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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푸른 잎에 능금
작가 : 목탄
작품등록일 : 2020.8.5

용의 여인이 될 운명을 타고난 능금,
행궁 청소를 하다말고
실수로 세자의 손을 베어버리는 데
지고지순, 능금만 바라보는 홍옥을 남겨둔 채
결국 궁궐로 납치되고 만다.
조선시대 온천과 궁궐 서가를 오가며 벌어지는 용팔이 로맨스,
흑룡과 청룡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지어다.

 
13. 숨마저 달콤한 과일
작성일 : 20-09-09 13:44     조회 : 340     추천 : 1     분량 : 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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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초록당의에 감빛 치마를 입은 능금이 선심당 뜰을 거닌다. 무엇을 한들 답답하구나. 책도 읽히지 않고, 소란이 가져다 놓은 수틀도 엉망이다. 치마와 당의는 왜 이리 불편한 것이냐. 걸핏하면 긴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정자에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던 능금이 문득 어정을 떠올린다. 참으로 맑고 시원한 물이었다. 그 물 한 모금이면 시름이 조금 잊히려나.

 아랫것들을 따돌리고 나온 능금이 강녕정을 기웃댄다.

 “여기 어디쯤인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를 따라 뜰을 걷는다. 곧이어 자물쇠를 채운 어정 문이 보인다. 능금이 손을 뻗자, 자물쇠가 툭 떨어진다.

 “꼭 내가 오길 기다린 것 같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다. 여전히 차고 맑은 물이 흘러넘친다. 능금이 손바가지를 만들어 조심스레 물을 뜬다.

 “아, 시원하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구나”

 소매부리에서 약과를 꺼내 우물에 올려두고는 절을 한다.

 “오늘도 귀한 물 감사드립니다. 참. 남쪽 지방에 비가 오지 않아 걱정입니다. 부디 비를 내려주세요. 다음번엔 더 크고 맛있는 걸로 가져올 게요.”

 약과 하나에 큼직한 소원을 빌어 넣고, 물까지 얻어 마신 능금이 한들한들 어정을 나선다. 우물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린 듯도 하다.

 “저리 맑고 좋은 물을 꽁꽁 가둬두는 구나.”

 우물 신세가 자신의 신세인 것만 같아 공연히 울적하다. 종종 들러 벗 삼아야겠다. 능금이 입술을 닦으며 뜰을 나서는데, 지엄하신 임금께서 행차하신다. 기둥에 숨어보지만, 감빛 치마가 눈치 없이 살랑댄다.

 “못 보던 얼굴이구나.”

 “황공합니다.”

 막 머리를 올린 것이 동궁의 여인이로구나. 임금이 찬찬히 능금의 얼굴을 살핀다. 볼이 발그레하고, 눈매가 선한 것이 참으로 곱구나. 특히 감빛 눈동자가 참으로 신비하다. 동궁이 빠질 만한 미색이다.

 “무얼 하고 있었느냐.”

 “물소리를 따라 왔습니다.”

 “물소리?”

 임금이 능금의 젖은 옷소매를 발견하고는 궁녀들과 내시들을 물린다.

 “어정을 보았느냐.”

 “예.”

 “물이 차오른 것이냐?”

 “그러합니다.”

 “참으로 길한 징조로군. 허나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는 아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보거라.”

 “예”

 능금이 떠나고 난 후, 임금이 어정에 든다. 공손히 절을 하고는 능금이 바친 약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가 제를 올렸구나.”

 용궁으로 가는 길을 열었으니 필시 하늘이 허락한 아이일 것이다. 감히 임금의 물을 마실 만큼 배짱 또한 좋구나. 저 아이가 동궁의 배필이 된다면 용이 여의주를 문 것만큼이나 좋은 일일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는가. 용을 받치고 아들을 돌려받을 때가 되었는가.

 “성수청에 가서 기우제를 준비토록 하여라.”

 

 능금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며 소란이 옷소매를 보듬는다.

 “참으로 곱습니다.”

 “나는 남장이 더 편하구나.”

 “얼마나 오래 남장을 하신 겁니까?”

 “철이 들면서는 줄곧 그러했다.”

 “이리 고운 얼굴을 그리 가리셨군요.”

 “칭찬이 과하구나.”

 “그 귀한 비녀와 노리개가 무슨 필요랍니까. 마마 앞에서는 다들 빛을 잃을 겝니다.”

 “이젠 아부까지. 관두어라. 듣기 불편하다.”

 “마마님도, 칭찬을 그리 질색하시다니.”

 더듬더듬 수를 놓는다. 바늘이 자꾸만 능금의 손을 찌른다. 차라리 비늘을 벗길 때가 좋았구나. 먹지도 못할 것을 왜 이리 놓고 있는 것인지 .

 “오늘 전하를 뵈었다.”

 “전하요?”

 “처음으로 용안을 뵈었는데, 낯설지가 않더구나.”

 “저 같은 천것은 뵌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잘 생기셨던가요?”

 “무척이나 수려하시더구나. 꼭,”

 “꼭?”

 “별감과 같았다.”

 “에이, 마마님두요. 어찌 나리가 닮았겠습니까. 저하라면 모를까.”

 “그래, 내가 착각한 것이겠지.”

 허나 그 눈매와 입술, 반듯한 이마하며 꼭 부사와 닮았다. 부자지간이 아닌 사람이 이리 닮을 수 있다는 말인가. 능금이 고개를 갸웃한다.

 밤이 이울고, 수틀에 놓은 것처럼 촘촘한 별이 떠오른다. 읽을 책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고, 헛헛한 능금이 선심당 뜰을 배회한다. 어느새 나타난 홍옥이 자분자분 그 뒤를 밟는다. 네가 여인이 되기를 그토록 꿈꾸었건만, 이제야 보는 것이냐. 이렇게 후궁이 되어 보는 것이냐. 고운 눈썹에 내려앉은 달빛마저 고혹하다.

 “꿈에서만 보던 모습이구나.”

 “무엇이 말이냐?”

 “네가 이리 여인의 옷을 입고 내 앞에 있는 것 말이다.”

 “얼마나 불편한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마에 걸려 비틀댄다. 홍옥이 넘어지려는 능금을 잡아끈다.

 “그만큼 예쁘다.”

 동그란 어깨며,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느냐. 선녀를 만난들 이리 설레지는 않을 것이다.

 “숨 쉬기도 답답해.”

 “그건 나도 그래.”

 “네 옷도 불편하냐?”

 “아니,”

 홍옥이 능금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께에 댄다. 요동치는 심장에 능금이 주춤한다.

 “너 땜에 숨쉬기가 힘들다.”

 “이러다 둘 다 죽겠구나.”

 능금이 홍옥의 입술에 속삭인다.

 “그래.”

 붉은 입술이 열매를 찾듯, 능금의 입술을 찾는다. 숨마저도 달콤한 과일이 있다면 너겠다. 능금이 먹감 빛 눈을 들어 홍옥을 바라본다. 어쩌면 좋을까 너를, 이토록 사랑스러운 너를.

 

 “성수청에 기우제를 준비하라 하셨습니까?”

 “은밀히 명한 일조차 중전의 귀에 드는 군. 내 신하가 불충한 것인가. 중전의 신하가 충성된 것인가.”

 임금이 찻잔을 내려놓는다. 이 밤에 차를 내온 연유가 무언가 했더니, 그새 새들어간 것이구나.

 “송구합니다.”

 “가문지가 오래 되었소. 더 이상 민심이 흉흉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잘 알 게 아니오?”

 어찌 모르겠는가. 별채를 부수고, 아비를 도망치게 한 그 민심을 너무도 잘 안다.

 “동궁이 주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그 아이는, 물과 상극입니다.”

 “물과 상극이라. 세자가 물과 상극이라, 이리 가문 것인가.”

 “전하,”

 “이리 궁궐 소식이 빠르다면, 바깥소식 또한 빠르겠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동궁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소문 말이오.”

 “전하, 뜬소문 일 뿐입니다.”

 “아무리 뜬소문인들 증명하지 못한다면 진실이 될 것이오.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는 세자를 용상에 올릴 수 있겠소.”

 “전하, 어리석은 백성의 말일 뿐입니다. 부디 거둬주시옵소서. 그 아이는 물에 가서는 아니 되옵니다.”

 “중전의 아집은 여전하군. 더는 듣고 싶지 않소. 그만 나가보시오.”

 중전을 막아야만 한다. 그 폭주를 막아야만 한다. 견제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기세 등등 왕실을 장악한 외척을 몰아내야만 한다. 그게 다음 보위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능금이 교태전에 들어 바짝 엎드린다. 높으신 분들의 욕탕을 닦는 것이 일생의 업인 줄 알았건만, 무슨 복이 있어 중전의 얼굴을 뵙는단 말인가.

 “고개를 들거라.”

 중전이 능금을 찬찬히 훑는다.

 “동궁이 좋아할 만하구나.”

 “황공합니다.”

 “아기 소리를 들은 지가 오래 되었구나. 동궁이 너를 그리 은애하니, 후사를 기대해도 되겠지?”

 무슨 말을 어찌 해야 할 지 능금이 머뭇댄다.

 “아직은 궁이 낯설게다. 천천히 적응하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합니다.”

 연모하는 여인을 곁에 두었으니, 동궁도 변하겠구나. 아이를 낳고, 아비가 되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겠구나. 그리 할 때까지만 너를 곁에 두어야겠다.

 중전의 속을 알 길이 없는 능금이 저린 다리를 하고선 신음한다. 비현각에 있을 때가 그리울 지경이구나. 아무데나 벌렁 누워도 되는 서고가 차라리 그립다.

 “무슨 말을 들었느냐?”

 성심당을 서성이던 화홍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능금을 세운다.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분명 세손 타령을 하였을 것이다.”

 “어찌 아십니까?”

 “내가 늘상 듣는 말이니, 네게도 분명 하였겠지.”

 능금이 철퍽 대청에 주저앉는다. 오래 무릎을 꿇었더니 쥐가 내려 죽겠다.

 “어디 불편한 게냐?”

 “다리가 저립니다.”

 “어디,”

 화홍이 싱긋 웃으며 능금의 다리를 주무른다. 얼마나 긴장을 하였으면 이리 뭉쳤느냐. 그리 어마마마가 무서웠단 말이냐.

 “무얼 하고 지냈느냐?”

 “수를 놓았습니다.”

 “네가?”

 “수틀에 수를 놓는 것인지. 제 손가락에 수를 놓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능금이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꿈지럭거린다. 다리를 주무르던 화홍이 손가락마저 살핀다.

 “이리 피가 맺히도록 찔린 것이냐. 앞으로 수는 그만 두어라.”

 “그럼, 뭘 합니까요.”

 “종이와 먹을 구해주마. 그림을 그리거라.”

 “바늘 독이 오르는 것보다는 낫겠네요.”

 그제야 능금이 싱긋 웃는다. 홍옥이나 그려볼까? 벽에 걸어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보게. 고향산천도 그려야겠다. 개똥이도 그리고, 낚시를 하던 하천도 그리고, 산속 우물도 그려야겠다. 온통 그리운 것투성이로구나. 능금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인다.

 “어찌 우는 것이냐.”

 “고향이 그립습니다.”

 화홍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준다. 고향이 그리워 우는 너도, 풀이 죽은 너도, 다리가 아프다 징징대는 너도, 모두 어여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언젠가는 데려다 주마.”

 “정말이요?”

 “그럼, 약조하마.”

 화홍이 젖은 볼에 입을 맞춘다. 그러니 너무 울지 말거라. 이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그만 그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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