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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지독한 보모일
작가 : 딴다라아나
작품등록일 : 2020.9.23

수탉의 머리에 뱀의 꼬리.

 
5.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요-
작성일 : 20-09-29 11:48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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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시온 프로세 바이런이에요! 그런데 언니는 누구에요?

  뷔토스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겼다.

  뷔토스는 서류에 있는 정보들을 하나도 빠질 것 없이 외웠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지하 세께에서만 사느라 바깥의 세상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정오에 나왔는데도 밤에 도착한 것이었다.

  "우리 오빠는 어디에 있어요?"

  "들어가."

  뷔토스는 어린아이를 상대해 본 적이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하세계에서 접촉한 인물들은 많지 않았다. 처형 대상자들, 하인, 시녀, 원로. 어린아이는 지하세계에서는 감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밖에 광기가 가득한데 어떤 부모가 그들을 밖으로 내몰겠는가? 간혹 마두치는 어린애들은 부모가 버려서 독기가 가득한 애들 밖에 없었다. 그부토스는 아주 짧은 고민을 멈추고 그녀가 하인에게 대한 것처럼 굴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녀를 모셔온 하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녀가 유년시절 어른들에게 받은 대접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 중 하나였다.

  아이는 갑자기 우물쭈물거렸다.

  "뭐해. 들어가."

  "오빠가 모르는 사람 집에 들이지 말랬어요."

  "난 네 오빠가 아는 사람이야."

  "앗, 들어와요!"

  아이는 발랄하게 말했다. 뷔토스는 아이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멜리브가 전혀 교육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경찰이면서 제 동생한테 이런 기초적인 것도 가르치지 않은 거지? 애는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가 뒤를 돌아봤다. 이상한데서 철저하군, 뷔토스는 뒤를 돌았다. 띡띡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은 좁고 습했다. 이십평이나 될까? 벽에 구구단표와 목에 백, 백이십, 백 사십, 숫자들이 쓰인 기린이 붙어있었다. 옷가지를 개다가 밖으로 나온건지 마른 빨래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작은 화초들이 창문틀에 걸쳐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다가 말았다. 아이는 낑낑거리며 천장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중이었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자, 아이는 강아지같은 눈으로 뷔토스를 올려다보았지만, 뷔토스는 의자를 턱으로 가르켰을 뿐이다. 조금 시무룩해진 아이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천장을 열었다. 중국식 복장을 입고 있는 노인이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는 청화백자 통을 꺼냈다.

  "녹차 어때요?"

  이미 찻잔에 찻잎을 넣은 뒤 물을 말은 아니었다.

  "안 좋아해."

  "하지만 오빠는 손님이 왔을 때는 뭐라도 앞에 두랬어요."

  "좋아하지 않는 걸 대접할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는게 좋아."

  "그럼 언니는 손님이 왔을 때는 뭘 대접해요?"

  "시녀들이 알아서 내와."

  아이는 한 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건 이상해요."

  대화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하자 뷔토스는 대화의 여지를 끊었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지."

  아이는 입을 뚜 내밀었다. 찻통을 도로 천장에 올려두고 주전자를 들어서 자신의 찻잔에만 뜨거운 물을 부었다.

  "왜 온 거에요?"

  뷔토스는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 여기 왜 온 걸까?

  뷔토스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네 오빠가 죽었어."

  아이의 분홍색 뺨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밀랍인형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부모가 모두 죽었다고 했지, 짧게 뷔토스는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쨌다고? 기억도 못할 나이에 부모가 죽은 게 뭐 어떻다고? 뺨이 실룩이는 걸 보고 뷔토스는 조금 짜증스러웠다. 과거에 왜 지하세계로 곧장 내려가지 않았는지 후회됐다.

  "그, 그거 말, 히끅, 말해주려, 히끅, 온 거에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어쨌든 뷔토스는 약속을 한 상태였다. 시체가 일방적으로 한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무릎을 굽혀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와 비슷한 눈높이를 맞추었다.

  "네 오빠는 날 살리려고 들다가 죽은 거야."

  아이는 이제 울음을 제대로 멈추려고도 하지 않고 원망어린 눈으로 뷔토스를 노려 보았다.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히 맺힌 눈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보통 처형 대상자들이 저런 눈을 했더라면 뷔토스는 그것들의 눈을 바로 뽑아서 이 사이에 물려 주었겠지만, 이번에는 인내하기로 했다. 나 때문에 네 유일한 가족이 죽었으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같이 삼류 드라마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맹세는 절대적인 거니까.

  "네 오빠는 나한테 맹세하라고 했지. 네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보라고. 그러니까 나는 여기 온 거야."

  아이는 울어 재끼며 뷔토스에게 안겼다. 아이가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녀를 안았기 때문에 조금 어정쩡한 자세가 되긴 했지만 뷔토스는 그걸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그저 등에 손을 대고 어색하게 가만히 있었다.

 

  "바이런. 그건 빼."

  뷔토스는 이제 몇 번이나 말했는지 알 수도 없는 말을 자동음성처럼 되풀이했다. 아이는 가방에다가 앵무새 모양 열쇠고리를 넣고 있었다. 그녀는 멜리브가 지독하게 눈깔이 삔 놈이라고 확신했다. 도대체 이 꼬맹이 어디에 사람들이 반한다는 거지?

  "하지만, 어- 언니 이름이 뭐에요?"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는 몇 번의 실갱이 끝에 꼬마는 드디어 포기한 성 싶었다. 뷔토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남모르게 쉬었다. 꼬마는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대신 저기, 그쪽, 엄-, 있잖아요 등으로 불렀다, 이제 꼬마는 사람들이 타인을 부를때 쓰는 대명사나 말들을 다 쓴 것 같았다. 그랬겠지. 저렇게 많이도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알 필요 없어."

  꼬마는 즉시 눈을 크게 뜨고 뷔토스에게 달려왔다.

  "알 필요가 없다니요. 그럼 나중에 어떻게 불러요? 이름을 부르고 싶을 때는 어떻게요? 누군가 날 죽이려고 하면 난 어떻게 불러요? 그럼 언, 아니, 이름은 누가 불러줘요?"

  이 꼬마는 결국에는 뷔토스를 걱정하는 것으로 끝냈다. 뷔토스는 속으로 뭔가가 울컥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했다.

  "마음대로 불러. 난 어쨌거나 널 바이런이라고 부를거니까."

  "이름은 중요한거에요. 이름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바램이 담겨 있으니까요. 내 첫번째 이름은 영원이라는 뜻이래요. 오빠가 그랬는데 영원토록 살라고 그렇게 엄마아빠가 지은 거라고 했어요."

  "관심없어."

  "두 번째 이름은, 두 번째 이름은...."

  "빨리 할 말이나 하고 짐이나 싸."

  "말 안 할래요."

  뷔토스는 식탁에 발을 떡하니 올려두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녀는 경망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이면 싫어했다. 하지만 저 꼬맹이는 말이 끝나지 않으면 계속 저렇게 몸이나 비비 꼬면서 짐은 하나도 싸지 않겠지. 뷔토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발 내려요!"

  빽, 꼬마가 소리를 질렀다. 뷔토스가 눈썹을 들어올렸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줘야 하지? 짐이나 싸. 아니면 하던 얘끼를 계속 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널 데려가지 않을거야."

  "하지만 날 데려간다고 했잖아요오."

  풀이 죽은 채 꼬마는 처량하게 뷔토스를 올려다 보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기 때문에 꼬마에게 뷔토스는 더욱 커다래 보였다.

  "약속이라는 게 늘 지켜지는 건 아니야."

  사실이었다. 입천장에다 혀를 가져다 댈 수도 있었고, 보이지 않게 식탁보 아래로 손을 내려 두 손가락을 교차해도 약속은 파기될 수 있었다.

  "그래도...."

  "하던 말이나 마저 해."

  "내 둘째 이름은 뜻이 석류에요..."

  꼬마가 뒷부분을 얼버무려서 얘기했기 때문에 뷔토스는 뒷부분을 듣지 못했다.

  "뭐라고?"

  "석류요....."

  "그래, 퍽이나 석류에 엄청나고 대단한 의미가 들어 있겠군."

  뷔토스가 비아냥거렸다. 꼬마의 얼굴이 창피함에 석류처럼 붉어졌다. 꼬마는 제 방-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날다람쥐처럼 쏙 들어갔다. 뷔토스는 발을 내리고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꼬마가 들어갔을 때와 비슷하게 빠른 속도로 나왔다. 뷔토스는 꼬마와 부딪히지 않게 엘리베이터에서의 상황과 같이 한 발짝 물러났다. 꼬마가 넘어지려고 한 것을 뷔토스는 안정적으로 받아줬다. 꼬마는 눈 앞에 인형을 쑥 들이밀었다.

  "다른 건 안 가져갈게요! 얘만 가져가게 해주세요!"

  "줘봐."

  뷔토스는 인형을 관찰했다. 도자기 인형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좀 크기는 했지만 잡다한 것들-마룻바닥에 꼬맹이가 쌓아둔 유니콘 인형, 마법 지팡이, 변신로봇, 장난감 목걸이와 열쇠고리등-을 가져가지 않으면 충분히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네가 챙겨."

  허락의 말을 들은 꼬마가 방방 뛰었다. 눈물 자국이 난 얼굴이 웃고 있는 걸 보자니 기묘했다. 뷔토스는 꼬마의 머리를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돌렸다.

  "고마워요! 날 펠시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바이런."

 

  그들은 짐을 싸고 나서 바로 나갔다. 나 배고파요,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뷔토스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들은 택시 정류장을 찾았다. 뷔토스에게는 당장 돈이 없었다 -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그녀의 자존심에 상당히 큰 상처를 냈다- 그렇다고 길을 모르니 무턱대고 차량을 절도해서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그녀에게 치근덕댔다.

  "여행객이야? 자기? 어디 같이 갈까?"

  주변에 다른 남자들이 모여서 낄낄대고 있었다. 바이런은 겁을 먹은 것인지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뷔토스는 이 모든 상황이 짜증났다. 저 아래에서라면 발 밑에 벌벌 기었을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은 스타디움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저 머저리들을 죽일 수 없었다. 그건 그녀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 일은 집행자의 일이었다.

  그녀는 바이런의 어깨를 한 번 강하게 쥐었다. 뷔토스는 첫번째 택시에 탔다. 추파를 던지던 남자의 택시가 맞았던지 주위 남자들이 환호했다. 바이런이 머뭇거렸다.

  "빨리 와."

  택시기사가 바이런의 등을 한 번 세게 쳤다.

  "빨리 타."

  택시기사가 으흠장을 놓았다. 바이런은 훌쩍거리며 택시에 탔다. 바이런은 불안했지만 옆에 뷔토스가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됐다. 택시기사는 목적지도 묻지 않고 어딘가로 차를 모는 중이었다. 뷔토스는 신발 밑창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택시기사는 목에 칼이 겨뤄졌다는 걸 알았다. 아직 힘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따끔했다. 그는 콧웃음쳤다. 이런걸로 겁을 먹어서야 이 도시의 택시기사라고 할 수 없었다.

  "어이, 아가씨. 이 도시는 처음인가봐? 다짜고짜 이런 흉흉한 걸 사람 목에 겨누고 말이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신 칼날이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피가 송글송글 흘러내렸다. 택시기사는 애써 공포를 숨기고 말했다.

  "아가씨? 이거 빼."

  칼날은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목, 목적지 말씀하세요, 고객님."

  그제야 만족한 듯 칼날이 빠져나갔다. 짦막한 주소가 들려왔다. 감히 이렇게 하고서도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거라고 생각하는 거면 오산이다, 망할 년. 택시기사는 속으로 이를 벅벅 갈았다.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으로 차를 몰면 내일 네 목에 이게 꽂혀 있을거다."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칼날을 가지고 노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무섭게 번뜩이며 운전석 시트에다가 칼을 박아 넣었다. 손잡이가 겨우 보일 정도로 깊이 들어간 칼을 보고 택시기사는 얌전히 차를 몰았다.

  바이런은 조금 그녀가 무서워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뷔토스는 그녀를 해칠 수 없었다. 오빠와 약속을 했으니까.

  "뭐해요?"

 "입 좀 닥쳐."

  바이런은 조금 시무룩해져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빠는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입 닥치라고 한 적이 없었다. 창 밖에는 우거진 숲이 빠르게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바이런은 궁금해졌다. 자신들이 이곳을 떠나고 있는걸까, 아니면 세계가 그들을 떠나고 있는 걸까? 누가 가만히 있고 누가 뛰어가는 걸까? 바이런은 창문에다 얼굴을 바짝 붙였다. 희끄무레한 게 보여서였다. 바이런은 뷔토스의 치맛자락을 잡아 당겼다.

  "또 왜."

  짜증스럽게 물었지만 바이런은 짧은 시간 동안에 그녀의 부끄러움-이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면 뷔토스는 달리는 차 밖으로 바이런을 던져버렸을 것이다-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저기, 저거 뭐에요? 양인가요?"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퉁박을 주려고 했지만, 뷔토스는 그 동물이 양이라는 걸 보고 굳어버렸다. 산양이 아닌 농장에서 키울 법한 양. 발굽과 뿔이 없는 흰 양.

  "택시 멈춰."

  대답도 듣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뷔토스가 차문을 열었다. 택시기사가 놀라며 차를 세웠다. 바이런이 뒤에서 뭐라고 했지만 집중하고 있느라 잘 들리지 않았다. 숲은 늑대나 드물지만 곰같은 개체들도 있었다. 누가 저 양을 숲 안에서 보호한 것일까?

  "우리 안 가요? 바이런이 차문을 열고 그녀를 부른다. 뷔토스가 바이런에게 시선을 집중한 그 틈에 양은 사라져 있었다. 바이런은 아까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바이런을 옆으로 꾹 밀었다. 아야, 바이런이 엉겨붙어왔다. 뷔토스는 바이런을 떼어내지 않고 택시기사를 재촉했다.

  "안 가?"

 

  "내려."

  쥐토스는 바이런을 재촉했다. 그렇게 말려도 바리바리 싸들고 오더니만, 바이런은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뚱거렸다. 바이런은 가련하게 뷔토스를 올려다 보았다. 뷔토스는 바이런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이런이 직접 말할 때까지 바이런이 원하는 것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바이런은 이렇게까지 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이걸 집이라도 불러도 될까? 어린 바이런의 눈에 이것은 성같았다. 금방이라도 기사들이 정원에서 튀어나오고 장난꾸러기 요정들이 지하실 아래에서 발을 걸 것 같았다.

  "빨리 오지 않으면 버리고 갈거다."

  뷔토스는 바이런의 방을 안내해주었다. 바이런은 방을 보자마자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이 정도 방 크기면 멜리브와 살던 집 크기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바이런은 곧바로 방 침대에 누워 보았다. 이전의 매트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바이런은 행복을 만끽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바이런은 곧바로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 덜컥덜컥.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 무서워요..."

  바이런은 감정을 호소하다가 잠시 멈췄는데, 불현듯 뷔토스의 이름을 끝까지 뷔토스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그 대상이 누군지 모르니 바이런은 그녀가 울든 말든간에 뷔토스는 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감정이 향하는 대상이 자신인줄 모를테니까. 오빠는 항상 내가 보거나 울면 달려와줬는데. 혈육을 잃은 슬픔이 다시 밀려오자 바이런은 이불 안을 파고 들어가 고치를 만들었다. 그 부드럽지만 차가운 둥지 안에서 바이런은 훌쩍이며 잠들었다.

 

  이제야 조금 조용해지는군. 뷔토스는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지와 장신구들을 빼고 다시 물에 몸을 담궜다. 조금 욕실이 작긴 했지만 -물론 뷔토스의 기준에서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시녀들의 시중 없이 며칠을 혼자 사니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뷔토스는 원로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꼬장꼬장한 늙은이들과의 대화에 바이런이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그 멍청한 꼬맹이는 칠렐레팔렐레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원로마다 악수를 청하고, 아니 악수를 청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그 꼬마는 분명 그들을 껴안을 것이다. 뷔토스는 원로들이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것을 상상하자 조금 기분이 유쾌해졌다.

  뷔토스는 옷장에서 검은실로 자수가 놓인 검은 공단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서 왼쪽 가슴 아래로 내렸다. 안구이페드 문양이 조각된 황금색 팬던트를 걸고 양가죽 구두를 신었다. 화장은 하지 않았다. 뷔토스는 거울 앞에서 그녀의 모습이 어디 흠집잡힐 만한 곳이 없는지 보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원로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저택에는 안구이페드가 없는 곳이 없다. 보이지만 않게 할 뿐. 지하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둥글게 깍여있는 천장은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안구리페드가 조각되어 있었다. 형형하게 노려보는 수탉과 뱀의 눈들과 뷔토스를 노려보는 원로들의 눈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원로들은 머리카락마저 드러나지 않는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눈만 보였다. 그들은 다 같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원로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으므로 서로를 구분하기 위하여 다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성별마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음성 변조기까지 가면에 부착해 놓았다. 원로들은 뷔토스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뷔토스는 원로들에 대하여 아는 것 하나 없었다. 그게 그리고 그녀의 기분을 더럽게 했다.

  뷔토스는 어느순간 하인이 그녀 뒤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원로들이 그녀를 물 기회를 스스로 주기 싫었다.

  '뱀 같은 새끼.'

  하인이 의자를 빼주려고 했지만 뷔토스는 먼저 의자를 뺐다. 서있던 원로들이 그제야 앉았다. 뷔토스의 입이 열렸다.

  "회의를 시작하죠."

  뷔토스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회의를 모집하는 것은 원로의 권한이었지만 회의를 시작하는 것은 뷔토스의 몫이었다. 회의는 시작부터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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