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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초월자들
작가 : 이루다
작품등록일 : 2020.9.24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1930년대 한반도. 혼란과 의심만이 가득한 조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 1900년 초 멕시코로 떠났다가 조국에 돌아온 이민자들. 복수의 끝에 서 있는 수상한 사내. 비밀을 감추고 있는 노신사. 그리고 미지의 물질 [The Seed].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의 도표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CHAPTER 1] 조우(2)
작성일 : 20-09-24 15:21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9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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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종로와 명치정(明治町: 명동)사이로 흐르는 청계천 위에 수표교라는 다리가 있다. 원래 마전교로 불렸던 이곳은 홍수를 측청하기 위해, 수표(水標)가 설치되면서 수표교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멀리서 본다면 이렇게나 조선인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풍경도 없을 것이다. 주변에 빨래터와 한약방, 그리고 아무렇게나 지어진 움막들은 조선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대변하는 듯 했다.

 

 여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종로 경찰서에서 나온 다이스케 겐조(大輔源城) 고등계 형사 주임이다. 샌님처럼 생긴 얼굴이지만, 끝이 솟아오르는 눈꼬리 즉 장수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청계천 가득한 피 냄새에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비단 피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독한 하수 냄새와 여기저기 쓰레기를 방치한 탓에 올라오는 역한 냄새도 울렁거림에 한몫했다.

 

 사내는 이제 막 수표교 밑에 벌어진 사건 현장에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수표교 근처의 빈민촌에서 구경 나온 사람들이 걸리적거리기 시작했다.

 

 "야! 여기 인원 통제들 안해? 똑바로들 해, 세금 좀 먹는 녀석들아!"

 

 다이스케는 순사들에게 주변 통제에 신경 쓰라고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는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멀리서도 보이는 피해자의 자상(刺傷)의 흔적이다. 직접적인 피해자의 사인(死因)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피해자 신체의 가슴부터 시작되는 상처는 복부까지 내려왔다. 날카로운 것에 파인 듯 보이는 상처는 그 선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맺었다. 이는 그가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자상에서 시작 된 피는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는지 주변으로 흘러나와 그대로 굳어 있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醸), 무역회사에 다니는 일본인이다. 그는 조만간 일본 내지(內地)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 생활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젯밤, 수표교 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소식은 또 다시 종로 경찰서를 뒤집어 놓았다. 이로써 세 번째 일본인 살인사건이다. 이 경성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 같다.

 

 '괜히 외지(外地) 근무를 택했나...'

 

 다이스케는 예전에 누군가 조선에 와서 근무를 하면 나중에 승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던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조선인 사건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 대해 떠올려 보기로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 모두 미쓰코시사에서 근무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그 살해 수법이 동일하다는 판단 하에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그들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이가 있었는지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이번 세 번째 피해자가 발생한다.

 

 이번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근무지의 공통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이라는 점과 이전 사건들과 동일한 살해 수법이라는 점에서 연쇄 살인의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각도에서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 그래서 경찰서 내부에서는 조선인의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부검결과가 사건의 방향을 완전히 미궁에 빠트렸다.

 

 그것은 '용의자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 수도 있다는 것.

 

 피해자들의 몸에 남아 있는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생긴 상처는 사실 짐승의 발톱자국이라는 것이다. 짐승의 힘에 무자비하게 찢어진 듯 보이는 살가죽은 더욱 그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부검의 감식 결과 또한 '인간의 힘이라면 이렇게 크고 깊게 남길 수가 없으니 짐승의 소행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그것 정도는 나도 눈으로 보면 알 수 있겠다. 똥 멍청이들.’

 

 다이스케는 계속되는 수사에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자, 괜히 경찰의 무능이 부끄럽다고 느껴졌다.

 

 짐승의 힘에 희롱당한 듯,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피해자를 보자니 인간의 나약함만 탓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사건 현장을 목격한 조선인이 다이스케에게 다가왔다.

 

 조선인의 이름은 김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먼저 돈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헤헤, 형사나리. 제가 용의자를 제대로 목격했으니 값은 제대로 쳐주셔야 합니다요."

 

 투철한 신고 정신을 바탕으로 인력시장에 안가고 이곳에 먼저 왔다는 그였다. 다이스케는 대꾸하기도 싫었나 보다. 현장을 통제하는 말단 순사를 부른다. 그리고 그에게 정보값을 지불하고 목격한 것을 들으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네발로 기었다가 다시 두발로 걸어서 사라졌다 이 말이요?”

 

 다이스케를 대신해서 질문을 이어가던 이지명 순사는 사내의 이상한 주장에 눈썹을 찌푸린다.

 

 “그렇다니깐요, 순사나리. 제가 여기 근처에 있는 움막에 살아서 이곳 지리는 싹 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빨라도 제 시선에서는 못 벗어납니다요.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나갔다가 확실히 봤습죠. 저기 웬 네발 짐승이 청계천 아래에서 수표교 위로 올라가지 뭡니까.”

 

 “그리고 그것이 올라가더니 두발로 걸었다. 혹시 나중에는 세발로 걸어가지 않던가?”

 

 어디선가 주어 들었던 스핑크스의 퀴즈가 생각나는 이지명 순사였다.

 

 “에이, 진짜라니까요. 네발로 걸을 때는 호랑이 같더니, 수표교 위로 올라가서 두발로 걸을 때는 또 곰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나를 알아볼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의 털이 거꾸로 솟을 만큼 긴장된다면서, 양손을 포개어 자신을 감쌌다.

 

 이지명은 그의 말을 다이스케에게 토시 하나 안 빠트리고 전달했다. 다이스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껄껄 웃더니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조선인들은 다들 미쳤군. 돈 때문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는 자신의 수첩에다가 용의자 곰? 호랑이? 사람? 귀신? 이라고 대충 휘갈겨 적었다.

 

 누군가 수표교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언덕에서 무른 흙을 잘못 밟고 굴러서 내려온 일본인 순사는 재빨리 자세를 갖춘다. 그 다음, 다이스케 형사에게 서에서 온 정보를 귀에다 대고 전달했다.

 

 “이번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서에 자수하러 왔답니다.”

 

 다이스케의 두 눈이 빛난다. 그는 현장 보존을 잘 하라고 지시하고 재빨리 서로 향했다.

 

 &

 

 서장실의 벽 중앙에는 일본 국기와 함께 현상금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그가 홧김에 던진 신문뭉치에 전단지 구석이 찢어졌는지 종이 끝이 너덜너덜 해졌다.

 

 [본정(本町) 뒷골목, 조지아 백화점, 그리고 수표교에서 또 한 번 벌어진 일본인 살인사건.]

 

 오늘 아침에 본 신문 사설의 제목이었다. 사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1. 수색대 조직해서도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들.

 2. 종로 경찰서의 무성의한 보도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경성 시민들.

 

 "이런 자극적인 내용을 내 허락도 없이 싣다니, 다들 신문 발매하기 싫은가 보지?"

 

 테츠야 나카모토(徹也中本)서장은 다시 한 번 땅에 떨어진 신문 뭉치를 벽 쪽으로 걷어찼다. 그때 서장실의 문을 열고 형사 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서장의 모습을 하루 이틀 보는 것이 아니라, 그는 별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테츠야 서장님, 방금 용의자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한 번 보자고."

 

 그들은 1층으로 내려간다.

 

 용의자의 잔인함은 이미 경성시내에 널리 퍼져 있었던 터. 종로 경찰서 안에는 이미 그의 자백을 위해 보호 순사들이 겹겹이 대기 중이었다. 조선인 용의자는 고등계 형사들의 힘에 이끌려 마련된 취조실로 끌려갔다.

 

 자신의 이름을 ‘김성욱’이라고 밝힌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네놈들이 조선을 평생 손에 쥔 줄 알았더냐? 이만하면 다시 내 놓을 줄도 알아야지.”

 

 조사결과 그는 독립 운동하는 사람의 한 명일뿐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

 

 "뜨시, 아니라고? 그럼 왜 자기가 범인이라고 하는 거야?"

 

 테츠야 서장은 저들이 이사건의 중대함을 알긴 하는거냐며 소리를 쳤다. 그렇지만 사건의 중함에 관련 없는 자를 범인라고 내놓을 수는 없는일이다. 결국 그는 업무 방해죄가 적용되어 감옥으로 갔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며칠 사이, 자신이 목격자 혹은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경찰서 안이 발을 딛을 틈도 없이 가득 찼지 뭡니까"

 

 서장에게 한 형사가 와서 조선인들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한다. 저기 멀리 보이는 형사과에 목격자와 용의자들이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웅변하듯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범인이요.”

 

 “내가 봤다니까. 분명 백두산 호랑이였어.”

 

 “아니야 곰이었어. 지리산 반달곰.”

 

 고등계 형사들은 다들 하나 같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싼다. 그리고 조선인들을 향해 나가라고 소리쳤다. 형사들은 진술서를 작성하던 종이를 둘둘 말아 조선인들을 향해 던졌다.

 

 여기 저기 날아다니는 진술서 종이들, 그 모습에 어지러워진 테츠야 서장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현장 조사를 나간 다이스케는 이제 막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는 서장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따라 올라간다. 사건 현장의 상황을 보고하러 온 사내, 다이스케 형사는 서장의 집무실 문을 열다가 안쪽의 상황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닫았다.

 

 그 안에는 한 중년의 남성이 용의자의 형상금 전단지에 펜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었다.

 

 #04

 미쓰코시 백화점과 조선 저축은행 그리고 경성 우체국,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본정(충무로)의 랜드 마크라 불린다는 점이었다.

 

 그중에 경성 우체국 우측으로 난 본정거리에는 상업지구가 형성되어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 행인 통행량이 많이 줄어든 탓에 을씨년스러운 황량함이 느껴지는 이곳이다. 그것을 대변하듯 여러 상점들은 문 앞에 입간판을 세워 놓고 할인을 통해 손님들을 끌어보고자 했다.

 

 그 이유는 요즘 본정과 황금정(을지로)에 떠도는 괴소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최근에 일어난 일본인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면, 살인 사건들이야 원래 있었던 일, 이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 괴소문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세 건의 살인사건 용의자가 사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은 어느 새 괴물이 사람을 통 채로 씹어 먹은 탓에 신체의 일부는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로 커졌다.

 

 때문에 짐승의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외부 활동을 조심스러워 했다.

 

 살인도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무서운 법. 의지를 지니지 않는 짐승 발톱의 다음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짐승의 이야기는 소문일지라도 연쇄살인 사건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거리 구석구석 마다 현상금이 붙은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용의자의 얼굴은 그림자로 처리 되어 있었고, 커다란 물음표가 용의자의 그림자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현상금 밑에는 어떠한 정보도 환영한다는 종로 경찰서 서장의 부탁말이 적혀 있었다.

 

 “誰でもいいから手伝ってください!(누구라도 좋으니까 도와주세요!), 助たすけてください。(도와주셔요.) 소매치기여요! 누가 좀 도와주셔요!!

 

 본정의 번화가 거리 한복판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일본어와 조선어를 사용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검은 원피스에 주름진 소매의 진 흰색 양장코트를 겉에 걸치고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옷 스타일의 심플함이 잘 어울려져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녀는 곧 자신의 핸드백은 그대로라 다행이라는 듯 가슴에 꼭 안았다.

 

 다들 힐끗 쳐다만 볼 뿐, 누구하나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통행하는 자도 원체 없었지만, 더더욱 소문의 두려움은 남을 흔쾌히 도와주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인은 이쯤 되니 뭐 당연한 일이라는 듯 더 이상 소리치지 않았다. 단지 평상시에는 자신의 조그만 한 일에도 관심을 갖고 도와주었던 사내들이었는데... 그깟 이상한 소문 때문에 모른척한다고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옷을 잘 여민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소매치기가 도망간 곳으로 달려갔다.

 

 곧 미쓰코시 백화점 후문 쪽 골목 초입에 도착했다. 그녀의 눈에는 소매치기의 목 뒷덜미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버둥거리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덩치 두 배는 될 법 한데 용케 힘에서 밀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원피스와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탓에, 힘들게 쫓아온 그녀는 일단 다행이라는 듯 숨부터 돌렸다.

 

 “어린놈의 자식이, 이놈이! 킁. 이거 놔라! 다친다. 킁.”

 

 “아, ‘킁킁’거리는 소리 시끄러워 죽겠네. 어서 내놓기나 해요.”

 

 사내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하지만 소년은 원숭이처럼 팔을 늘어트리고 사내의 목을 두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사내의 목을 축으로 삼아 왼쪽 오른쪽 자신의 몸을 진자운동 하듯 움직였다.

 

 사내는 어느새 소년의 진자운동에 지친 기색이다.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손에 든 복주머니를 여자쪽으로 던지며 아이의 허락을 구했다.

 

 "됐지?"

 

 그제야 목 뒷덜미의 자유를 얻은 사내, 그는 특유의 코 킁킁거림과 함께 여인의 반대쪽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반대로 여인은 자신 앞에 떨어진 연한 황색의 복주머니를 손에 쥐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정말 고마워요. 안에 중요한 것이 들었거든요. 신기하다... 어떻게 알고 저 사람을 쫓아 간 거예요?”

 

 그녀는 복주머니를 제대로 여민 다음 자신의 양장코트 안으로 넣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다.

 

 “저는 연이라고 해요. 이연. 경성에서 저 같이 [시력 좋은 사람]은 만나기도 힘든데, 오늘 참으로 운이 좋으세요. 복권이라도 사셔야 겠어요.”

 

 너스레를 떨던 소년은 오히려 소매치기 당한 여인의 상태를 걱정해주었다.

 

 “아까 그 아저씨 보셨죠? 덩치는 그렇게 큰데, 유연하고 차분하게 복주머니를 꺼내더라고요. 혹시, 어디 찢어진데 있나 보세요.”

 

 그리고 연이는 별것 아니지만 놀랬다는 듯 물었다.

 

 “그나저나, 불편한 신발을 신고서 어떻게 저를 그렇게나 빨리 따라 오셨어요? 거리도 좀 있었을 터인데?”

 

 “상황이... 상황이 닥치게 되면, 알아서 뛰게 되어 있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는 여인이다.

 

 “복주머니는 부모님이 주신 거라 잃어버리면 곤란했는데... 고마워요. 잃어버린 것도 없고, 옷도 생각보다 멀쩡하네요.”

 

 여인은 정말 괜찮다는 듯 소년을 안심시켰다. 그녀가 웃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는 연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연이라.. 연이? 혹시 이연? 가나안 성당의 마태오 신부님 이라고 알아요?

 

 그녀는 연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년은 그녀의 얼굴이 너무 가깝다는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을 머뭇거렸다.

 

 “네? 넵. 알다마다요. 거기서 지내고 있는걸요. 근데 저희 영감님은 어떻게 아신대요?”

 

 “어머, 너무 잘됐다. 안 그래도 지금 본정 2정목(충무로 2가)으로 가고 있었는데.”

 

 “왜요?”

 

 “일하는 곳에서 일손이 필요해 이곳저곳 알아보는 와중이었는데, 신부님께서 우리 선생님께 연이를 추천해 주셨어요."

 

 “아! 그러시구나. 영감님은 저한테 아무런 말도 없으셨는데? 그나저나 말 놓으세요. 제가 한참은 어린 듯한데.”

 

 한참이라는 말이 그녀에게 비수(悲愁)로 느껴지는지 모르는 순진한 소년이다.

 

 “어머, 한참까지는... 흠흠. 그럼 그럴까? 오늘 일도 있으니, 내가 선생님께는 말씀 잘 드려 놓을게. 혹시 생각이 있으면, 우리 고서점에 한번 들리렴.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나누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나저나 무슨 일 하는 거예요? 우리 영감님이 돈 없다더니, 나를 이상한 곳에 팔아먹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우리 영감님, 요새 영... 감이 없거든요.”

 

 어떻게 말을 되받아쳐야 하지? 잠깐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냈다.

 

 “내 이름은 '마리'라고 해. 그리고 여기 우리 주소."

 

 그녀는 주소에 적힌 ‘금성담 서점 맞은편, 동양연합빌딩 201호’ 밑에 줄을 쳐서 한 번 더 강조했다.

 

 [고서점 궁창(穹蒼). 편집자 마리 金]

 

 “궁창? 이름이 어렵네요. 고서점이 뭐하는 곳 이예요? 그리고 왜 이름 뒤에 성을 붙이셨어요? 그럼 누나 성함이 김마..”

 

 마리는 소년의 행동을 황급히 멈춘다.

 

 “어머, 얘기는 들었다만 우리 연이 한자랑 한글도 잘 읽는구나. 아주 잘 되었어. 고서점은... 음 쉽게 말하자면, 옛날 문서에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란다.”

 

 “그런 일이 돈이 된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참... 아, 권유해주신건 우리 영감님이랑 일단 얘기해 본 뒤에 저도 생각 좀 해 볼게요.”

 

 '생각'이라는 말을 강조한 소년, 그는 마리에게 자신이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 생색을 낸다.

 

 “이 누나는 연이를 꼭 다시 보았으면 좋겠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고서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마리는 쉽지 않은 소년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간다. 연이는 또 다시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마리는 그런 그가 귀여운지 입꼬리를 올렸다. 입가에 가득한 웃음은 곧 커다란 보조개를 만든다.

 

 “헤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날 보아요. 달리기 빠른 예쁜 누나.”

 

 [마리(김) 등장. 23세. 고서점 궁창(穹蒼)의 편집자.]

 

 그녀는 다른 업무가 생각났는지 작별의 인사와 함께 번화가 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연은 참 얼굴도 예쁘고 씩씩한 누나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재더니 자신도 만물상 출근에 늦었음을 인지했다.

 

 “돌패 삼촌이 걱정하겠다.”

 

 돌패는 소문 이후로 연이에게 더욱 신경이 쏟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소년은 적어도 약속 시간에는 늦지 않고자 했다.

 

 급하게 거리로 나온 소년을 방금 미쓰코시 백화점의 유니폼 소녀가 지나쳤다. 그녀가 배달 중인 포장된 물건이 떨어지려는 것을 연이가 잡아준다. 소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연이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저 멀리 카페의 유리창 넘어로 조선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술을 마시고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 유니폼의 소녀, 그리고 저들 모두 조선인이자 동시에 이방인의 모습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듯 낯설음이 느껴졌다.

 

 방금 본정 카페 골목으로 방금 한 사내가 진입했다. 주변에서 보기 힘든 큰 키와 커다란 덩치의 남자였기에 더 눈에 띄는 듯 했다.

 

 갑자기 낯설음의 정적을 깨고 날카롭게 날이 선 이질감이 소년의 심장을 찌르는 듯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대상'으로부터 느껴지는 기묘한 감정, 이연은 궁금증을 확인하고자 사내의 뒤를 밟기로 마음먹었다.

 

 "미안해요 삼촌. 또 이렇게 호기심이 제 발길을 잡네요."

 

 돌패 삼촌에게 방금 백번째 사과를 하는 이연이다.

 

 사내에게 아무런 의심을 주지 않도록 조심히 따라갔다. 카페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라디오 소리들은 연이의 발걸음 소리가 묻히게 도와주었다.

 

 부지런한 발걸음 덕분이다.

 

 소년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허름한 선술집 벽에 숨어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느낌에 이제 그와 한 블록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있다.

 

 아닌가? 연이는 긴장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느낌... 도리어 그가 저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사내는 오히려 자신을 미행하는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먹잇감이 자신의 사정거리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이곳에서 더 나아가면 죽는다. 소년은 괜한 궁금증이 불러올 사태를 확인하지 않기로 한다.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연이는 재빨리 왔던 길을 돌아갔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난 돌덩이에 방금 발을 채였다. 처음 있는 일이다. 생각한 것 보다 더 큰일이 이 조선 땅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깊어지는 생각과 함께 이연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졌다.

 
작가의 말
 

 1. 수표교: 조선 세종 때에 청계천에 놓은 다리.

 2. 자상: 칼이나 창과 같은 예리한 물체에 찔려서 생긴 창상

 3. 본정: 충무로, 조지아 백화점: 명치정(명동)에 위치했던 백화점,

 4. 조선 처축은행:1929년에 유일한 서민 금융 기관으로서 설립된 은행. 제일 은행의 전신.

 5. 신문 사설: 신문, 잡지 등에서 그 사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이다.

 

 [미스터리 역사 판타지] 초월자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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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품소개 (03: 43, 2020, 09, 24) 2020 / 9 / 24 517 0 -
30 [CHAPTER 2] 그림자 섬 Finale (1) (1) 2020 / 9 / 29 376 0 8733   
29 [CHAPTER 2] 그림자 섬 (13: 마리의 과거편) (1) 2020 / 9 / 29 317 0 8338   
28 [CHAPTER 2] 그림자 섬 (12: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91 0 7939   
27 [CHAPTER 2] 그림자 섬 (11: 마리의 과거편) 2020 / 9 / 29 283 0 7104   
26 [CHAPTER 2] 그림자 섬 (10) 2020 / 9 / 29 290 0 8943   
25 [CHAPTER 2] 그림자 섬 (9) (1) 2020 / 9 / 28 310 0 7805   
24 [CHAPTER 2] 그림자 섬 (우리들 등장) 2020 / 9 / 28 293 0 8275   
23 [CHAPTER 2] 그림자 섬 (8) (1) 2020 / 9 / 28 310 0 7303   
22 [CHAPTER 2] 그림자 섬 (7) 2020 / 9 / 28 277 0 6869   
21 [CHAPTER 2] 그림자 섬 (6) 2020 / 9 / 28 282 0 6714   
20 [CHAPTER 2] 그림자 섬 (5) 2020 / 9 / 27 297 0 6849   
19 [CHAPTER 2] 그림자 섬 (4) 2020 / 9 / 27 285 0 7408   
18 [CHAPTER 2] 그림자 섬 (3) 2020 / 9 / 27 278 0 6817   
17 [CHAPTER 2] 그림자 섬 (2) 2020 / 9 / 27 294 0 7092   
16 [CHAPTER 2] 그림자 섬 (1) 2020 / 9 / 27 284 0 6903   
15 [CHAPTER 1] 조우 Epilogue 2020 / 9 / 26 277 0 5643   
14 [CHAPTER 1] 조우 Finale (4) 2020 / 9 / 26 295 0 5688   
13 [CHAPTER 1] 조우 Finale (3) 2020 / 9 / 26 289 0 5804   
12 [CHAPTER 1] 조우 Finale (2) 2020 / 9 / 26 281 0 7291   
11 [CHAPTER 1] 조우 Finale (1) 2020 / 9 / 26 298 0 9697   
10 [CHAPTER 1] 조우(9) (1) 2020 / 9 / 25 324 0 9263   
9 [CHAPTER 1] 조우(8) 2020 / 9 / 25 287 0 6631   
8 [CHAPTER 1] 조우(7) 2020 / 9 / 25 274 0 9948   
7 [CHAPTER 1] 조우(6) 2020 / 9 / 25 285 0 8690   
6 [CHAPTER 1] 조우(5) 2020 / 9 / 25 289 0 7971   
5 [CHAPTER 1] 조우(4) (1) 2020 / 9 / 24 327 0 9845   
4 [CHAPTER 1] 조우(3) (1) 2020 / 9 / 24 313 0 8428   
3 [CHAPTER 1] 조우(2) 2020 / 9 / 24 288 0 9647   
2 [CHAPTER 1] 조우(1) (1) 2020 / 9 / 24 317 0 9682   
1 [CHAPTER 0] 영의 기록 2020 / 9 / 24 461 0 7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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