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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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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배경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이며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이젠 사라져가는 대가족세대와 시골의 마을공동체생활을 겪은 70,80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아이의 눈으로 부모님세대를 바라본 옛 이야기입니다.

 
외삼촌
작성일 : 20-09-20 07:49     조회 : 271     추천 : 2     분량 : 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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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촌

 

  우리 외할머니는 딸 다섯, 귀한 아들 하나를 낳으셨다.

 외할아버지가 ‘주당’에 걸려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는 친정동네로 이사를 갔다.

 마음이 갈대와 같고 귀가 무척 얇은 외할머니는 자신의 친정동네 빈 집을 빌려서 살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원래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미제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당시 중학교까지 나온 비교적 엘리트에 속했던 외할아버지는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어서 우리 외할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배를 타고 옮겨다니면서 미제물건을 팔러다녔는데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고 한다.

 우리엄마는 장사를 하는 부모님때문에 진작부터 외갓집에서 맡겨져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도 엄마의 외할머니랑 더 친했다. 엄마의 외할머니. 즉 외증조할머니는 손자손녀들을 엄청 예뻐했는데 가마솥에 엿을 고아주고 친손자보다 부모와 떨어져서 외갓집에 얹혀사는 외손녀인 엄마를 더 귀여워했다고 한다.

 엄마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별로 없고 외증조모님과 추억을 자주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엄마는 바쁘고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나자 나를 외갓집에 보내서 자라게 했다.

 마음이 갈대와 같고 귀가 무척 얇은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주당에 걸려서 돌아가셔서 과부가 되자 자신의 친정동네 빈집을 빌려서 살기로 했다. 그 동네는 예전에는 양반들만 사는 동네였다고 한다. 온 동네가 거의 다 친척이자, 일가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로 양반들의 후손들 같지 않아보였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정 조선시대 양반들의 후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가까운 일가친척이 한동네에 모여살아서 그런지 아주 사소한 일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양반들이 싸움질하는 것은 비교도 안될만큼 싸움박질을 했다.

 그래서 친척, 인척관계로 얽히고 설킨 나이많은 여자들은 자주 머리끄뎅이를 쥐어뜯으면서 땅바닥을 굴렀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면 난 절대 저러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일찍부터 부잣집 애보기로 돈을 벌러 갔고, 집 안에는 딸 넷과 귀한 외아들이 남았다. 온 동네가 딸들을 많이 낳아서 골수에 사무치게 남존여비가 심각했다.

  명절이나 제사 때가 되면 손수 유과, 약과, 엿, 곶감 등등 모든 어려운 음식들을 손수 장만하는 동네였다. 조선이 망한지 칠십 년이 지나도 양반동네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여자들은 모두 명절음식장만을 하면 무슨 경연대회에라도 나갈 것처럼 본인들의 솜씨자랑을 하느라 바빴다.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손님이 오면 정말 거하게 한 상 차려준다.

 모두들 자기집 음식과 별반 다름이 없는데도 자랑이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고, 이서방디기(댁), 우째 이래 솜씨가 좋노?”

 라고 누군가 한마디만 하면 외할머니는 남들에게 아낌없이 퍼주었다. 가난한 과부살림에 하나라도 아껴서 자식들 입에 넣어주어야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큰이모인 순자이모는 음식을 만들기만 할 뿐 제대로 먹어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손님에게 대접하고 귀한 외아들만 유과나 약과 강정같은 과자를 맛볼 수 있었다. 외삼촌이 유과를 먹을 때 누나와 여동생들은 입에 손가락을 물고 쳐다만 보는 것이 당연했다.

 “씩잖은(하찮은) 가씨나들은 안먹어도 된다.”

 외삼촌이 혼자서 뻔뻔하게 먹을 때 하는 소리라고 한다.

 외할머니가 늘 그런 소리를 했기 때문에 외삼촌도 그런 사고방식이 골수에 박혀서 너무 당연한 생각이었다. 이런 말들에 너무 상처를 받은 큰이모는 외삼촌을 몹시 미워했다.

 사실 미워할 만하다. 클 때는 어려서 뭘 몰랐다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엄마의 외사촌 중에 시집을 잘 간 딸(외삼촌에겐 사촌누나)이 있었는데, 남편의 사업이 너무 잘되어서 다들 가정을 꾸리고 사는 친정형제들에게 각각 천만원씩 보태주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즈음 도시 집값이 보통 200~30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으니 돈 천만원은 엄청 큰 액수였다. 그 사촌누나가 원래는 잘 살지 않았는데 80년대 초기 수출호황기를 누리면서 컨테이너가 무척 많이 필요했고, 마침 컨테이너제작을 하던 공장을 운영하던 그 집 사위는

 사업이 너무 잘되어서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 처갓집에서 노는 친척 처남뻘 되는 젊은이들을 몇 데려가서 공장에 취직도 시켜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외삼촌은 부러워서 눈물까지 났다고 한다.

 “남의 집 딸들은 시집가서 친정에 논밭도 사주고 하는데 우리 집에는 하나도 그런 인간이 없 고.”

 이것이 우리 외삼촌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외삼촌은 결코 못된 사람이 아니었다. 장사를 하면 손해볼 사람이었고 한 마디로 우유부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너무 대접을 잘 받고 크다보니 남의 감정이나 아픔은 생각할 줄 몰랐고 특히 집안의 여자형제들은 자신에게 당연히 뭔가 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외삼촌의 말은 틀린 말이라고 한다. 우리 외삼촌이 살고 있는 그 집은 외할머니가 남편을 잃고 돈이 없어서 그냥 빌려살던 집인데 우리엄마가 어릴 적부터 부잣집 애봐주는 일부터 공장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모아서 시집가기 전에 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모들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홀치기같은 부업을 해서 집안의 생활에 보탬을 주었다고 한다. 홀치기가 그 당시에는 상당히 큰 돈을 받았다고 한다. 홀치기란 스탠드같이 세운 나무에 거는 고리가 있고 실을 걸어놓고 계속 꼬면서 긴 줄을 짜는 것이다. 그 긴 줄을 공장에서 받아가서 염색을 한 후 말린다. 그리고 나서 실을 다시 풀면 실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염색이 되어있고 실이 파마를 한 것처럼 꼬불꼬불해진다고 한다. 그 실로 옷감을 짜면 옷감이 볼륨감이 있어서 비싼 드레스같은 옷을 만들면 굉장히 예뻐서 홀치기로 꼰 실은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고 한다. 홀치기를 해서 보통 잘하는 사람은 십 만원, 이십 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내가 4~5학년때 학교 행정실 직원 월급이 십 오만원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모들이 홀치기하는 시절은 그보다 몇 년 빨랐다. 아주 어릴 적에 뽀빠이과자가 20원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홀치기기술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 부업인지 실감이 날 것이다.

 이모들도 모두 일찍부터 대기업 공장에 취직을 해서 친정에 늘 도움을 주었다.

 외할머니는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해서 딸들이 벌어다준 돈을 생활비, 유흥비, 관광을 가는데 다 썼다. 오죽했으면 외할머니의 오빠는 자식들이 힘들게 벌어다주는 돈을 탕진한다고 외할머니의 방구들을 파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했다.

 외삼촌은 커서 시내에 나가서 구두만드는 공장에 다녔다고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택시기사도 하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와서 같은 동네 아가씨와 연애를 해서 곧 결혼을 했다고 한다.

  외갓집은 본 채가 있고 마당을 지나서 한쪽 높은 언덕같이 높은 땅이 있었는데 거기 또 작은 집이 하나 더 있었다.

 외삼촌을 본채를 썼고 외할머니는 마당 한켠에 있는 작은 집을 썼다. 원래는 작은 집도 세를 주어서 다른 사람이 살던 것을 아들내외가 결혼을 하자 거처하던 집을 비워준 것이다.

 과부였던 외할머니와 결혼한 외삼촌 내외는 사소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내 눈에는 외할머니가 아들을 너무 믿고 의지하다 보니 며느리와 한 남자를 두고 쟁탈전을 벌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따로따로 사는데도 늘 마음이 안맞아서 결국은 외할머니가 직장을 다니는 이모들이 이사한 전셋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엄마가 돈을 주고 산 시골 외갓집은 외삼촌의 차지가 되었고 외할머니를 먹여살리는 것도 이모들 차지가 된 것이다. 외삼촌은 여자형제들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외삼촌은 어릴 때도 맛있는 간식은 혼자 차지했고, 누나가 사준 외할머니집도 자신이 차지했으며 부모봉양도 여동생들이 떠맡게 되었는데도 친척누나가 잘 살아서 돈도 주고 논도 사주고 하는 것은 엄청 부러워했다.

 시집간 딸이 왜 친정에 논밭까지 사주는지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삼촌은 자신이 여자형제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도움과 혜택을 받은 것은 알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딸들의 자취방으로 피신을 가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외삼촌부부에게 찾아갔다.

 그때 외숙모는 방에 이불을 쓰고 누웠고 외숙모의 친정어머니가 와서 이불을 뒤집어쓴 외숙모에게 죽을 끓여서 대령을 하고 있었다.

 우리 외갓집과는 반대로 외숙모는 아들 많은 집안의 귀한 고명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이 시집을 와도 안사돈이 자주 드나들면서 살림살이를 살폈던 것 같다.

 우리엄마가 가서 외할머니가 집을 나간 것을 두고 몇 마디를 시작하자 외숙모는 본인이 받았던 밥상을 확 던져서 엎어버렸다.

 외삼촌은 두 여자가 싸울 것을 예견하고 이미 외출한 후였다. 눈치 하나는 진짜 빠르다.

 나는 우리오빠 오만상이 외삼촌의 눈치를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이기 무슨 짓이고? ”

 엄마는 화가 나서 말했다.

 “정 한 집에 같이 못살겠으마 너거가 나가서 살아라. 너거 이 집 내가 돈 벌어서 산 집인거 알제?”

 이 말을 들은 외숙모는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나가라니? 어딜 나가라는 말입니꺼? 우리는 나가서 길바닥에 죽으라꼬?”

 “야! 정자. 니 너무 하는거 아이가? 나가라니? 이런 없는 집에 시집보낸 것도 억울한데 나가라니? 우리딸 인생 물어내라! 그라마 나가께!”

 외숙모는 악을 썼고 안사돈까지 거드는 바람에 우리엄마는 쫓기듯이 외갓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외할머니는 대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모들 밥을 해주면서 딸들과 살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근처 빌딩에 취직해서 청소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번 돈을 쓰지 않고 꼬깃꼬깃 꿍쳐두었다. 역시 아들에게 돈을 줄 심산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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