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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2] 그림자 섬 (10)
작성일 : 20-09-29 20:03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8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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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自我)를 이루는 내 의식의 구조물들아.

 우리는 하나이자 전체(全體).

 전체(全體)는 의식의 천체(天體)를 이루는 유기물들.

 아아... 우리는 어찌하여 그날 잘못된 선택을 하였나.

 

 #19

 창 하나 내지 않는 방 중앙에 긴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벽면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 방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하얀 천으로 덮어 놓았다. 다림질이 잘 된 덕분인지 천은 구김 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끝 한편에는 再創造聖靈會(재창조성령회)라는 한자가 가로로 적혀있었다.

 

 그 테이블 위로 젊은 여인이 누워 있었다. 옆으로 곱게 땋은 머리는 어느새 풀려 엉클어진 옆 머리가 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김)마리였다.

 

 대동문 장터에서 전수동 교회로 옮겨진 뒤, 여인은 몇 시간째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공간의 텁텁한 공기 탓에 깊은 숨을 들이키지 못해서 그런지, 폐는 짙은 기침 소리만 뱉어냈다.

 

 한동안 의식에 대한 어떠한 반사적 반응도 없던 마리였다. 정신을 차리려는 어떠한 의지의 꿈틀거림에 손가락만 가끔씩 움직임을 보인다.

 

 무의식의 단계, 그녀가 삶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 쯤 어떤 목소리들이 들렸다. 목소리들은 한 장의 낡은 종이에 자신들의 음성을 글로 변환하여 나타내기 시작했다.

 

 마리는 그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사이에 자신의 손을 뻗는다. 아무것도 아닌 양 그 종이를 찢었다. 마리의 손안에 쥐어진 종이, 그것은 그녀의 과거만큼 무거웠다.

 

 직접 그녀의 머릿속에 전해지는 듯 목소리들이 울린다. 그 끝은 깔끔하게 소리가 맺어졌다. 명확해진 음성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나무에 부딪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발(鉢), 나는 언젠가 이 계수나무에서 바라보는 저 끝을 넘어서 가보고 싶어.“

 

 “... 풍(風), 또 그 소리구나. 그런 궁금함은 너에게 절망만 남기는 것을... 너는 이 계수나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목소리들은 마리에게 영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낡은 종이에 그들의 대화는 필기체 글씨가 되어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음성이 천천히 사라진다. 필기체 글자들 또한 천천히 지워졌다. 상황이 바뀐 듯 보였다.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소리의 대상자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음성은 여전히 마리에게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 발(鉢), 그냥 이대로면 되는 걸까? 그는 왜 이런 변덕을 부리는 거지?”

 

 “... 풍(風), 나의 사명으로는 너희의 앞날까지는 볼 수 없어. 만약 인간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받아드려야지.”

 

 “... 발(鉢), 아니.. 나는 이 의미 없는 [선거]를 막을 거야.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어. 너를 위해서라도!”

 

 “.... 풍(風),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알잖아.. 너의 사명은 그를 거절 할 수 없게 태어났으면서.”

 

 목소리들은 다시 자신들의 기록을 낡은 종이에 남기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거기 누가 있어요?’

 

 마리는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의미 없는 물음을 건넨다. 역시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제 천천히 그녀의 의식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눈은 뜰 수 없었다. 무의식의 단계를 벗어날수록 목소리들은 이제 희미해져갔다. 방금 전과 다른 상황임이 그녀에게 전해진다. 목소리의 떨림은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감을 말해주었다.

 

 “... 풍(風), 한 번뿐이야 잘 들어야해. 이번 [선거]의 결과는 절대 바뀌지 않을 거야. 너도 너희가 만든 인간들을 부정 해야해. 그래야지 다음 [선거]의 결과가 바뀔 수 있어.”

 

 “... 발(鉢), 너 설마, ‘빗장’을 열어 본거야? 그럼 지금의 인류는 어떻게 하고?”

 

 “... 풍(風), 이번엔 소용없어,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대신 ...수가 끝나고 나면, 너는 인류를 보호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해. 그의 변덕이 이번이 마지막일리 없잖아. 풍(風), 약속해, 방법을 찾겠다고...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부디 그들을 사랑해줘.”

 

 목소리들 사이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그 느낌은 마리의 의식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의식의 자극이 이어질수록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성들은 천천히 사라지고, 대조적으로 다른 목소리가 밖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이윽고 커다란 울림이 되어서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깨웠다.

 

 “하학...!!... 허헉...하아... 하.. 하학...”

 

 오래된 기억, 그 한계에서 마리는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윗몸도 일으켰다.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는 커졌고 두 손으로 급히 입을 막는다.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떨기 시작했다.

 

 꿈이었다면 뭔가 흐릿한 순간도 있었을 것을, 그녀는 방금 전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름처럼 말했던 발(鉢), 풍(風), 이는 어디서 분명 들어봤던 것처럼 익숙했다. 무의식의 끝에 살아있는 기억의 행방이 지워지기 전에 입으로 중요한 단어들만 다시 되새긴다.

 

 “발, 풍, 계수나무, 그, 선거, 빗장, 그리고 ...수?, 분명 무슨... 수라고 한 것 같은데, ...수가 끝나고 나면..? 무슨 말이었을까?”

 

 죽어버린 글자의 행방은 이미 찾을 수 없었다. 방황하는 마리의 머릿속은 이제 자신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선은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으흠. 흠. 흠.”

 

 정신을 차린 후, 그녀가 인지한 것은 본인 이외에 다른 사람이 방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리는 갑작스러운 헛기침 소리에 깜짝 놀랐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그 곳에는 고운 여인이 서있었다. 머리에 올린 레이스 장식의 미사보가 앞으로 내려와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다. 하지만 살구꽃이 핀것 같은 두 볼과 투명한 피부, 그리고 자신의 신경을 살짝 거슬리는 걸 보니 그녀의 아름다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리의 눈앞에 여인은 온화한 색상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연한 살구색의 한복 치마가 그녀의 움직임에 조심스럽게 나풀거린다. 미사보의 여인은 마리가 걱정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어머, 자매님... 이제 정신이 드셨나 봐요? 제가 아까부터 계속 말을 걸었는데 혼잣말만 하셔서...”

 

 “여... 여긴 어디죠? 도대체 왜 절 이곳에...?”

 

 긴장감에 갈 곳을 잃은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쯤, 마리는 자신이 타인에 의해 이곳에 끌려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면서, 마리 눈동자의 움직임이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기 시작했다.

 

 #20

 마리의 눈이 멍해지면서 반대쪽 하얀 벽에 자신이 납치 되었을 당시의 기억이 영상처럼 보여 지기 시작했다.

 

 연이를 기다리던 자신에게 한 어린 아이가 다가왔다.

 

 “전도활동에 왔다가 부모님을 잃어버렸어요.”

 

 길을 잃은 소녀는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혹시, 저기 대동문 장터 거리에서 전도하시는 분들이시니?”

 

 마리는 관동성경학교(關東聖經學校), 그들이 번화가 초입 길에서 전도 모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네, 맞아요. 언니!”

 

 어린 소녀는 그곳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가 오기 전에 금방 다녀 올 수 있겠거니 생각을 했었기에 별 걱정없이 다녀오기로 했다.

 

 마리는 소녀의 손을 잡고 번화가로 다시 나섰다. 어느 정도 그들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같이 온 소녀가 갑자기 부모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갔다.

 

 어린 소녀가 마리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달려가 금방 누군가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마리는 아까 이곳을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겠지...

 

 일반 교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과 함께 하는 전도활동모임.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를 가진 분들을 도와가며 하느님의 영광을 전하는 모습을 보자, 마리는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종교 활동의 모습이 너무나 뜻밖이라 가서 인사라도 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그 교인들 중 한명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혹시, 우리 딸을 여기까지 데려와주신 분이신가요?”

 

 어린 소녀의 아버지인 듯 했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했다.

 

 “우리 아이가 저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예쁜 언니를 보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잠깐만 같이 가시죠?”

 

 마리는 잠시 그럴까 생각했지만, 이제 금방 나와서 자신을 찾을 연이가 눈에 걸렸다.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죄송해요, 아버님.”

 

 그녀는 눈에 아쉬움을 가득 담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때였다.

 

 “보... 보혜..사님이 기... 기다리신다. 가... 같이 가...가자고 하...할 때 가... 가면 아... 무 문제 어... 없...다.”

 

 어눌한 말투로 말을 더듬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마리의 눈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중년의 남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리는 남자의 말에 심하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보혜사님이 기다리신다니?”

 

 소녀의 아버지는 그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인양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영철 형제님, 우리 자매님 당황하게 이게 무슨 행동이세요.”

 

 그리고 자폐증을 앓는 사람의 과대망상증 같은 거라고 마리를 안심 시키려고 애썼다. 그는 미안하다며 한 번 더 관동성경학교라는 긴 현수막이 걸려있는 건물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이미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마리, 그녀는 그뿐 아니라 갑자기 불안한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 정말 죄송해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급히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뒤로 도는 순간 바람이 휭 하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스쳤다. 그리고 왼쪽 머리에 둔탁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는 그렇게 정신을 잃어갔다. 움직임을 잃어가는 마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지적장애를 가진 노인이었다.

 

 그는 정신을 잃어가는 마리와 눈을 마주치자 휘두른 강목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왼쪽 새끼손가락을 입에 넣고 오른손을 떨며 불안해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 새끼 원류...원류(源流)님이 기... 기다리신다."

 

 그리고 납치 당했을 당시의 기억이 끝났다. 영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 되는 마리의 멍한 표정과 초점이 흐린 눈동자, 그러다 기억의 조각이 그곳을 떠나면서 심장에 다시 불꽃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옅은 숨만 내쉬던 마리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 매님? 자매님? 어머, 이분 또 이러시네.”

 

 미사보의 여인은 혹시 머리에 가해진 충격 탓에 이러나 싶어서 의식을 확인하고자 마리를 계속해서 불렀다.

 

 “원, 조심히 모셔오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이래서야 박홍석, 그 노인네가 또 뭐라고 할 터인데. 그나저나... 자매님 정신이 드세요?”

 

 마리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느껴지는 왼쪽 머리의 통증. 상처부위의 피가 멎었는지 아니면 원래 가벼운 뇌진탕 정도였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다행히 통증부위를 더듬어보아도 약간의 혹만 만져질 뿐 다른 상처는 없다.

 

 “자매님을 공격한 분일은 제가 사죄드릴게요. 분명 제가 ‘공손히’ 모셔오라고 말했는데...”

 

 마리의 머리 쪽을 조심히 살펴보는 여인이다. 그녀는 마리의 외모에 상처라도 났을까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상처는 없죠? 이 아름다운 외모에 흠이라도 나면 어떡해... 그분이 그래도 사람 때리는 데는 실력이 최고예요. 겉으로 상처하나 없이 잘하신다니까요.”

 

 마리의 상황을 보니 또 한 번 그 실력에 감탄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묘령의 여인이다. 그녀의 모습에 기가 막힌 듯 마리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다시 겉눈질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분명 이방에는 본인과 앞의 여자 둘뿐이었다.

 

 자신을 포박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감시하려는 인원도 이방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이 무척이나 만만해 보이거나, 아니면 앞의 수상한 여인이 엄청 세다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느껴진 안심 때문일까, 갑자기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연이와 세평에게 미안한 감정이 연이어 느껴진다.

 

 앞의 수상한 여인은 이제 조심스럽게 마리를 이렇게 저렇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큰 눈이 더욱 커지면서 갑자기 놀란 표정이 된다. 그리고 마리 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어머... 어머, 그나저나 이 자매님 되게 낯이 익네. 우리 언제 뵌 적이 있었나요?”

 

 왜 이런 말을 하는거지? 마리는 분명 다가오는 이 여인의 모습이 낯설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알게 모르게 조금 익숙한 듯 보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정체불명의 여인임은 변하지 않는것을... 불안함에 오히려 몸을 뒤로 움직이는 마리였다. 그리고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물었다.

 

 “아니요? 저는 처음 뵙는걸요. 그런데, 여... 여기가 어디죠? 저를 왜 이곳에 데리고 오신 거예요?”

 

 테이블 위의 여인은 자기가 쉬운 사람은 아닐거라고 이제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기 시작했다. 오히려 질문이 고맙다는 묘령의 여인, 마리의 질문에 기분 좋게 대답한다.

 

 “다행이다. 정신은 확실히 들었네요. 그렇죠? 어르신 오기 전에, 자매님 정신 안 돌아오면 어쩌나 되게 걱정했거든요. 이곳? 평양 신시가지, 대화정 거리에 있는 전수동 교회예요. 못 믿겠으면 좀 있다가 나가면서 확인 해봐요.”

 

 본인은 거짓말 같은거 안 한다며, 마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자신도 걸터앉았다.

 

 “그리고 여기는 지하에 있는 기도 실중 하나예요. 뭐 혹시 여기 끌려왔으니, 내가 장소를 숨길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음... 내가 왜? 우리 교단 최고 후원자 어르신이 처음으로 이런 부탁을 해서 자매님을 이쪽으로 모시긴 했지만... 솔직히 저도 지금 '그분이 왜 자매님을 모시라고 했는지' 엄청 궁금해서 여기 있는 거예요.”

 

 이제 보니 미사보 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마리에게 몸을 가까이 다가갔다.

 

 “근데, 진짜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요? 우리 자매님 정말 낯이 익어서 그래요.”

 

 “저...? 저요? 그냥 마리라고 부르세요. 아무튼.. 전수동 교회? 제가 근데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저에게 볼일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일정을 잡고 보면 될 일이지. 이게 무슨 막돼먹은 짓이에요? 제 일행이... 지금 저를 걱정하고 있단 말이에요...”

 

 좀 있다 나가면서 장소를 확인해 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낀 마리, 그녀는 이제 도리어 속에 있는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평상시, 모든 일에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자 하는 마리였다. 그녀는 순간 저자를 자극하는 말을 한 것 같아 후회하듯 말끝을 흐렸다.

 

 밖에서 대기하던 남자 교인 한명이 들어왔다. 그는 박홍석이 거의 왔음을 알렸다. 남자는 그녀를 보혜사(保惠師)님이라고 불렀다.

 

 ‘보혜사?’

 

 마리는 어릴 때 성경공부를 하면서 보혜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승천한 후, 아버지 하느님께 요청해 그가 다시 이 땅에 예수님 이름으로 보낼 성령의 이름. 요즘 개신교의 이름을 달고 몇몇 이단들이 생겨났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자매님... 지금 여기가 이단이 아닐까 생각했죠?”

 

 “네?”

 

 마리는 순간 흠칫했다. 보혜사라 불리는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이제 구석에 정리되어있는 등받이 나무의자를 테이블로 가져와서 앉았다.

 

 “별 것 아니에요. 제가 이래 뵈도 무당의 자식이라서, 어느 정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요. 신 내림을 성령으로 이겨냈다고 해야 할까?”

 

 나무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어 편안하게 마리를 바라본다.

 

 “제 어머님 성함은 이길대라고 해요. 그분도 스스로 성령의 힘으로 원류의 자리에 올라 '새상주교'를 세우셨죠. 그 기본 교리를 발전시켜서 지금의 재창조성령회를 만들었죠.”

 

 의자에서 다시 일어나는 그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 조선 땅에서 우매한 저들이 알고 있는 성서의 말씀은 90%가 가짜예요. 성경의 가르침을 사람의 뜻이 아닌 성령의 뜻으로 이해해서 전하는 사람은 나, 정사희밖에 없어요.”

 

 정사희, 원류님이라 불렸던 이길대의 새상주교 이후에 세워진 재창조성령회의 보혜사자리에 오른 그녀였다.

 

 “그렇다면 교회 이름을 재창조성령회라고 하지, 왜 전수동 교회라는 일반 개신교 이름을 밖에다가 걸어놓은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그 의도가 심히 불순해 보이는걸요.”

 

 마리는 사희의 말이 역겹게 느껴졌다. 우매한 민중이라니... 진짜 어리석은 것은 본인이면서.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답니다. 처음부터 진짜를 보여주면 그들은 심한 거부감만 가져요. 기독교의 신비주의는 자신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다음에 심층적인 종교성이 본인들 눈에 보이게 되는 거예요.”

 

 마리는 이 여자야 말로 사람의 뜻으로 사사로이 성경을 대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동시에 세평에게 받은 전도카드, 그것에 적힌 이름이 여기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작은 가방을 찾았다.

 

 “소지품은 혹시 몰라서 저희가 갖고 있어요. 그분 이제 금방 오신다고 했으니, 잠시만 협조 부탁드릴게요.”

 

 역시나... 저들이 이미 가져갔구나. 마리는 안타깝게 손만 쥐었다 폈다.

 

 정사희는 잠시 허공을 쳐다본다. 곰곰이 무언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마리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간지러운 느낌이 가득했다.

 

 “하.... 하!”

 

 어렵게 내뱉는 탄성소리. 사희의 오른쪽 입가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안에서 연이어 터지는 탄성을 묵히지 않고 뱉어낸다.

 

 “아... 진짜? 그런거야? 그래서 그 노인네가 이 여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구나?”

 

 사희의 알 수 없는 미소가 이어지자, 마리는 다시 이방에서 정신을 들었을 때처럼 소름이 온몸을 감쌌다.

 

 “뭐... 뭐예요, 갑자기?”

 

 마리는 무릎 밑을 살짝 덮고 있던 하얀 천을 자기도 모르게 꽉 잡았다.

 

 보혜사의 온화했던 표정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그녀, 머리에 올려놨던 미사보를 접어서 구석의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돌아왔다.

 

 “하... 하악... 아아악!!!”

 

 정사희 자신이 평생을 덮고 있었던 가면이 깨지고 있었다. 유리 조각처럼 방안을 흩어지는 비명에 가까운 그녀의 토해내는 감정소리. 무너져 내린다. 하루 종일 놓지 않았던 향기는 아스라이 사라졌다.

 

 보혜사 정사희가 김마리에게 다가왔다. 가면이 벗겨진 표정은 이제 미소에 날카로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쌍둥이 동생이 있었지?”

 
작가의 말
 

 1. 원류(源流): 강이나 내의 본 줄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새상주교'를 세운 이길대 자신을 기독교의 본래 바탕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2. 보혜사(保惠師): '재창조성령회' 정사희의 교주로서의 이름입니다.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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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77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94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89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0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7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4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6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4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4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88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27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2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7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5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0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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