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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실의 아이가 아닙니다
작가 : 민슬지
작품등록일 : 2020.9.29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사랑하는 그의 아이를 가졌을 때. 그는 더이상 내가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 때문에 그가 힘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잊지 못했지만. 당신은 나를 잊어주세요.

-

“...돌아가. 원래대로 돌아가요.”

“... 폐하한테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오늘도... 잊어주세요. 돌아가요.”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감정은 무뎌졌고. 과거의 기억은 흐릿해졌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단 하루도 잊지 못한다고 했잖아.”

툭. 사랑하는 남자의 분홍빛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그대로 흘러내렸다.

어째서 가슴이 아려오는 걸까.

당신도 나를 잊지 못했나요?

[회빙환x/후회남주/후회여주/쌍방후회/무심여주/고구마/성장물/임신튀/육아물/베이비메신저]

*첫챕터 주인공들의 정신이 온전치 않습니다.
** 두번째 챕터부터 현재로 돌아옵니다. 첫챕터 20화 내외.

*쌍둥이들이 귀엽습니다. (많이)

 
1. 5년전, 과거 (7)
작성일 : 20-09-29 17:06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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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언제부터였어요? 언제부터 날 좋아했어요?”

 

 로넨이 싫어하는 그녀의 아버지도 없는 데다 몇 주 만에 만나는 살몬과 단둘이 있는 시간에 로넨은 어린아이처럼 우다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물어왔다.

 

 그런 그녀가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품에 가두고 로넨의 굽이치는 백금색 머리칼 끝에 잘게 키스했다.

 

 지금껏 이런 행동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건만, 그 손길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쿠아마린 처럼 새푸른 로넨의 눈에서 자꾸만 물방울이 떨구어졌다. 동시에 한 입 깨물어주고 싶을 붉은 입술은 생긋 웃었다.

 

 살몬은 이 모순적인 그녀의 행동도 사랑스럽긴 매한가지였으나 마음 한편에 무거운 벽돌이 층층이 쌓여가는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오로지 한 곳만을 향했던 마음을 자신은 왜 애써 부정해왔는지. 이렇게 사무치게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그녀를 두고 후회만 남게.

 

 “처음부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았어. 근데….”

 

 낮게 울리는 그의 말에 로넨의 둥그런 눈망울에는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계속해 닦아내고 참으려 눈을 꾹 눌러봐도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날... 좋아해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눈에서 눈물이 그칠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살몬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로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손수건이 로넨의 붉게 오른 뺨에 닿은 지 얼마 안 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었다.

 

 로넨. 왜 울어. 울지마. 그리 말을 해줘야 하는데, 울지 말라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나약한 사람이라서. 이제까지 좋아한다 말 한마디 못했어.”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의 진실한 감정처럼 로넨을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단순한 호의. 그녀를 괴롭히고 있던 4황자의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뒤섞인 증오에서 온 호의.

 

 그는 이 세상에서 홀로 살기 바빴다. 그때는 자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기억 한편에 로넨이 가득해졌다.

 

 머리에 잔재하는 기억 속에 매번 그녀가 등장했다. 같은 황족들 중 홀로 동떨어진 제게 다가와 수줍게 꽃다발을 선물해준 기억.

 

 제 어머니 말고는 누구에게도 털어논 적 없는 기억을 그녀에게 말해버린 일들. 그 순간들이 모여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아, 내가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구나 하고. 로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좋아해. 내가 그 눈에서 더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

 

 그런 살몬의 진실이 그득한 다정한 눈동자를 올려보다가 로넨은 축축이 젖은 그의 손수건을 잡아 숨겼다.

 

 그가 제 눈물을 더는 닦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손수건 끝에 수놓아진 금빛 황금의 문장. 제 드레스 밑단에도 박혀있는 그 문장을 내색하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소중해서 더욱 선을 그었다. 방금의 자신처럼 그도 이제껏 그래온 걸까?

 

 무엇이라도 괜찮지 않은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날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그가 눈앞에 있는데 걱정할 게 무어라고.

 

 아직도 물기 어린 목소리를 우물거리던 로넨은 살몬의 품에서 살짝 몸을 틀고 앉아있던 폭신한 소파에서 일어났다.

 

 “우리 산책해요.”

 

 *

 

 밝은 햇살 아래서는 그가 어떻게 웃을지 궁금했다. 과거에는 그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말 한마디 하면 흔쾌히 들어줄 것이 아닌가.

 

 로넨은 망설임 없이 그를 졸라 탁 트인 정원으로 두 손을 꼭 맞잡고 나왔다.

 

 살몬이 이곳에 머무른 지도 이틀이 다 되갔다. 이제 제국을 다스려야 할 그가 나 때문에 여기 있어도 될까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도 나를 사랑하니까. 그래도 되겠지. 로넨은 차오르는 수만 가지 걱정을 애써 쳐내렷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너른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팔을 끌어안았다.

 

 모두에게 개방된 왕실 정원 인지라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북적거렸다. 분명 저들은 에라실의 새로운 황제인 살몬과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보곤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었겠지.

 

 벌써부터 자기들 멋대로 두 연인의 사이를 재보고 있었다. ‘결국 황제의 여인이 되었군요-’ 하면서.

 

 “저기까지 걷고 나면 디저트를 먹어요! 또... 내가 화관을 만들어줄까요? 디저트는 음... 생크림 들어간 밀푀유를 좋아한다고…….”

 

 로넨은 오늘 밖에 살지 않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살몬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계획을 읊어냈다.

 

 몇 주간 세상에 둘도 없이 아끼던 연분홍 드레스가 정원 바닥을 질질 끌리는 것도 모른 채 그와 같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에 젖어있었다.

 

 드레스야 살몬을 기다리는 상징적인 게 아니던가. 그를 만난 지금 로넨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뭐든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자.”

 

 그들은 어제 막 마음을 확인한 연인들처럼 굴었다. 물론 사실이었지만. 살몬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로넨의 오밀조밀 귀여운 이마에 짧게 입 맞췄다.

 

 다시 생각해봐도 모두 자신이 일구어 이룬 행복이라면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길 텐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그의 얼굴을 이따금 어둡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사랑하는 제 연인에게 입을 맞추고 안아주었다. 이전까지는 이해가 가질 않던 애정행각이었으나 지금은 더 하지 못해 아쉬울 지경이었다.

 

 “살몬?”

 

 귀를 울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살몬은 고개를 살짝 내리고 로넨을 바라보았다. 시선 아래 색색의 봄빛이 펼쳐진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제 어머니 말고는 온전히 처음 불려보는 이름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결국 그 앙증맞은 입술을 파고들어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디저트 먹으러 가자.”

 

 근처에 있던 구경꾼들의 입에서 까악거리는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저 서로만을 열렬히 바라볼 뿐. 그것만으로 충분히 벅찼다.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꼭 잡고 있던 두 손은 디저트가 준비되고 나서야 겨우 풀릴 수 있었다.

 

 로넨은 딸기 아래 하얀 생크림이 몽실몽실 올라간 밀푀유를 먹기 좋게 조각내 살몬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로넨은 먹은 것도 없는데 절로 배부르다는 말을 이제 알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해요. 꿈만 같아요.”

 

 오늘 살몬을 만나고 로넨의 입가의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어쩌지. 너무 행복해서. 그래서 이 단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 밀푀유 몇 조각이 느릿하게 사라져갔다.

 

 접시가 말끔히 비워질 때까지만은. 그때까지는. 다른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그에 관한 생각만 할 줄 알았는데.

 

 “밀푀유... 더 가져오라 할까?”

 

 “아... 아니요. 살몬이 먹은 거 봤으니 괜찮아요.”

 

 갑작스레 열렸던 문이 닫히고서야 살몬이 로넨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자신과 같은 웃음을 짓고 있어 겨우 밑바닥에 깔아두었던 현실이 불쑥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환상에 젖어있던 것이 무색하게 로넨의 입꼬리에도 그와 같이 쓴웃음이 올라와 있었다.

 

 애초에 불완전한 관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허락된 시간이 작으니 실낱같이 존재하던 마음이 더욱 아려왔다.

 

 한참을 불쑥 등장한 부관과 대화를 나누던 살몬은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접시에 남아있던 밀푀유 조각을 집었다가 볼품없이 생크림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도로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모두 로넨과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딪혀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앉아있던 로넨의 귀를 막을 수는 없었으니. 그가 보기에도 로넨의 눈빛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에라실의 황후가 되어줘. 조만간 황후궁으로 갈 수 있을…. ”

 

 기약 없는 말이 그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가만 보던 로넨은 빈 접시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염려하던 것이 무색하게 로넨의 낯빛은 순식간에 생글거리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좋아요. 음... 좋은데. 지금은 화관 만들러가요.”

 

 로넨은 순간 멍하니 서 있던 그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정원을 산책했던 여유로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살몬의 굳어있던 얼굴도 서서히 밝아져 갔다.

 

 *

 

 에라실 황실보다는 확연히 작은 복도를 거닐며 로넨은 쉴 새 없이 작은 입을 조잘거렸다.

 

 “튤립, 다포릴, 달리아…. 음 이곳 정원에는 살몬이 없는데... 아니. 살몬말고 작약이요! 살몬작약. 제가 화관을 잘 만들어요. 어릴 때 이것저것 만들어봐서…….”

 

 내용은 그녀의 불온한 가정사가 분명하였으나, 하는 모습이 마치 종달새 같아서 옆에 붙어있는 그는 결국 얼굴의 그늘을 모두 잊어버렸다.

 

 정원 한곳. 눈에 띄게 꽃이 만발해있는 곳으로 향했다.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니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답답했는지 로넨은 작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톡톡 치고 두 눈을 맞추며 그에게 직접 물었다.

 

 “살몬은 무슨 색 꽃 좋아해요?”

 

 “꽃?”

 

 “노란색? 빨간색? 눈동자의 색처럼 분홍색이려나….”

 

 “모두 다 좋은데.”

 

 “그게 뭐예요!”

 

 이제껏 일방적인 꽃 선물 밖에는 하지 못한 터라 꽃에 관한 취향은 들은 것이 없었다. 이참에 듣고 싶기도 했고, 그에게 듣는 대답 하나하나가 너무나 즐거웠다.

 

 쉬이 답을 해주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는 로넨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웃어줘서 다행이다.

 

 조금 전 단둘이 방에 있을 때의 살몬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 딴에는 그걸 숨기려 노력했으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 분야 만큼은 로넨이 한 수 위였다.

 로넨은 생각보다 눈치가 없지 않았다.

 

 바닥부터 허울뿐인 이 자리에서 간신히 버텨오는 것도 이거 아니겠는가.

 

 나 때문에. 나를 좋아했으면.

 

 최소한 내 앞에서는 행복하란 말이야.

 

 이런 모습의 자신까지 그가 알 리 없었기에 로넨은 더욱 밝게. 힘차게 웃음을 지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를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사람.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 그에겐 그리 생각되고 싶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만개한 꽃송이 사이를 헤치며 게들 중 로넨은 더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찾아 헤맸다.

 

 티끌의 결점도 없는 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때 어쩜 붉고 분홍빛 도는 꽃 사이에 서 있던 살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푸른색. 푸른색 꽃이 가장 좋은 것 같아.”

 

 푸른색.

 

 그건 꽃들에서 볼 수 있는 색이 아닐 텐데?

 

 로넨은 걸음을 멈춰 새우고 이젠 완벽히 미소짓고 있는 살몬을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보고 있었던 듯 그의 연분홍 눈동자에서 순간 푸른빛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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