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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34화 <픽업>
작성일 : 20-09-02 00:42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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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호텔 창에서 내려다 볼 때에는 네모반듯한 길이 마냥 쉽고 분명하게 느껴졌었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하얗고 붉은 벽들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너무나 명확했고, 어두운 밤에는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만들어낸 빛의 길이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손바닥에 지도를 놓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쉬운 길이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와 버린 지금은 혼돈 뿐이었다. 하얗고 붉은 벽들은 너무나 높고 거대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선명했던 빛의 선은 유진의 키보다 훨씬 높아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돌아왔던 길을 되짚어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넓은 교차로와 광장을 오가는 사이, 이미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결국 유진은 대로변의 난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역시, 생각 같은 건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깟 단추가 뭐라고. 손에 쥐어 줬으면 모른 척 아무 말이나 지어냈으면 될 걸. 왜 그걸 굳이 아는 척을 했을까. 성혁이 무슨 생각을 하든, 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알 바가 아니었는데. 나는 무슨 대단한 기준과 신념이 있다고 거기에 반기를 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성혁이 누굴 죽였든, 22년 전에 무슨 사건이 있었든 내가 알 바가 아닌데. 이길 수 없는 사람에게 도발이 될 지도 모르는 말 따위, 갑자기 무슨 오기를 부린다고 내던졌을까?

 

 지원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궁금증 따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었고, 죄책감 따위, 애초에 생각이 없느면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랬든 눈 감고 귀 막으면 없을 세상이었건만, 왜 나는 그 안에 뛰어 들었을까? 나에게 무슨 대단한 도덕과 인격이 있었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은 결국 단 하나의 결말로 끝났다. 애초에 생각 따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어차피 15년 동안, 생각없이 살아도 되는 인생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하얀 방에 두면 둔 대로 가만히 있을걸. 온통 새하얀 그 방에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새하얗게 있었으면 됐는데. 10년이고 20년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제가 오늘인 듯, 오늘이 내일인 듯, 꿈속에 있듯 지냈으면 됐는데. 그런데 왜 나는 그곳을 나올 생각을 했을까.

 

 유진은 눈을 감았다.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시간에 맡겨 버리고, 휩쓸리면 휩쓸리는 대로,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흘러갈 작정이었다.

 

 [빵빵]

 

 감겼던 유진의 눈을 뜨게 만든 건 한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였다. 흔한 거리의 소음이겠거니 하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유진의 코앞에서 울려대는 탓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

 한숨을 쉬며 자동차를 바라본 유진의 눈이 순간 일렁였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하얗고 네모난 방에서 유진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던 유일한 대상. 안나, 아니 수연이었다.

 

 “누굴 기다리는 것 같진 않네?”

 “길을... 잃었어요.”

 

 ‘철컥.’ 자동차 조수석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타.”

 

 

 

 “전화를 안 받던데.”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을 먼저 깬 건 수연이었다.

 

 “꺼놨었어요.”

 “왜?”

 “그냥요.”

 

 유진의 대답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길은 어쩌다 잃은 거야?”

 “호텔에서 나가려다가... 길을 아는 줄 알고 막상 나오니까 모르겠더라고요.”

 “택시를 타지. 호텔 앞에 택시들 대기하고 있잖아.”

 “그거 타면... 아저씨랑 할머니한테 바로 연락이 가서요...”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지 않은 것은 나름 생각이었고, 나름 반항이었다.

 유진이 스위트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을 땐 카운터의 직원이 그를 안내했다. 그리고 호텔 문을 나왔을 때도 호텔의 도어맨이 그를 배웅했다. 그들은 35층 스위트룸의 특별 손님을 잘 알고 있었고, 그를 목격했을 때 누구에게 어떤 보고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텔 앞의 택시를 섣불리 타지 못했다. 그 상태로 무조건 걷다 보니 도심이 나왔고, 거기서 더 걷다 보니 결국 길을 헤매게 된 것이다.

 

 “제법이네. 반항도 할 줄 알고.”

 “......”

 “말 잘 듣는 아이인 줄 알았더니, 무슨 일이 있기는 했나 봐?”

 “... 네.”

 “무슨 일인데?”

 

 운전 중인 수연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혹시나 앞 유리에 자신의 얼굴이 비칠까봐 창피했다. 하지만 옆으로 본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밖이 어두컴컴한 탓에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또렷하게 비춰진 것이었다. 결국 유진은 고개를 푸욱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거대한 거울 같았다. 밖을 내다보라고 있었던 유리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동차 안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유진이 뭘 하는지, 굳이 고개를 돌려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굳이 그 사연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거지?”

 “... 아니오.”

 “그럼 오피스텔로?”

 “... 모르겠어요.”

 “빨리 정해. 이 앞 교차로에서 길이 갈리거든.”

 “누나가 가라는 데로 갈게요.”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있기는 했다.

 

 “이미 차선 변경 타이밍은 지났네.”

 

 하필이면 신호마저 녹색등이었다. 수연은 그대로 직진했다.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피스텔에 있는 건 괜찮고?”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아니면 이야기도 좀 할 겸, 잠깐 내 집에 들렀다 가든지.”

 “누나가 하라는 대로 할게요.”

 

 수연은 피식 웃었다.

 

 “뭘 믿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누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제일 정상적인 어른이에요.”

 “착한 아이네.”

 

 그렇게 믿지 말라고 했건만, 이 아이는 또 수연을 믿어버린 모양이다.

 

 “자아도 없고.”

 

 

 

 

 주방에 선 수연은 한참을 고민했다.

 허브는 말라서 시들어 죽은 지 오래였고, 바닥을 보였던 유자청은 얼마 전에 버렸다. 그 외에는 유진이 마시기에는 도수가 높은 와인, 맥주, 보드카 종류 뿐이었다. 나름 대화라는 걸 하기로 한 이상 그냥 맹물을 건네는 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꽤 괜찮은 음료가 수연의 눈에 들어왔다. 샴페인이었다. 도현의 회사 창립기념일에 쓰고 남은 것이었다. 달콤한 스파클링에 도수도 낮아서 이 정도면 유진에게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톡 쏘는 탄산 소리가 경쾌하게 퍼지고, 유진의 앞에 샴페인을 담은 작은 잔이 놓여졌다.

 

 “마실 수 있겠어?”

 

 수연의 권유에 유진이 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알콜향 대신 달콤한 과일향이 코에 스며들었다. 잔을 가만히 입술에 가져다 댄 유진이 호로록, 한 모금을 마셔 넘겼다.

 

 “이건 맛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술은 술이야. 오늘은 그거 딱 한 잔만 마시면 충분할 거야.”

 

 말투는 무심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정한 내용에 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세요?”

 “응?”

 “누나는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을 닮았어요.”

 “닮다니? 누굴?”

 “내가 가장 믿었던 어른이요.”

 

 수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얘, 샴페인 한 모금에 취한 건 아니겠지.

 유진이 아는 어른이라면 성혁이든, 경자든 Bz의 누군가일 터였다. 누가 됐든 수연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디 보자... 인씨 집안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던가?”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랑 할머니 말고요.”

 “그럼?”

 “있어요. 15년 전에. 아빠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저 돌봐준 누나가...”

 

 수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도 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입을 다문 채, 상대가 먼저 아는 체 해주길 기다리기만 하는 이 게임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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