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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35화 <설화>
작성일 : 20-09-09 00:46     조회 : 342     추천 : 0     분량 : 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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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을 깬 것은 수연이었다.

 

 “어디 보자... 15년 전이면 네가 5살 때던가?”

 “네.”

 “신기하네. 사람은 보통 다섯 살 때 기억은 성장하면서 대부분 잊어버리거든. 더 많고 선명한 기억들이 계속 쌓이니까.”

 “그래서...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라니?”

 “지난 15년 동안 새로 쌓인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들썩거리던 수연의 입이 다시 굳게 닫혔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35층의 스위트룸. 그곳에서의 삶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 탓이었다.

 매일 똑같은 방. 매일 똑같은 사람. 매일 똑같은 음식. 시간이 가는 줄도, 하루가 가는 줄도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그 공간. 어제와 오늘, 내일이 모두 똑같았을 시간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은 많았어요.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기억하고, 또 기억해 낼 시간이요.”

 

 유진의 눈동자의 초점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다시 옛 기억에 잠기는 듯 몽롱한 목소리로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하루가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기억을 곱씹다 보면요, 기억 속에서 내가 몰랐던 것들이 다시 보이고, 그때 내가 생각하지 궁금증들도 못했던 것들도 새롭게 생각나요. 그럼 그 궁금증을 풀려고 다시 또 생각하고요.”

 “... 궁금증?”

 “예를 들면...”

 

 허공을 훑던 유진의 눈동자가 다시 수연에게 닿았다. 딱 그 순간, 흐려졌던 초점이 다시 또렷해졌다. 뿌연 안개를 단숨에 물리칠 환한 빛을 찾은 것처럼.

 

 “누나는... 왜 날 찾아왔을까요?”

 “......”

 “그리고... 왜 사라졌을까요?”

 

 수연은 손에 들린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텅 비워진 샴페인 잔이 싱크대로 들어가고, 커다란 와인장이 찬장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붉고 미지근한 와인이 새롭게 잔에 채워졌다.

 

 “글쎄. 혹시 네가 짐작 가는 건 없니?”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무서운 생각 밖에 안 나요.”

 “무서운 생각이라면...?”

 “그냥... 이건 그냥 막연하게 들었던 생각인데요...”

 

 꼴깍. 유진의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숨소리도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그 다음엔, 꼭 모아진 채 바들바들 떨리는 손도 보였다.

 

 “혹시... 내가 죽기를 바랐던 걸까요?”

 

 바들바들 떠는 와중에도, 그 눈동자만큼은 흔들림 없이 수연을 향해 있었다. 혹시나 수연이 주는 신호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봐, 수연의 표정에, 눈동자에, 손짓에 숨어 있을지 모를 과거와의 연결점을 자신도 모르게 못 보게 될까 봐, 유진의 어깨가 흔들릴수록 눈동자는 더욱 필사적으로 수연을 따라 붙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수연도 그 눈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십수 년 동안 감춰왔던, 수연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검은 감정. 위악으로 겨우 감싸왔던 진정시켜왔던 그 감정이 다시 몸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없애버린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을까?

 

 “그래서... 밉니?”

 

 어차피 이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미움을 받는 것도 꽤나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원래 이야기란 명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수연의 바람과는 영 다른 것이었다.

 

 “미워해야 하는 걸까요?”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모르겠어요.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안 미워해야 하는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는 거지? 이럴 땐 그냥 미워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미워해야 한다면 뭐 때문에, 어떻게 미워해야 하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미워하라고 말한다면. 그대로 미워할 거야?”

 

 조롱이 가득 섞인 말이었다. 그러나 유진의 눈빛은 그 조롱마저 모두 받아들이고 말았다.

 

 “아시잖아요. 저... 말 잘 듣는 거...”

 “역시나 착한 아이네.”

 “......”

 “역시나 자아도 없고.”

 

 일렁이던 유진의 눈에서 눈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것은 그 때였다.

 

 “그럼 어떡해요. 다른 건 아는 것도, 배운 것도, 머릿속에 남는 것도 없는데...”

 “......”

 “매일 같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깨달은 건 딱 하나였어요. 지난 15년 동안 내 삶에서 아빠가 필요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제발 곁에 있었으면 하고 떠올랐던 건 늘 누나였다고요. 15년 동안... 하얀 벽과 커튼으로 범벅된 방에서 내가 봤던 장면은, 나에게 내일 보자며 인사하고는 돌아가는 누나의 뒷모습뿐이었고, 나는 평생 그 뒷모습만 보면서, 그 뒷모습만 쫓으면서 살아왔다고요.”

 

 날카로운 이명이 다시 수연의 귀에 내리꽂힌 것은 그때였다.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고 주저앉아버렸다.

 갑작스러운 수연의 주저앉음에 유진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웅웅 거리며 들려왔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탁자며 벽을 되는대로 붙잡고 일어난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집 밖으로 향했다. 무엇이 자신을 붙잡는지 모르겠지만, 손과 발에, 팔과 다리에 걸리는 것은 무조건 뿌리치고 보았다.

 

 그렇게 수연은 단숨에 54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아마 다시는 저곳을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과 함께.

 

 

 

 피비린내가 매캐한 매연과 함께 코를 찔렀던 그날, 수연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수연은 도현의 안내를 받아, 안나로 새롭게 시작했다. 오로지 복수라는 결말만을 정해두었던 그 시작. 어쩌면 그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복수를 하든 말든 시간은 흘러갔고, 시간 속에서 수연도 차차 성장했다. 안나의 이름으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계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연은 그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수연의 눈에 들어오는 세상에 더 넓어질수록 수많은 선택지가 생겼고, 수연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많아졌다. 그러나 수연이 포기해야만 하는 선택지는 그것의 배로 많아졌다. 그렇게 수연의 세상이 커질수록 수연은 작아졌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연은 더욱 복수에 집착하게 될 뿐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복수만을 바라보게 되는 좁고 편협한 세상이 수연이 감당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세상이었고,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동력이었다.

 그래서 수연은 더욱 우울해졌다.

 

 경식에게 없던 누명까지 씌워가며 복수에 무리한 방점을 찍어버린 것은, 그 우울이 수연을 완전히 잠식할 때 즈음이었다. 어쩌면 수연이 끝내고 싶었던 것은 복수가 아니라 안나라는 존재에 매여버린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점 어디에서도 수연은 끝을 만날 수 없었다. 수연에게 남은 것은 지우지 못한 복수심과 덜어낼 수 없는 허탈함, 그리고 사라지지 않은 우울이었다. 그리고 그때, 유진이라는 아이의 존재를 알았다.

 

 자신을 보고 쓰러지던 아이를 보았을 때 잠시나마 희망이 떠올랐던 것은, 어영부영 넘겨버린 복수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덕분이었다. 혹시 저 아이를 또 다른 수연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래서 내가 짊어지고 왔던 이 검은 감정을 저 아이에게 상속해버린다면, 그때 나는 비로소 홀가분해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아이도 자신처럼 만들고 싶었다. 평생 복수심이라는 괴로움 속에서 발버둥 치고, 성장하며 세상을 알수록 더 좌절하고, 자신처럼 우울해지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 어린 그 아이의 선택지는 수연이 가질 수 있었던 선택지보다 훨씬 많았고, 도현의 비호 아래 있었던 수연이 포기해야 했던 선택지보다 고아원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 아이가 포기해야 했던 선택지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그저 행복해할 뿐이었다. 세상이 커질수록, 그 아이도 더욱 커져갔다. 결코 자신의 세상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진과 수연 자신의 차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유진이 바라보는 세상의 중심에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와 곁에 남은 수연이 있었던 것이다. 유진이 알게 된 세상은 수연을 통해 배운 것이었고, 유진이 가질 수 있었던 행복은 자신에게 천사처럼 내려온 수연의 존재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수연의 복수는 바뀌었다.

 

 더 이상 난 네게 그 어떤 세상도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너를 떠날 거야.

 좌절보다 행복이 더 많을 너의 인생에 내가 그 좌절이 되어줄게.

 

 난 너를 또 다른 수연으로 만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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