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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어느날 전생에 도착했다.
작가 : Ju34
작품등록일 : 2020.9.15

전생의 삶을 다시 살게 된 하얀.
다시 돌아오게 된 그녀로 인해 남겨졌던 도윤과 준이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이 곳에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3.나에게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빛이다.
작성일 : 20-09-16 19:19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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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현실감이 느껴져 깊은 한숨과 함께 준이가 머리를 쥐어짰다.

 “도윤 작가님 댁으로 갈까요?”

 묵묵히 운전만 하던 기사가 뒷 거울로 준이를 슬쩍 바라보고는 말했다.

 “네. 부탁 드려요.”

 도윤의 집으로 가는 내내 준이는 이 상황에 대해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문장은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췄는데도 불구하고 준이가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기사가 뒤돌아 준이를 보며 좀 더 큰 목소리로 한번 더 말했고 그제서야 도윤의 집 앞임을 알게 되었다.

 “기사님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동해야 할 일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네. 그럴게요. 조심이 들어가세요.”

 차가 떠나는걸 보고 나서야 준이가 문 앞 초인종 앞에 섰다.

 어제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는 누르지 못했지만 오늘은 무조건 눌러야만 한 다는 거다.

 띵-동.

 힘겹게 손가락에 힘을 주어 초인종을 눌렀다.

 한 참 뒤, 도윤이 현관을 나와 대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저에요. 준이.”

 굳게 닫혀있던 대문이 열리고 도윤이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준이를 맞이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 있는 거니?”

 “…….”

 도윤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준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아직까지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기 때문에 애꿎은 입술만 지그시 깨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도윤은 더더욱 걱정스런 눈빛으로 준이를 바라보면서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방금 전 까지 글을 쓰고 있었는지 응접탁 위가 원고지와 종이들로 가득했고 도윤이 서둘러 치우기 시작했다.

 “하하. 신간을 쓰려고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느라 어지럽혔구나. 앉아있으렴. 치우고 귤피차를 내주마. 방금 마시려고 끓이고 있었는데 때마침 잘 왔어.”

 “네.”

 어질러져 있는 응접탁 위를 도윤이 하나 둘 정리하자 원고지들 속에 숨어져 있던 책 한 권이 보였다. 읽다가 중단해두었는지 펼쳐진 채 뒤집어져 있었다.

 [백 목련화]

 준이가 책의 제목을 보며 조용히 소리 내어 읽었다.

 “준이 네가 전에 읽는 걸 보니 나도 오랜만에 읽어 보고 싶어져서 꺼내서 읽고 있는 중이란다. 내가 쓴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는 자체가 아직은 쑥스럽긴 하지만…”

 도윤이 멋쩍은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책도 치워버렸다. 어느 새 깨끗해진 응접탁 위로 도윤이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는 차 두 잔을 내어왔다.

 “자, 마시렴.”

 “감사합니다.”

 따뜻한 한 모금에 어지럽혀있던 머릿속이 싹 씻겨나간 준이가 입을 떼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응? 왜 그러니?”

 “혹시 선생님 저희에 대한 소문…. 알고 있으신가요?”

 준이의 물음에 도윤이 알고 있다는 듯 말 없이 지긋이 웃었다.

 “알고 계셨어요?”

 땡그래진 눈을 하며 준이가 되물었다.

 “녀석, 놀라긴. 신경 쓰지마렴. 사람들 흥미가 떨어지면 잊혀지는 것이 소문이지 않니.”

 “죄송해요. 아마 내일이면 다시 시끄러워질지도 몰라요.”

 “응?”

 “오늘 다른 출판사에서 개최하는 파티가 있었는데 사고 쳤어요. 선생님과 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들어서 사고를 좀 크게 쳤는데……. 아마 내일이면 사람들 입방아에 살이 더 덧붙여서 오르내릴 지 몰라요.”

 “그 사고란 것이 사람을 때렸나 보구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준이가 깜짝 놀란 눈을 하며 고개를 들어 도윤을 바라봤다.

 “녀석, 토끼 눈을 하고 놀라기는.”

 “선생님도 설마 그 자리에 계셨어요?”

 “준이 네가 오른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하니까, 상처도 좀 있는 거 같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내 추리가 맞았구나.”

 “죄송합니다. 편집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는데 선생님께 피해를 끼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준이가 자리에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제 글로 인해 편집장님과 출판사에 좋지 못한 소문의 중심이 되게 한 점, 저 역시 사과 드립니다.”

 도윤도 일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예상치 못한 도윤의 사과에 준이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것으로 쌤쌤이 된 거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렴.”

 그리고는 도윤이 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당장 내일 어떤 후 폭풍이 일어날 지는 모르지만 견뎌내고 버틸 수 있을 거 같다는 위로가 되어 불안과 걱정으로 예민했던 마음에 긴장이 풀렸다.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 혼자서 들려왔던 소문들을 묵묵히 상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속상해 마음이 울컥해져 준이의 눈은 벌써부터 눈물로 차 올랐지만 애써 도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준이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도윤이 그의 상처 난 손을 따뜻한 두 손으로 포개어 쥐며 같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정말 신경 쓰이지 않는 일이었고 지금도 그래. 그러니 준이 너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당황한 준이가 얼른 두 손으로 두 눈을 쓸어 닦았지만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바로 멈추지 않았다.

 “으이구- 우리 준이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큰일이야.”

 “안 울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훌쩍이며 울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준이가 대답했고 도윤이 그런 준이를 귀엽단 눈빛으로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선생님, 왜요?”

 눈물이 그렁한 채 코를 훌쩍이며 팔자 눈썹을 한 채 준이가 도윤을 바라봤다.

 “아! 미안, 미안하구나. 내 앞에서는 아이 같은 네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구나.”

 “선생님, 또 저를 아이 취급 하시는 거에요?”

 입을 삐죽 내밀며 준이가 일부러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모처럼 집에 왔으니 저녁 먹고 자고 가렴.”

 “선생님 작업 중이신 거 아니에요?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구상만 하는 중이어서 글쓰기는 시작도 안 했는걸. 그리고 편집장님이랑 상의 할 부분도 있고…….”

 “어떤 거요?”

 “차차 하자꾸나. 준이 너도 밥은 아직 인 거지?”

 “네.”

 “그럼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볼 테니 천천히 씻고 나오렴.”

 준이가 익숙하게 안방으로 들어가 붙박이장을 열었다. 한 구석에 가지런히 그의 옷이 개어져 있었다.

 갈아 입을 옷과 수건을 들고 익숙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컵에 나란히 놓여있는 칫솔을 보고 준이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정신차리자.”

 따뜻한 물로 찰랑거리는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그니 몸이 나른해지면서 바짝 붙잡았던 정신도 나른해지기 시작한다. 도윤의 모습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준이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오늘 친 사고로 아직 맞이해야 할 큰 산이 하나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냥 그 어떤 생각도 없이 그저 도윤과 같이 있는 이 평범하고 보통의 일상을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볼이 발개진 채 준이가 욕실을 나왔다.

 “딱 맞춰서 잘 나왔어.”

 식탁 위에는 방금 완성 된 듯, 국수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잘 먹겠습니다.”

 준이가 한 젓가락을 하는 동안 도윤은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준이를 지켜봤다.

 “어? 선생님, 진짜 맛있어요. 저번에 해주셨던 거보다 더 맛있는데요?”

 “그러니?”

 “네. 그러고 보니, 항상 두 번째로 해주시는 음식이 더 맛있었던 거 같은데요? 저번에 해주셨던 계란말이도 처음보다 두 번째가 더 맛있었고…….”

 표정에서부터 물음표가 보이는 준이의 얼굴을 보며 도윤은 말없이 그저 눈웃음만 지었다.

 “이유, 말 안 해주실 거에요?”

 “나 혼자 알고 싶은 비밀이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지만 도윤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미소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함께 설거지를 마친 두 사람이 다시 거실로 나와 긴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응접탁 위에는 다시 종이뭉치들과 책으로 어질러져 있었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 두 잔도 함께 놓여 있다.

 “선생님 단편 소설을 장편소설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 정말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혹시나 독자들이 우려먹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편집장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어 마음이 놓입니다.”

 “단편으로 끝나버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데요. 이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만이 다시 이어나간다는 것이 섭섭해요. 그나저나 어떤 단편소설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걸요?”

 “편집장님이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서 제 글들을 읽어오셨으니 어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좋을 지 잘 아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흠…….”

 준이가 위에 놓인 책들과 원고지들을 진지한 눈으로 샅샅이 훑어 읽더니 긴 고민 끝에 도윤에게 원고지 묶음 하나를 건넸다.

 “이 작품 어떨까요? 선생님이 처음으로 쓰셨던 글이자 선생님을 소설가로 등단 시켜준 단편소설. 결말이 같은 운명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두 주인공의 만남으로 끝나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가장 수월하면서 어색하지도 않고 기존의 이야기를 침범하는 일도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의 선생님을 있게 해준 소설이기에 독자들 역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게 분명하고,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지 못하는 책이기에 이 소설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 적으니 원작을 재판 할 수도 있어서 출판사 입장에서는 판매율을 올릴 수 있어 더할 수 없이 좋기도 하고요.”

 “너무 오래된 책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편집장님 선택을 신뢰하니 이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 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편집장으로서 생각이고, 독자로서 말하자면 결말 그 후 글로 남기지 않은 그 뒷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한 책 중 단연 제일먼저 손꼽히게 되는 책이에요.”

 “그렇게 말해주니 실망스럽지 않게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구나.”

 준이가 헤헤거리며 웃었다.

 “왜 그러니?”

 “좋아서요.”

 “응?”

 “선생님이 편집장으로 저를 보실 때는 거리를 두어 존댓말을 쓰고 준이로 저를 보실 때는 다시 거리를 좁혀 편하게 말 하시는 부분이요. 새삼스럽지만, 갑자기 좋아서요.”

 “녀석, 싱겁기는.”

 준이가 배시시 웃었다. 아이같이 해맑은 그의 모습을 보니 도윤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나.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 새 시침과 분침이 12에 도달해있었다. 옆을 바라보니 준이가 떨어질 듯 말 듯 책을 손에 쥐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준아, 방에 들어가서 자렴.”

 준이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쥐어진 책을 빼내면서 그의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준이가 겨우 눈을 떠 멍한 채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준아, 방에 들어가렴.”

 “저 안잤어요. 저 책 읽고 있는데…”

 그러면서 슬며시 옆으로 몸을 치우치더니 내 다리를 베고 누웠다. 아무래도 준이가 잠에 취한 모양이다.

 “준아?”

 “…….”

 “들어가서 자렴.”

 “저 안자는데요.”

 말과 다르게 이미 쌕쌕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내일 아침에 어떻게 골려 놓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분명 얼굴이 시뻘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할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지는 것이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아이다.

 혹여 춥지는 않을까 싶어 반대편에 있던 담요를 끌어오려고 슬쩍 움직였더니 준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다리를 끌어 안는다.

 “선생님 안돼요. 싫어요. 제발요.”

 그 때 들었던 그 목소리에 몸이 움찔거렸고 바로 움직였던 몸을 원상태로 돌려냈다.

 내려다 본 준이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더더욱 내 다리를 꼭 끌어당겼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 날,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 간 걸까?

 혹여 놓칠까 꼭 끌어당기고 있는 그의 손길이 마음을 아려오게 만들었다. 괜찮다며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고, 이내 힘을 꼭 쥐고 있었던 손에 힘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잔뜩 찡그리고 있었던 미간 역시 풀어졌다.

 평온하게 곤히 잠들어 있는 준이에게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났었던 그 어린 꼬맹이가 지금은 이렇게나 든든한 편집장으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가끔씩 아이 같은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가도 또 가끔씩은 눈부시게 멋진 모습에 달라 보이기도 해 새롭기도 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잠꼬대를 하면서 눈물이 고였었는지 밤하늘에 내리쬐는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준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손이 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닿을락 말락, 그 찰나의 순간 손이 멈칫거렸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지 눈을 뜨니 천장이 보였고, 안락의자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준아?”

 대답이 없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정오였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응접탁 위에 놓인 쪽지 하나가 보였다.

 [선생님을 깨울 수 없어서 먼저 가볼게요. 언제 일어나실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밥상을 차려놨으니 드세요. 그리고 죄송해요. 이유는 모르지만 눈을 뜨니까 선생님 다리를 베고 누워있더라고요. 저 때문에 선생님이 불편하게 앉아서 주무시고 계셔서 더더욱 깨울 수 없어서 이렇게 조용히 가보겠습니다.]

 어떤 표정으로 이 글을 썼을지 예상이 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식탁 위에는 밥상보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달걀 찜이 있고 그 옆에 또 쪽지가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들어 보는 거라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음식을 보니 예전 그 때가 기억나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공모전 발표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이 더 초조해져만 갔다.

 집에 가만히 있으려니 불안과 초조함이 더 극에 달하는 느낌이 들어서 작가 선생님들을 뵐 겸, 글이나 쓸 겸, 겸사겸사 출판사에 가보았다.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간다는 자체가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등단하지 못한 예비 소설가들에게 열려 있는 출판사는 그 곳 밖에 없었기에 현재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원고지도 같이 챙겨 발걸음을 향했다.

 도착해서 선생님들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새롭게 쓰고 있는 이야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읽기 위해 출판사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출판사 전용 도서관에 들어가 한 손 가득 책을 들고 나오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책을 떨구고 말았다.

 “도윤 선생님!”

 “우왓.”

 “앗, 죄송해요 선생님.”

 “준이구나. 아니야. 내가 혼자 놀랐는걸 뭘.”

 “그런데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러니? 한동안 집에만 있어서…….”

 “선생님 혹시, 점심 드셨나요?”

 “점심? 먹긴 했는데…….”

 “아! 아아, 그러시군요.”

 점심을 먹었다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준이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등 뒤로 숨겼다. 당황해 하는 준이의 얼굴을 보니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먹긴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가볍게 먹어서 허기가 지긴 한데……”

 “정말요?”

 준이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어쩜 저렇게 자기 감정에 투명할 수 있을까, 그의 순수하고 투명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 제가 도시락을 쌌는데 같이 드실래요?”

 “도시락?”

 “네. 어……. 그게… 누이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 먼저 가버려서……”

 분명, 그 이유가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아 말을 지어내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기는 했지만, 깊숙하게 파헤칠 이유는 없어 그의 거짓말에 속아주기로 했다.

 “그러자꾸나.”

 내 말에 배시시 웃는다. 16살, 소년의 얼굴에서 10살 처음 만났었던 꼬맹이의 그 순수함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그를 볼 때마다 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준이와 함께 야외쉼터로 가 앉았다.

 공모전 준비로 조금은 예민해져 있었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는데 이렇게 앉아 봄 기운 가득 담긴 봄바람을 코끝으로 느끼니 새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섭게 불어 시렸던 바람이 어느새 따뜻한 봄으로 가득하다.

 “선생님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그래?”

 “네.”

 “준이 네 덕에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는 거 같아 그런가 보다.”

 싱긋 웃는다. 그러다 어색함을 느낀 건지, 아니면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종이가방에 들어있던 도시락을 서둘러 꺼냈다.

 “제가 만든 것이라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치찌개랑 달걀 찜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준이 네가 만들었다고?”

 “아 진짜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니 다행이에요.”

 “그럼 잘 먹을게.”

 “네!”

 먹으려고 젓가락을 드는데 준이의 시선이 너무나도 뜨거워 민망해졌다.

 사실, 밥을 먹은 지 얼마 안되어서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저렇게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아이를 보자니, 차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입 먹자마자 준이가 묻는다.

 “어떠세요?”

 “준이 너, 요리에 소질이 있나 보다. 맛있어.”

 “정말이요?”

 “그럼.”

 “다행이다.”

 “응?”

 “아니, 아니에요.”

 밥을 먹는 내내 준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물어볼까 싶었지만 항상 나에게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는 아이기에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일이 있나 싶어 묻지는 않았다.

 준이와 밥을 먹고 나서 다른 작가님들을 만났는데 다들 나를 보며 묘한 웃음들을 짓고 있었다.

 “선생님들, 무슨 일 있나요? 왜 웃고 계신 건지…….”

 “도윤이 자네는 좋겠어 그래.”

 “네?”

 “자네를 그렇게 좋아하는 팬이 있으니 다들 부러워서 그런 걸세.”

 “저에게요?”

 “준이 말일세.”

 “준이요?”

 “아… 이거 말을 해줘도 되려나.”

 “대체 무슨 일 이길래요?”

 “준이가 이 주 전부터 계속 도시락 들고 자네를 기다렸었어. 자네 생일이 곧 다가오는 데 그날 일이 있어서 축하를 못한다면서.”

 “아…….”

 “듣기로는 매일 자기가 직접 만든다고 그러던데, 세상에 그런 팬이 어디 있겠나.”

 “녀석도 참.”

 “자네가 늦게 온 덕분에 아마 그 녀석 이 주 동안 점심은 김치찌개랑 달걀 찜만 먹었을 걸세.”

 “저에게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그 녀석이 어찌나 비밀이라고 신신당부 하는지… 그러니까 자네는 못 들은 걸로 해주게나.”

 과일도 제대로 깎지도 못하는 요리에 무신경한 녀석이 손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서툰 손으로 만들어왔을 과정들을 상상하니 너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아무런 존재가 아닌 나를 이렇게나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대가 있어 지금까지 막막하게 글을 쓰는 시간들을 버텨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만들어 지지 않으면,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걸쳐 써온 이야기들이 나만 아는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몇 번의 좌절로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절망감도 함께 쌓여 갈 수 있었는데 옆에서 언제나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면 좌절감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힘을 낼 수 있었고 꿋꿋하게 견뎌 올 수 있었던 거 같다.

 나에게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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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너와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나는 이걸 무엇… 2020 / 9 / 16 334 0 5090   
6 6.그녀의 존재로 선생님의 깊은 절망과 슬픔… 2020 / 9 / 16 302 0 4589   
5 5.내가 그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설렘과 떨림, … 2020 / 9 / 16 310 0 4038   
4 4.미래에서 보면 지금의 복잡한 것들이 아무… 2020 / 9 / 16 304 0 4718   
3 3.햇살이 그의 손을 비추어 그의 손만 유독 빛… 2020 / 9 / 16 313 0 5417   
2 2.너와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나는 이것을 무… 2020 / 9 / 16 310 0 3149   
1 1. 내리고 나니 느껴지는 낯선 공기와 낯선 냄… 2020 / 9 / 16 514 0 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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