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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작성일 : 20-09-28 13:24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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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여정의 중반에 나는 어두운 숲에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00

 1906년 일본의 통감부 설치와 함께, 지방 통치 기구인 이사청(理事廳)이 곳곳에 들어섰다. 그들은 또한 각 지역 안에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 그곳에 공공기관을 두게 된다.

 

 평양의 대표적인 번화가는 두 곳으로 볼 수 있다.

 

 1. 대화정(大和町)거리: 평양역에서 이어진 중심가인 이곳은 평양 우체국, 이사청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2. 대동문(大同門)장터: 대동문에서 이어진 시장 거리로 대동공사(大東公司)와 항구와 가까운 덕분에 여러 기업들이 진출해 있었다.

 

 박홍석 그는, 정사희와 만남 후에 이사청으로 이동했다. 이사청 앞에는 이미 이사관 와카야마(若松兎三郞)와 몇몇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간만에 조선 총독부에서 나온 고위 공무원의 평양 일정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와카야마 이사관은 허리를 연신 굽히며 박홍석 즉 ‘후지야마 다카모리’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평양 화교 학살사건’이었다.

 

 이름뿐인 외무부장 일지라도, 조선 내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은 대부분 박홍석의 귀를 거쳐서 일본에 있는 외무부로 들어갔다.

 

 “다카모리상, 그때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다들 흥분되어 있어서...”

 

 와카야마는 그때 일을 생각하려니 끔찍한 기억밖에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을 빙자하여, 이참에 중국 상인들을 내보려는 심산이었을 겁니다. 하여간 조선인들이란...”

 

 박홍석은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그들은 고무공장 파업 등의 이야기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자신의 체크무늬 코트를 손에 쥐고 나가려는 홍석을 불러 세우는 와카야마,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산삼을 홍석에게 건네주었다.

 

 “중국산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조선인 심마니들에게서 직접 구입한 백두산 산삼입니다. 부디, 다음에 만날 때 까지 몸 건강하시길.”

 

 박홍석 그는 이제 평양 근처에 위치한 진남포로 향하였다. 차안에서 슬쩍 산삼이 든 상자를 열어본 후, 실망감에 왼손으로 콧잔등을 어루만졌다.

 

 “에헤이... 이사관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고급 상자안에 든 것은 중국산 장뇌삼이었다. 홍석은 앞자리 보조석에 앉아 있는 수행원에게 산삼 상자를 던지면서 가지라고 말한다.

 

 항구에서부터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홍석을 맞이했다.

 

 진남포 항구 근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중국 화교들이 이곳에 진출 하였는데, 오늘 가려는 장소도 그 중 하나였다.

 

 “방금 이사청에서, 평양 화교 학살사건을 이야기 한 것이 무색하게 중국인들이 많이 보이는구나.”

 

 아직 해가 중천인 이곳. 하지만 여기 저기 취한 사람들이 중국어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있었다. 홍석은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모순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착한 술집 건물은 빨간색 벽돌로 이루어진 2층 건물이었다. 중국식 객잔을 개조하여 만든 외관 간판에 ‘八, 发财(숫자 8, 돈을 벌다)’라는 한자어가 세로로 적혀 있었다.

 

 수행원 중 한명이 정말 중국인들은 숫자 8을 좋아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홍석은 같이 온 수행원들을 밖에서 기다리라 말한다. 그리고 ‘절대’ 그 누구도 음식점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약속의 방으로 들어간 홍석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흰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스님의 모습이었다.

 

 그의 외적인 모습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세월을 오래 살았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내는 홍석의 반대 좌석에 앉아있었다. 앉은 키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대한 덩치가 홍석을 압도했다. 근육의 움직임이 정장을 따라 겉으로 드러났다.

 

 스님의 코에서부터 턱으로 이어진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그가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잔 근육이 목선을 따라 어깨까지 이어졌다.

 

 사내는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미리 시켜놓은 음식과 술을 먹고 있었다.

 

 사각의 테이블에는 소와 닭 육회가 올려져 있었다. 남자는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집어, 소스를 걸쭉하게 담근 다음 입에 넣는다.

 

 그의 모습은 음식 향을 오랜만에 맡아 본 짐승과 같았다.

 

 코를 킁킁 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했고, 연신 입가에 묻은 소스를 테이블에 있는 휴지로 닦았다.

 

 목에는 목환자(木患子) 108개를 꿰어 만든 염주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사내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흰 정장과 염주가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렇다. 박홍석의 시선이 멈추는 곳에 그가 있었다. 사토 쿠가이(佐藤空海). 시간의 축 밖에서 살아가는 ‘다섯 본질들’ 중 하나. 그가 오랜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우리들 등장: #사토 쿠가이(佐藤空海), #일본의 밀교승]

 

 “やあ、久しぶりですね。(오랜만이구나. 그려)”

 

 “そうですね、お元気でしたか? (그렇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俺は、おかげで無事に暮している。(덕분에 잘 지냈네.)”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다.

 

 쿠가이는 박홍석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닭 육회를 한 입에 넣었다. 그는 육질이 질긴지 어금니를 연신 갈아댔다.

 

 “자 후지야마, 이거 미안하군 그래. 간만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나왔더니 그새를 못 참고 먼저 음식을 주문했지 뭔가. 중국인들의 닭 육회 솜씨는 알아줘야 해.”

 

 쿠가이는 홍석에게도 음식을 한번 먹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쿠가이상, 여전히 날 음식(飮食)을 좋아하시는군요. 전 익히지 않으면 비린내가 심해서 영...”

 

 쿠가이라 불리는 사내는 어색하게 허허허 웃더니 냅킨으로 자신의 수염 주변을 닦는다.

 

 이번에는 호리병에 든 일본식 청주를 홍석의 잔에 가득 따랐다.

 

 ‘술은 얼마든지 마셔주지.’

 

 사내는 자신의 술을 마신 후, 쿠가이의 술잔에도 가득 따라준다.

 

 “저번에 자네가 준 흥미로운 정보 덕분에 [우리들]사이에서 내 입지가 좀 더 올랐다네. 지금 조선 땅에 ‘카타콤(Catacomb:세계지하시장)’과 ‘The Seed’에 대해서 아는 짐승이 있다니. 저기 아메리카 대륙의 묵서가(墨西哥: 멕시코의 한자어 표기)에서 왔다지?”

 

 카타콤. 그 이름을 쿠가이에게서 듣자, 갑자기 그곳이 고향같이 느껴지는 홍석이다.

 

 “네, 그러합니다. 멕시코에서 카르텔 생활을 했던 놈인데, 그가 제 입으로 짐승과 함께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재규어라는 짐승의 영혼이 함께 한다고 한 것 같은데... 노아의 씨앗 없이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쿠가이는 목에 건 염주를 습관처럼 만졌다. 염주를 만지면 정서적으로 편안해지는 모양이었다.

 

 박홍석은 그런 그가 가끔 변태 같다고 느껴졌다.

 

 하얀 정장의 사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감정 없는 근육의 움직임이 여전히 목덜미를 따라서 어깨로 향했다.

 

 쿠가이는 중요한 이야기를 건네려는 듯 홍석에게 몸을 가까이했다.

 

 “내 경험으로는 ‘첫번째‘지만, 내가 알기로는 이번이 ‘세번째‘다. 그래서 그가 노아의 씨앗을 찾는다고? 예전에 노아일족의 변덕으로 아무도 찾지 못하게, 그 씨앗의 일부를 신대륙에 널리 숨겨놓은 적이 있었지.”

 

 “신대륙이요?”

 

 “그래 저 아메리카 대륙. 너의 [The Seed Project] 제안을 우리가 승인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그때, 카타콤에서 일하고 있던 가쓰라 다로(桂太郞)를 멕시코로 보내어, 언약의 궤 안에 들어 있던 ‘The Seed’를 조선으로 가지고 왔었지.”

 

 “네, 그러합니다. 쿠가이상.”

 

 “가쓰라가 그때 전하길, 현지 마피아를 통해 그 일을 진행하였다고 하였다. 일이 끝난 후, 그는 관계된 마피아들을 다 죽였다고 했지만... 아마 그때 그 ‘짐승 놈’이 노아의 씨앗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지.”

 

 쿠가이는 다시 염주를 만지더니 안심이 된다는 듯 표정이 편해졌다.

 

 “그리고 자네가 말한 재규어, 멕시코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나름 조사를 해보았는데 말이다.”

 

 홍석에게 자신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을 말했다.

 

 “예전에 재규어라는 동물은 아즈텍이라는 문명, 그리고 그 전의 테오우아칸(Teohuacan)이라고 하는 태양의 나라에서도 신의 사제 역할을 했던 짐승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짐승들은 영적인 기운이 인간들보다 뛰어나지. 그런 짐승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본인의 체력을 소비하는 일 일터인데... 그 사내, 아주 흥미롭구나.”

 

 박홍석은 쿠가이의 기분을 맞추어 주려 “예.”, “그렇습니까?” 혹은 “그건 아니죠.” 등의 대답을 적절하게 배치하려 노력한다.

 

 “네가 본 것이 분명 그 짐승이 맞다면, [들개]놈이 굉장히 재미있어 할게야. 하긴 둘이 만나면 재밌긴 하겠구나.”

 

 쿠가이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가 보다. 사내는 얼굴에 잔뜩 감정을 드러내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는 이내 호리병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잔에 따르더니, 곧 술병이 비웠음을 아쉬워하였다. 홍석은 그런 사내를 위해 청주를 한 병 더 시켰다.

 

 “물론 노아일족 괴짜들의 변덕 때문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었지. 하지만 ‘The Seed’의 단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그들]을 노하게 만들었어!”

 

 쿠가이의 호쾌한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어느새 청주 한 병이 그의 앞에 놓여졌다.

 

 “덕분에 [The Seed Project]의 타당성에는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었고, 가쓰라 다로의 존재는 지워졌으니 너에게는 잘 된 일이 아니냐?”

 

 아무 말 없이 홍석도 자신의 잔을 비운다.

 

 “[선거의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후보자]로 추천 받기 위하여 제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제가 왜 당신을 돕고 있는지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알다마다. [후보자]의 위치에만 오른다면 [우리들]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자네 아닌가. 자자, 그것보다 내게 줄 물건이 있을 터인데, 후지야마.”

 

 박홍석은 조심스럽게 체크무늬 코트 안에서 낡은 책 한권을 꺼냈다. 그것은 저번 평창동 작업실에서 가져온 티벳 밀교(密敎)의 경전이었다.

 

 밀교 경전이 사토 쿠가이(佐藤空海), 이 사내의 손으로 넘어가자 어두운 색깔의 그을음이 책의 가장자리부터 일어났다. 그을음은 서서히 책 전체를 감쌌다.

 

 “이것의 원래 이름은 사자의 서(死者-書)다. 나의 스승이 일본으로 가져온 후기 티벳 밀교의 숨겨진 수행서. 하지만 다른 이름은...”

 

 밀교승 쿠가이, 그는 밀교의 금강정경(金剛頂經)에서 나오는 진언(眞言)을 조용히 읊으면서 수인을 맺었다.

 

 오른 손의 다섯 손가락을 핀 후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 전체를 내린 모습이다. 여인(與印)이라 불리는 이 동작은 원하는 바가 있을 때 행하는 결인(結印)이었다.

 

 주변에 검은 그을음이 가득했던 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웠던 잿빛이 빠지면서 원래의 낡은 책으로 돌아갔다.

 

 “잘 보아라. 이것의 다른 이름은 생명의 서(生命─書), 전혀 다른 이름이지.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여흥으로 잠시 보여주마.”

 

 “옴 바사라단도 훔.”

 

 쿠가이의 음성이 차분하면서 무겁게 공간을 울렸다. 그는 왼쪽 집게손가락을 세워 오른손 바닥 안에 넣어 감싸는 수인을 다시 맺었다.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낯설지 않은 냄새가 계속 나기에 궁금한 것이 있었지.”

 

 대일여래(大日如來), 밀교에서 우주의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내는 근본적 부처로써 모든 부처와 보살의 궁극적인 본원의 대상. 그 원형이 쿠가이와 겹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는 대일여래의 모습. 그 형상이 선명해짐에 따라 한없이 편안하고 인자함을 품은 부처의 모습도 그 깊이를 더해갔다.

 

 쿠가이의 시선은 곧이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환자 염주로 향했다.

 

 사내의 손은 이제 그 목걸이로부터 길게 무엇인가 빼내려는 동작을 취했다. 곧 그의 오른손에 다른 염주 목걸이가 원래 있었던 것처럼 쥐어졌다.

 

 긴 염주 목걸이에 달린 각각의 둥근 원석들에는,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둥근 무늬가 눈이 감긴 것 같이 새겨져 있었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쿠가이는 또 다른 밀교의 진언을 외웠다. 그러자 사내를 감싸고 있던 대일여래의 눈이 떠짐과 동시에 염주의 삼안(三眼)도 같이 눈을 떴다.

 

 염주 원석에 있는 세 개의 눈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는 염주의 원석 하나를 뜯어내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날려 보내는 듯 공중으로 부드럽게 던진다. 염주 알은 곧 땅에 닿기 전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쿠가이는 염주 원석을 하나 더 뜯어서 홍석에게 주었다. 홍석에게 주어진 원석은 자연스럽게 피부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의 살이 우둘투둘해지더니 제3의 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삼안천주(三眼天珠)라고 불리는 원석들이다. 원하는 대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춰주지.”

 

 사내는 여기까지가 기본 능력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를 들어 다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을 원하는 대상에게 심어놓으면, 그자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그자의 눈에 비친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럼 어디... 무엇이 나를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는지 볼까?”

 

 곧 그들의 눈에 한 도매상점 앞의 거리 모습이 들어왔다.

 

 주방 식기 용품을 파는 곳이다. 소매상에서 물건을 사러 오거나, 아니면 직접 도매 상에서 물건을 사려는 개인 손님들로 가득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점 앞에는 젊은 여인과 10대 소년이 나타났다. 그녀와 함께 온 소년은 파는 물건들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살펴본다. 상점 사장은 그가 사지도 않을 거면서,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마음이 상한 표정이었다.

 

 쿠가이의 명에 따라 곧 술법의 대상자는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젊은 여인이 대상자가 지니고 있는 ‘복숭아 나뭇가지’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그때 쿠가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그녀가 눈에 익은 듯 소리쳤다.

 

 “하하하! 이게... 이게 무슨 일인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여기에 계셨구나. 저 여자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가게 안에는 아무도 손님을 받지 않도록 해 놓아서, 쿠가이의 소리가 밖으로 퍼질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홍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안을 살피고 다시 들어왔다.

 

 “인로왕보살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보다... 저도 굉장히 눈에 익은데. 이 무슨...?”

 

 홍석은 쿠가이와 다른 의미에서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분명 누군가를 닮은 얼굴이다.

 

 ‘설마!?’

 

 무엇인가 떠오른 홍석이다. 하지만 그 정확한 이유가 자신부터 이해가 될 때까지 쿠가이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혹은 본인을 위해서라도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홍석의 이마에 있는 삼안이 졸린 듯 눈을 깜빡거렸다. 이내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면서 사라진다. 그는 쿠가이에게 잠시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수행원 중 한 명에게 서둘러 전수동 교회의 ‘정사희 보혜사’에게 전보를 넣으라고 말했다.

 

 저 여자의 신변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쿠가이의 표정은 뿌듯해 하고 있었다. 홍석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 저런 조치를 취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내는 방금 대상자를 통해 확인한 그녀에게 큰 관심이 생겼기에 전보에 긍정적이었다.

 

 “알다시피, 내가 직접 일에 나설 수 없는 일 아니냐. 후지야마, 너에게 내 삼안 천주를 줄 터이니 지니고 있어라. 필요한 지시 사항은 내가 때가 되면 전달하겠다.”

 

 홍석은 쿠가이에게서 세 개의 둥근 원석을 받았다. 염주 알들은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들은 홍석의 손으로 넘어가자 금방 스스로 눈을 감았다.

 

 “일단, 그녀를 모셔오라고 전보를 해 놓았으니, 가서 직접 확인한 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쿠가이는 고개를 차분하게 끄덕인다. 긍정의 신호다.

 

 사내는 마지막 남은 소의 간을 기름장에 버무려 입안에 넣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으로 내려가는 쿠가이의 발자국 소리가 어느새 사라졌다. 그의 육체와 정신이 공존하던 이 건물에 가득했던 낯설음이라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홍석에게는 잠시 환상이라도 본 듯 멍한 기분이 이어졌다.

 

 멍한 기분이 일으킨 사내의 현기증은 금세 잦아들었다. 사내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현실감각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쿠가이가 이곳에서 멀어졌음을 확신하는 홍석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 테이블 주변이 어지럽혀져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사내는 한참동안 식사가 끝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눈이 돼지 눈이라서 그런가, 여전히 땡중이 돼지처럼 쳐 먹는군 그래. 하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

 

 그는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그때 기억이 싫은지 고개를 저었다.

 

 박홍석은 서둘러 평양으로 떠나기로 한다. 다시 전수동 교회로 가야한다. 그는 가져온 관용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아까 삼안으로 본 여인을 떠올렸다. 분명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정사희! 그년... 제발, 자신이 가기 전에 여인의 존재가 누군지 깨닫지 못해야 할 텐데.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이 분명하다.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 홍석은 운전사에게 속도를 재촉했다.

 

 오후의 잔념. 길어진 해의 시간에 그림자는 도로에 남기고 몸뚱이는 묵묵히 평양으로 향했다.

 
작가의 말
 

 1. 목환자(木患子):무환자과의 낙엽교목. 열매는 염주의 소재.

 2. 쿠가이(空海): 법명 홍법대사, 일본에 밀교를 창시하고 뿌리를 내리게 한다.

 3. 진언: 부처와 보살의 서원이나 덕이나 가르침을 간직한 비밀의 어구를 뜻해 범어 그대로 외우는 불교주문.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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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04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1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08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52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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