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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6)
작성일 : 20-09-25 13:30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8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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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1

 연이는 서둘러 수표교를 벗어났다.

 

 동양 연합 빌딩의 위치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시 본정 길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에 서둘러 나온 덕분에 그리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성당 서점 맞은편에 위치한 동양 연합 빌딩은 생각보다 외관이 오래되어 보였다.

 

 고층 구조물이 아직 많이 들어서지 않은 조선 땅에서 3층 높이의 빌딩. 1910년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분명하건만 외형은 그것보다 몇 십 년은 더 되어 보이는 낡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진짜 맞나?"

 

 거기다 건축물은 주변과 썩 조화롭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탓에 소년은 불안한 맘이 들었다. 그는 서둘러 다른 몇 곳을 더 둘러본 다음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낡은 빌딩에... 고서점이라. 단어의 조합은 맞지만, 영 건물이 오래되어 보여서 불안한 걸... 언제 지어진 건물일까?"

 

 연이는 일단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아무렇게나 구석 벽에 쌓여진 공사 자재들은, 소년의 작은 움직임에도 계속해서 먼지를 만들어냈다.

 

 2층 어느 벽에도 [궁창(穹蒼)] 고서점이라는 상호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곳임을 짐작하게 하는 문 옆으로 진하고 단정하게 글귀가 적혀 있었다.

 

 務實力行(무실역행)

 

 “젤 앞에 한자는 무, 그담에... 그담에... 역행... 쩝, 그래도... 이정도면 많이 아는거야. 장하네, 이연.”

 

 한자를 읽어 냈다는 것에 소년은 스스로 기특한지 흐뭇해한다. 곧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아무도 보이지 않자 목을 가다듬는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년의 입에서 변성기를 갓 지난 굵은 목소리가 차분하게 나왔다.

 

 “흠흠... 이리 오너라.”

 

 괜히 어색한 기분이다. 소년은 다시 제 목소리를 내기로 한다.

 

 “누구 안에 계세요? 마리누나 소개를 통해서 온 이연이라고 해요.”

 

 자신이 왔음을 알리며 상황을 기다려본다. 그동안 연이는 아직도 두 번째 한자 (實)이 익숙하지 않은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 나라... 생각 나라... 생각 나라...'

 

 끝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기다리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아직도 자신의 인사에 응답이 없자 연이는 문을 열어본다. 밑에 열쇠 구멍을 둔 사무실 문 손잡이는 긴 문고리 형태로 되어 있었다. 소년은 손으로 잡아서 밑으로 살짝 돌린다. 잠겨 있지 않은 듯,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분명 왔다는 입장을 밝혔어. 문이 열려 있으니 이건 알아서 들어오라는 뜻이잖아!'

 

 주저말고 직접 들어오라는 말로 생각한 소년은 살짝 열린 문의 틈으로 안을 먼저 살펴본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엄숙한 분위기가 고서점 안에 가득했다.

 

 저 멀리 많은 수의 책장이 보였다. 책장 앞 공간에는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게 방의 양쪽으로 개인 책상들이 놓여있었다.

 

 고서점 가운데는 원형 테이블이, 그리고 인조가죽 소파가 테이블과 어울려 있었다. 구석에 여분의 나무 의자들은 최대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게 정리된 듯 보였다.

 

 책장에는 이미 책들로 가득 찼고, 책장 주변 바닥엔 서류 더미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었다. 아마 책장에 더는 정리할 공간이 없어서 그런가 싶다.

 

 어떠한 이도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좀 더 들어가보기로 했다. 소년은 구석에 정리된 나무의자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 들고 와 앉아서 기다리려 했다. 순간, 책장 뒤에서 또랑또랑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셔요?”

 

 복숭아다. 소년이 소녀를 처음 본 느낌은 그러했다. 볼에 붉그스름한 빛이 발그레 올랐다. 키는 연이보다 조금 더 작았는데 양쪽 볼 살이 살짝 올라있어 복숭아 같이 느껴졌다.

 

 한 소녀가 책장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 고서점 안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에 궁금증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눈을 마주친 소년과 소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눈만 바라보며 눈꺼풀만 감았다 떴다.

 

 어린 여인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연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재빨리 책장 옆에 위치한 작은 간이 책상에서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아...! 아...? 근데 누구셔요?”

 

 이제 소녀의 눈에 연이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낯선 이에 대한 불안감이 이제야 생긴 듯 하다. 그녀의 눈에 연이는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였지만, 그래도 이 근처에서 처음 보는 사내였다. 또한 고서점이 아무나 들락날락 할 수는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외부 사람의 출입이 그렇게 잦은 편도 아니었다. 소녀는 불안감에 안경을 고쳐쓴다.

 

 "저... 아까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아무도 말씀이 없으셔서 들어왔어요. 저 마리 누나 소개로 이곳에 왔어요. 오해 푸세요."

 

 그녀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연이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다시 말했다.

 

 "아!"

 

 소녀의 불안함이 가득하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벌써 다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이내 서류더미를 두 손으로 낑낑거리면서 들고 온다. 그리고 원형 테이블에 '탁'하고 손을 한 번에 털어버린다. 그 후 소녀는 허리 스트레칭을 한 다음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헤헤, 제가 눈이 좀 안 좋아서요.”

 

 연이에 대해 이유 없는 적의를 표시한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연분홍 꽃이 소녀의 볼에 가득 피었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데는 오히려 꺼리낌이 없는 그녀였다.

 

 소녀는 뒷머리를 깔끔하게 땋아서, 끝이 세모진 노란색 댕기를 달았다. 댕기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도 고운 선을 그리며 좌우로 흔들렸다.

 

 소녀는 이내 처음 보는 소년의 모든 것이 궁금한지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마리 누나도 그렇고, 여기 여자들은 왜 이렇게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거야?'

 

 소년은 소녀와 마주쳤던 눈을 자연스럽게 돌린다. 조금 더 바라보다간 자신의 볼에도 필지 모르는 붉은 꽃 때문에 그랬다.

 

 “안... 안녕하세요? 이연이라고 해요. 방금 말했듯이 마리누나 소개를 받고, 오늘부터 일하기로 했어요.”

 

 연이는 저번에 마리에게 받은 명함을 보여준다. 소녀는 코를 한번 찡끗하더니 안경을 고쳐쓴다. 명함에는 고서점 주소와 마리가 따로 적어 놓은 위치 설명이 있었다.

 

 “어머, 이거 마리 언니 글씨체 맞네요.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말해 두는데... 언니 앞에서는 이름에 성 붙여서 부르지 마셔요. 별로 안 좋아 하실 터이니.”

 

 소년은 자신이 이름을 부르려 할 때 급하게 막아서던 모습이 떠올랐다.

 

 ‘김.마.리. 김마리. 아! 김말이?’ 생각도 안하고 있던 연이는 그제야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이 참. 내 정신 좀 봐. 이름을 얘기 해 준다는 것이. 저는 아랑이라고 해요. 성은 아, 이름은 랑, 그냥 랑이라고 부르면 되요. 나이는 이제 17살이고 여기서 일한지는 이제 1년 정도 되었답니다.”

 

 [아랑(阿朗) 등장. 17세. 명랑함. 배움에 관심이 많은 소녀.]

 

 아랑은 금방 선생님이랑 마리 언니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따른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앉아 있는 연이를 향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세상에 아로 시작하는 성은 처음 봐요. 그럼 아씨? 그리고 저보다 나이가 많네요. 그렇다면 누나?!”

 

 연이의 갑작스러운 누나 소리에 아랑은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겨우 진정을 한 아랑의 볼이 다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고서점에 마리의 등장이 이어졌다. 연이는 사무실을 들어오는 반가운 얼굴에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잘 지내셨어요? 누나, 저 늦지 않게 길 잘 찾아왔어요. 히히”

 

 아랑은 큰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마리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친밀감의 표시는 남달랐다. 손을 앞뒤로 흔들면서 자기보다 큰 마리를 올려다보며 재잘거리는 모습에서 종달새를 연상시켰다.

 

 “마리 언니, 언니, 언니! 내가 언니 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물어 보았는데요. 얘가 어린 것이 벌써부터 능글능글 하네요.”

 

 아랑은 다시 코를 찡긋거리고 안경을 고쳐 쓴다. 만약 그녀에게 시간만 주어 진다면, 오늘 일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할 수 있을것 같았다.

 

 “어머! 우리 아랑이, 오늘도 너무 가깝게 붙었네. 아랑아 일단 조금만 떨어져 보렴. 하지만 우리 아랑이 너무 귀여워서 언니가 예뻐 할 수밖에 없지. 잠깐 언니 옷 정리부터 좀 하구.”

 

 양장코트를 벗어 옷장에 걸어놓고 머리 왼쪽으로 살짝 걸친 실크원단으로 제작된 둥근 모자를 벗었다. 마리의 모자를 받아 준 아랑을 향해 살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출근 여부를 묻는다.

 

 “어머, 그래. 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어?”

 

 자신을 향해 생긋 웃는 그 모습에 연이의 입 꼬리가 한껏 더 올라갔다.

 

 “오늘은 첫날이라 고서점의 전반적인 설명과 연이 네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우리가 알려줄 거야. 선생님이 금방 오실 테니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 같아. 연이가 보통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지? 어느 학교 출신이야?”

 

 “신흥공립보통학교요. 저희 성당이랑 가까워서 거기로 다녔어요. 사실 안 가려고 했는데, 저희 신부님이 꼭 보통학교는 나와야 한다고 하셔서.”

 

 “그렇구나. 그럼 글은 읽고 쓰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치? 우리가 하는 일이 그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많단다. 모르면 다 알려 줄 터이니 너무 걱정말구. 오늘은 멀리 출장 갔던 세평이랑 호경이 오빠도 돌아오는 날이니까, 우리 식구들 다 볼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아랑에게 연이 마실 것을 부탁하면서 일의 진행사항에 대해 물었다.

 

 “랑아. 저번에 ‘조선어 학회’에서 요청한 자료는 어떻게 되었어?”

 

 “네 언니. 선생님이 구해 오셨던 ‘국문연구회’ 자료를 계속 정리하고 있고요. 주시경 선생님이 편찬하셨던 ‘국어문법책’도 필사본이 곧 들어 올 것 같아요.”

 

 아랑은 자신이 테이블에 낑낑거리면서 옮겨놓은 서류 뭉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마리 언니. 근데 오늘 선생님 종로 경찰서에 들렸다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요새 분위기도 안 좋은데, 왜 그 무서운 곳을 들렸다 오신대요?”

 

 “음 글쎄. 선생님께서 오시면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그나저나 아랑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들이 전부 ‘국문연구회’ 자료들이야?”

 

 “응 언니. 저것 말고도 저 만한 뭉텅이가 몇 개 더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도 대단하셔요. 저렇게나 자료를 구해오시다니.”

 

 아랑은 책장들 뒤쪽을 가리킨다. 그녀는 이쯤은 별것 아니라는 듯 자신감을 표출했다.

 

 마리는 연이와 함께 먼저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사무실 정문 맞은 편에 위치해 있는 화장실과 탕비실까지 본 후, 두 사람은 다시 중앙의 원형 테이블로 돌아왔다

 

 #12

 이제 한 사내가 고서점 궁창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서점 궁창을 이끌고 있는 중년의 사내, 노이만 선생 등장이다. 노선생, 혹은 독산(獨山)의 별명을 가진 그는 고서점이 외부세력에 의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만의 오래 된 빛바랜 셔츠와 낡은 청바지가 눈에 띄었다. 사내는 오른손에 서류 가방을 아무렇게나 쥐고, 호탕하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으하하하. 저응말 대이단한 감각들이라. 이누쿠소 구라에라(犬糞食衛: 개똥이나 쳐 먹어라.)라니! 내래 정말 감탄을 햇어. 야야 마리야, 이것 좀 보라. 창시개명한다고 일본 애미나이들이 그렇게 들쑤시고 다녀도. 거봐라, 우리 조선인들이 악이 있지 안갓네.”

 

 “선생님 나오셨어요? 무슨 좋은 일 있으셔요?”

 

 아랑은 노이만에게 다가간다. 친분이 있다면 아랑은 종달새가 되었다. 마리에게 한 것처럼 가깝게 다가가 반가움의 표시를 전하는 소녀였다.

 

 “우리 아랑이 아니네. 오늘도 일찍 나왓네? 내래 우리 아랑이 이러니 예뻐하지 안갓어.”

 

 노이만은 갈색 중절모자를 벗어서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는다. 순간 노이만의 머리가 반사시킨 조명 탓에 사무실 안의 해상도가 높아졌다. 사내는 그리고 종달새 같은 아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일이라 했네? 내래 물론 좋은 일이 있엇지.”

 

 연이 또한 이만의 앞에 섰다.

 

 “그대가 고연이네? 마태오 신부님이 칭찬을 어찌나 많이 하시던지. 우리 마리가 또 좋은 인연이 될 사람을 데리고 왔구나야. 우리 마리는 그래, 사람 보는 눈이 있지 암만. 내래 평양에서 온 노이만이야. 앞으로 잘 부탁함네.”

 

 연이는 두 손으로 노이만의 손을 잡고 최대한 예의를 표했다.

 

 “네, 노이만 선생님. 다른 분들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는 것 같으니까, 저도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이만과 이연의 간단한 첫 인사가 끝나고, 모두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복장을 편하게 한 마리가 연이에게 다가와 긴장을 풀어준다. 그 뒤에 아랑 역시 준비한 녹차를 중앙의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연이는 최대한 노인만에게 가깝게 앉아서 그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우리 조선은 그전에 고려, 그 일찍이 고조선까지, 민족성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 당시부터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나라의 형태를 만들어온 국가지.”

 

 노이만이 입을 열었다. 그는 역사란 단어를 시작으로 고서점의 설립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연이, 그대가 지금까지 자라온 시간, 그것은 연이 개인의 역사야. 그리고 한반도에 사는 모든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의 사실들이 이 나라의 역사이디. 이 역사를 후대에 똑바로 전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가 없지 안갓네?”

 

 사뭇 진중해 보이는 노이만의 얼굴, 그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이었다.

 

 “일본 에미나이들은 평생 식민지 지배를 이어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내래 확신함네, 결국에는 분명 그 끝이 올 것이라 보고 있어. 하지만 그 후 몇 세대가 지났을 때 말이야. 만약 우리 입으로 역사를 남겨놓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리 자손들은 그 녀석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역사적 사실로 알게 될 거란 말이지.”

 

 “네, 선생님.”

 

 “‘식민지배는 정당했다.’ ‘무지한 조선인들을 자기네들의 선진 지식으로 개화시켜서 발전시켰다.’ 이런 말을 믿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래. 우리 궁창 고서점은 이 역사적 상호작용을 윤활하게 돌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잇디.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단체가 필요한 자료를 구해서 준다거나, 정보를 정리해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보면 됨네.”

 

 연이는 노이만 선생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힘은 느낄 수 있었다.

 

 “네, 깊이 새기겠습니다. 아 근데, 선생님 궁창(穹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아 궁창(穹蒼)? 이거이 성경에서 나오는 말이야. 고대 히브리어로 광활히 펼쳐짐을 의미하는 말이디. 내래 처음 우리 고서점 이름을 정할 때, 우리 고서점의 활동으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이 조선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엇디.”

 

 이만은 잠시 마리와 아랑에게 고개를 돌린다.

 

 “오늘 세평이랑 호경이 둘 다 돌아오는 날이라고 했네? 호경이는 연해주 그리고 세평이는 중국 광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오는 날이디? 아마 호경이가 좀 더 고생을 했을 것이야. 소비에트 중앙 인민 위원회에서 한인사회를 중앙아시아 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려고 무력을 동원하고 있지 안갓네.”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고려 사범대에서 전달 받은 기록들은, 나중에 다른 나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의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정보로 쓰일 것이야.”

 

 “네, 선생님. 호경 오빠는 오늘 정오경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고요. 세평이는 ‘매번 그랬듯’ 연락을 잘 안하는 아이지만 약속 날짜에는 도착할거라고 믿어요.”

 

 세평의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는 마리였다. 그리고 곧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 몇 장을 노선생에게 내밀었다.

 

 “그나저나 선생님, 요즘 자주 종로 경찰서에 다녀오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예요. 혹시 저희 활동으로 선생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염려 되요.”

 

 “너무 걱정하지 말라. 내래 항상 하는 일 아니간. 미국에서 날라 오는 서류들 분석하고, 정리해서 보고하는 일 때문에 들리는 것이디.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미국이랑 일본 사이에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야.”

 

 노선생은 자신의 행보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그치들이 움직이는 것을 또 알아야, 우리도 다음 움직임에 대해서 안전한 길을 모색할 수 있지 안갓어. 명색이 조선 땅에 몇 없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 출신의 통 번역사인데, 미국 눈도 있고 별일이야 잇간네?”

 

 아랑은 마리와 노이만 선생의 말을 끊지 않으려다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선생님, 그래서 아까 좋은 일 있다고 하신 건 뭐여요?”

 

 “아. 지금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일중 하나가 다른 땅에 이주해 간 우리 동포들 이야기 아니갓어. 내래 예전에 말했던 것 기억나네? 멕시코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민자들, 그들에 대한 무성한 소문만 돌고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포기를 하고 있엇디.”

 

 “그랬는데요?

 

 “최근에, 그들의 조선에서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정보원을 소개 받지 안았갓어.”

 

 갑자기 연이는 가슴이 심하게 요동침을 느꼈다. 분명 노이만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소년은 고서점 문 쪽을 쳐다보았다. 슬픔과 큰 절망의 감정이 커다란 밀물이 되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이윽고, 정문이 갑작스러운 힘에 열어 젖혀졌다.

 

 사내는 경성제국대학의 이정재였다. 그는 급히 그리고 오랫동안 쉬지도 않고 뛰어온 듯 보였다. 정재가 입고 있는 정장 조끼와 와이셔츠가 땀에 범벅이다. 토해 나오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급히 노이만을 찾았다.

 

 "흐으윽... 선생님... 이만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짙은 절망감에 사내의 눈은 갈 곳을 잃었다. 정재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이내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는 터져 나오는 슬픔을 최대한 참으며 말했다.

 

 “흐으윽, 허억... 선생님... 허어억... 저희 아버지가... 저희 아버지가 살해 당하셨어요.”

 
작가의 말
 

 1. 조선어 학회: 1931년 12월 3일,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현재의 한글학회. 처음의 명칭은 <조선어연구회>였다.

 2. 국문연구회: 주시경이 국어를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한 학술단체. 주시경의 이력서에 의하여 ‘국문연구회 혹은 ‘국문연구학회로 알려져 왔다.

 3. 창시개명: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한 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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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9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6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8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5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7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91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30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4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9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8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3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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