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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21화 대표님. 그러지 마세요.
작성일 : 20-09-29 17:17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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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리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렸다.

 

 “헉! 열.렸.다.”’

 

 열려서 기뻐야 하는데, 열려버려서 난감해진 하윤은 안절부절못하며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아..아니. 이게 왜 열리고 난리야!!”

 

 남의 집에 무턱대고 들어갈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최명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침착하게 문을 열어 얼굴만 빼꼼히 넣었다.

 

 거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바닥에는 와인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도대체 반나절 동안 얼마나 마신 거야?!’

 

 엉망진창이 된 최명의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선..배..?”라고 불렀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걸 보니 독백이었나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더 불렀다.

 

 “선..배..?”

 

 이번에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실패.

 

 “선배. 계세요? 저 하윤인데요.”

 

 여전히 인기척이 없다.

 

 “저 들어가요… 지금 들어가요… 지금 들어가고 있어요. 저 들어왔어요.”

 

 생중계하듯 계속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며 천천히 들어갔다.

 

 혹시 샤워하고 있다거나 옷을 벗고 있는데 마주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선배? 집에 없어요?”

 

 사방을 경계하며 거실을 지나 문이 반쯤 열려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 심장을 쪼리게 만드는지..’

 

 침대가 보이는 걸 보니 침실이 분명했다.

 

 “으…윽…흑흑..”

 

 방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크게 들리는 신음소리.

 

 “선배? 선배!!!!”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있는 최명을 발견한다.

 

 “으…흐…윽.”

 

 그는 땀범벅이 되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흔들어 깨워보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어찌어찌 구급약 통을 찾아 체온을 재보니 역시나 열이 있다.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얼음과 차가운 물을 가지고 와서 수건으로 부지런히 얼굴을 닦아주며 간호하는 하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밤 11시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이고,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온 걸 확인한 하윤은 겨우 안심하며 몸을 일으켰다.

 

 마침 뒤척이며 의식을 찾은 듯 최명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선배. 이제 정신이 들어요? 저 알아보겠어요? 무슨 술을 그렇게… 악!!!”

 

 하윤을 알아본 최명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

 

 “선배…”

 

 “이거… 꿈…이겠지?”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란 하윤은 최명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만, 힘이 역부족이었다.

 

 “선..선배. 저 하윤이에요.”

 

 혼미한 정신에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껴안은 거 같아서 자신임을 밝혔다.

 

 “하윤아… 널 안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는 까칠한 목소리로 행복해하는 최명.

 

 그러더니 금세 의식을 잃은 듯 하윤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단단한 팔이 스르르 풀린다.

 

 몸을 바로 세운 하윤은 그대로 다시 잠이 들어버린 최찬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침실을 조용히 나왔다.

 

 ‘분명히 내 이름을 불렀어. 선배는 나인 줄 알면서 안은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럽지만, 엉망진창인 거실을 보고 있자니 더 혼란스러워져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널브러진 와인병과 깨진 와인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애리 선배와 싸웠나?’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최명의 집에서 빠져나오는데…

 

 “앜!!!!!”

 

 문밖 복도에 기대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는 최찬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른다.

 

 “대..대표님!”

 

 최찬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날카롭게 부릅뜨고 하윤을 쳐다봤다.

 

 “하하~ 대..표님이 이 시간에 여긴 어..어쩐일이세요?”

 

 어색하게 웃으며 이 상황을 무마해보려는 하윤의 야무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씨도 안 먹힐 것 같은 화난 표정의 최찬은 반응 없이 노려보기만 한다.

 

 곧장 집에 가겠다고 했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인증해버렸으니, 그도 화가 날 만했다.

 

 이미 들킨 것 같으니 이실직고 광명 찾을 예정으로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보는 하윤.

 

 “죄송해요. 선배가 무사한지 확인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녀의 변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최찬은 반듯하게 세팅된 은빛 머리칼을 쓸어 넘기다가 마구 흩트리며, 후~ 하고 숨을 크게 내뱉는다.

 

 “12시까지 안 나오면 문 부수고 들어가려고 했어요.”

 

 “부술 필요까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에요? 벨 누르시면 제가 열어 드렸을 텐데…”

 

 “내가 지금 형 병문안 온 게 아니잖아요?!!!”

 

 조금 격앙된 목소리였지만, 이내 수그러들며 표정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대표님은 선배가 아픈지 알고 있었군요? 그렇죠?”

 

 표정을 보니 그랬다.

 

 “형이랑 집 현관 비밀번호도 공유하는 사이신가? 그리고 이 시간에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겁도 없이 들어가요?!”

 

 “남자 아니고, 선배예요. 그리고 대표님의 형이기도 하잖아요!! 왜 그렇게 매정해요? 사람이.”

 

 “회사에서 처리하겠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선배라도 해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거 오버 아닌가?”

 

 “선배가 열이 펄펄 끓고…”

 

 최찬은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는지 하윤의 손목을 잡더니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 최명의 집에서 멀어졌다.

 

 낯익은 검은색 SUV.

 

 오랜만이라 반갑기까지 하다.

 

 “타요.”

 

 조수석 문을 열며 하윤을 태운다.

 

 완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살짝 난폭게 차를 몰았다.

 

 하윤의 집 근처쯤 왔을 때,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우는 최찬은 참았던 말을 뱉는다.

 

 “형 일에서 손 떼면 안 되겠어요?”

 

 부탁을 하는 거 같았지만, 강요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선배랑 프로젝트팀에서 같이 일해왔어요.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손을 떼라뇨?”

 

 “진하윤 씨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찬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말을 아꼈다.

 

 차 안은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의 망설이는 모습에 나쁜 예감까지 들었다.

 

 “내가 왜 갑자기 할아버지 회사에 대표로 왔는지 알아요?”

 

 “이번 계약 뺏기고 기밀문서 유출된 사건을 수습하러 오신 거잖아요.”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배후를 찾아서 형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입니다.”

 

 사이가 안 좋은 가족이라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칼날을 최명에게 겨누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하윤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대표님. 그러지 마세요. 선배가 이 회사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잖아요. 정말 쉬지 않고 일만 했어요.”

 

 “알아요.”

 

 “설마… 기밀문서를 선배가 빼돌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선배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직접적인 책임이 없더라도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의 생각은 단호했고, 어떠한 설득도 통할 것 같지 않아 절망스러운 하윤.

 

 “형과 얽히면 진하윤 씨도 다쳐요. 그러니 제발 한발 물러서 있어요.”

 

 “이미 마음을 정했군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대표님 마음은 돌리 수 없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대표님은 대표님 할 일을 하세요. 전 제 일을 할게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늘한 표정으로 돌변한 하윤은 차갑게 말을 뱉으며 차에서 내리려 했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행동에 당황스러운 최찬은 급하게 잡아보지만, 그의 손길을 강하게 뿌리치고 기어코 차에서 내려버리는 하윤.

 

 뒤늦게 따라 내린 최찬은 멀찍이 걸어가는 그녀를 앞질러 가서 길을 막아 세웠다.

 

 “걸어가기 멀어요. 차 타요.”

 

 “아뇨. 괜찮습니다.”

 

 고개를 꼿꼿이 들어 얼굴을 한번 올려다본 후, 그를 비켜 걸어갔다.

 

 “억지 쓰지 마!! 진하윤!”

 

 쌓인 감정을 꾸역꾸역 억누르듯 나지막하게 소리치며, 하윤은 손목을 낚아채 다시 그녀를 돌려세웠다.

 

 오지랖 넓은 그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찬은 그녀가 엮이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최명을 지지하는 임원들과 주주들이 분명 최명을 구하기 위해 하윤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 이번만 물러서 주면 안 돼?”

 

 분노가 담겨있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슬픈 눈이 되어 애원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심장이 부서지는 거처럼 아파서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던 하윤은 억지로 외면해 버린다.

 

 “대표님. 오늘은 그냥 돌아가세요. 걸어갈게요.”

 

 누그러든 목소리로 팔을 툭 터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최찬의 손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하윤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격하게 우길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명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모든 걸 뒤집어쓰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물증은 없지만, 기밀문서를 훔쳐 간 것도, 계약으로 중간에서 장난질 친 것도 전부 구남친 기현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기현이 진짜 범인이라면, 기밀문서 관리를 소홀히 한 하윤도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윤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최명은 누명을 벗을 수 있고, 기현도 거기에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형을 쳐 내려 한 무자비한 동생이라는 시선을 받게 될 최찬의 입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느 한쪽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하윤은 아무것도 놓지 못해서 더 괴롭다.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한 하윤은 늦은 귀가에 또 엄마한테 스매싱 당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집을 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멀리서 하윤을 뒤따라 걷던 최찬은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확인하고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

 

 

 다음 날 아침.

 

 “하윤아! 준비 다 했어?”

 

 “응. 엄마. 지금 나가.”

 

 오늘은 곧 기일인 막내 이모의 납골당에 가는 날이다.

 

 하윤은 막내 이모를 만난 적은 없다.

 

 단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거밖에 모른다.

 

 “토요일이라 차 밀리기 전에 빨리 출발하자.”

 

 엄마는 새벽부터 음식을 만들고 분주하게 채비를 했다.

 

 음식을 챙기던 엄마는 하윤의 얼굴을 보더니,

 

 “화장 좀 하고 나와. 얼굴이 그게 뭐니? 어제 잠 못 잤어?”

 

 “응.”

 

 고민거리가 한 사발이라 당연히 뜬눈으로 밤을 샜다.

 

 “어머! 얼굴 창백한 것 좀 봐. 저승사자가 떠도는 영혼인 줄 알고 데려가겠다.”

 

 “엄마는 무슨 그런 섬뜩한 농담을 해?!!”

 

 “그리고 옷은 또 그게 뭐니?! 이쁜 옷 없어?”

 

 “엄마! 나 지금 선보러 가?? 그리고 납골당 같은 신성한 곳에 가면서 누가 샤랄라 원피스에 풀메이컵을 하고 가?!”

 

 “그럼, 립스틱이라도 발라.”

 

 “엄마는 이모한테 갈 때마다 그러더라. 어릴 때도 새 원피스 사주고 새 구두 사주고, 그랬잖아.”

 

 “우리 딸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어. 그게 뭐 어때?!”

 

 “됐어. 그냥 가. 납골당에서 패션쇼 할 일 있어?!”

 

 

 ***

 

 

 한 시간 넘게 걸릴 거리를, 하윤이 엄마의 운전 솜씨로 30분 만에 도착한다.

 

 “엄마. 이모 보고 또 울지마.”

 

 “오늘은 안 울 거야.”

 

 “또 울 거면서…”

 

 “너무 젊은 나이에 가버려서 가여워서 그러지…”

 

 엄마는 금방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이모는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그러니깐 너무 슬퍼하지 마.”

 

 하윤은 울먹이는 엄마를 부축해서 납골당으로 올라갔다.

 

 막내 이모를 모셔놓은 납골당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흰 국화가 한 송이가 붙어져 있다.

 

 “엄마, 또 그분이 오셨나 봐.”

 

 “누군지 모르겠지만, 매년 고맙네. 잊지 않고 찾아주니…”

 

 활짝 웃고 있는 막내 이모의 사진은 하윤이보다 어린 나이에서 멈춰있다.

 

 “이모. 안녕. 잘 지냈어? 오늘도 엄마랑 같이 왔어.”

 

 “막내야. 우리 하윤이 많이 컸지?”

 

 “이모. 이젠 이모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 히히~”

 

 대답 없는 막내 이모와 대화 시도하는 두 모녀.

 

 “엄마. 난 먼저 내려가 있을게. 이모랑 얘기 더 하고 내려와.”

 

 “응. 로비에서 기다려.”

 

 하윤은 나가려다 다시 돌아와서 작별 인사를 한다.

 

 “이모. 또 올게. 엄마, 너무 많이 울리지 마.”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와 막내 이모의 둘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하윤은 잠시 1층 로비로 내려와서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하윤 씨?”

 

 자신을 부르는 여자 목소리에 하윤은 뒤돌아본다.

 

 “어머!! 하윤 씨 맞구나?!!”

 

 그곳에는 최민과 최찬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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