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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섀도 햇
작가 : 다온하람
작품등록일 : 2020.9.11

학교 사람들의 뇌가 해킹당했다!


한 해커의 소행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학교.

매일 접속기를 통해 가상현실 학교 서버로 등교하던 학생도,

전자뇌를 달고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는 교사도,

뒤틀린 기계를 몸에 달고 비명을 질러대는 짐승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지옥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학교 안.

구조대도, 구세주도 없는, 오직 놈들만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그들은 아직 숨쉬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살아남아 일상을 지키는 것.

 
11화
작성일 : 20-09-14 18:00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6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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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늘의 방은 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깔끔하고 정돈된 풍경에 그들은 미소를 지을 법도 했건만, 그들의 얼굴은 급한 기색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모도리를 침대에 눕히고, 해늘이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땀방울이 사라진 얼굴에는 달뜬 홍조만이 올라와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해늘과 나래를 뒤로하고, 하랑이 나서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모도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둘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그렇진 않겠지. 뭐지? 병인 건가?”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도리에게 도움을 받았다. 생판 처음 본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져도 당황할 판에 그녀가 저렇게 되어 있으니 머릿속이 어지러울 수밖에.

 

  마침내 하랑이 확인을 마친 듯 그들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는 무거운 표정을 깔고 그들에게 손짓했다. 둘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나아가는 무릎걸음 한 번마다 쿵쿵 떨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잘못되면 어쩌지? 저렇게 도와준 앤데? 저렇게 작은 애가 눈앞에서 쓰러진다고? 아니, 애초에 양호실은 7층에나 있는데?

 

  해늘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하랑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래가 해늘의 옆에 앉았을 때 하랑은 입을 열었다.

 

  “쟤는 지금.”

 

  지금 뭐? 문제가 커진 건가? 지병? 충격으로 인한 기절? 아니면 심각한 병이라던지? 나가야 고칠 수 있는, 뭐 그런 병이라던가?

 

  하랑은 엄지손가락을 뒤로 젖혀 그녀를 가리켰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고 있는 것 같아.”

 

  “전기충격기 켜.”

 

  “야, 이 새끼야. 놀리냐?”

 

  나래의 손에서 노란빛이 파직거리자 하랑이 웃으며 몸을 뒤로 뺐다.

 

  “멀쩡하잖아.”

 

  “벌써부터 장난을 치는구만.”

 

  해늘은 구석에서 리코더 하나를 꺼내 위협적으로 손바닥을 탁탁 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안도가 퍼져 있었다. 나래도 입으로는 살기등등한 말을 하고는 있어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모여 앉은 그들은 모도리를 바라보았다.

 

  “근데 왜 잠든 거지? 표정이 그런 게 졸려서 그런 거였나?”

 

  “그런 것 치고는 꽤 잘 뛰어다니던데. 네가 보기에는 어때?”

 

  “기술로는 나보다 더 잘 싸울걸. 맨손으로 강화복 하나만 입고 싸웠으니까.”

 

  “탱커와 딜러의 차이인가.”

 

  나래가 중얼거리자 해늘이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양손을 뻗으며 달려드는 그녀를 막으면서 그는 하랑에게 말했다.

 

  “일단 자게 두고, 일어나면 물어보는 걸로 하자. 그 전에 할 일도 있을 것 같고.”

 

  “있었나?”

 

  나래가 고개를 갸웃하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해늘은 문 너머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웬만하면 16층을 잠가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또 놈들 올라오기 전에.”

 

  “아…….”

 

  놈들은 특별한 자극이 없는 한 층을 옮겨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한 일은 사전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게 좋을 테지. 그쪽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나래는 해늘이 드디어 쓸모있는 짓을 했다며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노곤한 몸이 푹신한 침대에 파묻히자 머릿속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방금 살아남은 거 맞지? 며칠 전부터 생각했던 식당에 직접 다녀와서 제대로 된 음식을 챙겼다. 배부르게 죽도 먹었고 앞으로도 배부를 예정이다. 그뿐이랴, 압축 스테이크에 여러 음식을 베이스로 한 캡슐도 있다.

 

  그녀는 양팔을 하늘 높이 쭉 펼쳤다. 슬프지만 행복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음악계 남학생 방이렷다. 해늘의 룸메이트 중에 누가 있었지? 긴장이 풀려 들기 시작한 실없는 생각에 그녀는 괜히 방을 둘러보다가 눈을 감았다.

 

  곧 둘만이 남은 방에는 느긋한 숨소리만이 유유히 흐르게 되었다.

 

 

 -

 

 

  계단 문이 조용히 닫혔다. 조심스레 문을 닫은 해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을 잘못 닫았다간 놈들이 몰려들지도 모르는 일, 문고리를 쥔 손을 타고 심장 박동이 쿵쿵거렸다.

 

  “이거 말고는 다 닫혀 있었나?”

 

  해늘이 묻자 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복도를 조용히 걸으면서 식당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자명종은 왜 울리지 않았을까?

 

  “우리가 자명종을 저기에 매달아 놨었지?”

 

  “아마도.”

 

  “확인해 보자.”

 

  하랑이 걸음을 서둘러 복도 모서리 너머로 사라졌다. 해늘은 그의 뒤를 따라 자명종이 매달려 있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코너를 돌자 엘리베이터 앞에 딱딱하게 굳은 그가 보였다.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려던 해늘도, 구멍 뚫린 유리관을 보자마자 똑같이 그 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구멍에는 갈고리가 걸려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중간에서 한 번 묶인 로프가 자명종을 드리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휑한 구멍만 남은 유리관이었다.

 

  “……왜 없지?”

 

  “……자연적으로 떨어졌다, 그런 건?”

 

  해늘이 중얼거렸지만 하랑은 구멍을 바라보며 아니라고 할 뿐이었다.

 

  “그 갈고리는 웬만해서는 안 떨어져. 유리관 표면에 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을 거야. 자연적으로는, 응. 자연적으로는 말이야.”

 

  하랑이 고개를 돌려 해늘을 바라보았다. 이어 해늘도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했다.

 

  “누가 떨어뜨렸다?”

 

  “생존자일까?”

 

  “모도리도 살아 있었으니 그럴지도 모르지. 식당에 내려온 건 모도리도 마찬가지니 물론 아닐 테고.”

 

  “모르겠어. 생존자인지, 해커의 짓인지.”

 

  잠시 머뭇거리던 하랑은 말을 이었다.

 

  “문을 한 번 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러게.”

 

  그 즉시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 문을 모조리 두드려 보고, 전부 걸어 잠그고, 다시 한번 돌아 확인하고 나서야 그들은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유 모를 갈고리의 실종. 그들은 인상을 쓰고 한참을 현관에 서 있다가, 각자의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

 

 

  주객전도가 되어 버렸다. 모도리가 깨어나는 것을 맞이하려던 셋이었지만, 그날 저녁 일어난 것은 셋이 잠에서 깨어 책을 읽고 있던 모도리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중 나래가 눈을 비비면서 떡진 머리를 탈탈 턴 것이 조금 추가되어야겠지만.

 

  간단하게 물을 마신 셋은 각자 침대에 앉아 모도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피곤했느냐, 아니면 졸렸던 거냐, 그런 것들을 물으면서 그들이 생각한 대답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병이야.”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적당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해늘이나 나래조차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해늘은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옆 침대에 앉은 모도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병……?”

 

  “기면증.”

 

  하랑이 마른세수를 하는 가운데 나래가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모도리는 들고 있던 책을 내려두고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이번에는 한입 크기의 크래커였다.

 

  “그게 뭔데?”

 

  “갑자기 잠드는 거.”

 

  “그럼 밤에 잠을 안 자도 된다든지?”

 

  “아니, 그건 따로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한 번 자면 2시간부터 4시간. 하루에 한 번, 많으면 두세 번도 쓰러질 거야.”

 

  “그거 엄청 위험한 거잖아!”

 

  나래가 고개를 내밀면서 양팔로 침대를 짚었다. 나래의 고함에 하랑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 16층의 문이 모두 닫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잘못하면 놈들 코앞에서 픽 꿈나라로 가 버린다고? 씨발, 그거 영영 꿈나라로 이민하겠다는 거 아니야!”

 

  “꿈나라보다는 저승이야.”

 

  “개드립 칠 생각 없으니까 제대로 말해. 대체 왜 치료를 안 한 건데! 치매도 치료하는 세상인데!”

 

  나래는 놈들이 없어지자 물 만난 물고기라도 된 양 소리쳐 댔다. 덕분에 잠자코 듣고 있던 둘의 귀가 쨍쨍 울렸고, 모도리는 두 손가락으로 집고 있던 과자를 침대 위에 툭 떨어뜨렸다. 깜짝 놀란 건지 눈을 크게 뜨고.

 

  나래가 숨을 가다듬는 사이에 모도리는 그 표정 그대로 과자를 주워 입에 집어넣었다. 곧 그녀의 표정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미안. 시간이 없었어.”

 

  “공부? 그 시간 조금 할애해서 네 깨어 있는 시간에 투자하지 그랬니?”

 

  “대신 약이 있거든.”

 

  나래가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모도리는 당당하게 가방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그 속에 든 정사각형 패치를 바라보자 나래의 얼굴에서 안 그래도 없었던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그럼 왜 방금은 쓰러진 거야?”

 

  하랑이 묻자 모도리는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말했다.

 

  “미안. 안 졸릴 줄 알았지.”

 

  또라이. 분명 그런 별명이었지. 해늘은 모도리의 모습을 보고 그 말에 대한 격한 공감을 느꼈다. 이런 애를 분명 또라이라고 부르는 걸 거야.

 

  “앞으로는 어떡하게? 또 쓰러질 수도 있잖아.”

 

  “잠들기 전에는 졸려. 그때 붙이면 될 거야.”

 

  “방금처럼 싸울 때는?”

 

  “공백이 생긴 만큼 메꿀게.”

 

  “당당하네.”

 

  하랑은 벽에 등을 기대면서 한숨 내쉬듯이 말했다. 그의 뇌리에는 그녀가 보여준 몸짓의 선이 똑똑히 박혀 있었다. 유연하고 강력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강화복의 도움이 있을지언정 그 선은 간단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 자신감은 분명 실력에 대한 믿음이겠지. 그리고 하랑이 한참을 공들여 그 실력이란 놈을 쌓아올 때 그녀는 다른 것들도 겸하면서 그런 선을 그리게 된 것이다.

 

  기면증이란 병까지 달고서.

 

  “그만큼 메꾸기 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지 않아?”

 

  무언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랑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에 돋친 가시를 알아챈 둘이 하랑에게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단지 침대에 앉아 모도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니. 이게 아니라.”

 

  모도리는 그제야 표정다운 표정을 보였다. 살짝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지만, 그 방향에 있었던 해늘에게는 그것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리고 눈동자는 아래를 향하도록.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하랑을 마주 보고 말했다. 표정은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미안해.”

 

  정적이 흘렀다. 하랑과 모도리의 시선이 방 중앙에서 부딪쳤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둘은 이내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왜 저러는지 알아? 나도 알고 너도 알 거 같은데.

 

  저녁, 어두운 방에도 도시의 푸른빛은 들어온다. 그럼에도 역시 그 빛이 방을 밝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왜 이리도 둘의 얼굴은 선명한 것인지.

 

  하랑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툭 떨궜다. 그리고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이번에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다. 그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선 모도리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아닌 평소의 그것이었다.

 

  “아니, 내가 미안.”

 

  그는 딱 끊어지는 말투로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은 힘없이 떨어져 그림자에 가시가 난 것처럼 만들었다.

 

  그 후에도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제 생각만 이어갔다. 단지 푸른빛만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미미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하랑이 미안한 표정으로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을 무렵, 모도리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카드 할래?”

 

  그녀의 손에는 카드 더미가 쥐어져 있었다. 엉뚱한 제안에 해늘은 눈만 깜빡거렸다. 나래도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일 분 정도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카드 더미를 가리켰다.

 

  “홀로그램이 아니네?”

 

  “일부러 실물로 샀어. 할래?”

 

  “하자.”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분위기였다. 이런 기회가 있다면 놓칠 수 없지. 나래는 해늘을 침대에서 끌어 내렸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번지는 바닥에는 회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새삼 엉덩이로 느끼는 부드러운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나래는 괜히 카펫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려 보았다.

 

  “너도 와. 계속 그렇게 병든 것처럼 있지 말고.”

 

  “어, 어? 어어.”

 

  하랑은 나래의 말에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았다. 아직도 근심 어린 표정이 나래의 눈에 계속 밟혔다.

 

  “아, 근데 할 말이 있는데.”

 

  “아아아아. 싫어. 나중에 하자. 머리 아픈 거 싫어.”

 

  하랑은 표정을 굳히고 입을 반쯤 열려다가 다물었다. 해늘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아닌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의 몸짓이 오가고, 하랑은 찜찜함을 뒤로하고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모도리는 카드를 이리저리 섞고 각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들은 어설픈 손짓으로 카드를 손안에 그러모았다.

 

  홀로그램이 고장 나지 않고서야 직접 만질 일도 없는 카드가 손가락을 살며시 눌렀다.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도 매끄러운 표면이 용케도 손에 잡혀 있는 기분이었다.

 

  현물 카드는 허술한 편이었다. 살짝만 각도가 틀어져도 옆의 상대가 볼 수도 있고, 질이 영 좋지 않은 카드는 가끔 빛에 뒷면이 비쳐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카드를 떨어뜨려 패가 드러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삼 현물에는 옛날을 살아가는 향취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넌, 약간 옛날 사람 같아.”

 

  강화복을 입는다는 건 기계로 개조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까웠다. 하물며 바디 슈트처럼 온몬에 달라붙는 형식의 강화복이라면 더욱이 그랬다. 가끔은 기계의 틈새에 강화복이 끼일 수도 있으니까.

 

  골동품 카드에, 개조하지 않은 몸. 정말이지 백 년은 지난 시대에 살아가는 할머니 같았다.

 

  “내가 너희보단 더 미래 사람일지도 몰라.”

 

  “제4차 세계대전 말하는 건가? 그때는 진짜 멸망할지도 모르겠네.”

 

  “아득히 먼 미래야. 조커.”

 

  모도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흑백 조커를 내밀었다. 해늘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하랑을 곁눈질했다. 흑백 조커 위로 컬러 조커가 떨어졌다.

 

  다음 차례는 하랑이었고, 그의 손에는 꽤 많은 카드 더미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카드를 하나둘씩 세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카드를 바닥에 고이 내려놓았다.

 

  “파산.”

 

  하랑이 양손을 들었다. 푸른빛을 정통으로 맞고 있던 나래가 껄껄 웃으면서 그의 무릎을 탁탁 두드렸다. 하랑은 살짝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가한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때로는 모도리가 가져온 과자와 함께 카드 게임을, 때로는 책을 읽기도 했다. 머리 아픈 것들은 모조리 내려놓고 편안하게, 아무런 간섭도 없이.

 

  그렇게 이 주일이 지나갔다. 방구석에는 텅 빈 채 말라 버린 물통만이 가만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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