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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7)
작성일 : 20-09-25 13:32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9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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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져 내린다.

 그것은 하루 종일 어둠 속 뿌리를 내리다

 아스라이 사라진다.

 

 #13

 어젯밤 종로 3정목 태원약국 골목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은 아침 일찍부터 회의실로 모였다.

 

 사건의 담당 형사는 다이스케 겐조(大輔源城). 이제 조선에 온지 3년이 되는 고등계 형사주임이었다.

 

 회의실 앞의 중앙에는 수사를 위해 설치된 커다란 칠판이 있다. 행정실 코무로(古室) 부장에게 계속되는 간청 끝에 얻어 낸 독일제 양면 칠판이다. 칠판을 고정하는 철제 봉 끝에 달린 움직일 수 있게 만든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에 대한 편리함이 느껴졌다.

 

 회의실에는 의자들이 중앙의 발표자를 집중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회의실은 곧 참석자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다이스케 형사는 이번 사건의 간단한 브리핑과 현재까지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현황에 대해, 그리고 이전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회의실 앞에 섰다.

 

 회의에 앞서 사내는 칠판의 구석에 적혀있던 필요없는 문장들을 지웠다.

 

 '흠, 독일제라서 그런지 과연 다르군.'

 

 칠판용 지우개에 먼지도 잘 묻어나지 않고 깨끗하게 잘 지워진다. 마치 예전에 고생했던 과거까지 지워지는 것 같아,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행정실 코무로가 잠시 들어와 부탁한 서류를 다이스케에게 전해준다. 사내는 회의를 방해한 것 같아, 연신 미안하다고 허리를 숙이면서 뒤로 걸어 나갔다. 그 찰나, 그는 회의실 칠판의 철제 봉 끝 쪽에 붙어있는 뭔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회의용 칠판을 샀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발송지가 적혀 있는 종이였다. 종이에는 상해(上海: 중국의 항구도시)라고 적혀있다.

 

 '헉!'

 

 코무로는 누가 볼까 두려워 빠르게 행동을 취한다. 사내는 능청스럽게 칠판 쪽으로 걸어가 발송지 종이를 뜯어낸 후,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이제 다이스케의 사건 브리핑이 시작 되었다. 그는 칠판에다 피해자의 이름을 한자로 이기철(李基喆)이라 적었다. 나이는 48세, 거주지는 용산, 현재 철도국에서 일하는 조선인이었다.

 

 형사 한 명이 손을 들어 의문점을 제시했다.

 

 “조선인이다가 철도국 근무. 그렇다면 이전의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모방범죄일 가능성은요?”

 

 “아, 죽은 이기철에게서 이전 사건과 똑같은 용의자의 흔적이 나왔습니다. 물론 사건의 시간대나 현장의 흔적, 그리고 살해 방식은 흉내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허나, 피해자의 신체 보신분 계신가요?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그 힘의 깊이는 일반 사람은 낼수가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러니 모방범이 있기는 힘들겠죠.”

 

 다이스케는 계속 브리핑을 이었다.

 

 이번 피해자는 다행히 최초 목격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재빨리 이송되었다. 다만 그의 회복 가능성은 아직 모르는 상태라고 전했다.

 

 "목격자 김 모씨는 그 시각, 태원약국 주변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웬 늦은 밤중에,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려서 그 골목으로 가보았더니, 피해자 이기철이 가슴팍에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과다출혈로 정신이 없는 이씨를 업고 인근 병원에 데려가 준 것도 목격자 김 모씨였다.

 

 "목격자가 말하길, 자신이 들어온 골목의 반대쪽 끝은 담으로 막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범행 후, 도망갈만한 곳은 담을 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시도해 본 결과 사람이 넘기에는 담이 무척 높아서, 그쪽으로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사건의 용의자는 카마이타치(鎌鼬: 일본의 낫을 든 족제비 요괴)라도 되는 건가요? 매번 깊게 할퀸 상처가 피해자들에게 남겨져 있다니.”

 

 하지만, 네 번째 피해자의 상처 부분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이 발견 되었다. 그것은 피해자의 자상부분이 깔끔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희는 그것을 통해 용의자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발생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전 살인사건들에서는 용의자가 피해자를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면, 이번에는 피해자를 죽이는 것에 어떠한 감정적인 흔들림이 있었다는 겁니다."

 

 현재 수사는 명치정, 황금정, 본정 그리고 종로 등을 샅샅이 뒤져 탐문 수색을 하고 있는 중이라 말했다.

 

 최근에 자신이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현상금 때문에 용의자를 목격했다고 하는 자들이 여럿 나왔다. 하지만 전부 사건과 동 떨어진 이야기인지라 제대로 된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미쓰코시사와 ㈜동아양행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전 피해자들 모두 미쓰코시사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이번 피해자도 예전에 미쓰코시사에서 근무를 했다면서요?”

 

 “아, 안 그래도 그 점은 계속 유의해서 수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 모두 무역 업무를 도맡아 했다는 점인데, 그 일과 관련해서 원한을 가질만한 용의자가 있는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다이스케의 반대쪽에 앉아 있던 오가와(小川) 경무보가 일어나 앞선 세 명의 피해자의 이름도 칠판의 한편에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목격자들의 진술로 그린 용의자의 몽타주들을 그들의 이름 밑에 붙였다.

 

 "자 다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난번 수표교 사건의 목격자, 그리고 이번 태원약국 골목 사건의 목격자가 진술한 용의자의 몽타주가 비슷합니다."

 

 몽타주는 거대한 곰을 연상케 하였다. 두 명의 목격자들이 두려움에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다는 것을 고려 할 때, 용의자는 힘이 있어 보이는 큰 덩치의 소유자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갑자기 테츠야 나카모토(徹也中本)서장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손에는 용의자의 몽타주로 예상되는 종이를 구겨서 쥐고 있었다.

 

 그는 이내 중앙 칠판쪽으로 다가온다. 참석자들의 집중을 요구하며, 앞에 앉아 있는 형사들에게 이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서장은 결국 범인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 한다며 호소하는 것으로 말을 마무리한다.

 

 다이스케는 테츠야 서장의 뜬금없는 등장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런 사내의 얼굴을 읽었는지, 오가와 경무보는 서둘러 서장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갔다.

 

 "아이고 서장 나으리, 나중에 보고 드리러 가겠습니다."

 

 오가와의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도 서장은 결국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내뱉기로 한다.

 

 “이 자식들아, 빨리 나가서 뭐라도 해! 지금 신문에서 나를 무능한 원숭이로 몰고 있단 말이야!!”

 

 다이스케는 서장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양쪽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때 회의실 문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신참 형사 나카지마(中島)가 손을 들고 발언건을 얻었다.

 

 “용의자로 말씀하신 분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 들은 것 같습니다.”

 

 신참 형사는 어제 왔던 조선인들의 증언을 말했다.

 

 “어제도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네 명의 조선인들이 경찰서로 왔습니다. 그들은 사건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용의자일 것 같은 사람을 신고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목격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했던 말들을 적어놨던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자들은 경성에서 도박업을 한다는 자들입니다. 얼마 전에 자신의 고객한테 받을 것이 있어서 수표교로 간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머물고 있는 사내와 다짜고짜 시비가 붙었는데, 같이 갔던 네 명 모두 한 손에 나가떨어졌다고 하네요. 중요한 것은, 그 자의 힘이 사람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기서 머무르는 수상한 자라...”

 

 “네. 요즘 수표교 거지들이 숙박업을 한다고 판잣집과 움막들을 더 지어놓은 모양입니다. 그 도박업을 하는 자들이 말하길 자신들은 경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왔는데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닙니다. 특이한 점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그 지역에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다고 합니다. 마치 곰이나 고릴라같은 맹수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쳐다보기가 무서워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고...”

 

 다이스케 형사는 칠판에 붙여놓은 용의자 그림 밑에 물음표를 친다. 피해자들에게선 미쓰코시에서 일하거나, 일했다는 공통점 뿐. 그 이외에 그들에게 겹쳐지는 교집합은 없었다.

 

 이번에는 칠판의 반대편으로 넘어와 증거와 목격자라는 글자를 상단에다가 적는다.

 

 증거 밑에는 X라고 적었고 목격자 밑에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건에서 목격된 정체불명의 짐승 같은 사내라고 적었다. 그리고 화살표를 그어서 수표교의 사내라고 적고 물음표를 그린다.

 

 “안 그래도 수표교 주변에 형성된 무허가 판잣집과 움막촌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주변 분위기를 해친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명분 삼아 제가 가보겠습니다. 한번 어떤 자인지 파악은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나카지마 형사가 자신이 다녀오고 싶다고 선뜻 나선다. 형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패기가 넘칠 때다.

 

 하지만 혼자 보내기에는 껄끄러운 곳이다. 그 사내도 문제지만 수표교 거지들이 더 큰 문제였다.

 

 저번에도 민원이 들어와 순사들을 보냈다가, 한동안 거지들 동냥에 경찰들이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제가 한번 같이 가 봐도 될까요? 상당히 흥미가 생기는 사내인지라.”

 

 “오! 미야모토 요시다(宮本吉田).”

 

 돌출형 입을 가진 미야모토 형사는 혀를 날름거렸다.

 

 “요호호호. 형사 미야모토, 그자가 용의자라는 정황만 보여준다면 바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표교 건은 미야모토와 나카지마 형사에게 맡기기로 한다.

 

 다이스케는 형사들에게 피해자들의 원한관계보다는 과거의 행적들을 위주로 최선을 다해 조사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과거를 조사하다 보면 나올 공통의 무언가가 이번 연속살인 사건 용의자의 살해 이유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다들 사건의 주기가 빨라져서 수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피해자의 조사도 아직 덜 끝난 마당에 네 번째 피해자라니.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뭔가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고 확신합니다. 자 다들 최선을 다해서 수사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미야모토의 혀가 다시 한 번 날름거린다.

 

 회의실에서 나온 미야모토 고등계 형사는 곧바로 행정실로 향했다. 그는 오늘 회의실에서 나온 정보들을 정리해서 총독부의 경무국(警務局)에 전보를 보냈다.

 

 수취인은 경무국 외무과의 후지야마 다카모리(藤山隆盛)였다. 행정실의 코무로는 경무국에 있는 기관들을 손으로 세어보더니 의아한 표정이다.

 

 “이상하군요. 경무국에 외무부라는 부서가 있었던가요?”

 

 미야모토는 몸이 길고 말라 멀리서 보면 팔과 다리가 퇴화한 뱀같이 보였다. 그는 코무로의 귀에다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행정실 부장나리. 궁금한 것이 많으시면, 우리 나리 진급에 해롭습니다.”

 

 경찰서 복도를 걷는 젊은 형사의 모습은, 마치 음악의 템포를 나타내는 메트로놈(Metronome)같았다. 미야모토는 내딛는 걸음에 따라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심하게 기울였다.

 

 사내는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카지마 형사와 관용차량에 올라탔다.

 

 한 사람에게서 흥미와 기쁨, 그리고 다른 사람은 열정과 긴장감이 느껴진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교차하는 차안,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수표교로 서둘러 출발했다.

 

 #14

 그곳은 도시의 빈민촌이라기 보다 개미굴이었다.

 

 가난하거나 갈 곳 없는 이들은 도시의 변두리에 자신들의 빈민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표교 움막촌이라 불리는 이곳은 도시의 확장과 함께 어느새 무질서한 촌락을 형성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 살기 시작한 후, 주거문제로 내몰린 조선인들이 천막들을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폐용품들을 무질서하게 이어붙인 움막들, 그렇게 청계천에서 보행로로 이어진 언덕에는 삶과 생존의 의지들이 늘어져 있었다.

 

 번화가와의 접근성이 좋으면서 일제의 통제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은 어느새 작은 빈민촌을 하나의 해방 구역으로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움막촌의 김성춘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거지 왕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신과 어린 시절을 보낸 또래들과 이곳을 지금의 거주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 멍충아.”

 

 “성춘이 형, 또 땅달보가 나보고 멍충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억울함을 성춘에게 호소하는 왕발이다. 코 먹는 소리가 인상적이다. 그 옆에 땅달보가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아니 성춘이형 잘 들어봐요. 사과가 다섯 개에서 세 개를 먹었으면 두 개 남잖아요. 근데 얘가 세 개가 남는대요. 먹는 게 남는 거라면서.”

 

 김성춘은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자였다. 튀어나온 광대뼈 아래에 그림자가 깊게 자리했다. 사내의 감정선은 쉽게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긴장하면 입술 끝을 깨무는 버릇이 있었다.

 

 "너네는 그런걸로 그만 싸우고, 잠시 나가있어."

 

 성춘은 두 사람을 한심한 듯 쳐다 보았다. 지금 집중해야 될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금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앞에 있는 사내와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한다.

 

 “아니, 그러니까 형사 양반들, 저번에 저 녀석들이 먼저 무단으로 움막촌에 침입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시비를 걸었던 것이 아니라.”

 

 마포 한끗, 종로 무지개, 그리고 왕십리 아다리가 나카지마 형사 뒤에 서 있었다.

 

 “김성춘 이 사람아, 그 사내는 출신지도 불분명하지 않은가. 어찌 오래 봐온 우리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자 편만 들려고 그러나.”

 

 왕십리 아다리가 애써 서운한 표정을 감추고 소리친다.

 

 “이봐 아다리, 자네는 가만히 있어. 저번에도 우리 얘들 동냥 얻은 거 뺏어 갔다며? 내가 한 번 벼르고 있다는 것 모르지? 그리고 여기 움막촌에 출신지 분명한 조선인이 어디 한명이라도 있는지 알아?”

 

 그때 그들의 공간 멀리서 수상쩍은 소리가 들렸다. 김성춘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낮설은 웅성거림은 움막촌 공용 화장실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청계천으로 고개를 내밀고 서 있는 화장실은 주변 상점들에서 가져온 나무 조각들을 얼기설기 합쳐놓은 구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날림 글씨체로 장산 만물상이라 적힌 판자때기 하나가 공용 화장실로 달려오는 김성춘 일행 앞으로 떨어진다. 분명 그것은 화장실을 이루고 있던 나무판때기의 일부였다.

 

 화장실을 부수고 있던 것은 광통교 움막촌에 사는 거지들이었다. 김성춘은 그들이 낯이 익은터라 허망함이 더 컸다.

 

 미야모토 요시다 형사는 그들 뒤에 웃으면서 격려를 돋우어 주는 듯 보였다.

 

 “이 움막촌은 당신들이 철거하는 겁니다. 이제 이곳이 사라지면 당신들이 수표교 일대를 가져가게 되겠네요. 자, 다들 저를 믿고 여기를 빨리 정리해주세요.”

 

 미야모토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그 몽타주의 사내는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었다. 나카지마는 뒤에서 미야모토의 일처리 방식에 감탄했다.

 

 '수표교, 그 조선인들 개미굴에 간 김에, 그곳도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해봐.'

 

 형사 미야모토는 테츠야 서장에게 받은 특별지시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수표교 움막촌의 붕괴였다. 공권력의 직접적인 투입은 최대한 없어야 했다. 그 이유는 기본권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데모 때문이었다.

 

 일제의 조선 지배가 1930년도를 접어들게 되면서 몇몇 단체들의 기본권 운동이 줄을 잇고 있었다. 만약 수표교 움막촌을 종로 경찰서에서 억지로 철거에 나선다면 이들 단체에서 시끄럽게 굴 것이 뻔했다. 그래서 미야모토는 김성춘과 대립관계에 있는 다른 거지패를 이용해 이곳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잘만하면 신원미상인 그 사내를 엮어내어 용의자로 만드는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짐승의 힘을 지닌 용의자, 그리고 사람의 힘을 훌쩍 넘어선다는 이곳의 사내.

 

 벌써 내일 출간 될 신문의 기사 제목이 떠올라 설레는 욕망의 사나이 미야모토다.

 

 [종로 경찰서 미야모토 요시다(宮本吉田) 고등계 형사. 연쇄살인 사건 해결과 함께 최연소 고등계 주임으로 승진.]

 

 미야모토가 한창 기쁨에 온몸이 달아올라 있을 때였다. 사내는 화장실을 부수다 말고 가만히 서있는 거지들을 보았다. 한마디 쏘아주려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거지들이 일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몸을 떨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열혈형사 미야모토는 뱀의 눈을 뜨고 원인의 대상을 먼저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거의 다 쓰러져가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한 사내였다.

 

 그 인물은 무웅이었다. 정수리까지 시원하게 삭발된 머리가 햇살의 빛을 반사해 형사 미야모토의 눈을 쏘았다.

 

 “니네 뭐꼬?”

 

 제대로 큰일을 다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나왔음에 화가 나는 무웅이다. 그는 단번에 나카지마 형사의 뒤에 있는 자들을 알아차린다. 자신의 아침잠을 방해한 사내들이 이번에는 볼일을 방해하러 왔다니.

 

 “니네 또 왔나? 마, 이번에는 내 큰거 방해하러 왔나? 사춘기 얼라들도 아니고 보이는 것마다 망치러 다니노.”

 

 마포 한끗은 무웅에게서 그리즐리 곰을 떠올린다. 공포의 곰이라는 의미의 회색 곰이다. 한끗의 눈에 곰의 머리가 환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어느새 그 자리에는 곰같은 사내가 서 있었다.

 

 "으아아! 여기를 왜 다시 왔을까?"

 

 자칭 경성 도박업 종사자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나카지마 형사의 뒤에 숨어버렸다.

 

 “요호호호. 당신이 이곳에 머문다는 그자군요. 소문의 짐승 같은 사내라고 해도 믿겠는걸요.”

 

 이건 또 무슨 구렁이 담 넘어가다가 발 걸려 넘어지는 소린가? 무웅은 한 마디 쏘아붙이려고 미야모토에게 다가섰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형사 미야모토였다. 품에서 일본식 단검을 꺼내어 뱀이 먹이를 향해 순간 나아가듯, 무웅의 옆구리로 단검을 향했다. 검의 손잡이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었다.

 

 “아고 아파라. 나라도 이런 거에 찔리면 정신 못 차리긴 하겠다.”

 

 무웅은 자신에게 향하는 단검의 날 부분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동작을 이어 미야모토를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청계천에 그를 던진다.

 

 "내가 마 큰 일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계천에서 냄새가 좀 심할거라."

 

 그 장면을 목격한 광통교 거지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나카지마 형사와 함께 있던 사내들도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양손을 부딪치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돌아서던 무웅은 갑자기 손에서 통증을 느낀다. 오른쪽 손바닥에는 칼로 베인 듯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사내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이제 그는 혼자 남은 나카지마 형사에게 걸어갔다.

 

 무웅의 눈에는 떨고 있는 젊은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일본인 형사는 겁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 당신 정체가 뭐요?”

 

 나카지마 형사는 서툰 조선말이지만 당차게 말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음을 확인시켜 주려 하는 듯하다. 무웅은 그런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쉽게 지나쳤다.

 

 “글쎄다. 마, 니눈에는 내가 뭐 같노?”

 

 지나친 무웅 뒤로 사내의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무웅은 그대로 김성춘에게 다가갔다.

 

 “이거 암만 생각해도,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미안하게 됐소. 안 그래도 조만간에 주거지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며칠만 기다려 주소.”

 

 성춘은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다. 아마 그에게서 자신들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왕발은 어느새 무웅에게 다가와 숨기고 있던 양과자를 떼어준다.

 

 “성춘이형. 왕발, 쟤가 그래도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보잖아. 그래도 저 형씨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봐.”

 

 땅달보도 금세 성춘의 뒤에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왕발에게 뺏은 양과자를 한 입 베어먹었다.

 

 “그건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을 우리가 쫓아낼 수는 없지. 땅달보, 가서 잡초 좀 데리고 와. 광통교 애들한테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

 

 김성춘의 말에 땅달보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마니와 나무 판자때기가 공용 화장실 주변에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이번기회에 화장실은 좀 튼튼하게 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성춘은 밑으로 떨어진 사내의 상황이 궁금했다. 하지만 사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야모토가 금세 사라졌나 보다. 성춘의 시선이 그 주변을 맴돌 때, 이미 그는 청계천을 따라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주변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 하지만 미야모토는 짜증은 커녕, 미친 듯이 웃으며 손에 쥔 단검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은 이제 한 인물의 모습이 가득했다, 그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미야모토는 그렇게 그 사내를 떠올리며 청계천을 사라졌다.

 
작가의 말
 

 1. 경무국: 1905년(광무 9)에 개편된 내부에 속한 5국 중의 하나. 조선 후기 내무 행정을 담당한 내부에 딸린 5국 가운데 하나로 경찰 사무를 총괄한 기관이다.

 2.메트로놈(Metronome): 소리를 규칙적으로 발생시켜서 1분 동안 몇 번 박자가 반복되는지를 셀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음악의 빠르기를 정해 주는 장치.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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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품소개 (03: 43, 2020, 09, 24) 2020 / 9 / 24 519 0 -
30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1) 2020 / 9 / 29 379 0 8733   
29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1) 2020 / 9 / 29 318 0 8338   
28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94 0 7939   
27 [CHAPTER 2] 그림자 섬 (11: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87 0 7104   
26 [CHAPTER 2] 그림자 섬 (10) 2020 / 9 / 29 295 0 8943   
25 [CHAPTER 2] 그림자 섬 (9) (1) 2020 / 9 / 28 315 0 7805   
24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2020 / 9 / 28 298 0 8275   
23 [CHAPTER 2] 그림자 섬 (8) (1) 2020 / 9 / 28 313 0 7303   
22 [CHAPTER 2] 그림자 섬 (7) 2020 / 9 / 28 280 0 6869   
21 [CHAPTER 2] 그림자 섬 (6) 2020 / 9 / 28 283 0 6714   
20 [CHAPTER 2] 그림자 섬 (5) 2020 / 9 / 27 300 0 6849   
19 [CHAPTER 2] 그림자 섬 (4) 2020 / 9 / 27 288 0 7408   
18 [CHAPTER 2] 그림자 섬 (3) 2020 / 9 / 27 281 0 6817   
17 [CHAPTER 2] 그림자 섬 (2) 2020 / 9 / 27 298 0 7092   
16 [CHAPTER 2] 그림자 섬 (1) 2020 / 9 / 27 286 0 6903   
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81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97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90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2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9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7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90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6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7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92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32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4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9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20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3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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