 인간인지 귀신인지, 아니면 인간이었던 귀신인지."

 

 

 놈이 약간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그저 나를 과거로 보낼 수 있는 능력만을 믿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나를 보내주세요."

 

 

 탄내나는 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결국 표재범의 첫번째 살인이 열흘 뒤로 미뤄졌으니 룰을 깨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의지를 확인했어요. 한번 더 믿어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준비됐을 때 나를 부르면 됩니다."

 

 

 놈이 탄 냄새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나는 다시 표재범의 과거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공부를 하리라 다짐 했다.

 

 

 

 ***

 

 

 탄내나는 놈이 떠나고 난 뒤,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고작 48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뒤바뀐 기억 때문에 십년을 다시 살다 온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추스리고 아버지의 가게로 향했다.

 

 과거를 바꾸기 전 쪽방촌에서 폐지수집으로 생계를 꾸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고깃집 카운터에 앉아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현실감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게에 도착했을때,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서빙을 하던 매니저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과거에 시사노트 인터뷰를 했던 그녀.

 

 나이가 오십 줄에 접어들지만 나이보다 10년은 젋게 보이도록 관리를 잘 했다.

 

 하지만 내가 과거를 바꾸기 전의 그녀의 삶도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인터뷰가 이성한의 분노를 샀고, 가게가 휘청거리다 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여전히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황실장 왔어?"

 

 "네. 아버지가 안보이네요?"

 

 "오늘도 VIP룸 예약 잡혔거든."

 

 "아. 오늘은 누군데요?"

 

 "영화배우 배선재 알지?"

 

 "알죠. 요즘 예능 나오던데..."

 

 

 배선재는 50대 중반으로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로 데뷔하면서 온 가족이 리얼리티 방송에 출연 중이다.

 

 

 "황실장, 내 대나무 숲좀 되주라."

 

 "네? 그게 무슨..."

 

 

 매니져는 내 옷깃을 잡아 끌며 야채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갔다.

 

 "왜 그러세요?"

 

 "내가 입이 근질 거려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임금님은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서."

 

 "참내. 무슨 일인데요?"

 

 "배선재가 지금 어린 여자랑 같이 왔어. 나는 그냥 불륜인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우연히 듣게된거야 그 말을!"

 

 "무슨 말이요?"

 

 "아까 나 쉬는 시간에 차에 지갑 가지러 갔다가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 얘기를 똑똑히 들었어."

 

 "것참, 뜸들이지 말고!"

 

 "배선재를 아빠라고 부르더라고. 숨겨둔 딸인 것 같아!"

 

 

 예능에 출연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을 연출하던 영화배우 배선재의 비밀을 알게 됐다.

 

 나는 며칠 동안 고깃집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표재범의 첫번째 청부살인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그리고 관련된 기사를 모조리 섭렵한 결과, 표범파에게 청부살인을 지시한 사람은 대광건설 회장의 사모였다.

 

 당시에는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현재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병원 특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 여자는 자기 아들 구성민의 불륜 상대가 유한실업 부사장의 첫째딸 오은주라고 생각했다.

 

 아들의 귀책사유로 이혼을 하게 됐을 때 생기는 손실을 막기 위해서 청부살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구성민은 2009년 당시의 나이가 38세로 22세인 오은주와의 나이차이가 띠동갑 이상이었다.

 

 또한 그의 와이프는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로 장관 출신 아버지를 둔 유명 피아니스트.

 

 사건이 난 뒤에도 구성민은 이혼을 하지 않았다.

 

 자신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어머니의 망상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정신병에 걸린 대기업 회장 사모의 개인적인 일탈로 사건은 마무리 됐고, 청부살인 업자가 징역 30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형을 받은 것은 표재범이 아니라 그의 수하 중 한명이었다.

 

 표재범은 그 뒤로 8명을 더 죽이고 나서야 체포됐다.

 

 나는 내 블로그에 정리된 그들의 첫번째 살인 기록에서 놈들이 오은주를 죽이기 이틀 전에 예행연습을 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아마도 빈집털이를 가장하려던 계획이 나의 등장으로 물거품 됐기 때문에 좀 더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시기로 들어가 구성민과 오은주가 정말 불륜이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대광기업의 행사를 조사한 결과, 내가 정한 날짜에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열리는 것을 확인했다.

 

 구성민은 기업 차원으로 불우아동을 위한 행사를 열곤 했는데 그 날은 플리마켓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의 와이프도 피아노 연주를 한다고 알려져 있었고 유명 연예인들의 참여도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 일반인도 플리마켓에 참여할 수 있으니 행사장에서 구성민을 마주할 기회를 노려 그의 어머니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전해줄 것이다.

 

 자신의 내연녀를 죽이기 위해 어머니가 살인 청부를 지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가 어떻게든 사건을 막으려 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만날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바로 유한실업 부사장의 운전기사이다.

 

 내 블로그에 그 운전기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지난 과거행에서 본 그의 얼굴은 분명 비밀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몸이 아파 집에 있어야 할 오은주가 가족들과의 여행에 동행하자 그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아야 했다.

 

 내가 준비 됐다는 것을 알고 탄내나는 놈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나는 블로그에서 표재범 카테고리를 열어 가고자 하는 날짜를 클릭했다.

 

 이번엔 절대로 한눈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대광건설 후계자인 구성민이 주최하는 플리마켓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틀 뒤, 표범파 놈들이 오은주를 죽이기 전에 구성민을 만나 사건을 막아야 했다.

 

 나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플리마켓에 고가의 물건을 기증하기로 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내게 사준 선물.

 

 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시계였다.

 

 

 "비싼 시계를 찬다고 해서 너의 시간이 의미있게 흐르는 것은 아니겠지. 다만 나는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시계를 건네며 남긴 말은 내게 좌우명 처럼 남아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나는 지금 시간의 흐름을 역행해 과거에 와 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기회를 위해 아버지의 시계를 포기해야 한다.

 

 연쇄 살인범들의 살인을 막고 내가 원하는 과거로 갈 수 있는 기회.

 

 아버지의 한으로 남아있는 형의 사고와 어머니의 실종을 막기 위한 것이니까 의미있는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행사장에서 물품을 접수받는 직원이 내가 내놓은 고가의 시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선생님, 여기 서류 작성해 주시고 아래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서류에는 자세한 신상정보를 적어야 했는데, 나는 대충 거짓으로 칸을 채웠다.

 

 내 서류를 받아든 직원이 나를 안내했다.

 

 "VIP라운지로 모시겠습니다."

 

 나처럼 비싼 물건을 내놓은 기부자들은 VIP 라운지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직원의 설명이었다.

 

 곧 구성민 와이프의 공연도 시작 된다고 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라운지에서 구성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게 됐다.

 

 배선재.

 

 그는 2020년에 숨겨둔 딸과 함께 아버지의 가게에 방문한 중견 탤런트다.

 

 2009년에는 40대 초반으로 시청률 40%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만난 배선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드라마 잘 봤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의 뒤편에 낯익은 꼬마아가씨의 얼굴이 보인다.

 

 오마이갓.

 

 배선재가 가게에 데려왔던 여자애다.

 

 과거에 오기 전, 고깃집 매니저에게 배선재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몰래 얼굴을 확인했었다.

 

 2020년에 성인이 된지 얼마 안되보였던 배선재의 딸.

 

 지금은 열살정도로 보이지만 얼굴이 거의 그대로여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숨겨둔 딸을 왜 이런 행사에 데리고 왔지?’

 

 

 라고 생각한 순간 구성민의 와이프가 피아노 연주를 하기 위해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그리고 꼬마아가씨가 그녀에게 뛰어가며 말했다.

 

 

 “엄마!!”

 

 

 당황스러웠다.

 

 배선재의 숨겨놓은 딸이 대기업 며느리에게 엄마라고 부르다니.

 

 그럼 배선재와 저 여자가 불륜이라는 얘긴데...

 

 

 '이것 참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네.'

 

 

 혼란스러움도 잠시.

 

 내가 기다렸던 구성민이 등장해 내 자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유한실업 부사장의 와이프와 그의 딸 오은주다.

 

 

 ‘이 행사는 단순 자선행사가 아니라 부잣집 인간들이 인맥만드는 자리로군.’

 

 

 곧 죽게 될 운명의 오은주.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내 시선은 그녀를 집요하게 쫓았다.

 

 그러다 희안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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