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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26
작성일 : 20-09-10 15:2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9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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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위급 회담이 언론엔 일체 알리지 않은 채 수면에서 진행됐다. 언론이 냄새를 맡을 틈도 없이 진행된 주요 논안은 내년 분단경계선 보초제거사업과 금년 내를 목표로 하는 남북이산가족상봉 추진안이었다. 비교적 시간의 여유가 있는 분단경계선 보초제거사업 사안은 회의가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됐다. 이것이 오늘 처음 나온 이야기도 아니었으며 이미 전부터 상호 이해관계에 맞춰 차근차근 맞춰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되려 발목을 붙잡힌 건 남북이산가족상봉건이었다. 최대한 이른 기일 내에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남측과 그러한 재촉이 부담스러운 북측의 의견이 쉽게 타결되지 않은 것이다.

  남측도 북측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미 이산가족이 전산으로 데이더베이스화 된 한국이야 컴퓨터만 두드리면 생사여부고 연락처고 따박따박 나오지만 북측은 그렇지 않았다. 일일이 이산가족과 그 우선순위를 정할 생각을 하니 아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상봉장소는 북측에서 하길 원하지만 마땅한 장소를 하루아침에 마련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북측이 이에 회의적이진 않아 남측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충분한 시간과 협조만 이루어진다면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거란 믿음이 있었다. 남측이 이산가족상봉카드를 꺼낸 것은 물론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을 취하는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정치란 무엇인가. 본인들이 얻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이산가족상봉이란 카드는 남북관계의 청신호도 되며 그것을 국민들에게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이게 또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이산가족상봉 영상보고 단 한 번도 눈물 안 고인 사람? 뭐? 신파라고? 정치란 이런 거란다. 야당놈들아. 날짜 정하면 뉴스속보로 알려줄게. 집에서 발 닦고 우리의 깜짝 발표나 받아라! 남북 양측의 대표자가 악수를 끝으로 해당 회담은 마무리 되었다.

 

 -

 

  수현은 올라온 보고서를 살펴봤다. 아무리 정부가 대외비라며 꽁꽁 감춘다 한들 세간에선 그의 정보력은 국정원도 넘본다 하지 않는가. 대표자의 이름엔 당당히 ‘한성태’의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대표자라, 맞지 않게 거창한 이름이네.”

  수현은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무엇이 그의 숨통을 바짝 죌 것인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묵혔다. 아직 이르잖아. 상은 피고 숟가락은 놓아야지. 한 번 더 대표자 회의가 열렸단 소식을 들은 수현은 바로 움직였다. 때를 노리고 기다린 호랑이었다.

 “언론에 터트요려. 상을 채 차리기도 전에 엎어버리게.”

  수현의 예상대로 각종 언론은 저마다 속보와 특종이라는 머릿말을 달고 남북이산가족상봉에 대해 연일 보도했다. 정부 측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사안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미리 터진 샴페인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언론은 신나서 떠들었고 국민은 기대에 차 언론을 소비했다. 그러니 백날 아니라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 거였다. 밀려들어오는 문의전화와 인터뷰에 공식적으로 보도기사를 뿌려보지만 분위기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언론은 특종 먹잇감에 신이나 정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수현은 그런 썩은 생태계를 훤히 알고 있었다. 지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쯧. 혀를 찼다.

 

  민석과 학 역시 이 소식을 들었다. 민석은 학의 옆 보호자 침대 위에 걸터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병실에 틀어 놓은 뉴스에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첫 기사로 나왔던 날이었다. 헛헛한 병실에 위로처럼 틀어놓은 6인실의 뉴스는 그날 처음으로 뉴스로의 기능을 했다. 옆자리 할머니와 시시콜콜한 장난이나 치며 사과를 깎던 민석에게 우레와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학에게도. 같은 병실을 쓰는 옆옆 침대 아주머니가 해당 뉴스에 박수를 치며 학을 불렀다.

 “아이고 할배요! 쪼매만 있으면 할마씨 만나러 북에 가겠네!”

 그 말에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기대를 먹고 부푼 꿈은 정도를 모르고 피어났다. 학이 그러했다.

 

  연일 터지는 기사에 정부 측은 연일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북측과 세부 사항을 조절해 나가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이런 상황이 가장 엎어지기 쉬운 단계였다. 그런 상황에 언론 측에서 알아채 먼저 터트렸으니 정부 측은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터진 건지 엄한 공무원들 머리만 터져나갔다. 머리만 터지면 다행이지 관계없던 부서마저 달라붙어 민원상대에 붙었다.

  당장 북측이 신뢰를 내세우며 판을 엎어도 남측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현은 그저 팔짱만 끼고 바라볼 뿐이었다. 언론에 먹이 하나 던졌더니 지들끼리 물고 뜯는 관경이란. 그런 상황을 못 참고 수현을 찾아 뛰어온 이가 있었으니 그게 성태 아들 지혁이었다.

  일방적인 고성과 쿵쾅거리는 바깥상황에 누가 와서 추태를 부리는지 안 봐도 뻔했다. 괜한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비서를 위해 수현은 직접 대표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였다.

 “네가 그랬지? 네가 우리 아빠 물 먹이려고 그랬지?”

 여간 성질이 난 게 아닌 듯 씩씩 거리며 수현에 따져 물었다.

 “나갔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살 것이지. 왜 사사건건 시비야. 너 네발로 나간 줄 알지? 너 쫓겨난 거야. 네 주제를 알고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해.”

 말없이 평온한 수현의 모습에 약이 바짝 오른 지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능력이 있으니 대표자리를 꿰찼을 거고. 대표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아. 능력이 없어서. 해결이 좀 어려우시려나? 그럼 어떡해. 대표, 물러나야지. 이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며.”

 "이렇게 된 게 우리 아빠 잘못이야? 네가 터트렸잖아! 모를 줄 알아?"

 "그러게. 고작 내 입 하나 못 막아서 이 사단을 만들어. 그 대단한 집안에서 쫓겨난 나 하나를."

 수현의 말에 지혁은 얼굴이 시뻘개져 문을 박차고 나갔다. 천천히 차를 마시던 수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목을 돌려 시계를 봤다. 이제 다시 한 번 물살이 꺾일 시간이 됐다. 마침내 우리가 원하던 그 방향으로.

  지혁이 수현에 왔다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은 기존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급물살을 탔다.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키워드였으며 그 이유는 본인의 이해관계에 휩쓸려 서로가 만족스러운 회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대표자의 자질 논란이었다. 그러면서 남북이산가족상봉 회의의 총 책임을 맡은 대표자 한성태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언론은 그간 정계의 문턱을 넘보던 한성태가 능력 부족임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러운 방법으로 대표자리를 꿰찼으며 이 대표직은 그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쓰일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아 그를 압박했다.

  보아하니 시간 싸움이었다. 얼마 만에 온 평화에, 그 분위기를 고조시켜줄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코앞에서 엎어지게 생겼으니 민심은 들끓었고 언론은 기름을 부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그나마 아름답게 물러나거나 모처럼 꼴사납게 쫓겨나거나.

  그랬다. 원래대로라면 수현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위치였다. 감나무 밑에 누워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내부에서 일정자체를 연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차피 그가 노린 건 정말 이산가족상봉이 엎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현은 악감정이 없는 것엔 악의를 갖지 않았으니까. 단지 판을 한 번 흔들어 놓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 한성태를 부득불 안고 갈 거라고는 예상 못했지. 미련하게. 아.. 청룡의 뒷배경이 꽤 크네. 성가시게. 수현은 뉴스 기사를 구겼다.

  속도 모르고 야당 노인네들은 술판을 벌이며 여당에 한 방 먹였음을 자축했다. 다음엔 전쟁을 내자며 노래를 불렀다. 얼어 죽을 전쟁 같은 소리하네. 전쟁나면 가장 먼저 외국으로 도망갈 양반들이. 여기도 미련했다. 집구석에 누워서 보좌관 연락에 헐레벌떡 모인 주제에. 멍청한 머리 맞대고 있는 동안. 아니 집구석에 누워서 두 다리 뻗고 쳐자고 있는 동안 판을 짠 사람은 나 하나였거늘. 여기고 저기고 멍청한 놈들 투성인지라 수현은 치가 떨렸다.

 

 -

 

  뺄렐레- 듣기 사무실의 전화는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왜 이놈의 사무실 전화는 벨소리마저 비호감일까.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우여곡절은 수많은 대한민국 공무원들 갈아서 이뤄낸 결과긴 하다만. 그리고 그 공무원엔 한나도 포함이었다. 한나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미간에 선 하나가 늘었고 그 모습에 옆자리 진우는 손을 달달 떨었다. 마음 같아선 공중파 9시 뉴스 쳐들어가서 이산가족 상봉한다니까 고만 좀 연락해!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밀린 카드 값을 생각하며 친절히 응대했다. 네. 그게 정부에서도 열심히 노력 중이고요... 아직 진행단계이기 때문에 저희가 확실히 답변을 드릴 수 없는 부분인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 왜 저한테 성질을.. 아니 네.. 그렇죠. 가족분의 마음은 이해는 갑니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내가 언론에 터트린 새끼 뚝배기 제일 먼저 깬다.

 “어! 한나씨. 방금 통일부에서 이산가족명단 보냈거든? 도사 몇 명인지 확인하고. 위험인물인지 확인하고. 뭐 80년대도 아니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곧 사무실로 들어온다던 팀장은 언제나 속편한 얼굴이었다. 밑에 사람들이 열심히 갈려 들어가니 속 불편할 일은 없겠다만.

 “지금 내가 제일 위험해. 내가 위험분자야.”

 “선배님 신고해도 돼요? 간첩신고는 111”

 “제가 위험 분자랬지 간첩 이랬나요?”

 “단어가 간첩 같으신 걸요.”

 “간첩한테 일등으로 죽고 싶지 않으시면 조용히 하시죠.”

 “넵.”

  한나는 받은 메일을 열고 전달하기를 눌렀다.

 “지금 보낸 메일 받아서 명단 확인하고 도사 추려서 위험인물 유무 확인해 주세요.”

 “지금 일 떠넘기시는 건가요.”

 “선배의 사랑이라고 해주세요.”

 “거절해도 되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진우는 코를 찡끗하곤 메일함을 열었다. 방금 한나에게 온 메일을 열어 확인했다. 클릭 한 번에 파일은 단숨에 다운로드 되었다.

 “근데요.”

 “네, 뭔데요.”

 “이산가족명단 발표 아직 안하지 않았어요?”

 “그 메일에 첨부된 파일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2020년도 이산가족상봉자 추첨자 발표 명단-이요”

 “그 옆에요.”

 “기밀유지?”

 “근데 그렇게 크게 말하면 기밀입니까?”

 “아, 그렇네요.”

  진우는 한나에 몸을 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기밀인데 제가 봐도 되는 걸까요?”

 “헛소리 그만 하시고 일 하시죠. 저도 서류 만들어야 해서 바쁜데.”

 “이건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 거란 말이에요..”

 “도사가 북한에 가는 건 일반인이나 우리 같은 아해가 가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요.”

 한나는 귀찮은 듯하면서도 착실히 그의 궁금증에 답해줬다. 천성이 착한 건 아니가나. 그저 사회생활에 찌든 것뿐.

 “도사 하나가 월북했다? 아니면 가서 도술이라도 부려서 사고를 쳤다? 뭐 끝이지. 남북화해모드고 나발이고 전쟁이나 안 터지면 다행 아니겠어요? 이건 뭐 북한입장에선 선빵 맞은 건데?"

 “아,”

 “그런 사고 터지면 수습은 우리가 해야 하니까 위험인물인지 제대로 봐주세요. 보호자 경우는 교체 요청해야하니까요.”

 “만약에 당사자가 위험인물이면요?”

 “평균 연령이 여든이 넘는데 보호자만 멀쩡하면 됩니다. 웬만해선 다 커버 가능.”

 “넵.”

 “아 그리고 통일부 말고 도사분들께 우리 측에서도 따로 안내문 발송해야 하거든요. 인물카드 확인하다 보면 ‘특별관리요청’이라고 쓰여 있는 분들 계실 거예요. 그분들도 체크해주세요.”

 “특별관리요청이면 위험인물인가요?”

 “아뇨. 가족 중에 본인 혼자만 도사고 아무도 모르게 사시는 분들이 계세요. 자녀분들도 아해고. 그런 분들께는 서류 보낼 때 도사청으로 안 보내거든요, 그리고 본인에게 직접 전달이 원칙이라.”

 “좀 번거롭네요.”

 “뭐. 어쩌겠어요. 그분들이 원하시는 건데. 해드려야죠.”

 

 -

 

 “아학학학”

  조금은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사무실 안을 쩌렁 쩌렁 울렸다. 한나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시끄러웠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한걸음 떼기 무섭게 인사하느라 바빴다. 자꾸만 가까워지는 저 웃음소리에 짧지만 한 평생 살아오며 쌓아온 본인의 직감이 불길하다 외쳤다. 한나는 자리를 뜨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인사하느라 바쁜 저 양반이 그저 본인의 위치이동을 눈치 채지 못하길 바랄뿐이었다. 의자에서 궁둥이가 막 떨어지던 참이었다.

 “한나씨! 어디가?”

 십 수 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는 훌륭했지만 민첩도는 형편없었다. 뭐 애시 당초 일반인 같은 아해와 도사의 차이이긴 했지만. 떫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허공에 떠있던 궁둥이를 다시 의자에 붙일 수밖에 없었다. 한나에게 오기까지 백년은 걸리겠다 싶었는데, 도망치려는 한나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보다.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한나의 파티션에 척하니 붙었다. 뭐든 쫄리는 쪽이 지는 거다. 밀린 건 한나였다.

 “뭐요.”

 “한나씨 잘 지냈어?”

 “뭐, 보시다시피.”

 권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척하니 의자를 끌어와 한나의 옆에 자리를 텄다. 그에 한나는 불편했다. 능청이 아주 구렁이 담 넘어가. 한나는 미뤄둔 서류나 뒤적거렸다.

 “난 요새 잠도 통 못자고.”

 “왜요. 아까 보니까 거의 유세 나온 국회의원이시던데. 이번에 출마하세요?”

 “에이 한나씨도. 우리 집 흑수저야.”

 “세상에 8할이 흑수저죠.”

 “그건 그렇고. 있잖아 한나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드디어 올게 왔나 싶다. 겨우 고개만 돌려 그를 힐끗 보면 뭔지 몰라도 못 빠져 나가게 생겼다. 오히려 큼큼 목소리를 다듬으며 책상으로 바짝 붙어오는 그.

 “명단 말이야...”

 “명단요? 무슨..?”

 “그 이번에 남북이산가족상봉 명단 말이지.”

 “그걸 왜 저한테 와서 찾으세요. 저도 모르죠. 아직 공개 안됐는데.”

 “아이 한나씨. 제발. 응? 제발!”

 “아 저도 모른다니까요.”

 “나 이미 다 듣고 왔어. 한나씨.”

 민석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훑다 이내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머쓱해하며 웃는 표정. 저 놈이구나. 이러나 저러나 퇴산데 저 놈 때리고 퇴사해?

 “어? 있나 없나만 확인해주면 돼. 이번에 진짜 간절해서 그래.”

 “아 이산가족상봉 신청한 가족 중에 간절하지 않으신 분이 어디겠어요. 안돼요. 누구 밥그릇 엎을 일 있나.”

 “에이~ 한나씨 그런 거라면 걱정 붙들어 매. 이 바닥 인력난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거 알려준다고 안 잘려. 나 이 바닥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공무원 밥통 철밥통. 그 중 갑은 이 도사청 밥그릇이니라. 사무직은 굴러야하나 현저하게 적은 아해의 수에 있던 도사마저 불러들이는 상황이니 그 말 다했다. 아니 밥그릇이 사기그릇은 돼야 마음에 안 들면 깨부수고 새로 장만하지. 이놈의 밥그릇은 던지고 굴리고 태우고 별 짓을 다 해도 매달 10일이면 모락모락 흰쌀밥을 품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씩 보너스로 고기반찬과 함께. 가슴 속 품은 사표는 영원히 가슴 속에 살지어니.

 “나 진짜 쉿! 입 꼭 다물고 아무 곳에도 말 안할게!”

 본인의 입에 검지 손가락을 꼭 붙인 그 모습이 한나는 참으로 미덥지 않았다. 여기 온지 채 5분도 안 되서 이곳저곳 인사안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분명 알려주자마자 말은 안 해도 저 표정이 동네방네 알리게 될 것이니. 마뜩잖아하는 한나에 만식은 불안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처리는 확실한 FM인 한나인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며칠안가 언론이고 어디고 발표 뜰 거 에요. 지금 아나 그때 아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시는 거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제발 한나씨. 이번에 알려주면 내가 다음 매칭 때 군말 없이 5번 무조건 달려간다. 겹치기 시켜도 오케이. 다른 사람 뺑뺑이 돌다 온 것도 무조건 오케이.”

 “...”

 “...10번.”

 “콜.”

  한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컴퓨터 파일을 뒤적였다. 아 근데 왜 굳이 미리 알아 가시려는 거냐는 질문에 민석은 아픈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안 그래도 몇 번의 탈락과 최근 몇 년 만의 이산가족상봉이 엎어진단 소리에 티는 안내도 많이 상심하셨을 거다. 그런 생각에 괜히 울적해졌다.

 “있고 없고만 확인해 드리는 거에요. 없어도 원망하시지 마세요.”

 “아, 그럼 그럼! 부탁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한나씨.”

 “그리고 만약에 있을 경우.”

 폴더를 마우스로 클릭하던 한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민석을 봤다.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까지 어디 가서 언급하시면 안돼요. 수 쓴 거다 뇌물이다 별의 별 소리 다 나오면 아예 당첨 취소되실 수도 있어요.”

 “아, 그럼! 할아버지한테도 이번엔 꼭 될 거라고 바람만 잡으려고 그런 거야.”

 “저도 도사님 믿으니까 알려드리는 거 에요.”

 “정말! 믿어도 돼.”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이거 확정 아닌 거 아시죠?”

 “어엉. 변동 확률은?”

 “예상은 20프로정도래요. 해당 인원 전부 추진하려고 정부는 노력 중이고. 확률은 낮지만 아시죠? 옆에서 훼방 놓는 사람은 어딜 가나 꼭 있는 거?”

 “그럼.”

 민석의 사람 좋은 미소에 한나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하는 건지. 때려친다 때려친다 오천 번은 더 말했으니. 사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권고사직 당한다 한들 마침 잘됐네, 생각하면 그뿐.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오히려 본인이 아닌 앞에 앉은 민석이다. 해당 부처로부터 받은 파일을 키자 수많은 이름이 나열됐다. 옆에서 지켜보던 민석은 켜지기 무섭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김학이야. 우리 할아버지.”

 단축키를 눌러 ‘김학’ 두 글자를 입력하는 그 짧은 순간이. 살아오며 수 천 번 수 만 번. 그렇게 지나왔던, 그 평범했던 이 순간이. 한나에게나 민석에게나 왜 이리 길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지. 한나의 손이 엔터를 누르는 순간.

 “하!”

 감사하게도 걸렸다. ‘김학’이라는 두 글자가.

 

 -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네.”

 “대표님. 말씀하셨던 이산가족 명단입니다.”

 “김비서가 봐서 적당히 몇 가족 걸러내요. 그리고 박위원 자꾸 이 건으로 전쟁 내려는 것 같은데, 전쟁까진 필요 없어요. 누구 좋으라고 피곤하게 진짜. 박위원 쪽 사람 안 끼어들어가게 마지막까지 꼭 확인하시고요.”

  김비서가 명단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기도 전에 수현은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테이블 위로 쌓인 서류철에 박힌 수현의 시선은 올라갈 줄 몰랐다. 서류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본인의 말이 끝났음에도 대답 없는 김비서에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할 말 가득해 보이는 김비서의 얼굴에 수현은 눈썹을 뜰썩였다.

 “김비서 가족, 명단에 있어요?”

 “아닙니다.”

  시원한 대답에도 시원치 않았다. 모든 걸 상사에게 말할 순 없겠지.

 “혹시 아는 사람 명단에 있으면 빼고 진행해요. 가족은 보지도 못하고 황천길 갈라. 야당 쪽에서 아주 이를 갈던데. 나가봐요.”

 수현은 다시 서류더미에 고개를 박았다.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던 비서는 다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대표님.”

 수현은 아직 나가지 않은 비서를 힐끗 쳐다봤다.

 “명단, 직접 확인 해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

 

  널따란 테이블 위엔 비서가 두고 간 서류만 덩그러니 올라 있다. 펼쳐진 페이지엔 포스트잇 플래그가 익숙한 이름을 덮고 있었다. 굳이 김비서가 붙이지 않았어도 단번에 찾아냈을 이름 석자였다.

 

 본인 : 김학 / 보호자 : 김민석 / 관계 : 친손자

 

  수현이 서있는 창밖으로 흐르는 한강위로 오후의 햇빛이 부셔져 내렸다. 읽을 수 없는 무색 무취의 표정으로 내리 창밖만 쳐다보던 수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인터폰을 눌렀다. 삐- 짧은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네.-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빼고 진행하세요.”

 오랜 상념이 무색하게 아무 감정도 뭍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기존 명단 폐기 확실히 하세요. 특히 입막음도.”

 끊어진 전화 뒤로 텅- 소리와 함께 서류는 수현의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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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1세기 도사 26 2020 / 9 / 10 257 0 9542   
25 21세기 도사 25 2020 / 9 / 4 274 0 5338   
24 21세기 도사 24 2020 / 8 / 29 254 0 5112   
23 21세기 도사 23 2020 / 8 / 17 273 0 11612   
22 21세기 도사 22 2020 / 8 / 11 271 0 5098   
21 21세기 도사 21 2020 / 8 / 2 289 0 10576   
20 21세기 도사 20 2020 / 7 / 27 278 0 5463   
19 21세기 도사 19 2020 / 6 / 14 309 0 6482   
18 21세기 도사 18 2020 / 4 / 20 322 0 5034   
17 21세기 도사 17 2020 / 2 / 17 311 0 5857   
16 21세기 도사 16 2019 / 12 / 8 317 0 5497   
15 21세기 도사 15 2019 / 11 / 9 338 0 5196   
14 21세기 도사 14 2019 / 11 / 7 336 0 7693   
13 21세기 도사 13 2019 / 11 / 5 360 0 10150   
12 21세기 도사 12 2019 / 11 / 2 319 0 5163   
11 21세기 도사 11 2019 / 10 / 29 361 0 7013   
10 21세기 도사 10 2019 / 10 / 26 329 0 7172   
9 21세기 도사 9 2019 / 10 / 22 318 0 7060   
8 21세기 도사 8 2019 / 10 / 19 346 0 7467   
7 21세기 도사 7 2019 / 10 / 17 339 0 6405   
6 21세기 도사 6 2019 / 10 / 15 330 0 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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