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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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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배경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이며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이젠 사라져가는 대가족세대와 시골의 마을공동체생활을 겪은 70,80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아이의 눈으로 부모님세대를 바라본 옛 이야기입니다.

 
막둥이 낳던 날 & 앵두네 살구밭
작성일 : 20-09-28 07:57     조회 : 272     추천 : 2     분량 : 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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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아기를 낳던 날의 기억>

 

 내가 여섯 살 무렵 엄마는 굉장히 큰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가 막둥이다.

 엄마는 너무 큰 아기를 열 달 가까이 뱃 속에넣어다닐 때 걷기 힘들었다고 한다.

 낳을 때도 엄청 고생을 했다. 갑자기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온 방안을 기어다녔다.

 외할머니도 집에 와있었다. 엄마가 배가 아파서 우니까 위선자도 따라서 울었다.

 우리가 집에 있으면 안된다고 친할머니는 위선자를 업고 파인애플집으로 갔다. 나도 따라갔다. 위선자는 엄마가 죽는다고 막 처울었다.

 한참을 지나서 집에 가니 엄마가 낳은 대빵만한 아기가 누워있었다.

 그 아기는 돌 지난 아기처럼 컸다. 그 커다란 아기가 막둥이였다. 아부지는 일학년이 오빠를 학교까지 가서 직접 데리고 왔다. 엄마가 동생을 낳은 날이라서 학교 공부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막둥이를 낳을 때 하늘이 노래졌다고 한다. 엄마는 너무 큰 아기를 열 달 가까이 뱃 속에 넣어다닐 때 걷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네아지매들은 아기가 커서 그렇다고 했다.

 막둥이는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컸다. 엄마는 종종 막둥이를 나에게 맡기고 밭일을 하러갔는데 막둥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자 아기를 통제하는 것이 만만치않았다.

 여름에 마루 아래에서 고무신에 모래를 담고 기차놀이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커다란 막둥이가 엉금엉금 기어서 마루 끝으로 기어왔다.

 “안돼. 이리와.”

 내가 막둥이를 질질 끌고 제자리로 갖다놓아도 막둥이는 계속 마루끝으로 기어나왔다.

 내가 한눈을 파는 순간 막둥이는 마루끝으로 기어와서 모래를 깔아놓은 마당아래로 떨어져서 처박혀 울고 있었다. 내가 커다란 아기를 죽을 힘을 다해서 마루 위로 올려놓자 아기의 이마에 모래에 쓸려 피부가 까져서 피가 맺힌 게 보였다.

 막둥이는 울음소리도 컸다.

 “우와아앙!”

 아무리 달래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났다.

 “이노무가씨나, 알라 좀 잘 보라니까.”

 엄마가 나에게 주먹을 쥐어보였다.

 “잘 봤는데...”

 엄마는 막둥이를 안고 젖을 물렸다. 엄마도 위로 셋보다 막둥이 하나를 뱃속에서 키우는게 더 힘들었다고 한다. 나도 막둥이가 커서 보느라고 애를 먹었다. 일단 아기가 크고 기운이 세니까 내 힘으로 통제가 안되었던 것이다.

 막둥이는 다섯 살까지 엄마젖을 먹었다.

 엄마는 막내라서 막둥이가 젖을 빠니까 귀엽다고 젖을 물렸고 다섯 살까지 모유가 나왔다고 한다. 사실 막둥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안방에서 엄마와 아부지 사이에 끼어서 잠을 잤다. 엄마는 늘 방이 따로 있어도 부부사이에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다 큰 막내아들을 자러오라고 불렀다. 아부지가 눈을 부릅뜨고 싫은 표정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때 자주 외갓집에 가서 살던 나와는 반대인 셈이다.

 

 

 <앵두네 살구밭>

 

 엄마가 텃밭에 김을 맬 때는 내가 막둥이를 업어주어야했다.

 막둥이를 업고 엄마가 김을 매는 땅콩밭 옆에 서 있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얼른 엄마에게 젖을 물리라고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두디기(포대기)의 끈을 아무리 세게 졸라매놓아도 여섯 살인 내가 막둥이를 업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늘 아기발이 내 무릎 밑으로 질질 내려왔고 아기를 지탱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보면 두디기도 느슨하게 풀려있었다. 아기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손을 안 놓치려고 뒤로 손을 깍지를 끼고 버텨보아도 아기는 점점 스르르 밑으로 처지는 것이었다.

 내 이마에서는 땀이 삐질삐질 솟았다.

 그때 동넷길로 앵두언니가 나타난다. 우리집에 놀러오는 것이다. 앵두언니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체구는 자그만했다. 하지만 나보다 한 살 더 먹어서인지 다부졌다. 엄마는 땅바닥에 거의 질질 내려앉으려는 막둥이를 앵두언니에게 업힌다.

 “앵두야, 밭에 맬 동안에 애기 좀 업어줘라.”

 그러면 앵두언니는 작은 체구로 커다란 막둥이를 잘 업어주었다.

 사과만한 앵두언니 얼굴 뒤로 업힌 막둥이얼굴은 중간 크기의 수박만 했다.

 

 앵두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앵두언니의 동생 차돌이와 함께 셋이서 소꿉놀이를 했다.

 진흙을 물에 개어서 둥글둥글 떡도 빚고 산 밑 계곡에서 납작한 돌을 주워서 접시로 썼다.

 그러다가 앵두네 밭에 있는 작은 살구를 따먹기도 하고 봄에는 쑥을 뜯어서 나물을 무쳤다면서 대접하기도 했다.

 “차돌이엄마, 나물 좀 먹어봐요.”

 “모개엄마, 고마워요.”

 앵두엄마는 우리 사과밭에 사과를 딸 때에 자주 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적 앵두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산 밑 밭에서 딴 살구나 손수 만든 땅콩강정을 주었다.

 앵두언니네는 읍내로 이사를 갔는데 살구밭이 안팔려서 농사를 지으러 왔다갔다하면서 살았다. 농사를 짓는 여름철에는 살구나무집에 살고 겨울이면 읍내에서 살았다. 그래서 봄여름에 가끔 학교 끝나는 길에 만나면 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앵두언니는 말했다.

 “오늘은 무슨 반찬 싸갔는데?”

 “멸치볶음이랑 달걀말이....”

 내가 대답하면 앵두언니는 동네 길가 풀밭 위에 자기 도시락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면서 말했다.

 “우리 반찬 나눠먹자.”

 우리엄마는 달걀이 비쌌지만 파를 송송 썰어넣은 달걀말이를 자주 도시락반찬으로 만들어주었다. 동네 안에 양계장이 있었고 닭집아지매와 친하게 지내서 달걀을 사러가면 많이 주어서 자주 먹을 수 있었다.

 “한 번 먹어보자. 도시락통 열어봐라.”

 그리고는 내 도시락 반찬통에서 남은 달걀말이와 멸치볶음을 먹어보고 맛을 평가했다.

 “너희집은 멸치를 고추장으로 무쳤네? 맛있다.”

 앵두언니가 우리엄마가 만든 반찬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반찬을 깨끗하게 먹고 남겨왔다. 하지만 나는 간장으로 볶은 앵두언니네 멸치볶음이 맵지않아서 더 맛있었다.

 앵두언니와 나는 그렇게 도시락통의 남은 반찬을 밥도 없이 나눠먹고 집으로 오곤 했다.

 

 어느 날 우리집에 일을 해주러 온 열무엄마가 우리엄마에게 소곤거렸다.

 “내가 그 집에 밀가루를 좀 빌리러 갔었는데 앵두엄마는 없더라고. 그런데 그 영감님이 혼자 골방에 앉아서 미느리를 도둑년이라고 하며서 욕을 하더라고. 영감님이 외출한 사이에 이불 속에 감춰둔 돈봉투를 누가 가져갔따카데. 일본말로 막 혼자 분해하면서 시부리는데 안됐더라.”

 “일본말로? 일본말로 하는데 우째 알아들었습니꺼?”

 우리엄마가 나이가 몇 살 위라서 언니뻘인 열무엄마에게 물었다.

 "우리 친정엄마가 옛날에 왜놈집에서 식모로 일을 안했나?"

 열무네엄마는 옛날 친정어머니가 일본인 집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면서 함께 살아서 자기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열무네엄마는 앵두네 집 옆에 살았는데 자주 앵두네 이야기를 물어다주었다.

 앵두언니네 집에는 양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분은 친할아버지의 동생분이었는데, 양할아버지는 앵두엄마를 평소에 굉장히 미워했다고 한다.

 맨날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사람만 보면 도둑년이라고 조카며느리 험담을 했다는 것이다.

 양할아버지는 조카며느리만 집에 없으면 맨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는게 일이라고 했다.

 “늙은이가 사람이 삽짝 밖에만 나가면 온 집안을 들쑤셔놓는다. 일본서 올 때부터 빈털터리로 온 걸 우리 남편이 마음이 착해서 델꼬 사는 것도 모리고.”

 앵두엄마는 우리집에 와서도 앵두네 작은할아버지 그러니까 양시아버지가 늙어서 노망이 났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앵두엄마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양할아버지는 얼마가지않아서 병들어 누워계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내 돌아가셨다. 그러자 앵두네집은 작은 과수원을 헐값에 내놓고 읍내에 마당이 딸린 집을 사서 이사를 갔던 것이다. 앵두네엄마는 앵두아버지가 번 돈과 자기가 동네농장에서 일을 해주고 번 돈을 합쳐서 집을 샀다고 했지만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살구밭도 안팔리고 버는 게 빤한데, 무슨 큰돈을 모아서 읍내에 집을 샀단 말이고? 이상하제? 돈 붙는 팔자는 따로 있다카이.”

 열무네엄마는 약이 바짝 올라서 시부렸다. 앵두네엄마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옛날 앵두네 할아버지는 강 건너 산 밑의 작은 살구밭이 갖고 있었다.

 앵두네아버지가 결혼하면서 살구나무밭에 집을 지어서 분가를 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앵두네아버지는 혼자 된 작은아버지의 양자로 입적을 했다.

 그러니까 앵두에게는 작은 할아버지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을 갔었는데 해방이 된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이 많은 일본여자분과 결혼해서 그대로 일본에 눌러살면서 돈을 많이 벌어왔다고 소문이 났었다. 그분은 부인이 돌아가시고 난후 한국으로 건너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식을 낳지 앟았다. 그 시대 분위기로 보아서 일부러 안낳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일본에서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는 모든 사람이 잘 알았다. 아마 그분은 일본인아내의 도움으로 수많은 위기를 넘겼을지도 몰랐다.

 심성은 고우나 무뚝뚝한 형님이나 동생들도 있었지만 눈치빠르고 싹싹한 앵두아버지가 더 잘 보여서 양자로 뽑힌 것 같았다. 앵두아버지는 그 당시 신혼이었는데 집을 지어서 작은아버지를 모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앵두언니네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문난 작은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집안에 이것저것 쓰라고 돈을 보내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거기다가 작은할아버지가 자식이 없어서 앵두아버지가 일찌감치 양자로 호적에 올랐기 때문에 앵두아버지는 부잣집아들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앵두엄마와 나이차이가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결혼하게 된 것이다.

 앵두엄마는 꾸미고 나서면 시내 멋쟁이처럼 보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 만족할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야심이 있어보였고 애교도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앵두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머리가 벗겨진 늙은 할아버지가 문간방에 앉아있곤 했다. 할아버지는 외출할 때는 늘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었다.

 그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살다와서인지 몸가짐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보통 시골의 늙은 할아버지들과는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짱짱해보이던 그 할아버지는 감기인지 바이러스인지 때문에 앓아누운지 얼마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고난의 시기에 온 식구를 먹여살렸던 한 많은 남자의 인생이 꽃샘추위에 떨어지는 꽃처럼 져버렸다.

 

 내가 이학년 겨울쯤 앵두네 살구밭이 팔렸다고 했다. 앵두네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살구밭의 살구나무들도 모두 뽑아버린 다음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다.

 “여기 큰 종교시설이 들어온단다.”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무슨 시설? 성당에서 뭘 크게 짓는데....”

 나는 아쉬웠다.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이 이사를 오기를 바랬는데.....

 ‘이 동네는 사람들이 떠나기만 하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난 몰랐다. 여기에 꽃사슴농장이 지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서 나와 오만상, 위선자, 막둥이, 구원자까지 거기 들러붙어 살다시피하면서 얼마나 많은 간식을 얻어먹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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