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작성일 : 20-09-29 20:07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793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3

 정다루미는 곧장 박명문의 본가가 있는 만주로 향했다.

 

 그는 교단의 사업용으로 사다 놓은 8인승 포드 차에 올라탔다. 북쪽으로 난 길은 남쪽의 경성으로 향하는 도로보다 거칠고 험했다. 굽은 길을 지날 때 마다 ‘조선 지리’의 대단함을 느끼는 사내였다.

 

 저 멀리 교회의 탑이 보인다. 작은 종교시설이 인적이 드문 들판에 세워져 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아! 조선의 역사에서 한 종교가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은 적이 있었던가...?”

 

 다루미는 살짝 입술 끝을 깨물었다. 피로감에 창문을 열었다. 들어오는 저녁 바람은 차안의 공기를 환기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사내는 이 전에도 아이들을 보러 명문의 본가에 들렸던 경험이 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그는 자신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불확실성에 대해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박명문의 집은 만주 공태보에 위치해 있었다. 한인 농가 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곳에서 그의 집은 단연 돋보였다. 원래 작은 한옥 집이었던 그의 본가를 최근에 재건축을 통해서 양옥집으로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명문은 교단의 사업을 전담하던 사내였다. 교단의 확장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였기에, 겨우 이정도 크기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에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었다.

 

 친구 명문의 집 정문 앞에 선 정다루미, 그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고른다. 사내는 생각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확인이었다.

 

 어둠은 이미 주변의 작은 소음마저 집어삼켰다. 사내는 이렇게 되니 귀에서 들리는 이명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명문 그 친구도 분명 본가에 지금 있을 것이다. 오늘 목적은 부모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방문한 것에 있어야 한다. 절대 그에게 다른 의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선 안 된다.

 

 ‘쌍둥이들을 무사하게 데려오는 것...’

 

 마음속으로는 다시 진짜 목적을 되뇌었다.

 

 “명문, 자네 여기 있는가?”

 

 이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만 잠시 기다리기로 한다. 이윽고 문이 살짝 열리면서, 누군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러 나온다.

 

 정다루미를 응대한 사람은 명문의 어머니였다.

 

 “어머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항상 전보를 드리고 왔었는데, 갑자기 찾아뵈어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녀의 날이 서 있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예전과 다르게 경직되어 있는 얼굴 표정과 과도한 몸동작, 그리고 격식을 차리는 말투가 사내를 낯설게 했다.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정다루미는 일단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다. 사내는 그녀를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의 방은 나무 소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밝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기 쌍둥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은 저번에 자신이 사온 스웨덴산 참나무로 만든 아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듣기로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은 원목으로 만든 가구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중에 전 세계를 강타할 가구회사가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내였다.

 

 쌍둥이들에겐 다행히 아직 아무 일도 없는 듯 했다.

 

 괜한 기우였나? 명문에게 괜히 오해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 순간 밖에서 들리는 수상한 소리, 다루미는 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방문 반대쪽으로 난 창에서 뒤뜰이 보였다. 저 멀리 주차되어 있는 고급형 캐딜락 자동차와 포드사 자동차들, 왠지 ‘동네와 안 어울리는 모습’에 사내는 목 뒤를 스치는 스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시 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감정이 스멀스멀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명문, 그가 최근에 차량을 또 구입했나 보군요.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은데.”

 

 어머님은 명문이 잠깐 나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일층 거실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다루미가 차량 얘기를 꺼내니 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원래와 다르게 그녀가 '재촉과 강조'의 말투로 일관되게 말하는 모습에 사내는 이상함을 느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불확실성은 이제 자신이 느끼는 의심이 확실하다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냥 명문이 올 때까지, 아이들과 같이 있겠습니다. 한동안 안 보았더니 좀 오래 있고 싶네요.”

 

 사내는 그런 그녀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몇 번의 강요 비슷한 제안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다루미는 똑같은 대답을 이어간다. 그의 태도에 화가 난 그녀는 그럼 그러라며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 다루미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후우...”

 

 우선 호흡을 길게 뱉는다.

 

 "어쩔 수 없지."

 

 지금 공간에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것, 차량과의 거리, 그리고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고민들... 다음 행동에 대해 수를 고려해 보지만 '이것'말고는 별다른 대안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내는 아이들을 담요로 잘 여민 다음, 한 명은 등 뒤로 한 명은 가슴팍으로 잘 안았다.

 

 “하나, 둘, 셋!”

 

 그다음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정다루미는 문을 잽싸게 열고 일층으로 내다 달렸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충격을 주지 않고자, 내딛는 발걸음마다 신중을 기한다.

 

 정문만 나가면 된다.

 

 저기 구석의 방문을 열고 명문의 어머니가 달려온다. 다행히 여자의 몸으로 빠르게 자신을 쫓아오지는 못했다.

 

 정문을 나선다.

 

 뒤에서 사내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주방 쪽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통해서도 검정색 정장을 입은 이들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명문의 어머니와 달랐다.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닿을 듯하다.

 

 ‘어떻게든 차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단거리 호흡에 맞추어 온전히 근육에만 에너지를 사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의문의 남성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사내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들은 훈련을 받은 요원들처럼 힘든 기색 없이, 사냥감의 목덜미만 노리는 듯 했다.

 

 이제 다루미의 목덜미에 그들과 거의 가까워졌다. 사냥감인 사내는 이렇게 저렇게 방향을 바꾸어 보고, 보폭을 통해 혼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에게 결국 잡히고 말았다.

 

 "허억... 허...억. 허억."

 

 다루미가 뱉어내는 숨만 요란하게 사방으로 퍼졌다. 자신의 진심이 신에게 닿지 않은걸까? 그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요원들에 의해 무릎이 꿇려졌다.

 

 그리고 사내의 속에서 피기 시작한 불확실성에 대한 꽃이 그 봉우리를 맺고 폭발했다. 붉은 꽃잎들은 이제 사내의 속을 어지러이 날라다녔다. 자신이 우려하던 상황을 담은 그림, 그 회색 빛 가득한 풍경화 구석에서 명문과 웬 중년의 사내가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24

 처음 보는 사내는 명문의 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그에게 무엇인가 지시라도 한 듯, 사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명문은 다루미에게 속도를 내어 걸어왔다. 그리고 웃으면서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모세 증인님. 안그래도 제가 곧 전보를 드리려고 했는데... 증인님 자녀분들은 좋은 곳에 입양을 보냈다고.”

 

 다루미의 눈동자가 커진다. 입양이라니...? 명문, 저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명문, 이것이 무슨 짓인가? 내 아이들을 어떻게 하려고... 혹시 길대도 자네가 그런 건가? 자네가 우리 교단을 신고했냐는 말일세.”

 

 명문의 눈동자도 커졌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다.

 

 “이잉? 이보게 다루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우리 교단을 신고해. 자네 그 여자 죄목을 아직 듣지 못한 게로군. 일본 망하라고 대놓고 그랬는데, 누가 신고를 했어도 했을 일 아닌가?”

 

 그는 이어서 다루미의 턱을 움켜진다.

 

 “시각이 너무 편협 하신 거 아닙니까, 모세 증인님? 원류님이 잡혀간 다음, 네가 경찰서로 갔을 때, 교단의 일을 수습하려고 돌아다닌 사람은 나였어, 이 사람아!”

 

 박명문의 이마에 만들어지는 깊은 주름, 자신의 노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 했다.

 

 “흐음.”

 

 뒤에 있던 중년 신사가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그의 눈치를 보더니 사내는 다루미의 턱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그의 뺨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는 것으로 화를 풀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온 자의 소개를 해주었다.

 

 “이분은 지금 총독부 외무대신이신 박홍석 어르신이다. 좋은 뜻으로 자네 아이들을 입양하려고 이곳에 오셨지. 암, 얼마나 잘된 일인가!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지.”

 

 “무슨 말인가? 아이들 아버지는 살아 있고, 엄연히 나인데, 왜 내 자식들을 입양을 보내려고 한다는 건가?”

 

 “이 사람아, 이미 다 정해진 일이야. 우리는 교단 일을 하면서 운명론에 익숙하지 않은가. 받아드리게.”

 

 명문은 같이 온 박홍석의 수행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명령은 그가 안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 수행원들은 이미 자신들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 있는 먹잇감의 새끼들을 대수롭지 않게 뺏었다.

 

 정다루미의 쌍둥이들은 다시 박명문의 품에 돌아왔다.

 

 “이 친구야, 오늘 일을 다행으로 여겨. 네가 만약 이 아이들 아버지가 아니고,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오늘 살아있기 힘들었을 걸세.”

 

 수행원들은 다루미의 목덜미를 일단 자유롭게 했다. 사내는 여전히 무릎이 꿇려 있었지만, 그의 눈은 매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깔아, 임마. 내가 너네 부부사이에 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명문은 검지와 중지를 들어 다루미의 눈을 가리키며, 그의 눈을 밑으로 내리라고 강조했다.

 

 ‘아직이다.’

 

 다루미는 마음속으로 상황을 살핀다. 박홍석의 지시에 이제 모두들 돌아서 명문의 집으로 향하였다. 뒤 따르는 수행원들도 방금 전,명문의 말을 따라하며 장난을 친다. 분명 임무 완수에 대한 긴장감을 푼 것으로 보였다.

 

 ‘이때다’

 

 다루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 급히 차 안에서 장총을 가지고 나온 다음 허공을 향해서 한 발 쏘았다.

 

 "탕!"

 

 공간을 가득 매우는 단발음 소리. 급작스러운 총성소리에 박홍석의 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온몸에 분노가 가득한 정다루미의 모습이 보였다.

 

 몇 미터를 둔 그들의 사이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 회색의 상황에서 회생의 모든 가능성을 찾고 있는 다루미였다.

 

 “야! 다 거기서. 이 소돔(Sodom)의 개 자식들아. 당장 내 새끼들 놓고 가. 안 그러면 오늘 다 죽는 거야!”

 

 사내는 자신의 총구 끝이 누구를 지금 향해야 할지 계산을 끝냈다. 그는 장총을 집어 든 순간부터 깨달았다.

 

 ‘저 중년의 사내... 저놈만 노리면 된다.‘

 

 다루미는 그들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박홍석을 향해 총 끝을 향하고, 다른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내의 진심이 자신에게 향했건만, 별 감흥 없는 홍석의 표정이다. 별일이야 있을까...싶다만, 다루미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건지 갑자기 호기심은 생긴 모양이었다.

 

 “하하하. 이놈, 진심이구나. 그렇지!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저 정도 의지는 보여야지 암. 그 총 거두지 말고 천천히 나에게 오게. 내 맘이 바뀔지도 모르니.”

 

 아이를 안고 있던 명문은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어이없다는 듯 홍석을 쳐다보았다.

 

 “다루미, 너 임마! 지금 무슨 짓이야. 그 총 안 치워?”

 

 명문은 황급히 다루미를 향해서도 소리쳤다. 그리고 수행원들에게도 일단 총을 내리라고 손짓한다.

 

 “다들 잠시 뒤로 물러나 있게. 그리고 명문, 자네는 아이들을 이리 데리고 오게.”

 

 홍석은 생각을 정리한 끝에, 뒤에 있는 비서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오라고 전했다.

 

 A4크기 정도 되는 종이를 세 장으로 나눈 그는 각각의 종이에 다른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안 보이게 접어서 다시 비서에게 전달했다.

 

 “나하고 간단한 게임하나 합세. 별거 없어. 1, 2, 3 이라는 게임이라네.”

 

 “1, 2, 3?”

 

 홍석을 향한 총구는 계속해서 그 위치를 지켰다. 그러면서 일단 귀를 열어 둔 명문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1은 ‘가지다’, 2는 ‘빼앗다’를 의미하네. 그리고 3은 ‘나누다’를 뜻하지.”

 

 박홍석이 설명한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숫자 1이 나오면 정다루미가 쌍둥이들을 데려간다.

 2. 숫자 2가 나오면 박명문이 쌍둥이들을 데려간다.

 3. 숫자 3이 나오면 서로 한명씩 데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홍석은 숫자 3이 적힌 종이는 다루미가 볼 수 있게 있게끔, 다시 펼쳐서 놓았다.

 

 “내가 이렇게 숫자 3이 적힌 종이는, 자네가 볼 수 있게 펴 놓겠네. 만약 자네가 숫자 3을 고른다면, 우리는 사이좋게 한 명씩 데려갈 수 있지. 어떤가? 이쯤 되면 내가 최대한 배려를 해준 것 같은데. 그 총은 내려놓는 게 어떤가.”

 

 “배려? 공평? 어떻게 이런 악마 같은 게임을 가지고, 그런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거지? 아무래도 당신은 배려라는 단어를 모르나 보군”

 

 다루미의 손은 재빠르게 장전을 끝냈다. 이런 시답지 않은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린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곧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다같이 죽자! 길대야 미안하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사내의 눈 끝에서 맺히는 붉은색의 눈물. 그가 서 있는 이 공간은 이미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심장에서부터 올라온 핏빛 울음 자국이 그의 각오를 말해주는 듯 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 온 총알이 다루미의 손등을 스쳤다. 그는 곧바로 장총을 놓친다. 주변에 있던 수행원 한 사람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달려온다. 그리고 오른발을 뻗어, 사내의 오른쪽 옆구리에 깊은 타격감을 안겨주었다.

 

 가볍게 장총을 빼앗은 수행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한 것을 보라고 동료 수행원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다루미의 행동 하나 하나가 귀여운 반항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자네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다네. 이런 게 배려지. 안 그런가?”

 

 통증에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내에게 걸어가는 박홍석, 그는 웃으면서 다루미를 일으키라고 수행원들에게 소리쳤다.

 

 “어떻게든 아이의 아버지라니까, 내가 기회를 주려는 거잖아. 응? 아까부터 내가 맘만 먹었으면, 네놈 죽어도 세 번은 더 죽었을 거야. 시간이 없다. 안 할 거라면, 그냥 둘 다 내가 데려가고. 응? 어떻게 할래?”

 

 다루미는 피가 멈추지 않는 오른손을 땅으로 향하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이제 정말 답이 없나...?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숫자 3을 뽑아서 한명이라도 데리고 가야 할까? 숫자 1을... 내가 뽑을 수나 있나? 애초에 나 엿 먹이려고 둘 다 숫자 2라고 적었을 수도 있잖아.’

 

 그가 쌓아놓은 자존심은, 모래성처럼 흘러 들어오는 밀물에 무너지고 이제 그 흔적만 남았다. 하지만 사내는 결심했다. 다시 그 모래성을 쌓기로 한다.

 

 다루미는 게임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가려져 있는 숫자 1과 2, 둘 중에서 하나를 뽑기로 한다. 어차피 둘 다 아니면 의미가 없다.

 

 “하... 하겠습니다. 숫자 1과 2중에 하나를 뽑겠습니다. 둘 다 제 딸입니다. 꼭, 다 데려 갈 겁니다.”

 

 어느새 오른쪽 손등에 흐르던 피가 멈추었다. 피가 빠져 나간 탓에 몸이 떨리는 정다루미, 하지만 이제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내가 다시 쌓은 모래 성은 아직까지 견고해 보인다.

 

 홍석의 비서는 다루미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쥐고, 손등이 위로 가도록 사내 쪽으로 내밀었다. 양손안에는 번호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비서의 오른쪽 손등 위에 패랭이 꽃, 그것은 바람에 천천히 내려 앉았다가 다시 날아갔다.

 

 갑자기 정다루미는 이길대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저 이름 모를 들판 혹은 아무 모래 땅에는, 혼자 힘으로 피고 지는 패랭이라는 꽃이 있어요. 불우한 처지에서도 제철이 되면 혼자 힘으로 꽃을 피어내니... 꼭 귀인 같지 않아요?“

 

 그렇다. 귀인! 귀인은 오른쪽에 앉는다!

 

 이길대,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쪽지에 적힌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오른쪽이다. 오른손안에 든 종이에 분명 숫자 1이 적혀 있을 것이다. 정다루미는 머릿속에 울리는 그녀의 말이 떠나기 전에, 급히 결정을 내린다.

 

 “오른쪽... 오른손에 있는 숫자로 하겠습니다. 종이를 보여주세요.”

 
작가의 말
 

 1. 소돔: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소돔은 육체적 타락과 죄악의 소굴로 그려졌다.

 2. 패랭이 꽃: 꽃의 모양이 옛날 민초들이 쓰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낮은 지대의 건조한 곳이나 냇가 모래 땅에서도 잘 자란다.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 드립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작품소개 (03: 43, 2020, 09, 24) 2020 / 9 / 24 517 0 -
30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1) 2020 / 9 / 29 376 0 8733   
29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1) 2020 / 9 / 29 316 0 8338   
28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91 0 7939   
27 [CHAPTER 2] 그림자 섬 (11: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83 0 7104   
26 [CHAPTER 2] 그림자 섬 (10) 2020 / 9 / 29 290 0 8943   
25 [CHAPTER 2] 그림자 섬 (9) (1) 2020 / 9 / 28 310 0 7805   
24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2020 / 9 / 28 293 0 8275   
23 [CHAPTER 2] 그림자 섬 (8) (1) 2020 / 9 / 28 310 0 7303   
22 [CHAPTER 2] 그림자 섬 (7) 2020 / 9 / 28 276 0 6869   
21 [CHAPTER 2] 그림자 섬 (6) 2020 / 9 / 28 281 0 6714   
20 [CHAPTER 2] 그림자 섬 (5) 2020 / 9 / 27 297 0 6849   
19 [CHAPTER 2] 그림자 섬 (4) 2020 / 9 / 27 285 0 7408   
18 [CHAPTER 2] 그림자 섬 (3) 2020 / 9 / 27 278 0 6817   
17 [CHAPTER 2] 그림자 섬 (2) 2020 / 9 / 27 294 0 7092   
16 [CHAPTER 2] 그림자 섬 (1) 2020 / 9 / 27 284 0 6903   
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77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94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89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1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8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4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7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4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5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89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27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3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7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6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1 0 748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