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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대에게 죽음을 고합니다.
작가 : 카레샤워
작품등록일 : 2020.8.31

로이날슨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스는 누군가의 사주로 거리에서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어릴 때부터 행복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고,
그 소원으로 인해 일곱 살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괴롭던 지난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어린 엘리자베스는 다시 한 번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다.


#복수물 #황궁물 #회귀물 #후회물 #여주성장물 #남주성장물
#사이다여주 #똑똑여주 #불쌍한여주 #한방먹이는여주
#집착남주 #다정남주 #능글남주 #짝사랑남주

 
새장 속 나비(2)
작성일 : 20-09-25 20:04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7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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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되면 해는 밤을 몰아내고 아침을 가져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건만 조금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아 이상한 기분이었다.

 

 몸을 씻고, 머리카락을 빗고 있으니 문이 없이 조심스레 열렸다.

 한나였다.

 

 평소 이 시간에 자고 있을 나를 배려하며 발소리도 죽이며 들어왔건만, 침대에 내가 보이지 않아 당황한 눈치다.

 

 

 “한나, 나 여기 있어.”

 “어머! 아가씨!”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화장대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한나를 보고 있자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가씨,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나셨어요. 세상에, 혼자 머리를 빗고 계셨던 거예요?”

 “응, 혼자서 씻고 나와서 머리 빗고 있었어.”

 “다음부터는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할 일이잖아요.”

 

 

 한나는 내 손에 들려있던 빗을 가져가 정성스레 머리를 빗어줬다.

 

 따스한 손길에 긴장이 풀리고, 눈이 감겼다.

 

 엉켜있던 부분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머릿결도 정리되었건만 한나는 평소와 다르게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빗었다.

 

 

 “아가씨, 제가 주제넘게 여쭤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혹시 어제 주인님과 다투셨나요?”

 

 

 아직 주변은 어둡지만 이렇게 퉁퉁 붓고 붉어진 눈을 못 봤을 리가 없지.

 

 누가 봐도 밤새 내내 운 얼굴이니 한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운을 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가끔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아가씨, 힘들면 한 번 크게 울고 다 털어버리세요. 그러면 속이 좀 편해질 거예요. 물론 슬픔이 한 번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계속 시간이 흐르다보면 그것도 어차피 지난 일이 되니까요.”

 

 

 아, 한나는 매일 이렇게 슬픔을 지워왔구나.

 

 항상 밝게 웃는 한나가 신기했었다.

 이 집에 가장 늦게 들어왔기에 같은 하녀들 사이에 잘 섞이지 못한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활발했고, 자주 웃음 지었다.

 

 

 “고마워, 한나.”

 

 

 뒤를 돌아 한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쌀쌀한 새벽부터 잠도 아끼고 가장 먼저 이곳으로 온 한나의 옷에서는 찬바람 냄새가 났다.

 

 한나는 놀란 듯 몸을 움찔 떨었지만 곧 아무 말 없이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아가씨, 제 생에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아가씨. 아가씨를 모시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응, 나도 한나와 함께 있어서 정말 행복해.”

 

 

 우리는 서로를 안아 그동안의 슬픔을 나눴다.

 각각 다른 슬픔을 겪었지만 위로는 같았다.

 

 

 한나는 오늘 입을 옷을 준비해주고, 식사를 가지러 밖으로 나섰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아가씨, 식사를 가져왔어요. 이제 스프와 함께 계란이나 간단한 빵은 드셔도 된다네요. 주방장에게 부탁해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어요.”

 “이제 슬슬 스프만 먹기 질리던 참이었어.”

 

 

 한나와 웃으며 장난을 치는 것도 잠시, 눈앞에 놓인 음식을 본 순간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미안한데 그 그릇 좀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줄래?”

 “네, 아가씨.”

 

 

 한나가 그릇을 치워버리자 속이 조금 진정되었다.

 오늘 아침을 먹는 것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한나, 나는 괜찮으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저 음식 좀 처리해줘. 누가 물어보면 내가 음식을 다 먹었다고만 이야기하고.”

 “하지만 아가씨, 의사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괜찮아. 계속 스프만 먹다가 갑자기 다른 음식 냄새를 맡아서 그런 것 같아. 점심은 제대로 먹을 테니까 한나는 이제 그만 가봐.”

 

 

 끝까지 의사를 불러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나였지만 방을 나가면 분명 내가 지시한 대로만 행동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한나는 내 하나뿐인 시녀니까.

 나는 그녀를 믿는다.

 

 놀란 한나가 다른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프면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본인이 먼저 자리를 비워줬으니.

 

 

 “확실히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네.”

 

 

 설마 음식을 보고 헛구역질을 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전에는 나도 꽤 놀랐다.

 

 배는 많이 고프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점심때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곤란하다.

 

 의학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 내 몸을 주의 깊게 살피는 편도 아니니 최근 반복되는 몸의 이상현상에 대해서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하면 조금 나을 것 같은데 지금 괜히 밖에 나갔다가 아버지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할 말이 없으니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대와 가까운 곳의 창문은 저택의 정문이 있는 쪽이라 사람의 왕래가 많아서 싫고, 욕실의 옆에 나 있는 조그마한 창문은 저택 옆쪽의 큰 나무가 있는 곳이라 바깥 구경을 하기에 좋을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 상체를 밖으로 뺐더니 상쾌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어머, 저게 뭐야. 새인가?”

 

 

 곧게 솟은 나무의 조그마한 가지에 짚으로 엮어 만든 새집이 있었다.

 

 처음에는 하얀 깃털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자세히 보니 계속해서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간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니 하얀 털이 난 아기 새가 둥지 밖으로 얼굴을 내비췄다.

 

 부리가 크고 뾰족한 것을 보아 육식을 하는 새인 것 같은데 다 크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졌다.

 

 

 “세상에,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아기 새가 아직 깃털이 나지 않은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둥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 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저 작은 새의 눈은 이미 멀리 펼쳐진 창공을 향하고 있었다.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아기 새야 잠깐만 기다리렴.”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몸을 의지한 아기 새가 떨어져 버릴까 걱정되어 몸을 더 밖으로 빼서 손을 뻗어봤다.

 

 닿을 줄 알았는데 손가락 몇 마디 차이의 거리가 부족해 아기 새는 조금 더 먼 쪽으로 이동해갔다.

 

 

 “너 다쳐도 나는 모른다?”

 

 

 괜히 쓴 소리를 해봤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문에서 나무를 타고 갈 수 있을만한 거리도 아니고, 누군가를 불러오기에도 마땅치 않는 상황인데 아기 새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펄럭여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정말 어떻게 해야 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시 창문으로 몸을 빼냈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지면이 까마득했다.

 

 애써 앞을 보며 창문과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 손을 얹었다.

 

 가지가 얇았지만 내 몸 하나는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틀을 밟고 일어나 있는 앞에 있는 나무로 몸을 옮겨 갔을 때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거기서 뭐하십니까?”

 “크리스경?”

 

 한동안 보지 못했던 크리스가 마치 꿈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놀란 듯 몇 초간 말이 없더니 곧 눈이 커져서 내 밑으로 급히 뛰어왔다.

 

 

 “아가씨, 어서 내려오세요! 위험합니다!”

 “아직 못 내려가요.”

 

 

 밑에서는 크리스가 계속해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지만 아기 새를 구하기 전까지는 내려갈 수 없었다.

 

 나무에만 올라오면 쉬울 줄 알았건만 아기 새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자기보다 몇 배는 더 큰 사람이 손을 뻗어오니 무서웠던지 계속해서 도망치던 아기 새는 결국 발을 헛디뎌 나무 밑으로 떨어져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짧은 숨을 삼키며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끔찍한 상황을 예상한 것과 달리 아기 새는 크리스의 품에 안겨 놀란 듯 입을 벌리고 굳어있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또 안심도 되어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 이제 아가씨 차례입니다. 어서 내려오세요.”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기 새를 구하기 위해 나무를 올라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창문에서부터 너무 멀어져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크리스가 정원사에게서 사다리를 빌려와 겨우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도대체 아가씨는 왜 그렇게 무모한 겁니까? 아직 몸도 안 좋은 사람이 3층에서부터 나무를 타고 내려오지를 않나.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크리스경, 오랜만에 만났는데 안 좋은 말만 할 거예요? 저는 만나서 기쁜데 크리스경은 그렇지 않나 보네요?”

 “아니, 그거랑 이거는 별개의 문제……. 후, 그래요. 저도 아가씨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크리스가 뜻을 굽혀줬다.

 그의 품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기 새는 무사해보였다.

 

 

 “크리스경 고마워요.”

 “네?”

 “아기 새를 받아줬잖아요. 다행히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 오른쪽 다리를 조금 다쳤어요. 떨어지면서 밑에 있는 가지에 부딪쳤나봅니다.”

 

 

 크리스가 새를 들어서 보여주자 상처가 보였다.

 더 살펴보니 날개 끝도 조금 상한 것 같았다.

 

 

 “제가 괜한 짓을 한 걸까요? 그저 아직 날아가기는 좀 이른 것 같아서 떨어질까 봐 잡아주려던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풀죽지 마요. 잘 치료해서 날 수 있게 해주면 되잖아요. 붕대랑 베인 상처 치료할 때 쓰는 연고 정도만 있어도 될 거예요.”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크리스 덕분에 불안이 녹아내렸다.

 

 저택으로 돌아와 약과 붕대를 준비해주자 크리스는 익숙한 일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아기 새의 상처를 치료했다.

 

 

 “자, 다 됐습니다. 이 애는 아가씨가 당분간 보살펴주세요.”

 “감사해요. 그런데 크리스경은 상처 치료가 익숙한가보네요.”

 “뭐, 훈련장에 있으면 다치는 녀석이 한 둘이 아니라서 저절로 실력이 늘었죠.”

 

 

 크리스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불안해하던 아기 새가 이제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깨지 않도록 조심히 방석 위에 옮겨놓고, 크리스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런데 저택까지 무슨 일이예요? 지금은 아버지도 안 계실 텐데.”

 “아가씨 얼굴 까먹을까봐 보러왔죠.”

 “정말요?”

 “네, 그리고 단장님이 좀 이상해서요.”

 “아버지가요?”

 

 

  순간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아버지가 평소와 다르다면 원인은 아마 그것밖에 없겠지.

 

 

 “사실 아버지와 어제 조금 다퉜어요.”

 “네? 아가씨랑 단장님이 다퉜다고요? 그건 로건이 깔깔대며 웃는 것보다 더 흔치 않은 일이네요.”

 “그렇죠…….”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 장난스러운 말을 하는 크리스에게 맞장구치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티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간단하게 들켜버린다.

 

 

 “말하기 싫으면 아무 말도 안 해도 돼요. 그래도 단장님이랑 다시 한 번 말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그래야죠.”

 “뭐, 다툰 건 보나 마나 또 단장님이 과보호해서 그런 거겠지만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놀라서 무심코 큰소리로 되물었더니 크리스가 작게 웃음 지었다.

 뒤늦게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그냥 단장님이랑 아가씨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알게 돼요. 분명 서로 많이 좋아하고 있으면서 그걸 겉으로 표현을 안 하니까 언젠가는 다투겠구나 생각했어요.”

 “확실히 말로 잘 표현을 못하고 있었죠.”

 “단장님은 항상 저희 같은 칙칙한 남자들이랑 있어서 말을 다정하게 하는 법을 잘 몰라요. 그러니까 아가씨가 이해해주세요. 겉으로 내색은 못해도 지금 단장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테니까요.”

 “하하, 크리스경은 프리페리어 가문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네요.”

 “제게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단장님과 아가씨니까요. 빨리 해결하려면 이렇게 제가 또 발 벗고 나서야죠.”

 

 

 오후 훈련도 빠지고 아버지와 나를 걱정해 직접 저택으로 찾아와준 크리스의 다정함에 코끝이 시렸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은 항상 아버지의 따스한 손을 잡고 싶었고, 즐거웠던 일을 마음껏 말하며 행복하게 웃고 싶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서툴러 조금씩 상처주고 있었던 것이다.

 

 

 ***

 

 

 크리스가 돌아가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기 새는 아직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지 침대 위에 얌전히 몸을 말고 앉아있었다.

 

 마차의 바퀴소리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문은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간 하녀들과 집사들로 붐볐다.

 

 발이 멋대로 움직여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갔다.

 

 아버지는 저택으로 들어오기 전 집사장과 잠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어... 그래. 오늘도 별 일 없이 잘 있었니?”

 “네. 잘 있었어요.”

 “…….”

 

 어색하게 시작한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끊겨버렸다.

 

 뭔가 더 말해야 할 것만 같은데 긴장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리지, 이리 오렴.”

 

 

 긴 침묵을 깨고 아버지가 한 쪽 무릎을 땅에 대어 몸을 낮췄다.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나를 향해 활짝 벌려진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안하구나.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네게 상처를 줬어.”

 “저도 죄송해요. 감정이 격해져서 아버지에게 화를 냈어요.”

 

 

 아버지는 구름을 안는 것처럼 조심히 내 몸을 끌어안고 몇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리곤 이내 두껍고 따뜻한 손이 내 몸을 들어 올려 우리는 나란히 아버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소파에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는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는지 눈가가 조금 어두웠다.

 

 

 “리지,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내 긴 이야기를 한 번 들어주겠니?”

 “네. 얼마든지요.”

 “그래, 처음은 네가 태어난 날부터였지…….”

 

 

 무겁게 한 마디 내뱉은 후로 아버지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고 손마디를 매만지셨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몸이 더 작아서 출산을 도와준 산파가 건강을 걱정했지만 나는 너를 처음 이 품에 안았을 때 너무 기뻐 그저 웃기만 했단다. 마치 작은 요정이 선물처럼 찾아온 것 같았거든. 그런데 클레아는... 네 어머니 클레아는 너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단다.”

 “…….”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얼굴이 비통함에 물들었다.

 

 그동안 부단히도 잊으려 애썼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들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는 너를 안고 클레아에게 가서 작은 얼굴을 보여주며 또 웃기만 했다. 클레아는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

 “클레아는 네 얼굴을 한 번 쓸어보고는 너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고, 그 다음부터는 의식을 잃어 결국 일어나지 못했단다.”

 

 

 긴 속눈썹을 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클레아의 마지막 부탁이었기에 나는 네가 사교계에도 나가지 않고, 오직 이 저택에서만 안전하게 지내길 바랐다. 결국 그건 내 욕심이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클레아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

 “너를 지킨다고 생각했던 일이 너를 이렇게 괴롭게 만들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리지.”

 

 

 집 안에만 갇혀 생활하던 어린 날을 떠올렸다.

 티파티 초대장이 와도, 호화로운 무도회가 열려도, 나는 언제나 이 저택 안에서 그저 부러워할 뿐 아버지에게 속내를 말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아버지가 슬퍼했을 테니까.

 어린 날의 나는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채찍질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셨고, 그 증거로 저는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저는 제 혼자 힘으로 세상에 서는 법을 알고 싶어요. 검을 배우고자 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고요.”

 “…….”

 “저는 제 몸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짓은 하지 않아요. 그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강해지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조금씩 더 성장해가는 저를 지켜봐주세요.”

 “아아,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아버지는 걱정에 찌푸려진 얼굴 대신 인자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셨다.

 

 아마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조금씩 이렇게 진심을 나누고 대화한다면 아버지도 나를 걱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 아닌, 본인이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새장 속의 나비는 조금씩 날갯짓을 하며 날아갈 준비를 하고, 새장은 이제 더 이상 나비를 옭아매는 감옥이 아닌 든든한 보금자리로서 나비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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