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9)
작성일 : 20-09-25 13:35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926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오메테오톨의 독백)

 

 #17

 이제 무웅과 나의 목적지는 정해졌다. 우리는 평창동 박홍석의 작업실로 갈 것이다. 몇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이 낯선 조선땅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행보를 통해, 박홍석 그 자도 어느 순간, 숨겨진 진짜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라 여겨진다.

 

 무웅 이 사내를 만나고, 나는 지금까지 이자의 무의식에 '기생'해왔다. 무의식의 일부를 차지하는 대신, 숙주인 무웅에게 내 힘을 빌려주는 것, 그것이 조건이었다.

 

 [부모의 복수]

 

 멕시코 노예이민, 일포드 호에 몸을 실은 1000여명의 조선인들은 1900년 초. 그렇게 제물포항을 떠났다. 매일 매일 이어진 중노동과, 불합리한 처우. 그곳에서 조선인들은 소나 말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내 부모 세대를 속이가, 이 멕시코로 노예이민을 오게 만든 장본인들에게 꼭 복수 할끼다.'

 

 무웅은 큰 힘을 원했다.

 

 [The Seed, 태초의 씨앗]

 

 멸망한 아즈텍 문명을 다시 살리기 위해, 필요한 노아의 씨앗들, 그 행방을 쫓기 위해 조선으로 향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 오메테오톨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신체가 필요했다.

 

 그런 우리는 지금까지 별 의견충돌 없이 지내왔다. 하지만 어제 조선인 사건 이후에 벌어진 작은 다툼이후, 이자의 무의식이 강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분명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우리의 은신처는 청계천 수표교 주변의 판자집이었다. 밤에는 인적이 드문 장소였기 때문에 머무는 동안 안심할 수 있었다.

 

 어제 태원약국 골목에서 조선인에게 원하는 정보를 얻은 후, 무웅의 몸으로 수표교에 돌아왔다. 그리고 사내는 갑자기 나와 이야기 하기를 강력히 원했다. 하는수 없이, 나는 무웅의 오른쪽 관자놀이로부터 빠져나와 오랜만에 령(靈)의 모습을 유지하였다. 무웅과 투명한 영의 모습이 된 나 사이에는 흰색의 투명한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마, 그 아재 앞에서 안 죽인다거 약속하고 있었는데, 니가 뭔데 나서고 지랄이고.”

 

 곰 같은 사내가 내 앞에 있다. 이렇게 본인에 대한 의식이 강한 사내기에 내가 무의식에 머물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겠지.

 

 [왜, 그때 자의식의 기운을 그렇게 강하게 내 뿜은 거지? 밤에는 분명히 내가 몸을 빌리기로 서로 계약 하지 않았나?]

 

 “야, 재규어. 니 마, 나랑 사람들 이유 없이 죽이지 않기로 얘기 된것 같은데? 내가 그 전에 일본아들 죽일 때도 얘기 안했나? 죽이지 말고 해결하자꼬. 그런데 또 죽일라꼬, 살기를 그렇게 드러내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 했드나?”

 

 [그래서 이번에는 죽지 않았으니, 된것 아닌가.]

 

 “니 마, 그 아저씨가 살아있다고 확신 할 수 있나? 어? 치명상만 아니지 피가 그렇게 많이 흐르던데. 마, 내가 아무리 짐승같이 멕시코에서 살아왔어도 사람은 함부로 안 죽이따. 아무리 내 부모에 대한 복수 때문에 이곳에 왔어도, 과정이 이렇게 깨끗하지 못하면! 응? 마, 결과가 좋을 수 있겠냐 말이다.”

 

 [만약, 그자들 모두 살려 두었다면, 우리의 ‘존재’ 여부가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 밑에서 존재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 내어서, 박홍석 그자가 미끼를 물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는가?]

 

 갑자기 이 곰 같은 사내의 쓸데없는 감성이 질린다.

 

 [내 삶의 이유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내가 존재한 시간 속에서 이미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아니면 죽이는 행위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바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그 정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지.]

 

 “뭐라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정당함이 어딨노?”

 

 [자네의 의견은 이미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해.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난 자네에게 더 큰 힘과 머리를, 그리고 자네는 나에게 몸을 빌려주기로 하지 않았나.]

 

 “....”

 

 [목적을 위해서 서로의 어떤 행위든지 의심이나 궁금증은 가지지 않기로 했지. 이미 몸의 공생을 위해서 내게 자네의 무의식 공간 절반을 내어준 이상, 어떻게 보면 이 행위는 자네의 무의식이 어느 정도는 동의를 했다고 볼 수 있어.]

 

 무의식의 동의라는 말을 들은 후, 무웅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조금 더 밀어붙이기로 한다. 잘만하면 다시 의식에서의 우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생각해봐, 이번 일에 연관되어 있는 자들 아니었으면 애초에 자네 부모가 그 낯선 땅에 갔겠어? 자네 부모의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이 과정 또한 자네 부모나 다른 멕시코 이민자들을 위한 복수라고 할 수 있지.]

 

 “말 다했나?”

 

 그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귀를 털어내는 행동을 취했다. 분명 귀가 가려운 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것을 들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묵직하게 공기를 가른다. 그 끝은 나에게 향했다.

 

 “내가 마, 니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 뭔 고양이가 개소리를 그렇게 하던지. 니는 말이 많은 게 문제야. 아무튼 살인은 안 돼. 내가 딱 짚어줬어. 한번만 더 나랑 동의 없이 어떤 일을 벌이기만 해봐, 그걸로 우리 동맹 관계는 끝이야.”

 

 무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자신의 무의식에서 쫒아 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순간, 확 그의 얼굴에다 발톱을 할퀴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사내는 멕시코에서부터 깔끔하게 삭발한 머리를 선호했다. 면도날로 깔끔하게 마무리 되어 있었다. 나는 무웅의 얼굴이 갑자기 꼴 보기가 싫어져서 그의 민머리 위에 가서 앉아 있기로 한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머리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켰다.

 

 “어느 정도 힘을 보여주는데 사용하는 건, 오케이 내가 인정. 하지만 그 이상 응? Esta vez no te dejaré salirte con la suya.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지 않을 거야.)”

 

 흥, 어차피 '무의식의 잠식'만 끝나면 너의 몸은 내 것이 된다. 굳이 지금 이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겠지.

 

 무웅의 말을 흘려 들으면서 대화를 끝내기로 한다. 나의 몸은 곧 투명해졌다. 그리고 다시 관자놀이를 통해 무웅에게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수표교 은신처를 나섰다. 매번 아침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는 정말 산이 많다.

 

 북악산부터 시작해서 남산 등등,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분명 지난 이씨 조선부터 600년을 이어온 이 경성 내에는 좋은 산의 기운이 널리 깃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나의 이 영험한 기가 느끼기엔, 그 산 기운이 흐르는 중간 중간, 기의 맥(脈)이 끊겨 있었다. 원체 나라의 기가 좋은 곳이라 다시 맥들은 언젠가 연결될 것 같다.

 

 나라를 따라 길게 뻗어 연결 된 산 덕분에, 우리는 제물포에서 경성으로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또한 몸을 숨기기에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무웅은 인간의 몸으로 계속해서 산을 타려니 귀찮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이 은신처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한 것이다.

 

 무웅의 몸으로 은신처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덩치는 두 배 컸지만, 어차피 조선말을 잘하는 조선인 아닌가.

 

 저 멀리 얼빠진 조선인이 다가온다. 사내의 이름은 왕발이라 불리는 이 주변 움막집 군상들 중 한 명이다. 그는 가는 목소리로 숙박비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무웅은 이자가 좋은 모양이었다. 왕발에게 4전을 주면서, 혹시 저번처럼 이상한 사람들 있으면 또 이야기 하라고 말했다.

 

 박홍석의 작업실은 평창동(平倉洞)에 위치해 있다. 북한산을 뒤로 두고, 험난한 바위산 자락에 위치한 그 곳, 기가 세기 때문인지, 작가나 건축가 등,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직업군들이 사는 장소라고 한다. 예술가들의 성격은 항상 개인주의와 고독이 따르는 법, 조용히 일을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적어도 그곳에서 [The Seed]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노아의 씨앗이 조선 땅으로 들어온 이상, 그것은 박홍석이라는 자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The Seed]에 대한 정보, 무웅은 그 일의 총책임자였던 자와의 만남. 우리 두 사람의 목적을 한꺼번에 이루기 위해서, 길게 돌아 온 길이다.

 

 오늘 우리는 평창동으로 향한다.

 

 #18

 북촌을 지나서 평창동으로 이동한다.

 

 조선의 한옥 건축 양식을 벗어난 서양의 영향을 받은 여러 형태의 주택들이 다른 나라인양 자리 잡고 있었다. 한창 개발이 진행되어가고 있는 경성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평창동이다.

 

 이곳에서는 그래서인지, 식민지 특유의 감성, 즉 나라를 잃은 탓에 자리를 잃어가는 건축물들의 슬픔이 많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주거지의 조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마을 답게, 그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많이 반영된 탓도 있었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박홍식의 작업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살피기로 했다.

 

 평창동 일대는 목조 팔각지붕의 한옥주택과 벽돌로 되어있는 서양식 주택들이 나름 질서 있게 지어져 있었다.

 

 그 중, 박홍석의 작업실은 철골 구조로 지어진 작은 한옥주택이었다. 옆집에 위치한 서양식의 이층 벽돌집과는 대비되는 건물이다. 두 건물은 벽돌 담을 경계로 두고 사이좋게 좌우로 자리했다.

 

 며칠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박홍석이라 불리는 그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나이가 어려 보이는 남자 세 명만이 규칙적으로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사내의 수행원인 듯 했다.

 

 혹시 박홍석이 저 곳에서 몇 일째 머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기 전에, 저 집에 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살고 있다면, 적어도 저녁에는 불빛이든 뭐든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수행원들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한옥 집에서 나오면, 우리가 돌아가기 전까지 불이 꺼진 채로 있었다.

 

 홍석의 작업실 옆에 위치한 2층 벽돌집은 항상 같은 시간에 불이 켜졌다 꺼진다. 직접 실거주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한 중년의 여자가 이틀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들어갔다 나왔다.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인 작가 일지도 모른다. 어느 이유에서건, 조용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일이었다.

 

 [무웅, 한 번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

 

 "그러자. 이렇게 마, 시간만 죽일 수는 엄는 노릇 아이가."

 

 우리는 상의 끝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그날은 근래 여느 날과는 달리 비가 무척이나 내리는 날이었다. 장대비 또한 우리를 돕고 있었다. 빗소리에 맞추어 최대한 조용히 일을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 옆집 불은 일정 시간이 되면 꺼질 것이다. 나의 몸(재규어)으로 근처까지 이동한 다음, 무웅의 몸으로 돌아갔다.

 

 한옥집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오늘따라 수행원들의 일이 제시간에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옆집의 불도 아직 켜져 있다. 분명 옆집의 전등까지 꺼질 시간을 계산해서 왔건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내일로 시간을 변경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박홍석의 집에서 소리가 들렸다. 남자 둘이서 급하게 집밖을 뛰쳐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원래 세 명이었던 자들인데... 오늘은 두 명만이 그 집에서 나온다.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인지, 그들은 상의 자켓을 아무렇게나 손에 쥔 채 빗속을 뛰어갔다.

 

 비오는 거리 위로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다 어느순간 흩어졌다. 그리고 2층 벽돌집의 전깃불도 꺼진다. 우리가 있는 이 공간에는 이제 적막만이 가득했다.

 

 “어짜노? 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본데?”

 

 [이곳에 확실히 ‘The Seed’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관련된 어떤 것이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그냥 진행하는게 어떤가? 안에서 무슨 일 있는 것이야... 혹시 겁나는가?]

 

 “아니 겁은 무신. 하긴 우리가 이 곳에서 지금 제일 말도 안 되는 존잰데.”

 

 우리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담을 타고 넘어갔다. 비 덕분에 사내가 만들어 내는 불필요한 소리를 지울수 있었다.

 

 집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편이라고 느꼈던 돌담 뒤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중앙의 연못을 지나, 빠르게 한옥 집로 향했다. 생각보다 여닫이문은 쉽게 열렸다.

 

 그의 작업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수상한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편하게 본다면, 잘사는 조선인의 집이구나 하고 여길만한 가정집의 분위기였다.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두 개의 방이 양 옆에 위치했다.

 

 1. 서양에서 온 가정식 가구가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는 안방

 2. 사무용 책상과 집기가 가득한 작은 방

 

 하지만 어딜 봐도 비밀스러운 물건들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여기라꼬 했는데... 마, 니도 분위기가 여기라고 확신 않했나? 명색이 신인데, 이 정도도 못 맞추면 쪽 팔린거 아이가?”

 

 [여기가 맞다. 이곳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내가 보기엔 장소를 숨겨놓은 것 같다. 박홍석, 일본식 이름 후지야마 다카모리... 다카모리라.]

 

 작업실로 보이는 작은방, 그 곳의 사무용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까 뛰쳐나간 남자들이 무언가 끄적이고, 고치고 몇 번의 수정을 반복한 것 처럼 보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한참을 서류 작업에 공을 들인 것 같다.

 

 책상의 왼쪽 벽에는 근세 초기 일본의 시장풍경을 담은 그림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을 담은 나무 액자는 벽면에 붙어 있었는데 액자의 유리가 그림을 보호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림 위에는 시간의 때가 묻어있는 목조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묻어 있을 뿐이지, 보관 상태는 훌륭해 보인다.

 

 그림 속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게 안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값을 치르기도 하며, 또한 천장에 전시된 상품들을 구경한다. 시장 풍경에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그림의 오른쪽 밑 하단에는 [미쓰이 포목점. 미쓰이 다카토시(三井高利)]라고, 옛 일본 한자어로 적혀 있었다.

 

 [판화는 미쓰이가(家]가 운영했던 상점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 미쓰이 다카토시라는 자는 누구지? 무웅... 혹시 아는 바가 있나?]

 

 “이야, 니 대단하네. 내가 이래 가끔씩 깜짝깜짝 놀랜다. 니 한자도 읽을 수 있었나?”

 

 [단어를 보면 어떠한 사고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것이 어떠한 뜻이겠거니 느껴지는 것이다. 나 정도의 시간을 살다보면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를 하게 되지. 조금은 대단하게 느껴지는가?]

 

 무웅은 어느새 내가 말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더 살펴 보았다. 내 말을 자연스레 무시하는 모습이 요새 잦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다시 우리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역시나 집중해서 바라보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대부분 수출입에 관련된 용어들이었다.

 

 누군가 서류에 적힌 일본어를 필요한 부분만 중국어로 번역해서 빈 공간에 적어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딱히 숨겨진 공간에 대한 단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

 

 무웅은 사무용 책상이 가진 긴 서랍을 발견했다. 사내가 흔들어 보지만, 그것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보게 무웅.]

 

 내 말도 끝나기 전에 별안간 이 별종이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을 잡아당겨 버렸다. 아니 부셔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싶다.

 

 박홍석이 이 곳에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 오늘, 분명 조용히 살펴만 보자고 한 것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한마디 쏘아 붙이려다가 이 정도는 가뿐하다는 그의 얼굴에 무엇을 말할까 싶었다.

 

 ‘내가 인간의 몸이었다면 재수 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웅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Dios mío.(아이고 맙소사.)”

 

 무웅을 기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미제 단총 한 자루와 서랍 안을 굴러다니는 총알들이었다.

 

 “무신! 이 비싼 게, 이래 개인 작업실에 굴러다니노. 이거 라벨이 콜트사꺼 M1911이네. 구하기도 힘든 건데. 이 양반, 여기 확실히 그냥 작업실은 아이네. 이놈아는 내가 챙기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 정도면 어데 쓸데가 있지 않겠나?”

 

 [이봐 무웅. 우리가 그깟 화약무기가 필요할 것 같나? 상황을 직시하게. 서랍 부신거야 좀 도둑이 그랬다고 치부 할 수 있지만, 괜히 오래 머물지는 마세. 빨리 그 비밀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이놈아, 고작 이거 가졌다고 잔소리가? 알았따. 주변을 다시 살피보자.”

 

 그리즐리 곰 한 마리가 미제 단총을 자신의 품에 넣는 것 같이 보인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림 위에 위치한 목조 시계였다.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보존 된 시계에서 왠지 모를 수상함이 느껴졌다.

 

 [무웅,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후 시간이 조금 지나지 않았나? 그런데 저 목조시계 보게. 고장 난 것인가? 움직이질 않는 것 같다. 주변 가구들과 비교해, 먼지도 없고, 상태도 깨끗한 것 같은데... 어째서 태엽장치가 멈춰 있는 것인가? 관리 할때, 움직이지 않았다면 다시 작동을 시켜놓지 않았을까? 왜 작동을 시켜놓지 않은 것인가? 무웅, 저 시계를 가져오게. 태엽장치를 좀 보도록 하지.]

 

 무웅은 책상의 의자를 가져와 그림 위에 걸려 있는 목조시계를 가져왔다. 시계 뒤에는 이것을 걸기 위해 움푹 들어간 곳 말고는 아무런 장치가 되어있지 않았다. 들어간 부분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었고 얕게 편 황동으로 감싸여 있었다.

 

 또한 이것을 걸었던 곳에도 들어간 부분과 일치하는 길이의 직육면체로 된 금속 장치가 존재했다.

 

 정면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었다. 표면적 또한 크지 않았기에 마치 젓가락 하나가 벽에 걸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거 무슨 의미고?”

 

 [무슨 의미랄 게 있겠나. 시계가 폼으로 걸려 있었던가. 아님 무언가 조작하면 문이 열린다던가? 음... 혹시?]

 

 무웅이 짧은 시침바늘을 돌리자, 시계 뒤의 정사각형으로 움푹 들어간 곳도 바늘의 움직임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중 장치다.

 

 이번에는 긴 분침바늘을 돌렸다. 시침의 움직임과 함께 돌아가던 사각의 장치가 이번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침의 움직임에도 돌아가고, 분침의 움직임에도 따로 움직였다.

 

 무웅을 통해 시계를 원위치 시킨 후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시계 방향으로 조금 돌려본다. 돌리는 것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분명 뒤의 금속장치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이제 여기서 존재했다.

 

 시침을 계속 돌려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만 나고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았다. 긴 분침도 돌려 보지만, 어떠한 일도 생기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다시 목조시계 밑의 그림을 살펴본다. ‘미쓰이 다카토시(三井高利)’ 이름에 숫자 3이 들어가는 것이 우연인가?

 

 [무웅! 시간을 세시로 맞추어다오.]

 

 “세시? 재규어, 니 뭔가 알아낸 거가? 알아따. 니 말대로 한번 해볼게.”

 

 시침을 먼저 세시로 맞추자, 1차로 달깍 하는 소리가 났다.

 

 연이어 분침이 정각을 가리켰다. 곧 2차로 달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림을 품고 있는 나무 액자가 벽에서 멀어지면서 그 안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토라테로르코시여..]

 
작가의 말
 

 1. 한국의 산맥: 한반도에 분포하는 산맥들은 대체로 3가지의 방향성을 보인다. 즉, 한국 방향, 랴오뚱 방향, 중국 방향이 그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참조.)

 2. 평창동 일대 설명: 도시계획을 통해 서구풍의 문화주택과 일식 평면을 갖는 영단주택들이 지어진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참조.) 건축에 대한 묘사는 최예선씨 블로그, 근대 문화 기행에서 참조하였습니다.(월단 박종화 고택)

 3. 콜트사 M1911: 미국 콜트사에서 개발한 대형 자동권총.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이루다 20-09-25 13:36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작품소개 (03: 43, 2020, 09, 24) 2020 / 9 / 24 519 0 -
30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1) 2020 / 9 / 29 379 0 8733   
29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1) 2020 / 9 / 29 318 0 8338   
28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93 0 7939   
27 [CHAPTER 2] 그림자 섬 (11: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85 0 7104   
26 [CHAPTER 2] 그림자 섬 (10) 2020 / 9 / 29 293 0 8943   
25 [CHAPTER 2] 그림자 섬 (9) (1) 2020 / 9 / 28 313 0 7805   
24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2020 / 9 / 28 297 0 8275   
23 [CHAPTER 2] 그림자 섬 (8) (1) 2020 / 9 / 28 313 0 7303   
22 [CHAPTER 2] 그림자 섬 (7) 2020 / 9 / 28 279 0 6869   
21 [CHAPTER 2] 그림자 섬 (6) 2020 / 9 / 28 283 0 6714   
20 [CHAPTER 2] 그림자 섬 (5) 2020 / 9 / 27 300 0 6849   
19 [CHAPTER 2] 그림자 섬 (4) 2020 / 9 / 27 286 0 7408   
18 [CHAPTER 2] 그림자 섬 (3) 2020 / 9 / 27 280 0 6817   
17 [CHAPTER 2] 그림자 섬 (2) 2020 / 9 / 27 296 0 7092   
16 [CHAPTER 2] 그림자 섬 (1) 2020 / 9 / 27 285 0 6903   
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79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96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90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2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9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6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8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5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6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90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30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4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9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8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3 0 748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