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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섀도 햇
작가 : 다온하람
작품등록일 : 2020.9.11

학교 사람들의 뇌가 해킹당했다!


한 해커의 소행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학교.

매일 접속기를 통해 가상현실 학교 서버로 등교하던 학생도,

전자뇌를 달고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는 교사도,

뒤틀린 기계를 몸에 달고 비명을 질러대는 짐승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지옥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학교 안.

구조대도, 구세주도 없는, 오직 놈들만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그들은 아직 숨쉬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살아남아 일상을 지키는 것.

 
13화
작성일 : 20-09-16 18:00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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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하랑은 방패를 들어 그의 움직임을 살폈지만, 그는 그들을 바라볼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공기가 팽팽하다. 하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 야?”

 

  얼굴은 그들의 또래로 보였다. 그렇다면 학생일 텐데.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무언가에 홀린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도리가 뛰쳐나갈 것 같이 자세를 낮추자 하랑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너…….”

 

  하랑이 입을 열자 그는 화들짝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 어…….”

 

  그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빛으로 부들거렸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웅크렸다.

 

  불안하다. 그 눈동자에 서린 어렴풋한 느낌은 뭐지? 이대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동시에 그는 바닥을 박찼다. 총알처럼 손이 놈의 머리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놈은 눈동자에 가득 서린 광기를 터뜨리듯 비명을 토해냈다. 시끄러운 울림이 온 공간을 할퀴기 시작한다.

 

  성대가 터질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고 거친 비명이었다. 고막을 터뜨릴 것만 같은 소리에 그들은 귀를 틀어막고 비틀거렸다. 놈은 온몸을 뒤틀면서 계속 비명을 질러 댔다.

 

  “문, 문을!”

 

  하랑이 소리쳤지만 제대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랑은 놈에게 비틀비틀 다가가 대가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귀가 웅웅 울리는 가운데 놈이 바닥에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해늘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소리다. 그만큼 커다랗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듯, 열린 문 너머에서 시끄러운 비명이 날아들었다.

 

  “문을 닫아야.”

 

  하랑은 그대로 비틀거리면서 문고리를 잡으려 했지만 놈이 그의 발을 잡아챘다. 그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자마자 모도리가 휘청이면서 계단으로 향했지만, 놈은 이상한 신음을 흘려 대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

 

  하랑이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놈의 시선은 그녀의 발목을 향하고 있다. 설마, 아니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정에 가까운 의문은 현실이 되었다.

 

  의수의 손등 부분이 벌어지더니 무언가가 쏘아져 나갔다. 그대로 모도리의 발목을 잡아챈 그것은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 털썩, 모도리가 쓰러지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들려온다.

 

  아니, 소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명, 금속음, 비틀리는 소리. 놈들이다! 하랑은 놈의 의수에 대한 의문을 무시하고 삼단봉으로 놈의 어깻죽지를 지졌다.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축 늘어졌다.

 

  빨리, 빨리. 하랑은 연신 그 말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기었다. 모도리가 일어선다. 그는 계속 기어가면서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닫아!”

 

  모도리는 재빠르게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늦었던 것일까. 놈들의 손이 문을 턱 잡는다. 모도리가 당황한 듯 문을 닫으려 했지만, 단단한 의수가 문틈에 끼어 금속음만이 울려 퍼진다.

 

  모도리의 발이 놈의 손가락을 밟았다. 하지만 놈의 손이 늘어지자마자 놈들은 새로운 손을 뻗어 왔다. 한둘도 아닌 대여섯 개를 한 번에.

 

  “으!”

 

  하랑이 모도리의 옆에 붙어 문을 밀어붙였지만, 문 반대편에 있는 것은 수많은 놈들의 군체였다. 강화복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와 경호학과 학생일 뿐인 그들이 대처할 만한 힘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하랑이 어절을 끊을 때마다 둘의 발이 뒤로 조금씩 밀려난다. 급기야 제트 노즐이 푸른 불꽃을 뒤로 뿜어 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해늘과 나래가 주춤거렸다.

 

  “……야. 방 문 열어. 당장.”

 

  해늘이 말하자마자 나래가 코너를 향해 달려갔다. 해늘은 엘리베이터에 연결된 해킹 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것도 떼서 가져가야 한다. 그때, 모도리가 소리쳤다.

 

  “떼면 안 돼!”

 

  해늘이 움츠러들었다. 동시에 놈들은 더욱 흥분한 듯 문을 밀어붙였다. 하랑에게 달려가던 나래가 멈칫했다. 문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

 

  하랑이 고개를 쳐들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놈들의 비명은 복도를 가득 채운 채 그의 목소리마져 삼키고 말았다. 단지 비명과 금속음만이 남은 복도 위로, 놈의 비틀어진 발이 올라온다.

 

  문틈 사이로 몸을 빼낸 놈이 나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오른손으로 놈을 지졌지만, 선두에 선 한 놈이 쓰러진다 해도 놈들은 개의치 않았다. 댐에 구멍이 뚫린 듯 놈들의 파도가 점차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안 돼.”

 

  나래가 중얼거리자마자 문은 폭발하듯 쾅 열리고 말았다. 하랑과 모도리가 코너 너머의 복도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에 틀어박혔다.

 

  놈들의 파도는 비명과 함께 복도에 밀어닥쳤다. 나래는 눈앞의 광경을 넋 나간 듯 바라보다가 뒤돌아 바닥을 박찼다. 모든 것이 슬로 모션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놈들의 손가락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쳤다.

 

  “나래!”

 

  해늘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들은 복도를 질주했다. 놈들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다.

 

  “너, 광학위장 있지!”

 

  나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늘이 마른침을 삼키고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먼저 달려나간 그가 다른 계단 문을 잡았다. 활짝 열린 문 너머에 놈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와!”

 

  나래는 비명을 지르면서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딱딱한 바닥에 부딪힌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해늘이 급히 문을 닫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켜!”

 

  그가 작게 소리치자마자 나래가 의수를 흔들었다. 순식간에 몸이 투명하게 변해 간다.

 

  광학위장이 다 씌워지자마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벽에 부딪힌 문이 삐걱거렸다. 문지방을 밟고 넘어온 놈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들을 찾았다.

 

  나래와 해늘은 계단 벽에 달라붙어 숨을 죽였다. 긁는 듯한 소리만이 놈들의 입가에서 흘러내린다. 귀를 할퀴는 듯한 거친 소리였다. 식은땀이 턱 아래에 맺혔다.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놈들이 하나둘씩 비명을 지르며 돌아갔지만, 아직 몇 놈이 남아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왜 안 돌아가는 건데!’

 

  나래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지껄이지만 놈들에게는 들릴 리가 없었다. 오히려 놈들은 손가락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들을 찾아 고개를 비틀 뿐이었다.

 

  둘은 더 바짝 붙었다. 서로의 체온이 불쾌하게 다가오지만, 놈들만 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러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 놈들이 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놈들은 돌아간 건지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해늘이 실눈을 떠 눈앞을 확인했다.

 

  “끼이이익.”

 

  놈의 손가락이 코앞까지 와 있다. 놈은 이상한 소리를 흘리면서 그들의 눈앞을 휘저었다. 놈의 대가리가 천천히 다가온다.

 

  괴상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었다. 힘 빠진 동공에 서린 광기만이 선명하다. 놈은 아가리를 찢어지도록 벌린 채 그들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냄새를 맡은 건가? 씻지 못했기 때문에? 오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가운데, 마른침이 입안에 고인다. 삼킬 수도 없는 그것에서는 쓴맛이 나는 것 같았다.

 

  놈이 손가락을 뻗어 온다. 정확히 나래의 눈앞을 노리고 있었다. 해늘은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뛰쳐나가야 하나? 나래가 죽는다면 해늘도 죽는다. 광학위장이 없을 테니.

 

  그것보다도 멍청하게 나래가 죽는 걸 지켜보라고? 이곳에 남은 건 놈 하나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놈을 후려치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해늘의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말려들었다. 꾹 쥔 손바닥이 뜨거웠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때 들려온 비명이 있었다. 놈들의 찢어지는 그것과는 달리 묵직하되 고통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하랑! 해늘의 머릿속에 그의 모습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 전에 눈앞의 놈이 먼저였다.

 

  나래가 흠칫 떨면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하지만 놈은 이미 비명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놈은 시끄러운 비명을 남기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나래는 광학위장도 풀지 않고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왜인지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놈들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당최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랑, 하랑은. 모도리도.”

 

  나래가 중얼거리면서 발을 내딛었다가 도로 벽에 기대섰다. 그녀는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약간 거리를 두고 그녀의 옆에 앉은 해늘은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가도 지금은 쓸모가 없겠지.”

 

  “그렇겠지.”

 

  “씨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살아남아야지.”

 

  “걔네는.”

 

  나래는 입을 다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해늘은 식은땀을 닦아내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야.”

 

  “왜.”

 

  “나 봐봐.”

 

  나래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이마를 맞댔다. 그녀가 인상을 팍 쓰면서 주먹을 쥐는 찰나, 그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했다.

 

  “걔네 하랑이랑 모도리야. 하랑은 경호학과였고, 모도리는 만능 또라이고. 그런 걔네들이 설마 우리처럼 무능하겠냐? 멀쩡하게 놈들 갈비뼈나 후려치고 있겠지. 그렇지?”

 

  “…….”

 

  해늘은 그녀의 머리를 놓고 이마에 묻은 땀을 털어냈다.

 

  “우리는 우리끼리 살아남자고. 걔네들은 충분히 할 수 있어. 뭣하면, 뭐.”

 

  해늘은 의수를 흔들어 홀로그램을 띄웠다. ‘연락처’라고 쓰인 네모 칸 안에 프로필이 여럿 나열되어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 그중 하나를 클릭한 그가 나래에게도 보이도록 설정을 건드렸다.

 

  ‘하랑. 010-XXXX-XXXX.’

 

  “문자라도 해 보든지? 막힌 건 바깥과의 연락이지 안에서는 될 테니까.”

 

  “걔네가 답할 수는 있겠냐?”

 

  “누가 알아. 지금쯤 해킹 툴 뽑아서 문 열고 있을지도 모르지.”

 

  해늘은 입을 다물려다가 덧붙였다.

 

  “참고로 나도 너만큼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좀 닥쳐. 말할 거면 평소처럼 나한테 지랄을 하든지.”

 

  나래는 피식 웃고는 뒤통수를 벽에 기댔다. 해늘은 아직도 거칠게 뛰고 있는 가슴을 어루만졌다. 뜨겁다. 방금까지 공포가 그 이유였다면, 지금은 걱정과 불안이겠지. 손끝이 차가운 느낌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 나래가 입을 열었다.

 

  “야. 무능한 해늘.”

 

  “이제 지랄을 할 생각이 좀 들었나 봐?”

 

  “어. 많이 들었다. 일단 문자라도 하나 보내 놓자. 나중에 대답하라고.”

 

  그녀는 의수를 흔들어 하랑의 프로필을 띄웠다. 이미 한참 전에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연락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이왕이면 전부 끝나고 나서 연락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홀로그램 위로 글자가 하나둘씩 쌓여 갔다. 짧은 타이핑에 이어서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홀로그램이 픽 꺼졌다가 문자가 보내졌다는 글자가 떠올랐다.

 

  나래는 손을 툭 떨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해늘이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뭐라고 보냈냐?”

 

  “적당히 살아 있으면 대답하라고.”

 

  “너답네.”

 

  그들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문 너머에 있을 하랑과 모도리를 걱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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