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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말해도 돼?
작가 : 슈타인
작품등록일 : 2016.8.25

세상의 빛은 다 가진 듯한 소녀 유나, 그녀에게 남모를 아픔이 있다. 2년 전 골목길에서 한 사내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
2년이 지나 지금 모든 걸 잊혀진 듯한 찰나, 사건 동영상이 뜻밖에 유투브를 통해 퍼진다. 급기야 언론이 사건을 주목하고, TV와 네티즌 그리고 범인까지 유나 찾기에 돌입한다.

범인과 자신의 과거 그리고 사람들의 무분별한 관심에서 도망가는 유나! 그녀 옆에는 언제나 절친인 강율과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구할이 있다. 하지만 유나가 범인과 마주했을 땐 율과 할도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데... 유나는 다시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두 번 단시 같은 결과를 얻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유나!

소녀의 아픔을 담은 법정 스릴러. 유나는 범인의 죄값을 과연 당당히 받아낼 수 있을까...

 
말해도 돼? 8화> 아무도 모르게
작성일 : 16-10-26 15:59     조회 : 333     추천 : 1     분량 : 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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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아무도 모르게

 

  “장철중. 오랜만이다. 미안해, 내가 요즘 워낙 정신이 없어서!”

  양정태가 먼저 웃으며 장 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 관장은 양정태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 옆에 서 있던 까무잡잡한 얼굴에 코가 오뚝한 여학생이 90도로 인사를 했다.

  “강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양정태는 노골적으로 강율의 머리부터 아래까지를 쭉 훑었다. 강율은 몸에 딱 달라붙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신체 조건이 좋았다.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고. 강율의 봉긋하게 올라간 가슴에는 서문여고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다. 양정태는 강율을 보더니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체육을 하기보다 연극 영화과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 학교에 오고 싶다던 애가 얘야? 역시. 요즘 젊은 애들은 발육이 남달라. 처녀라고 해도 믿겠다. 우리 때랑은 영 다르단 말이야. 너무 밋밋했잖아. 하하하.”

  양정태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던 손으로 강율에게 악수를 청했다. 강율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자 양정태는 장 관장이 보이지 않게 검지로 율의 손바닥을 스윽 쓸었다. 순간 율은 움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 관장은 양정태의 말에 기분을 맞추어주며 웃어댔다. 양정태도 강율에게 은밀한 미소를 보였다. 아무래도 셋 중 기분이 나빠진 건 강율 뿐인 것 같았다.

  강율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름 가고 싶은 대학에 미리 견학을 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부풀어 있었다. 무단으로 결석한 유나를 찾는 것도 포기하고 이곳을 온 거였는데! 하긴 캠퍼스에 체육관에 교정을 거닐 때만도 기분이 좋았다. 근데 이건 아니지! 양정태와 악수를 나누자마자 율은 순식간에 똥통에 팍 처박힌 기분이 들었다.

  율은 분을 참으며 겨우 장 관장 옆에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장 관장은 율의 마음도 모른 채 준비해 간 건강음료를 양정태에게 내밀었다. 형님이 무척 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뭐야? 이 변태 자식! 관장님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나가는 건데!’

  율은 입술을 실룩거리다 양정태의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깔끔했다. 책꽂이에는 체육서적과 논문들로 가득했고 책상정리도 완벽했다.

  '겉으로는 멀쩡하구나?'

  율은 양정태를 바라보며 연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양정태와 장 관장은 서로 학교 다닐 때 했던 경기와 교수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추억 팔이를 어느 정도 하며 장 관장은 대학의 입시 정보를 몇 개 얻어냈다. 그리고 슬슬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마무리는 율의 등을 누르며 양정태에게 다시 인사를 시키는 거였다.

  “하하 얘가 숫기가 없어서! 형님, 그럼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바쁘시겠지만 청소년 킥복싱대회 오실 수 있으면 꼭 오세요. 이 아이가 거기 출전합니다.”

  율은 성의 없이 인사를 한 뒤 장 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강율이 막 건물 밖으로 발을 들이는데 장 관장이 기다렸다는 듯 강율의 뒤통수를 팍 때렸다. 순간 강율의 몸이 계단 밑으로 확 쏠렸다.

  “아! 왜 때려요?”

  강율은 휙 돌며 장 관장을 쏘아보았다. 장 관장은 강율 보다 더 성난 눈빛으로 맞받았다.

  “너 태도가 왜 그래? 방금 전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알아? 네가 갈 학교 교수한테 첫인상을 그렇게 배려버리면 어떡해! 그리고 내가 운동은 예의범절이 우선이라고 몇 범을 말했어?”

  강율은 전에 없이 장 관장을 노려보며 악다구니를 썼다.

  “이 학교 다신 안 올 거예요. 나도 교수 첫인상 더럽게 나빴단 말이에요.”

  반사적으로 장 관장의 손이 또 올라왔다. 이번에는 강율이 잽싸게 피했다. 그리고 앙증맞게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러자 장 관장이 정확히 강율의 정강이를 찼다. 강율은 허리를 꺾어 정강이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이씨. 저 교수 변태 싸이코란 말이에요!”

  장 관장의 손이 이번에는 강율의 입을 막았다.

  “너 미쳤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강율은 장 관장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들으면 어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율은 장 관장에게 양정태의 악수를 재연했다. 그러자 장 관장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양정태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었다. 율을 바라보는 시선도 맑지가 않았었다. 장 관장은 교정을 벗어나며 율에게 한 마디 던졌다.

  “여기 교수가 저 양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뭔 상관이야? 그런 것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학교 포기하면 안 된다!”

  율은 장 관장의 뒤를 쫓아가며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는 눈을 하며 물었다.

  “근데 관장님 진짜 저 변태 또라이랑 친했어요?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데…….”

  율은 장 관장에게 뒤통수를 한 대 더 맞았다.

 

  며칠이 지났다. 이제 TV에서는 ‘살려줘’ 영상얘기로 토론회까지 만들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성범죄 이야기가 주제였지만 어김없이 영상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말 하는 사람들만 바뀌지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다.

 

  할은 며칠째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는 어김없이 유나가 나타나 도망가는 자신을 뒤쫓았다. 할은 그때처럼 있는 힘껏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뛰면 뛸수록 뒤를 쫓는 유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질 뿐이었다. 꼭 뒤로 감아놓은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몸은 분명 앞을 향해 달리는데 방향은 자꾸 뒤로만 간다. 결국 유나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다.

  "살려줘!"

  그녀는 늘 똑같이 말한다. 하지만 꿈에서도 과거나 현실에서도 할은 유나를 도와줄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할 수 있는 건 유나 모르게 흑기사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다.

  땀범벅이 된 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패드를 켰다. 그리고 비틀즈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하지만 귀에는 여전히 유나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너 유학을 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살고 싶으면 진짜 아무도 모르게 살아야해. 그래야 하는 거라고!”

  유학이라니... 할은 유나와 떨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할이라도 외국까지 유나를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야 잘 팔려나가는 닭들 덕에 더 잘 나가는 부모를 믿고 아르바이트 하나 없이 화실까지 다니고 있지만 그런다고 유학을 가라고 덥석 돈을 내줄 부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세간의 관심 속에 유나를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은 익숙한 손짓으로 살려줘 동영상 사이트를 들어갔다. 며칠 전 생성된 ‘살려줘’ 영상 카페에서는 피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었다. 사실 2014년에 학교를 전한 간 고등학생의 수는 얼마 안 될 터, 유나의 사진이 올라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할은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뒤지다 식겁했다. 이럴 줄 알았다! 화면에는 유나의 중학교 졸업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새하얀 얼굴. 웃고 있는 표정. 누가 봐도 유나는 그놈의 걸 그룹 메인보컬을 닮았다.

  사진 밑에 누구든 주인공이 현재 무슨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했는지 댓글로 물으면 꼬리 물기 식으로 답이 금방 달렸다. 예쁜 애들일수록 그 수는 더 많았다. 몇몇 네티즌들은 유나의 사진 밑에 그냥 얘였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적혔다. 이런 상놈의 자식! 할은 그 밑에다 상욕으로 댓글을 달다 말았다. 이러면 유나의 사진 조회 수만 더 올라갈 뿐이다.

  할은 유나의 사진을 보다 다시 맨 위의 강율의 사진을 보았다. 강율의 사진도 조회 수가 꾀 많았다.

  그렇다면……. 할은 이게 최선이라 믿으며 강율 사진 밑에 댓글을 달았다.

 

  저 강율이란 애 말이야. 얼굴이랑 킥복싱으로 좀 주목 받는 애인데 그거 그 사건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거라며?

 

  할 밑으로 꼬리 물기가 시작됐다.

 

  →나도 알아! 쟤 봤어. 섹시하지 않냐?

  →그러고 보니 불 끄면 완전 S양인데.

  →S라인이라 S양이라며?

 

  할은 아이패드를 닫았다. 심장이 또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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