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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작성일 : 20-09-29 20:14     조회 : 376     추천 : 0     분량 : 8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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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 개미새끼. 눈을 뜨고 공포를 똑바로 보는 거야.

 눈을 감으면 네 눈꺼풀 속에서 공포는 옳다구나하고 커져가지.

 눈을 뜨고 공포의 정체를 확인해.

 (20세기 소년 4권 중, 우라사와 나오키)

 

 #01

 그날 박홍석이 예상하지 못했던 한 가지, 바로 ‘바리’의 존재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던 지장보살이 나타났다. 결국 정다루미는 그날 두 딸을 모두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곧 다른 인과율의 선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의 결과는 여기 두 사람, (김)마리와 정사희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너... 쌍둥이 동생이 있었지?”

 

 정사희 보혜사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은 이제 온갖 고뇌와 후회로 가득하다.

 

 마리 또한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온몸의 떨림... 여인은 빠르게 두 손을 자신의 입으로 향한다.

 

 지독하게 정확한 순간의 철학은 다행히 이성의 끈을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탄성이 사희에게 자극이 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다. 이것을 뱉는 순간, 마리는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숨을 고르고 또 한 번 멈춘다. 구석에 뭉쳐있던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와 마리를 바라본다. 곧 입을 크게 벌리고 그녀를 잡아먹는다. 이순간, 여인은 깎여지는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 아까부터... 그녀가 정사희의 얼굴이 '알게 모르게 익숙한 그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바로 그녀의 이목구비가 마리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느꼈던 불편한 느낌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함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지금 내 심정이 그래.'

 

 마리의 기분이 그랬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얼굴 형태며, 이목구비의 생김새,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 자신의 앞에 여자는 가족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인의 자매라고 하면 차라리 덜 이상하려나... 아니... 처음부터 왜 몰랐을까?

 

 어두웠던 조명 탓이었을까? 아니면 머리에 가해진 통증 탓이었을까? 아니면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을까?

 

 정사희 또한 왜 처음부터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어리석음에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보혜사 그녀는 그 끝이 자신이 생각한 것에 이르자, 허망함과 분노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보혜사 정사희가 그 분노를 토해냈다.

 

 “네 이년! 이 무저갱(無低坑)에서 나온 사탄아, 곡과 마곡(사방백성)을 미혹하지 말지어다. 어디서 다시 내 자리를 차지하려 그 구렁텅이에서 기어 나왔느냐!”

 

 여인의 알 수 없는 외침, 그녀의 음성은 긴장감 가득한 이 공간을 뚫고 밖으로 향했다.

 

 밖에 있던 건장한 신도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최대한 그들에게는 보혜사로서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사희였다.

 

 “아... 사제님들 들어오셨어요? 저 여자를... 아니 저 '마녀의 신 헤카테(Hecate)'를 테이블에서 내려오게 해서, 등받이 의자에 묶어주세요."

 

 마녀... 아니 마녀의 신이라니...? 교단의 신도들은 보혜사가 저렇게 긴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보혜사의 명령을 따른다.

 

 마리는 흔들리는 정신에 이제 육체까지 힘을 잃어갔다. 건장한 사내들의 힘에 쉽게 의자에 묶인다. 이제는 몸까지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잠시만... 사제님들, 잠시만 저 여자를 지켜봐 주세요.”

 

 그녀는 잠시 다른 곳에 가더니 긴 채찍을 가져왔다. 교인들에게는 이제 악마와 둘만의 시간이니 밖으로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아, 박홍석 어르신이 오면 반드시 저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아무도 이 주변에 들이지 말아주세요.”

 

 교인들은 보혜사의 말에 절대적인 충성의 맹세를 한다.

 

 호흡을 가다듬는 정사희, 그녀는 일단 흥분된 자신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여인은 오른쪽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황이 정리가 안되는 것은 마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여자에게 물어볼 말은 확실히 정해졌다.

 

 마리는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제게... 제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 것을 어떻게 아셨죠?”

 

 사희 또한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말... 말했잖아요, 자매님. 저한테 신기가 있다...?!”

 

 그녀의 가식적인 말, 마리는 여인의 말을 끊고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당신은 분명 원래부터 내 동생을 알고 있었어. 그러니 처음에는 내 얼굴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던 거지. 설마 자매일 것이라고 생각 못했으니까. 그러다 그녀와 관련된 무언가가 생각났기 때문에... 나에게서 내 동생을 떠올린 거지.”

 

 “그래... 맞아. 하, 눈치는 빠르네? 헌데... 나는 처음에는 진짜 몰랐어... 분명, 그 여자는 네가 죽었다고 했으니까!"

 

 정사희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예전에... 그 여자가 나에게 지 언니에 대해서 얼마나 얘기를 했던지...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너를 기억하는 것 좀 봐.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지? 근데 넌...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정사희는 이제 다른 등받이 의자를 가져와 자신도 마리 앞에 앉았다.

 

 “그러니까, 내 동생을... 어떻게 아는거냐고.”

 

 “그래, 그 여자...? 원래대로라면, 나 대신에 보혜사자리에 앉을 여자였어.”

 

 “!!”

 

 마리의 눈동자가 커진다. 처음 듣는 동생의 이야기가 저 낯선 여자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이 ‘정사희’였지. 그래... 나는 이름이 뭐였더라? 정사희로 살아 온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생각도 나지 않네.”

 

 그녀는 딱히 아쉽지도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길대, 아까 내가 말했던 이 사람이 네 동생, 그리고 네 엄마의 이름이야. 아까 새상주교의 교리를 이어서 만든 교단이 이 재창조성령회라고 말했지? 그 새상주교의 교주, 원래 그 여자도 무당이었지. 교인들에게 성령의 힘을 보여주기에는 무당이 사실 딱 이야. 그래서 박홍석, 그 영감이 네 동생을 이 재창조성령회의 교주로 삼으려고 했지.”

 

 “그...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정사희는 믿는 말든 자유라며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네 동생, 정사희는 어미가 큰무당이었어도 신기가 없이 태어났지. 그래서 억지로 ‘영적인 능력’을 넣으려고 시도하다가 죽었어. 어떻게 보면 네년 탓이지... 우리를 키웠던 박홍석, 그 노인네는 매일 너 대신에 네 언니를 데리고 왔어야 했다며, 그녀에게 말했다고 했어.”

 

 정사희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마리에 대한 살기어린 증오심은 풀지 않았다.

 

 “한날, 그 여자한테서 더 이상의 희망을 볼 수 없자, 양강도에 있는 우리 어머니한테서 나를 사서 양녀로 들였어. 우리 엄마도 그 지방에서는 꽤 유명한 무당이셨거든.”

 

 지금까지 동생은 친부모와 살고 있다고 알고 있던 마리였다. 자신만 선교사를 통해 중국으로 입양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박홍석이라는 사람은 누구지? 세평의 외삼촌의 이름과 똑같은데...

 

 마리의 궁금증은 더해가고 있었다.

 

 “그 박홍석이라는 사람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시켰다고?”

 

 정사희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 너희가 어릴 때 쌍둥이인 둘 다 데려 오려고 했다고 들었어. 근데 너는 네 아버지와 같이 차 사고로 불에 타 죽었지. 박홍석이 다시 그곳에 갔을 때는 이미 차도 시체도 사라진 후였다고 하더군. 혹시나 해서 다시 사방을 뒤지며 찾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고...”

 

 마리는 사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여자는 정말 나를 죽은 줄 알고 있었구나...'

 

 “아무튼 네 동생, 그 여자가 신력이 없자 나를 그녀와 똑같이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 몇 년을 같이 지내라고 시켰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 노인네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나를 외국에 데리고 나가서 그년과 닮게 성형까지 시켰어!"

 

 정사희의 입가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그 어미가 만든 교단이 사라진 후, 그 교리를 이어받는 새 종교를 만들었는데, 새끼원류라는 상징성이 필요했던 거야!”

 

 끔찍한 기억은 억지로 어릴 때 자신을 꺼내어 정사희 앞에 두었다. 그녀는 그때의 생각은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사실을 부정하려 하였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박홍석이라는 자를 저주한다는 듯, 내뱉는 목소리는 갈라지고 이내 흩어졌다.

 

 “네 어미로부터 시작되는 불멸의 순환을 나타내는 증표, 핏줄! 나를 그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 네 동생에 대한 집착이 끝나지 않은 그 노인네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다시 한 번 그녀의 영적인 능력을 깨우쳐 보겠다고 [그림자의 섬]이라는 곳에 데려갔지. 핏줄에 대한 집착이 엄청난 노인네였어. 그 아이는 그 섬에서 죽었지. 그리고 그 인과율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

 

 마리의 눈에서는 어쩔지 모르는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 자꾸 제 동생이 죽었다고 말하는 저 여자, 그 진의가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느껴지는 허무함과 상실감은 지금 마리의 슬픔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거짓말. 분명 거짓말이야! 내 아버지도 분명 박홍석 그자가 나와 내 동생을 납치하려다 죽였을 거야. 그리고 내 동생... 내 동생이 죽었다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사희는 마리의 눈물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일어나더니 자신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그녀는 겉저고리와 속저고리를 차례로 벗고 등을 보여주었다.

 

 여인의 등에는 상처 자국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채찍으로 보아, 그것들로 만들어진 상처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 상처들 보이니?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자, 나한테도 이제 신병이 나기 시작했지. 이것들은, 그 고통 속에서 내리쳤던 상처들이야.”

 

 다시 가볍게 저고리만 고쳐 입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마리가 원망스럽다는 듯, 자신의 채찍을 꽉 잡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집으로 들어와 정사희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 하늘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지. 노력? 아니, 내가 바로 정사희 그 자체야. 근데, 지금 와서!! 박홍석 그 영감이, 그놈의 핏줄 때문에 네년을 기어코 찾아서 이곳으로 데리고 와?”

 

 마리는 앞에서 소리치는 여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동생의 생각만 할 뿐이다.

 

 ‘내 동생 죽었구나... 나만 살아남았어. 그럼 내가 죽인거야?’

 

 죄책감과 분노의 감정이 이제 마리를 헷갈리게 했다. 그런 마리에게 사희가 다가온다. 앞에 앉아있는 마리의 턱을 움켜지며, ‘보혜사 정사희’ 자신을 똑바로 보라고 말했다.

 

 “잘 봐, 내가 보혜사라고 내가! 네년에겐 미안한데... 박홍석 그 노인네 오기 전에 너 죽어야겠다. 너까지 죽으면 이제 그놈의 핏줄 생각은 안하겠지! 미안해...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가볍게 온 건데 말이야... 죽이게 생겼네!”

 

 그녀는 채찍 채를 한손에 움켜잡고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채찍의 끝이 마리를 향하기 시작할 때, 누군가 기도실의 문을 힘껏 발로 차면서 들어왔다.

 

 “정사희, 잠깐만!”

 

 급히 기도실의 문이 부셔졌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박홍석의 모습이 보였다.

 

 수행원 중 한 명의 손아귀에는 교단의 신도로 보이는 자가 있었다. 옷의 목 부분을 잡힌 채, 그는 허공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무릎도 피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박홍석이 입을 열었다.

 

 “하하, 우리 보.혜.사님! 아아! 아주 사제님들 교육 하나는 잘 시켰어. 어찌나 다들 말씀들을 안 하시던지, 하마터면 일 터질 뻔했네.”

 

 홍석은 눈짓으로 수행원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남자는 이제 보내라는 신호인 듯하다.

 

 그때였다. 정사희는 그 틈을 타서 마리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이미 마음먹은 그녀였기에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다행히 수행원 한명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사내는 휘둘러진 채찍의 선이 마리에게 닫기 전에 채찍채를 뺏어 들었다. 그 후에 그는 조용히 보혜사의 무릎까지 꿇린다.

 

 “핏줄까지 찾아서 속이 시원하세요? 이제, 재창조성령회는 아저씨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종교가 되겠군요.”

 

 정사희는 의자에 묶여있는 마리와 홍석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홍석은 그런 그녀가 어리석다는 듯 쳐다본다. 그리고 묶여 있는 마리를 일단 풀어주라고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이 어리석은 것아, 내가 이럴까봐 말 안한 것이다. 내가 너를 그 자리에 올린 것은 이미 다 결정 된 것이야! 이제 와서 보혜사 성령을 바꾼다면 누가 이 교단에 대한 신의를 갖겠느냐. 내가 그녀를 데려오라고 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다. 성격을 좀 죽이고, 너 자신에서 벗어나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마리는 이제 등받이 뒤로 묶여 있던 손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멍한 표정은 계속 이어졌다. 계속해서 동생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서 당신이 ‘제 부모와 동생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박홍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 혹시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아느냐? 바로 '어이'라고 한다. 잘봐, 내가 지금 맷돌을 막 돌려. 그러다가 얼래... 손잡이가 빠졌네? 그럼 내가 일을 못하겠지? 그럼 내가 기분이 어떨까? 그 상황을 어이가 없다고 하는거야. 내가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

 

 뒤에 서 있는 수행원들은 다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동시에 실소를 터트린다.

 

 “도대체, 저 여자한테 무엇을 들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네 아비가 죽은 줄 알고, 너희 둘 다 내가 입양하려던 것은 맞아. 하지만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돌려줬어. 그리고 마침 그날 차 사고가 났다. 그때 두 사람은 죽은 줄 알았기에, 네 동생만 데리고 온것이다. 만약 악의적인 목적이 있었다면, 네 동생에게 너의 존재가 있다는 것부터 알리지 않았을 것이야.”

 

 홍석의 말이 끝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얀 안개가 문틈 사이에서부터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개가 공간을 덮기 시작했다. 하얀 늪처럼 사람들의 무릎 밑에 천천히 깔렸다.

 

 그리고 그 일의 중심에는 마리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공간을 자욱하게 덮은 안개를 발견하지 못한 듯 보였다.

 

 ‘쿠가이가 이 여자를 '인로왕보살'이라고 했던가...? 더욱 호기심이 가는구나.’

 

 진해진 연기 탓에 수행원들은 불이라도 난 듯 행동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출구를 파악하고, 홍석을 모시고자 했다.

 

 홍석은 오히려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크게 웃음을 짓는다.

 

 "나는 괜찮으니, 문 밖에 나가서 잠시만 대기하거라."

 

 이제 방에는 마리와 사희 그리고 홍석만이 자리했다. 사내는 방에 세 사람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에 무언가를 삼켰다. 그것은 사토 쿠가이가 본인에게 준 ‘삼안천주’ 염주알이었다.

 

 마리는 이제 정신이 어느 정도 들었나보다. 홍석의 행동을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녀의 멍한 눈동자는 서서히 명암을 회복한다. 마리의 왼쪽 눈 색깔이 짙은 갈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눈은 그대로 갈색을 유지했다.

 

 이제 하얀 안개로부터, 복숭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정사희의 행동에는 변화가 생겼다. 안개가 발밑에 깔리기 시작 할 때부터, 겁을 먹기 시작한 그녀였다. 이제 마리의 왼쪽 눈 색깔이 회색으로 바뀌자, 손에 든 채찍에 땀이 맺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면서 온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리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편안함을 찾는다. 목소리는 차분히 대상자를 찾았다. 그렇다. 그녀는 이제 홍석을 부른다.

 

 “당신...거짓말 하지 마. 이곳에 우리 아버지 왔었지? 아버지가 동생에게 내 얘기를 했는데 뭘. 어머, 내 동생이 나의 존재에 대해 귀찮게 물어보자 어쩔 수 없이 말했구나. 근데 너네... 우리 아버지 죽인거 맞잖아. 동생을 찾겠다고 온 사람을 죽인거야? 어머, 그리고 이 교회는 뺏은 거구나. 이전에는 다른 곳에 있었네? 교회가 겉만 깨끗해 보인다고 아버지가 그냥 돌아갈 줄 알았구나... 설마 그 넓은 교회부지에서 부모가 한 번에 친 딸을 알아볼 줄은 몰랐겠지. 그래서 죽였어? 시끄러워질까봐? 어차피 신력도 없는 아이였는데... 돌려보내지 그랬어?”

 

 여인은 급격한 피로감에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회색 눈의 끝에서 경련과 함께 붉은 반점이 생겼다.

 

 그리고 그 순간, 마리의 눈에는 무엇인가 더 보였다. 그곳은 검은 섬이었다.

 

 온통 검은 색상의 건축물들이 가득한 그곳, 그 장소 안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실험자, 기록자, 감시자, 그리고 피 실험자들.’

 

 그들에게는 이미 생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감시의 눈과 엄격한 통제가 주어지는 장소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마리는 눈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감았다 뜬 그녀의 눈에는 이제 기도실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증오를 품고 있고, 자신이 증오를 품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하, 역시나 이쪽이 진짜였구나. 그래, 네 아비가 어떻게 알고 자기 자식 찾겠다고 왔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죽인 것은 정말 내가 아니야! 우리 보혜사 성령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신도님들이 그런 것이지. 그래... 아무튼 이쪽도 부탁 받은 것이 있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그분이 기다린 지 좀 되셨으니, 직접 만나서 서로 이야기 좀 나누게.”

 

 그것은 박홍석의 이마 중심에서 시작되었다. 꿈틀거리기 시작한 피부는 이내 눈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아까 사내가 삼켰던 삼안천주 염주 알, 그것을 양식 삼아 세 번째 눈이 발현된 것이다.

 

 홍석이 두 눈들을 감았다 뜨자, 세 번째 눈꺼풀도 같이 떠졌다. 사내의 눈들은 짙은 갈색에서 이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사토 쿠가이(佐藤空海),

 

 그가 홍석의 몸을 빌어서 이곳에 등장했다. 사내의 목소리가 바뀌면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마리에게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님.]

 
작가의 말
 

 1. 불쾌한 골짜기: 1970년 일본의 로보티스트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론. 최근, 영화 '캣츠'를 통해 다시 이론이 재조명 되었습니다.

 2. 마녀의 신 헤카테(Hecate):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중세 시대에는 마녀에게 힘을 주는 악마로 여겨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도 헤카테의 이름이 등장한다.

 3. 삼안천주: 사토 쿠가이가 박홍석에게 준 염주알(사토 쿠가이 등장편). 세개의 눈을 가진 하늘의 구슬이란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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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 20-09-29 20:18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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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1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8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4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7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4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5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89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28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3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8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7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2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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