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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4)
작성일 : 20-09-24 15:28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9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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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자, 우리는 극한상황이라는 말을 인생에 살면서 한번쯤 듣게 된다. 실존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죄악이나 투쟁, 혹은 생존의 끝에 서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말했다. 평소에는 무자각하지만, 살아 있는 한 불가피하게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

 

 그럼 여기 한 인물을 보도록 하자.

 

 남자의 이름은 이기철, 이미 중년을 지나 장년에 해당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실존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지만, 실존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이유가 존재한다. 가족, 친구, 명예, 그리고 돈.

 

 사내의 앞에는 지금 조선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이 서 있다. 모든 소문의 근원, 사내도 이미 들어봐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 짐승은 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일까?

 

 후회는 이미 늦었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느껴질 고통은 예상할 수 있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절망의 끝에 서있다. 자, 이제 사내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독백)

 짧다면 짧고, 다른 이가 보기엔 길다면 긴 인생. 내가 살아온 길을 이곳에서 되짚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오늘 내가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하게 된다.

 

 근육 세포 하나, 하나, 과도한 긴장 때문인지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 '소문의 짐승'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조선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에 대한 소문.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짐승, 아니 그가 입을 열었다. 사람의 말이다. 거대한 몸집에 유연한 움직임, 거기다가 인간의 언어까지... 나는 지금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것인가?

 

 생김새는 고양이과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삵이라는 짐승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 정도의 크기이다. 백두산 호랑이라면 저만큼 클까. 몸뚱이를 덮은 저 검은 반점들... 마치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저 짐승의 이빨과 발톱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한 발걸음에도 깊게 파이는 바닥이었다. 짐승의 눈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은, 필시 흰자와 검은자가 사람과 것과 닮아 있어 그럴 것이다.

 

 자, 이제 인정하자... 나는 지금 저 짐승의 다음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을. 그와 동시에 온 몸의 힘이 풀린다. 나는 포식자를 앞에 두고, 벽에 기대어 노려보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었다.]

 

 짐승의 웅얼거림은 어느새 명확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의 신의 사제였다. 필요하다. 그것이...그... 르렁.]

 

 중저음의 목소리에 둔탁한 짐승의 울림이 지금 골목에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나의 자존감은 썰물처럼 밀려갔다.

 

 아직 까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테오티우아칸은 무엇이며, 그는 무엇이 필요 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내 현세의 껍질을 통해 그의 이름을 들었다. 일본이름 후지야마 다카모리(富土山隆盛)라는 사람을 아는가?]

 

 후지야마? 분명 그의 '일본 이름'일터...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나올지 한 번 부정해기로 한다.

 

 “모... 모른다.”

 

 침을 한번 머금고 차분히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짐승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인다. 짐승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다. 그는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어차피 오늘... 너를 끝으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전에 잠깐의 여흥으로, 재밌는 사실을 알려주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재규어라는 짐승을 아는가?]

 

 재규어?

 

 [나는 재규어라고 불리는 짐승의 몸을 빌리고 있다. 예로부터 재규어는 영적 능력이 강한 짐승이었다. 나의 고향에서 신들과 인간의 사이에서 전령을 전해주는 영매 역할을 하였지.]

 

 포식자는 사냥감을 자신의 시선에서 놓치지 않는다.

 

 [더욱이나 재규어는 그 옛날, 내 문명의 멸망한 원인이 된 대홍수에서도 살아남은 영리한 짐승이었다. 그 재앙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던 나는, 대제사장이었던 아버지 토라테로르코의 도움으로 우리 부자를 따르던 재규어에게 혼을 옮겼다. 그리고 재규어가 된 나는 다음 문명이었던 아즈텍 역사의 뒤에서 조용히 살아 나갈 수 있었지.]

 

 그의 발걸음은 나를 향하다가 멈춘다. 추억은 영상이 되어 이 공간에 펼쳐졌다. 거기에는 문명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과 신의 사제, 그리고 재규어의 모습이 보였다. 영상의 인물들은 짐승이 기억하는 추억의 순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난 천문체계와 우주관 그리고 종교체계를 가르쳐 주었다. 거리고 나 ‘오메테오톨’이 최고신으로 존재함을 깨닫게 하였다.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였고, 나의 문명처럼 멸망하지 않게 간섭해왔다.]

 

 재규어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오메테오톨' 새로 알게 된 문명의 신의 이름, 그는 자신을 밝히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역시 이제 한발 물러서 나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시야는 좁았다. 문명의 밖에서 침입해 온 스페인 침략자들, 그자들을 통해 나의 모든 것은 무너져 내렸다.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로 불리는 곳이다.]

 

 그의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한다.

 

 [침략의 상황에서 ‘나 아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힘은 이미 아즈텍 문명을 일으키고 지키는데 쓰여졌음을... 내 몸뚱이의 울부짖음에도, 그들은 ‘총과 균, 그리고 쇠 덩어리’로 내 땅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 시선의 끝에는 별 하나가 지고 있었다. 짐승은 이제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격해진 감정 끝에, 말투는 오히려 차분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가 눈을 감았다.

 

 [The Seed...]

 

 다시 눈을 뜨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 침략의 시간 가운데, 나는 ‘The Seed’의 존재를 스페인 침략자로부터 듣게 되었다.]

 

 "??"

 

 [대홍수 그 후, ‘최초의 인류’들이 다시 문명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씨앗들!! 나의 세계를 다시 재창조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신의 입자!]

 

 재규어의 존재와 그가 말하는 신, 그리고 'The Seed'라는 태초의 씨앗. 내가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 부정 당하는 순간이다.

 

 [나는 침략자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나 또한 감정적으로 그에게 동조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저들은 서로 다른 문명들의 끝없는 상호 교환으로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루어낸 문명은, 그 긴 시간 속에서 혼자 도태되었지. 그 자만의 결과, 결국 다른 큰 물결에 부서졌다. 나는 결심했다. 씨앗을 이용해서 문명을 다시 이룩해내리라.]

 

 이야기는 몇 백 년이 지난 후로 넘어갔다.

 

 [그동안,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인간의 지식들을 흡수하게 된다. 그리고 태초의 씨앗에 대한 단서 찾기에 매진했지. 하지만 혼만 존재하는 짐승의 몸으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였다.]

 

 “그래서..?”

 

 [나의 숙주가 될 인간의 몸뚱이가 필요했다. 결국 난 여러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게 되지. 결국 난 ‘The Seed’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그것은 내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있었다.]

 

 “그곳이 어... 어디인가?”

 

 [멕시코에 촐룰라(Cholula)라는 도시가 있다. 스페인 놈들은 침략 당시 그들의 신을 기리기 위해서, 그 곳에 하루에 하나씩 일 년 동안 성당을 지었지. 대학살을 통해 불타버린 우리의 신전들 위에다 그 짓거리를 한 것이다. 그 성당의 도시 지하에, 태초의 씨앗을 옛 수메르 지역의 '무화과 잎사귀'를 싸서 보관해 놓았다.]

 

 침착했던 놈의 숨결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언약의 궤’ 안에 그것이 있었다. 그들 방식으로 씨앗에 영력을 감싸 놓았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만 아니면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말이야. 그러니 내가 백년을 넘게 찾아다녀도 실마리도 보이지 않았지.]

 

 재규어라는 낯선 짐승의 숨결은 경성의 달빛 아래 날선 증오의 빛을 더했다.

 

 [나는 그 주변을 맴돌며 다른 희망의 끈을 잡아 보려고 했다. 어느 날, 가쓰라 다로(桂太郞)라는 세계 지하시장 브로커가 ‘The Seed’의 발굴 건으로 멕시코 마피아들에게 접촉을 해왔다.]

 

 “세계... 세계 지하시장?”

 

 [그 마피아 패거리 중 한명의 몸을 빌리고 있었던 나는 놀라온 사실을 듣게 된다. 그가 씨앗이 숨겨져 있는 장소까지 정확하게 인지를 하고 있더군. 믿을 수 밖에 없었지. 다름 아닌 ‘세계 지하시장'이니까 말이야. 그곳은 모든 유형적 혹은 무형적 존재에 가치를 정하고, 그 가치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교환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 씨앗은 어떻게 되었나?"

 

 [사내는 말했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프로젝트를 위한 중요한 물건이니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그는 일이 끝난 후 관계된 모든 멕시코 마피아들을 죽였다. 가쓰라는 언약의 궤와 함께 사라졌다. 그는 온몸에 묻은 피도 닦지 않고 급하게 사라져 버렸지. 하지만 나는 안에 있는 것이 ‘The seed’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짐승은 갑자기 이야기에 급속도로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조금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이주 조선인들. 1905년 영국 상선인 ‘일포드(San Ilford)호’를 통해 조선인들이 멕시코로 이민을 왔다. 가스라 다로는 ‘The Seed’의 이동 흔적을 남기지 않기를 원했지. 그래서 그 태초의 씨앗들은 주류 수출입을 통해 조선으로 밀반입이 되었다. 대체 무슨 연유에서 였을까? 아직까지 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지. 어떻게든 조선이라는 나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이민자들의 2세들도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 그리고...!]

 

 짐승의 눈동자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가 빛을 많이 받은 것 처럼, 순간 빛을 많이 품은 탓에 눈이 아파온다. 그리고 질끈 눈을 감아 버린다. 이제 짐승은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몸에 난 털들은 마치 종이를 태우고 나면 생기는 재처럼 공기 중에 흩날렸다.

 

 골반의 움직임과 함께 척추를 똑바로 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굽어있던 무릎과 골반이 따라 바로 잡혔다.

 

 어느 덧 내 앞에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매끈하게 민 머리가 돋보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이명 증세가 거슬렸다.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고, 귀를 털면서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였다 .

 

 “무웅이라거 합니더.”

 

 [무웅(武熊) 등장. 20세. 멕시코 애니깽 2세대.]

 

 #08

 그는 이름 그대로 곰 같은 사내였다.

 

 사내의 이름은 무웅, 직역하자면 용맹한 곰이었다. 육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중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곰이다. 젊은 사내는 이름 그대로 순진한 얼굴에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키도 190은 훨씬 넘어 보인다. 그 커다란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은 아까 재규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세상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곰이라니...

 

 “아고... 이거 돌아올 때마다 머리 울리가 죽겠네. 아재 표정이 지금 놀란 표정이네에. 내가 아재 지금 기분이 어떨지 다 압니다. 아 잠만, 내도 갑자기 돌아와가꼬 정신이 없네. 보통 날 밝을 때나 풀리는데... 와 이라노. 오늘?”

 

 곰 같은 사내는 정신을 다시 잡는다. 그는 왼 손바닥으로 머리를 꾹 누른다. 그리고 오른쪽 검지로 나를 가리키더니, 어디 가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망할 자식. 어차피 나는 온몸에 긴장이 가득해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을.

 

 “아재요, 혹시 애니깽이라고 들어봤습니까? 멕시코 이민자들 칭하는 말인데.”

 

 “드... 들어본 적은 있소. 1900년 초반에, 해외에 돈을 벌려고 나간 동포들 아니요?”

 

 “해외에 돈을 벌러 나가기는 개뿔. 내가 마 그 이민자들 2세대요. 나쁜 장사치들한테 속은 거지 다들. 무신, 노예 같은 취급만 당하다가 1910년에 나라 없어졌다고 다시 돌아오지도 못하고.”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 것이 적응이 된 사내, 가뿐하게 어깨를 돌린다.

 

 “말도 마소 마!"

 

 사내의 그릇된 추억은 이제 딱한 총알이 되어 나를 가로지른다. 탁한 안개가 생긴다. 나는 그의 기억에서 무기력하게 상황만 더듬는다. 무웅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다시 시작했다.

 

 "그 뒤에, 부모님이랑 내랑 메히코 (멕시코시티 스페인어)로 갔습니더, 근데... 나라에 혁명이 일어나네. 거기다 전쟁도 터졌네. 부모님은 병 걸려가 돌아가시고... 마 내가 생각해도 인생 계속 꼬여가지고. 암튼, 그 뒤로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네, 마피아 카르텔 일하고 살았다 아입니까.”

 

 그때를 생각하니 이제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모습이었다.

 

 “멕시코 수도 북쪽에 피라미드가 큰 게 하나 있어요. 엄청 커. 거기서 재규어 임마 만났지. 맨 처음에는 웬 고양인 줄 알았는데... 임마가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가 보이느냐고.‘ 뭔 고양이가 개소리고? 했더니... 딱 생각이 들데...거가 피라미드 지역인기라. 신성한 영역이라 내가 뭐 건들여가 난리 난줄 알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임마가 대뜸 지가 무슨 신이라 카데?“

 

 그는 재규어의 표정을 따라하고자 표정을 바꾼다. 중저음으로 말했다.

 

 "나는 네 부모를 안다. 네 부모를 그렇게 살게 한 놈들 복수하고 싶지 않은가?"

 

 사내는 이내 낯간지러운지 다시 표정을 풀었다.

 

 “나는 솔직히 조선이라는데도 부모님한테 들어만 봤지... 잘 몰라. 근데, 마 그렇게 와서 힘들게 살다가 먼지처럼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갑자기 생각이 납디다. 자기 나라에서도 남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여기 오신 분들인데, 감히 여기서도 노예 같은 삶을 살게 해? 자식 된 도리로 원인 제공한 놈들은 가만히 두면 안 되겠더라고.“

 

 달빛은 사내 얼굴에 차가운 그림자를 남겼다.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명암은 그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나타내 주는 듯 했다.

 

 “마, 그때 이놈아가 그랍디다."

 

 무웅은 오른손을 꽉 쥐고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가 만들어낸 명암은 부서진 벽에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자기 일을 좀 도와달래! 하하하! 신이 인간에게 부탁을 하더라고. 내가 그래가 몸을 기꺼이 빌려줬지. 아무래도... 마 조선인 몸으로 다시 조국에 들어오는 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확실히 아까 인간에게는 짐승이 보여주지 못하는 표정이 보여 무서움을 느끼게 했다.

 

 “낮에는 내 몸으로 있고, 밤에는 짐승의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마 지금까지 정보를 모았어요. 이놈아 말로는 댁이 거의 마지막 단서라고 합니더. 잘 보이소 마. 그전에 만났던 그 사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인물...!

 

 사내가 내뱉는 어떤자의 이름... 그는 재규어가 언급했던 한 인물에 대해 나에게 한 번 더 상기 시키려 하고 있었다.

 

 "후지야마 다카모리(藤山隆盛)라는 사람이요. 조선이름은 박홍석!”

 

 그의 조선 이름을 들으니 더 확실해 진다. 하지만 그를 왜 찾는 것인가?

 

 “나이 64세. 와 태생이 조선인데 일본인 이름을 가지고 다니는지는 나도 모르게꼬. 조선 총독부 외무부장에, 동아양행(東亞洋行) 총괄대표. 그리고 별명은 콜렉타(Collector)!”

 

 사내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떠올리려 한다. 미간의 주름이 그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멕시코로 노동력 수출했던 것도 동아양행. 그리고 무역상선을 통해 그 ‘The Seed’를 밀반입 한 것도 동아양행! 그때 총 책임자라는 사람이 박홍석이라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알고 있겠지! 와 내 부모세대들 속여가, 거기 데려갔는지도 좀 물어보고. 이놈아가 찾는 태초의 씨앗에 대한 단서도 좀 찾고.“

 

 박홍석이라는 자에게 아주 살살 물어 볼 거라고 말하면서 미소 짓는 사내, 손안에 가볍게 쥔 돌은 그의 힘에 천천히 그리고 쉽게 부서졌다.

 

 그는 분명 묻는다는 것을 잘못 말한 것이다. 아니면 살살 문다는 건가? 갑작스러운 오한에 몸이 떨렸다.

 

 무웅이란 자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오른손으로 ‘딱’소리를 내었다.

 

 “아 그리고 ‘왜 근래에 다시 애니깽들을 조국으로 불렀는지’도 궁금하네. 혹시 압니까? 사실 나도 ‘그때’ 복수하러 조선에 올라꼬 했는데, 내가 마 일이 있어서 못 왔거든요.”

 

 그들이... 다시 돌아왔단 말인가. 그런데 왜 어떠한 보도매체에서도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거지? 나는 그들이 떠날 때 나라의 중요 신문들이 '지상낙원을 꿈꾸며 새벽 범선을 타고 떠난 조선 이민자들'에 다루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래서 이자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궁금한 것인가? 두려움은 어느새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저 사내에게 오히려 친밀감마저 느껴진다.이제 몸의 떨림도 사라진 것 같다.

 

 “그렇게 다 아는 것 같은데 왜... 왜 나를 찾아온 것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그 회사에 근무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소. 그리고 1900년 초반이면, 이제 막 동경에서 유학을 마치고, 미쓰코시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그때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요.”

 

 “당연히 회사에 관한 건 모르겠지. 근데 내가 궁금한 게... 회사와 관련된 게 아이니까. 아재, 아까 내가 박홍석 별명이 콜렉타 (Collector)라고 말한 것 기억나오?”

 

 사내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듯, 자세를 고쳐 섰다.

 

 “그 사람, 아무도 모르게 마 개인 작업실 하나 가지고 있지요? 앞선 두사람을 통해서... 댁이 미쓰코시 다닐 때, 그곳으로 외근 다녔다는 것을 다 알고 왔습니더.”

 

 앞의 두 사람? 혹시 죽은 일본인들...? 겨우 안정을 찾았던 손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비서의 역할로 그의 사저(私邸)에 갔었던 거였소. 그리고 '평창동'에 가더라도 꼭 사무실만 출입을 가능하게 해서... 그곳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오.”

 

 “아재... 잘 알고 있네요. 마, 거기가 '평창동'이라는 말은 안했는데.”

 

 에이 이런... 날 떠본건가? 그런데...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물어 보는 거지? 이럴 거면, 박홍석을 그냥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그분도 워낙 비밀리에 '평창동'을 드나드셨소. 나도 명을 받은 일 이외는 하지 않았으니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줄 수 없소이다."

 

 무웅은 서두르지 말라는 듯 오른손을 허공에 저었다.

 

 “마... 아재 성격 급하시네. 내는 아저씨가 거기에 대해서 뭘 아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주소! 마, 주소 물어 볼라고 그럽니더. 아따 차말로... 주변에 주소를 아는 인물들이 없네. 워낙 평창동 주소를 꽁꽁 감춰놔서.”

 

 나는 정말 그 장소의 용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얼굴이다. 주소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알... 알려주면... 나를 어떻게 할거요?”

 

 “살려는 드릴께. 나 무웅. 지금까지 이런 걸로 쪼잔 하게, 거짓말하고 하지 않습니더.”

 

 서류 가방에서 서류 종이 한장을 꺼냈다. 종이의 끄트머리를 찢어서 주소를 적는다. 떨리는 손을 다스려 집중한다. 혹시나 주소가 잘못 적혀서 나중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 뿐이다.

 

 그때였다. 시선은 종이에서 멀어져 무웅에게 향했다. 하지만 이제 내앞에는 입김을 새하앟게 내뿜는 존재가 다시 등장했다.

 

 재규어의 재등장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나? 나를 흔들어 보고자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었나? 어떻게든 덤벼보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눈에서는 (生)이 떠난 듯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짐승은 오른쪽 앞발을 가볍게 내 가슴 쪽으로 뻗는다. 가볍게 휘두른 것 치고는 너무 쉽게 현기증이 나는 듯하다.

 

 중심을 잃는다. 벽에 기대어 풀썩 주저앉았다. 공간에 가득한 피 비린내는 곧 검은 재가 되어 나를 덮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아직 아들의 졸업도 보지 못했는데...

 

 [내가 약속한건 아니지 않느냐. 내 존재는 아직 드러나서는 안 된다. 다만 태양신이 너의 희생을 기릴 것이다.]

 

 짐승의 손톱 끝은 깊은 한기를 남겼다. 그 짙은 원망의 그림자는 과연 조선 어디까지 새겨질 것인가?

 
작가의 말
 

 1. 테오우아칸(Teohuacan): 멕시코시(市)에서 북동쪽으로 52km 떨어져 있다. 기원 후 4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다.

 2.오메테오톨: 신들의 영역에 오메요칸에서 이원신(二元神)의 최고신으로 존재.

 3. 토라테로르코: 아즈텍 북쪽의 상업도시의 이름.

 4. 촐룰라(Cholula): 성당이 365개의 성당이 있어 성당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5. 수메르 지역: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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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 20-09-24 15:29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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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품소개 (03: 43, 2020, 09, 24) 2020 / 9 / 24 507 0 -
30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1) 2020 / 9 / 29 367 0 8733   
29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1) 2020 / 9 / 29 310 0 8338   
28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81 0 7939   
27 [CHAPTER 2] 그림자 섬 (11: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77 0 7104   
26 [CHAPTER 2] 그림자 섬 (10) 2020 / 9 / 29 281 0 8943   
25 [CHAPTER 2] 그림자 섬 (9) (1) 2020 / 9 / 28 305 0 7805   
24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2020 / 9 / 28 285 0 8275   
23 [CHAPTER 2] 그림자 섬 (8) (1) 2020 / 9 / 28 304 0 7303   
22 [CHAPTER 2] 그림자 섬 (7) 2020 / 9 / 28 271 0 6869   
21 [CHAPTER 2] 그림자 섬 (6) 2020 / 9 / 28 267 0 6714   
20 [CHAPTER 2] 그림자 섬 (5) 2020 / 9 / 27 284 0 6849   
19 [CHAPTER 2] 그림자 섬 (4) 2020 / 9 / 27 276 0 7408   
18 [CHAPTER 2] 그림자 섬 (3) 2020 / 9 / 27 269 0 6817   
17 [CHAPTER 2] 그림자 섬 (2) 2020 / 9 / 27 284 0 7092   
16 [CHAPTER 2] 그림자 섬 (1) 2020 / 9 / 27 275 0 6903   
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67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84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81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68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85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16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0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67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78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82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18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04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1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08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52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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