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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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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배경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이며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이젠 사라져가는 대가족세대와 시골의 마을공동체생활을 겪은 70,80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아이의 눈으로 부모님세대를 바라본 옛 이야기입니다.

 
봄에 먹는 음식들 & 농사준비
작성일 : 20-09-13 09:29     조회 : 40     추천 : 2     분량 : 8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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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에 먹는 음식들

 

 겨울이 지나고 나는 여섯 살이 되었다.

 늦겨울부터 밭에 난 냉이를 뜯어서 국을 끓여먹는다.

 겨울 찬바람을 견디고 땅 위에 붉그죽죽하게 난 냉이를 호미로 살살 캐면 기다랗고 하얀 뿌리가 죽 딸려나온다. 잠시 캐면 바구니가 그득 차는게 캐는 재미가 쏠쏠했다. 냉이를 캐서 모아다주면 엄마는 겨울무를 어슷엇슷하게 썰어서 멸치다시물에 함께 넣고 된장을 풀어서 빈약한 밥상에 올렸다. 지금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아무 때나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무엇이든 제철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맛볼수 있었다.

 2월 말에서 3월 초 즈음에는 채소가 귀한 때라 냉이의 향긋함이 참 좋았다.

  3월이 되면 아직도 겨울처럼 추웠다. 그래도 진달래가 산에 가득 피었다.

 우리고향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불렀다. 온 산이 벌갰다.

 구원자와 나는 산에 가서 참꽃을 꺾으면서 먹으면서 한아름씩 안고 돌아왔다.

 엄마는 가끔 찹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지진다.

 거기에 참꽃의 암술수술을 모두 따서 버리고 꽃잎만 물에 씻어서 건져놨다가 찹쌀부꾸미 위에 하나씩 꼭꼭 얹어서 뒤집어서 다시 한번 지진다. 아주 어릴적에 엄마는 참꽃에 설탕을 넣고 무쳐서 먹여주기도 했다. 3월쯤 되면 지하실에 저장해두었던 사과도 퍼석해지고 다른 과일이나 채소는 아직 나지도 않아서 먹을 것이 없을 때였다. 모두들 비타민이 부족해서인지 아이들 얼굴에는 마른 버짐이 피었었다. 그럴즈음 산에서 참꽃을 따와서 설탕이나 꿀을 넣어서 한 입 먹으면 입안에 상큼한 꽃향기가 퍼지면서 신선했다.

  아부지는 산에서 느릅나무가지나 굴피나무곁가지를 꺾어왔다.

 약이 되는 나무라서 가마솥에 삶아서 약감주를 만들어서 먹는다.

 엄마가 겉보리에 물을 주어서 싹이 트게 한다. 약간 싹이 텄을 때 그것을 햇볕에 바짝 말린다. 그런다음 그것을 싹 갈아서 삼베보자기에 싸서 물에 맛있는 당분을 빨아낸다. 꼬두밥을 지어서 엿기름을 짜낸 물과 약나무를 달여서 만든 물을 섞어서 약한 불에 서너 시간 두면 약감주가 된다. 자연의 단 맛이다. 약나무를 달여서 만들어서 약단술은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맛을 쌉싸름했다. 약단술은 찜통에 가득 담아서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께 갖다드린다. 단술이 더 삭아서 발효가 되면 막걸리, 탁주가 된다.

 하루는 아버지가 산에 갔다가 꿩알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겉은 알록달록한 검은 무늬가 있고 달걀보다 좀 작은 푸르스름한 알이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삶아서 주었다.

 꼭 달걀처럼 안에 노른자가 있고 흰자도 있었는데 모두 푸르스름한 색깔을 띠었다.

 어떤 꿩엄마는 알을 도둑맞아서 슬프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먹었다.

 꿩알에서는 약초같은 냄새가 났다.

  땅 많은 집에 시집간 작은고모는 딸기농사를 지었다. 아부지는 봄에 고모네 딸기밭으로 가서 딸기모종을 조금 얻어와서 산밑 과수원 끄트머리에 옮겨심었다. 손바닥만한 딸기밭에 하얀 딸기꽃이 피고, 벌이 붕붕 날아다니고 나면 좀 있다가 애기손톱만한 딸기가 조롱조롱 열리는 것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조그만 딸기밭에 가서 익은 딸기가 있나하고 보러가는 것이었다. 시골이라 과자를 파는 가게는 천리나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어린 나 혼자 과자를 사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돈도 없었고. 사과는 한여름이 지나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조그만 딸기밭에 가서 딸기가 익었나 하나하나 뒤적거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딸기는 연두색이었다.

 급한 마음에 딸기 끝이 조금만 붉어지면 한 개, 두 개 따서 먹었다. 아주 시그러운 맛이었다.

 

 이웃과수원끼리의 경계는 모두 탱자나무울타리로 쳐놓았다. 봄이 되면 무시무시한 탱자나무가시들 사이에도 연한 잎이 맺힌다. 그리고 연한 가시가 올라온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연하고 부드러운 가시들은 점점 억세지고 철통같은 방어를 할수 있게 가시들이 더 촘촘해진다.

 아무도 그 가시울타리를 뚫고 남의 땅에 침범할순 없다. 탱자나무가시는 여름이 되면 고디를 잡아삶아먹을 때 그 딱딱하고 배배꼬인 껍질에서 맛있는 살을 빼먹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

 우리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들 사이에 야생찔레나무가 하나 있는데 봄이 되면 찔레순이 돋아난다. 나와, 구원자 우리동네 아이들은 그 찔레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씹어먹는다.

 그냥 연한 고구마순같이 아무맛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길가에 있는 찔레순을 매일 꺾어먹었다.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싸그랑 싸그랑 소리가 나는게 씹는 맛이 있었다. 비타민이 부족한 봄에 우리들은 몸에 부족한 영양분을 가진 식물들을 본능적으로 찾아내었던 것 같다.

  밭둑엔 조그만 쑥이 돋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작아서 한참을 뜯어도 한 주먹이 안된다. 키워서 뜯어야한다. 봄처녀들이 우아하게 쑥을 예쁘게 다듬어서 뜯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뜯어서는 한 나절을 뜯어도 간에 기별도 안갈 양밖에 못 뜯는다.

 3월 하순에는 어린 쑥을 뜯어다가 멸치다시물에 어린 쑥을 넣고 잠시 끓인 후 된장을 풀어서 쑥국을 먹는다. 5월이 되면 쑥은 아이 손바닥만큼 키가 크고 밭둑의 쑥은 거름을 먹어서 유난히 퉁퉁하고 실하다. 쑥떡을 할 쑥을 캐기위해서 작은엄마와 사촌 뽀얀이, 할머니는 일요일 아침 일찍 우리집에 와있다. 오빠는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 있어봤자 일을 시킬 것이 뻔하니까 도망친 것이다.

  우리엄마와 작은엄마는 낫을 들고 밭둑이나 산기슭에 무성히 자란 쑥들을 여자들이 싸움할때 상대방 머리끄댕이를 확 잡듯이 쑥더미에서 쑥 한움큼을 웅켜잡는다. 그리고 낫으로 썩썩 베어낸다. 순식간에 긴 밭덤불에 가득한 쑥들은 벌초한 것처럼 사라진다. 그것들을 자루에 가득 담아서 몇 자루 질질 끌고 마당에 주르륵 붓는다.

 할머니, 엄마, 작은엄마, 아버지 나, 뽀얀이, 막둥이, 위선자 모두 쑥더미에 덤벼들어서 쑥 사이 사이 들어간 잡초를 골라내야한다. 쑥을 다듬으면서 흙도 털털 털어낸다.

 쑥과 함께 잘린 채 들어간 달래는 골라내었다가 점심때 된장찌개에 넣어서 먹는다.

 빨리빨리 손을 놀려서 전투적인 자세로 쑥을 다듬어야한다. 안그러면 쑥이 시들어서 그만큼 영양분이 달아난다고 한다.

 막둥이와 위선자는 금세 지겨워져서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면서 나가떨어진다.

 뽀얀이는 하얀 손톱에 시퍼런 쑥물이 들었다고 징징거린다. 입고 온 원피스와 양말에도 쑥물이 들어서 푸르죽죽하다. 할머니는 시끄럽다며 빨리빨리하라고 모두를 다그친다.

 여럿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두어시간이 지나자 쑥 두 자루를 대충 다 다듬었다.

 엄마와 작은엄마는 냇가 빨래터로 가서 쑥을 대강 씻어왔다. 그리고 지하수로 깨끗하게 다시

 씻어서 구멍이 숭숭난 커다란 소쿠리와 체에 담아서 물기를 빼고 있다.

 쌀도 물에 담가서 불리고 있다. 쑥은 가마솥에 삶아서 건져서 찬물에 헹군다음 물기를 짤 것이다. 그리고 퉁퉁 불린 쌀도 건져서 통에 담는다. 콩가루를 만들 누런 콩도 따로 보자기에 싼다. 이렇게 다 준비하면 아버지가 방앗간으로 실어나른다. 몇 시간이 지나면 말랑말랑하고 고소한 노랑콩가루를 뒤집어쓴 쑥떡이 완성되어 집으로 온다.

 엄마는 말랑말랑한 떡을 꺼내어 한 가락씩 우리에게 맛을 보라고 준다. 모두들 말랑말랑하고 향긋한 쑥떡을 한 가락씩 들고 맛있게 먹어본다. 치즈처럼 쭉쭉 늘어지는게 쑥떡의 매력이다.쑥떡은 다 좋은데 콩고물이 떨어져서 불편하다.

 “옛날에는 지금쯤 보릿고개라 먹을 게 없어서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그랬다. ”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곡식 한 줌 넣고 쑥을 한아름 넣고 가마솥에 죽을 끓이면 쑥이 독해서 얼마나 배가 아픈지.”

 엄마가 말했다. 옛날에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쫄쫄 곯았다고 한다.

 쑥떡을 했다고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다.

 작은엄마와 할머니가 쓸 쑥떡을 따로 싸가고, 남은 떡은 순돌이네, 파인애플집호호할매, 닭집아지매, 구원자네, 돼지농장집 봉아저씨네, 교회집 그리고 새로 동네 맨 안쪽에 이사온 염소아저씨네까지 모두모두 몇 가락씩 나누어먹는다.

 이것을 배달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말랑말랑하고 따끈한 쑥떡을 쟁반에 담아 보자기를 덮어서 가져다주면 모두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지면서 칭찬을 한 바가지 듣는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욕본다.”

 “벌써 심부름도 잘하고, 시집가도 되겠다”

 순돌이네할매는 늘 나에게 칭찬을 해준다. 키도 크고 인물이 좋다는 둥, 공부도 잘하게 생겼다는 둥 과분한 칭찬을 들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닭집아지매에게 쑥떡을 가져다주었을 때 공짜로 달걀을 열 개나 주었다.

 동네 맨 앞쪽 교회집에 쑥떡을 나를 때는 맘씨좋은 교회집아주머니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까지 따라주었다. 교회아주머니댁은 동네 맨 앞에 있는데 마당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아주머니와 식구들은 그 아래 평상을 펴놓고 자주 앉아있곤 했다.

 내가 나중에 국민학교에 갔을 때 무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노라면 교회아주머니네 식구들은 나를 붙잡아서 앉히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얼음물을 한 잔씩 먹이고 보내주었다.

 그때 당시 우리집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우리집은 닭집아지매와 공동으로 얼음집에 전화해서 얼음을 주문했다. 얼음덩어리를 아이스박스에 넣어놓고 그 위에 상하기 쉬운 음식들을 보관했다. 그래서 나는 한여름에 냉장고에서 꺼낸 물이나 음료수를 주는 교회집아주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교회집아주머니는 얼음물을 마시는 나에게 부채를 부쳐주면서 착하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어떤 날은 교회집 식구들이 수박을 썰어먹으려고 할 때 내가 지나가면 같이 앉아서 수박을 먹고 오기도 하고, 오렌지주스를 한 잔 줄 때도 있었다. 대학생언니 오빠가 앉아있는 날은 과자도 한 봉지 얻어온다. 참 고상한 가족이었다. 우리집은 과자라도 한 봉지 받아오는 날은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할퀴고, 안주면 징징거리면서 쥐어짜고 하는데......

  외삼촌이나 이모들은 늘 나를 모개라고 불렀다.

 모개는 모과의 사투리이다. 우리집 앞에도 모과나무가 있었다. 거기 달린 노란 모과는 향기는 좋았는데 과일은 길쭉하면서 뚱글뚱글하고 울퉁불퉁한게 못생겼다. 나를 그 모과처럼 못생겼다고 기억도 안 날 때부터 따라다니면서 놀렸다.

 오빠는 나를 돌대가리라고 부른다.

 식구들이 나를 과소평가하는 반면 동네어른들은 나를 상당히 과대평가해주는 편이다.

 남들도 이렇게 나를 잘한다고 칭찬만 하는데 우리집에서는 맨날 못났다, 못한다고 구박이다.

 ‘난 아무래도 주워온 것 같다. 아부지가 나보고 늘 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했제?’

  늘 고민해왔다. 밖에서 받는 대접에 비하면 우리집에서의 대접은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내가 오줌을 싸거나 조금만 잘못하면 “다리밑에 가봐라. 거기 너거 친엄마 있을끼다.”

 라고 늘 말했다. 우리집 앞 냇가 저 밑에는 실제로 기다란 다리가 있어서 버스도 지나가고 트럭도 지나갔다. 심하게 꾸중을 들은 날엔 정말로 친엄마를 찾아서 다리 밑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봄-농사준비

 

  밭에는 일 년 농사준비로 바빠진다. 아부지는 사과나무 밑에 거름을 뿌린다.

 돌이아재와 함께 경운기에 소거름을 싣고와서 큰 포크같이 생긴 쇠스랑으로 찰진 거름을 떠내어 사과나무에 골고루 뿌린다.

 거름을 많이 뿌려야 사과와 복숭아가 더 달삭해진다고 한다.

 거름을 뿌리면 온 동네가 거름냄새로 가득한다. 소 우사에서 늘 소똥을 치우고 그것을 과수원 끝에 빈 땅에 쌓는다. 소는 기껏해야 사료, 짚, 풀만 먹으니까 소똥은 깨끗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집 소들은 여름철이 되면 땅에 떨어진 낙과(떨어진 사과)를 물에 씻어서 자주 간식으로 먹었다. 잘 익고 좋은 것은 파는 것이지 우리가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예전 소들은 요즘 소들보다 병치레를 덜 한 것 같았다. 이건 순전히 나의 느낌이다.

 하여튼 소거름을 쌓아서 큰 비닐을 씌워서 1년동안 삭힌다. 그동안 가스도 빠져나가고 여러 가지 비바람도 맞으면서 숙성단계를 거쳐서 거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거름냄새는 구수한 느낌이 든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오도방정을 떠는 것처럼 거름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거름을 내는 것이 끝나면 아부지는 비료를 나무 밑에 쳤다. 투명하고 두꺼운 비닐포대기 안에 깨알같이 생긴 비료를 바가지로 퍼서 통에 담은 다음, 엄마와 사나흘동안 나무 하나하나에 일일이 뿌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경운기로 모터를 돌려서 시멘트를 발라 만든 작은 목욕탕처럼 생긴 약탕고에 지하수를 퍼올려서 노란 황을 섞는다. 약치는 줄과 약대를 연결해서 나무 하나하나에 노란 옷을 입힌다. 온 밭이 노르스름해지는 것이다. 엄마는 황이 사과나무에게 보약이라고 했다.

  4월이 되면 사과나무에 맺힌 끝이 볼긋한 꽃봉오리들이 맺혔다가 분홍빛을 띠면서 눈처럼 하얀 사과꽃들이 일제히 핀다. 작은 나뭇가지에 하나에 수백송이의 꽃이 핀다. 벚꽃과 비슷하지만 약간 분홍빛을 띠어서 더 사랑스럽다.

 온 동네가 하얀 사과꽃, 분홍 복숭아꽃들로 덮힌다. 꿀벌과 나비가 붕붕 소리를 내면서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자두꽃은 꽃이 아기손톱만하다. 자두나무가지가 조롱조롱한 꽃들로 뒤덮이는데 멀리서 보면 꽃들이 연두빛을 띤 하얀색이다. 그 화려한 시절이 지나고 꽃잎이 떨어지면 가지들마다 깨알같은 열매들이 수도 없이 매달려있다. 그 많은 열매들이 서로 좁다고 외치다가 비바람에 저절로 떨어지고나면 구슬만한 열매들이 남는다. 그 구슬만한 열매들이 모두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큰다면 나뭇가지들은 얼마안가서 모두 그 무게를 못견뎌서 꺾이거나 찢어질 것이다. 5월이 되면 엄마는 읍내에서 날렵한 아주머니 대여섯분을 스카웃해서 모셔온다.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붙은 열매들 중에서 가장 실하고 큰놈만 남기고 모두 따주기 위해서 작은 가위를 들고 적과를 한다. 높은 나뭇가지에는 사람이 직접 올가라거나 사다리를 놓고 그 위에서 자잘한 열매들을 모두 제거한다. 보름넘게 이 작업을 해야한다.

 열매솎기를 적과라고 한다. 적과하는 날이면 아침일찍 아버지가 경운기를 몰고 나가서 아주머니들을 모셔온다.

 자잘한 열매들을 빨리 따주어야하기 과일로 키울 열매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기때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작업을 하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엄마를 도와서 세참을 내가거나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한다.

 과수원에서 작업은 바쁜 철에만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엄마가 온갖 인맥을 동원하고 전화로 사정하고 해서 겨우 일한 아주머니들을 모셔온다. 일해줄 사람이 없어서 여기저기 부탁을 해서 구해오다보니 네 살짜리 딸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은 중동으로 돈을 벌러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아저씨들이 돈을 벌러 중동에 많이 가셨었다. 지금처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많지도 않았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면 그냥 일을 할 때 데리고 오기도 한다.

 네 살짜리 꼬마는 우리집 막둥이와, 셋째 위선자와 같이 놀기로 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세참으로 쓰려고 산 빵을 하나씩 받아들고 방에서 TV를 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사과밭 끄트머리에 만들어놓은 손바닥만한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따먹기도 하면서 놀았다.

 아주머니들이 일하러 오시면 오전에 내가 간식을 날라가야한다.

 나는 커피 2스푼, 프리마 2스푼, 설탕 세 스푼을 종이컵에 담고 물을 끓여 커피를 탄다.

 엄마가 빵집에서 크림빵, 단팥빵, 찹쌀도넛을 사둔 것과 삶은 고구마를 쟁반에 담아 커피와 함께 과수원으로 날라간다. 그러면 아주머니들은 나를 두고 착하다고 가식섞인 칭찬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아이고 착한 것!”

 “우리딸은 아직도 자고 있을낀데......”

 아주머니들은 모두 아부지의 친구부인들이거나 아는 형수님들이다.

 내가 숨만 쉬어도 형식적으로 칭찬을 할 것이다. 점심무렵이 되면 엄마가 아주머니들 점심준비하는 것을 돕는다. 마루를 걸레질하고 잔치때나 쓰는 상을 펴고 나서 엄마가 요리를 할 때 파를 다듬어주거나 마늘을 빻아주는 일을 주로 한다. 엄마가 프라이팬에 고추장으로 양념한 돼지불고기를 볶고 북어국도 끓이고, 초록색 시금치를 무친다. 나는 반찬이 완성되는 대로

 상으로 나르고 수저를 사람 수에 맞게 놓는다.

 혼자하면 손발이 맞지 않는다.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하러 우르르 몰려온다. 나와 동생들, 엄마따라 온 꼬마여자애 모두 그 가운데 끼어서 밥을 먹는다. 아주머니들과 우리식구들까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북적북적한데 끼어들어서 정신없이 먹는다.

 늦게 먹으면 반찬이 남아나지 않는다. 밥 한 그릇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점심 후에는 마루에, 안방에 아주머니들이 나누어 누워서 허리를 편다.

 그러면서 누구네 시어머니가 별나다는 둥, 누구네 남편이 바람이 난 것 같다는 둥 수군거리면서 자기네들끼리 킥킥 웃기도 한다.

 오후에도 서 너시가 되면 일하는 분들은 배가 금방 꺼지기 때문에 엄마는 잔치국수를 삶아서 사과나무 밑으로 내간다. 엄마는 멸치다시물을 담은 찜통을 들고, 나는 국수 삶은 것을 들고 따라간다. 손이 모자라서 위선자와 막둥이, 네살짜리꼬마도 그릇을 들고 엄마 뒤를 졸졸졸 따라간다. 아주머니들은 손으로는 부지런히 자잘한 열매들을 잘라내면서 입으로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나무 꼭대기에서 적과를 하는 우리아부지에게도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성화를 해댔다. 그러면 아부지는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입과 손이 자유자재로 따로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세참으로 국수를 먹으면서도 서로 자기남편 흉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밥상을 차려서 갔는데 그노무 인간이 반찬없다고 밥상을 안 엎어뿌나? 돈만 많이 벌어다줘봐라. 내가 소고기 볶아서 대령하제. 쥐꼬리만한 월급받아서 내니까 살지.”

 “맞다. 맞다.”

 “나는 우리 시어무이때매 죽겠다. 맨날 아들며느리 싸움 안붙이나. 그래서 작은 아들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시동생한테 동서흉보고, 일러주고 해서 작은아들부부도 대판 싸워서...”

 오후 5시가 넘어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작업이 끝나고 아주머니들은 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아주머니들은 집에 가서 저녁준비를 해야한다면서 엄마가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와 쑥갓, 시금치나물을 솎아내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봄상추가 보약이다.”

 “우리 아아들 무쳐주면 잘 묵겠다아”

 하루종일 일을 하고도 무슨 힘이 남았는지 하하하, 호호호 연방 웃으면서 야채를 뜯고 있다. 진정한 에너자이저들이다. 그 당시 여자들은 아이도 키우고, 돈도 벌면서, 시부모도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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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겨울 메주만들기 & 친할아버지 2020 / 9 / 28 288 2 4138   
30 막둥이 낳던 날 & 앵두네 살구밭 2020 / 9 / 28 280 2 5206   
29 초상날 & 삼청교육대 2020 / 9 / 25 278 2 3935   
28 겨울 사과포장하기 & 장날 사과팔던 날 2020 / 9 / 25 288 2 9267   
27 팥죽, 호박죽 그리고 귀신 (2) 2020 / 9 / 23 342 2 9514   
26 학교생활-변소청소 & 토끼고기 2020 / 9 / 23 269 2 4884   
25 80년 봄, 구식이삼촌 2020 / 9 / 21 286 2 3924   
24 강아지 키우기 & 개도둑 2020 / 9 / 21 280 2 5423   
23 두더지고기 먹던 날 2020 / 9 / 21 280 2 3433   
22 물귀신 2020 / 9 / 21 306 2 3317   
21 감자캐던 날.(굼벵이술) (3) 2020 / 9 / 21 345 2 6683   
20 일학년 입학 & 봄소풍 (1) 2020 / 9 / 20 336 2 7738   
19 외삼촌 2020 / 9 / 20 273 2 4643   
18 말자이모 (2) 2020 / 9 / 19 331 2 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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