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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17화 삼자대면하자고!
작성일 : 20-08-27 10:31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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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시간이 있습니까?”

 

 시원하게 쭉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비어있는 회장님 자리에 건방지게 앉는 남자.

 

 어수선하던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두가 그 불청객 같은 남자에게 시선이 꽂혀 있다.

 

 처음 보는 남자가 허락도 없이 회의장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소개도 없이 회장님 자리에 앉는 무례한 행동에 다들 어이없어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여기저기서 무리를 지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의자를 당겨 앉은 남자는 자신의 앞쪽에 있는 마이크를 당기며 얼굴을 정면으로 들었다.

 

 그 남자는 멀리 떨어져 서 있는 하윤을 정확히 바라보며 강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설마…케이?!!!’

 

 흔하지 않은 그 은빛 머리칼의 남자는 케이가 맞았다.

 

 “헉!!!”

 

 하윤은 비명을 지를 뻔한 자신의 입을 양손을 포개어 겨우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떨구더니, 곧 날카로운 표정을 장착해서 고개를 다시 들어 마이크를 켠다.

 

 “안녕하세요. 임직원 여러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임시로 HAN 그룹의 대표를 맡게 된 최찬이라고 합니다.”

 

 회의장은 놀람과 당황이 뒤섞인 반응으로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말도 안 돼. 케이가 최찬이라고???’

 

 앉아있던 임원들은 둘씩 짝지어 속닥거린다.

 

 “최찬이라면 그 행방불명 됐다던 그 손자 아닌가?”

 

 “아직 못 찾았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나타나서 대표라고?”

 

 “그럼 최명 전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닭 쫓던 개가 된 거지.”

 

 어디선가는 킥킥대는 웃음소리까지 들렸다.

 

 나이도 지긋한 분들이 남 일이라고 신나서 떠드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조롱에 가까운 발언들이 최명에게는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건너편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이 한없이 지쳐 보였다. 어제보다 훨씬 더.

 

 “회장님 손자라더니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다. 그럼.. 최명 전무님의 친동생이야?”

 

 이 와중에 남의 집 호구 조사를 시작한 라연은 하윤은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는지 계속 질문을 던진다.

 

 “결혼한 누나도 한 명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전부 세 남매인 거야?”

 

 지금 라연의 사소한 질문에 대답해줄 여유가 없는 하윤.

 

 하루 아침에 비밀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기술 계약을 소매치기 당했고, 케이를 새 대표로 맞이한 하윤의 멘탈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때, 또다시 회의장 문이 활짝 열리며,

 

 “회장님 들어오십니다.”라고 비서가 알려왔다.

 

 모든 직원은 일동 기립한다.

 

 최찬도 일어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석을 비워준다.

 

 “다들 최찬 대표와는 인사는 나눴나요?”

 

 회장님은 아주 뿌듯한 듯이 최찬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가까이 당겼다.

 

 “다들 오늘 아침 뉴스 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위기를 대담하게 헤쳐나갈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찬 대표의 인사말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숙연할 정도로 다들 조용히 회장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사실 정식 소개는 창립 기념일 행사 때 하려고 했으나, 이왕 대표를 맡을 거라면 지금 힘든 시기에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모두에세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나이 많은 임직원들 몇몇은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했지만, 아무도 수군거리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회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임원들의 표정을 쭉 훑어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분간 최찬 임시 대표에게 회장 권한까지 넘길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고,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나이 어린 대표가 다들 못마땅했다.

 

 하지만 회장님께 직접 따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자존심이 상한 임원들은 표정으로 온갖 불만을 표출 중이지만, 회장도 최찬 대표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다들 할 말이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나서 주주총회와 임원 회의를 통해 다시 얘기하도록 합시다. 그럼. 이상입니다.”

 

 회장은 단호한 어조로 깔끔하게 자신의 말만 전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장님 퇴장하십니다.”

 

 다시 전원 일동 기립과 함께 회장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배꼽 인사를 올렸다.

 

 회장이 퇴장하자 최찬은 다시 회장석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각자 자기 맡은 부분에서 상황 파악부터 하고 내일 상황을 봐서 다시 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긴급회의 치고는 의외로 간단명료하게 끝났다.

 

 제일 마지막에 회의장을 나오는 하윤과 라연은 번갈아가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쉰다.

 

 “아까 회장님 말씀하실 때, 최명 전무님 표정 봤어?”

 

 “응 봤어. 선배 많이 힘들겠다.”

 

 “힘든 정도겠니?! 동생한테 다 뺏기게 생겼는데!”

 

 마치 최명 전무에게 의리라도 지키려는 건지. 라연은 최명을 옹호하는 발언을 뱉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꺼번에 회의장에서 내려가서 그런지 엘리베이터가 도통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최찬이 다른 임원들과 함께 대표실에서 나오다가 딱 마주치게 된다.

 

 이미 최명 전무 라인에서 새 대표 라인으로 갈아탄 임원들이 꽤 많았다.

 

 조금 전까지 옆에서 하윤의 팔짱을 끼고 최명을 걱정하던 라연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머!! 대표님 안녕하세요. 전 영업 1팀이자 이번 프로젝트 팀에 참여한 대리 공라연이라고 합니다.”

 

 최찬 앞으로 쪼르르 뛰어가 굽실거리며 자기 홍보하고 있는 라연.

 

 평생 최명 전무 편일 것만 같았던 그녀의 뜻밖의 행동에 원래도 큰 눈이 더 크게 동그래지는 하윤.

 

 “네. 안녕하세요. 공라연 대리님. 부족한 게 많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겸손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최찬이 웬일로 겸손하고 난리인지, 라연의 행동에 이어, 두 번째 놀라고 있는 하윤은 고개만 까딱하며 인사를 대신했다.

 

 최찬은 자비 없는 차가운 얼굴로 외면하듯 임원들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하윤은 이 상황이 가시방석처럼 불편했다.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대표가 될 회사에 다니고 있는 일개 대리를 데리고 놀면서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어?!! 우리 회사에 대표로 와서 되갚아주려고?!’

 

 배신감과 갑과 을이 된 두려움에 이가 뿌득뿌득 갈렸다.

 

 그러던 중,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최찬과 임원들 무리가 타며, “같이 타시죠.”라고 최찬이 권했지만, 다음에 타겠다고 거절했다.

 

 끝까지 하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최찬.

 

 이미 서로서로 마음도 상하고, 틀어질 대로 틀어져 버려서 복구 불능으로, 사실상 절교 상태나 마찬가지다.

 

 문이 닫히자마자 라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와~ 소름~ 공라연이 이렇게 때 묻은 애였어?! 뭘 그렇게까지 굽실거려? 가오 떨어지게.”

 

 “회사 생활도 정치랑 똑같아. 결국, 줄타기거든!”

 

 저 거만한 얼굴 보소!

 

 “조금 전까지 전무님이 불쌍하다고 했던 애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

 

 “새 줄이 나타났으면 새 줄을 잡아야지.”

 

 이미 의리고 나발이고 안중에 없는 라연은 야심 차게 선언하듯 굳은 의지를 보였다.

 

 “곤란한 인격이네. 너 갑자기 되게 낯설다.”

 

 “대표가 너무 잘 생긴 거 아냐? 나 숨 막힐 뻔했잖아. 최찬 대표라면 이 회사에 뼈도 묻을 수 있겠어.”

 

 “하~ 의리도 내팽개치고 결국 영혼까지 팔겠다는 설정이야?”

 

 실소를 터트리며, 라연은 비난했지만, 사실 최찬의 정체를 까발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근데 대표님 말이야... 뭔가 낯익어… 왠지 모르게 낯익어. 묘하게 낯익어.”

 

 사실, 라연은 「젠느 글램핑장」의 캠프파이어 때, 후드티를 입고 있었던 최찬을 만나 적이 있다.

 

 마침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문이 열리는데, 둘은 동시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얼굴이 경직된다.

 

 ‘이건 또 무슨 전개지?’

 

 지금까지 순탄했던 하윤의 인생에서 시련이라는 항목을 오늘 다 정산해주시려나 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오늘 아침에 빅엿을 선사해 준 조애리가 서 있다.

 

 ‘젠장!!’

 

 또 사람을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오늘 무슨 일 있었니? 회사가 왜 이렇게 어수선해?”

 

 언제 들어도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앙칼진 목소리.

 

 중간에서 계약으로 장난질 친 사람이 시치미 뚝 떼고 모른 척 묻는 꼴이 너무 밉상이다.

 

 “선배 때문이잖아요. 우리 회사와 계약하겠다고 했으면서 왜 갑자기 다른 회사와 계약한 건데요?”라고 하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라연이 시원하게 쏘아붙였다.

 

 하윤은 ‘잘한다! 공라연!’이라고 속으로만 응원했다.

 

 뜬금없이 “흥~”하고 콧방귀 끼는 애리는 둘을 건방지다는 식으로 번갈아 보더니, 그녀의 시그니처 멘트를 내뱉었다.

 

 “너희는 선배를 보고 인사도 안 하니?”

 

 ‘저놈에 인사 지옥은 졸업을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무슨 인사 못 받아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인사를 주제로 일장 연설을 하는 저 소름 끼치는 화법.

 

 ‘내가 언젠가는 저 인중을 한 대 치는 날이 올 것이야!’

 

 진짜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려니 고역이다.

 

 “안녕하세요.”

 

 라연은 비스듬히 고개만 까딱한다.

 

 “끼리끼리라더니, 둘이서 세트로 참 버릇이 없구나.”

 

 비아냥대는 말에 둘 다 대꾸도 안 하고 빤히 보고 있으니, 혼자 멋쩍었는지 팔짱을 꼬아끼며 만만해 보이는 하윤에게로 다가가 명령조로 말한다.

 

 “명이 방으로 안내해.”

 

 같은 말을 해도 꼭 저렇게 얄밉게 해야 보람을 느끼나 보다.

 

 “전무님 방은 복도 끝 오른쪽이에요.”라고 라연이 대신 말해줬다.

 

 “진하윤. 니가 직접 안내해.”

 

 “저 지금 근무 중이라 사무실로 내려가 봐야 해요.”

 

 “너랑 명이 때문에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왔잖아! 삼자대면하자고!”

 

 애리는 음성이 날카롭게 번지며 복도 전체를 울렸다.

 

 ‘삼자대면’이라는 단어에 혼란스러운 하윤을 대신해 라연이 대들듯이 묻는다.

 

 “대체 용건이 뭔데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애리는

 

 “제삼자는 빠져!!!”라고 쏘아붙였다.

 

 “네.”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라연은 뒷걸음질 치며,

 

 “하윤아, 나 먼저 내려가 있을게”라며 속삭이더니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잉? 그..냥 그렇게 퇴장하는 거야?!! 공라연 미친 거 아냐?!!’

 

 그렇게 단둘만 남게 되었다.

 

 “넌 어쩔 건데?”

 

 밑도 끝도 없이, 앞뒤 다 잘라먹고 무작정 따지는 화법은 새롭게 터득한 기술인가?

 

 순간 마법처럼 피곤해졌다.

 

 ‘삼자대면’을 하자고 했고…

 

 라연이에게 ‘제삼자’는 빠지라고 했고…

 

 마지막으로 ‘넌 어쩔 건데?’라고 했는데…

 

 하윤의 머릿속은 저 세 단어만 동동 떠다니며 연관 관계를 찾고 있었지만, 이미 용량 초과로 사고 회로가 멈춰버린 듯 정신이 멍~ 했다.

 

 “이 팔찌가 그 팔찌구나!”

 

 팔찌를 낀 하윤의 손목을 잡아 올린 애리는 자신의 눈앞에 바짝 가져다 대고 팔찌를 노려봤다.

 

 그리고 애리가 팔찌를 잡아 빼려는 그 순간, 뒤에서 격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손목. 당장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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