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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14화 계획된 유인
작성일 : 20-08-27 10:28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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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진하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옮긴 그곳에 서 있는 그 사람.

 

 ‘젠장!!!’

 

 하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언제 들어도 앙칼지고 짜증 나는 그 목소리.

 

 호노카라는 일본인을 빙자한 여자는 하윤이 아는 여자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윤의 대학 시절을 시궁창에 처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혔던 같은 과 선배다.

 

 “애리 선…배?”

 

 “일루와.”라며 검지 손가락을 자기 쪽으로 까딱까딱하는데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이대로 여기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세련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거들먹거리며 기분 나쁜 눈으로는 하윤을 위아래로 훑더니 6년 만에 만난 후배에게 하는 첫마디가,

 

 “선배를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넌 꾸준히 버릇이 없구나?!”였다.

 

 “안녕…하세요. 선배.”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조애리.

 

 엄청난 재력을 가진 정치가의 외동딸.

 

 공부 외에도 다재다능한 매력의 소유자로 학교 때부터 인기녀였던 대학 선배.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성공한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만 가끔 동창들을 통해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남부러운 것 하나 없는 애리는 하윤이 입학했을 때부터 이유 없이 싫어하며 괴롭혔다.

 

 오랜만에 만난 하윤을 보더니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눈이 반짝거린다.

 

 심지어 이 상황이 무척 신이 나 죽겠다는 표정이다.

 

 “나 졸업했다고 이제 선배로도 안 보이지? 다음에 만날 땐 「친구야.」 할 기세네.”

 

 비꼬기 화법은 그동안 또 레벨업을 했나 보다. 아니면 학원에 다니는 게 분명하다.

 

 ‘저 빈정대는 목소리를 또다시 듣게 될 줄이야.’

 

 선배만 아니었어도 인중을 세게 한 대 쳤을 거다.

 

 “선배가 왜 여기 있어요? 일본에 계신 거 아니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왜 선배가 호노카예요?”

 

 “내 일본 이름이 호노카야.”

 

 친일파냐?! 창시개명했다는 소리를 참 자랑스럽게도 떠들고 있다.

 

 “너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핵심 기술을 보유한 MMT 사가 우리 회사야.”

 

 명함을 검지와 중지에 끼워 꼴 보기 싫게 하윤에게 건넨다.

 

 「MMT 주식회사

 국제 협업팀

 팀장 하야시 호노카」

 

 이름은 호노카, 성씨는 또 ‘하야시’란다.

 

 성(姓)희롱은 아니지만, 참 못된 짓만 골라서 할 것만 같은 ‘성씨’다.

 

 ‘왜 하필이면 애리 선배야?!! 이번 협력 계약이 성사되면 일로 계속 부딪칠게 분명하다.’

 

 상상만으로도 내장까지 뒤틀리는 기분이다.

 

 ‘이렇게 내 인생에도 자갈길이 열리는 건가?’

 

 절망적이다.

 

 “그 서류 봉투 내놔.”

 

 하윤의 손에 들려있던 두꺼운 서류 봉투를 소매치기하듯 뺏어갔다.

 

 “이건 명이한테 전해줘.”라며 얇은 봉투 하나를 하윤이 앞으로 던지듯 날렸다.

 

 ‘내가 심부름꾼이야?! 왜 이런 걸 나한테 시켜?’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독백으로 대신했다.

 

 “알아들었으면 대답을 하든지! 못 알아들은 거니? 너희 회사 최명 전무한테 전해달라고! 애가 행동만 굼뜬 줄 알았는데 귀도 굼뜨나 봐.”

 

 급격히 솟아오르는 혈압.

 

 거기에 기름까지 붓는 눈치 없는 애리.

 

 “넌 기현이랑 사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명이한테 꼬리치고 다닌다며?”

 

 또 그런 황당하고 근거 없는 소리는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단어 선택 한번 저렴하다.

 

 “누가 그래요?”

 

 “다~ 아는 사실을 너만 몰라. 너만.”

 

 하윤의 혈압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열심히 주댕이를 털고 있다.

 

 ‘참자. 하윤아. 선배는 때리는 거 아니야. 사람을 함부로 때리면 안 돼.’

 

 화를 혼자 삭이느라 속이 시커멓게 활활 타올라 한 줌의 재가 되기 직전,

 

 “혹시… 진하윤 씨?”

 

 날씬하게 쭉 뻗은 각선미를 가진 귀티 나는 여자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가까이에 다가올 때까지 온갖 추리력을 쥐어짜며 기억해보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다.

 

 “어머!! 하윤 씨 맞구나!”

 

 “저를… 아세요?”

 

 하윤의 반응에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다시 환한 표정을 내비쳤다.

 

 “아직 그날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그날…요?”

 

 “술 취해서 여기 온 날요. 참!!! 가방에 소주 한 병 들어있지 않았나요?”

 

 “헉!!!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내가 준거잖아요. 쿸크쿸”

 

 여자는 유쾌하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오늘로써 그날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언니. 안녕하셨어요.”

 

 갑자기 깜빡이도 없이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식 쩌는 애리의 목소리.

 

 1인 2역 하는 줄…

 

 애리가 이 귀티 나는 여자에게 친한 척을 하지만, 상대방은 금세 알아보지 못한다.

 

 “누구…?”

 

 “언니. 저 애리에요. 조애리. 명이 대학 동창요. 학생 때 집에도 자주 놀러 갔었는데…”

 

 저 간드러지는 음색 보소!

 

 “아~ 애리. 기억났어. 오랜만이다. 너 일본에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완전 들어온 거야?”

 

 “네. 명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저희 회사 협약할 예정이에요. 한국 들어와서 언니를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잘 보이고 싶은 티를 팍팍 내며 애교 많고, 예의 바르다고 온몸으로 표현 중인 애리.

 

 설정이 과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중간중간에 계산된 듯한 눈웃음은 어찌나 가증스럽던지 오늘 밤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

 

 “아~ 그랬구나. 우리 명이 잘 부탁해.”

 

 이 귀티 나는 여자분이 최명의 누나라는 사실을 막 알게 된 하윤은 몰라봤던 게 죄송스러워서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러던 애리가 마치 비밀 얘기라도 하듯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닥였다.

 

 “언니. 찬이가 돌아왔다면서요?”

 

 “어..으…응.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진짜 비밀 얘기였나보다.

 

 여자는 당황하며 애리의 말을 차단하듯 끊어버렸다.

 

 “진하윤아. 이분과 중요한 얘기 중인 거 안 보여? 눈치 없이 언제까지 거기에 앉아 있을 거니?”

 

 평소 같았으면 꺼지라고 한마디로 끝났을 말을 언니 앞이라고 참 친절하게도 내뱉는다.

 

 “아!! 죄송해요. 그럼 전 먼저 일어날게요. 두분에서 얘기 나누세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데

 

 “하윤씨. 잠시만요. 저랑 얘기 좀 하고 가요.”라며 이 언니분이 하윤의 팔짱을 끼며 끌고 간다.

 

 “애리야. 우린 다음에 얘기하자.”

 

 “네?!! 언니.”

 

 시무룩해진 애리는 하윤이 안 보일 때까지 눈을 흘겨본다.

 

 “하윤씨를 또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요. 그날 재미있었는데 아직 기억이 없다고 하니깐 좀 섭섭하네.”

 

 “죄송해요.”

 

 “하윤 씨가 죄송할 것 까지는 없어요. 우리 라운지 레스토랑으로 올라갈까요?”

 

 그렇게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라운지는 혼자서 술을 즐길 수 있는 바와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창가 소파, 그리고 시야가 탁 트인 야외 테라스까지 하나같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와 중앙의 단체석 같아 보이는 기다란 파스텔톤의 소파는 낯설지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번뜩였고, 하윤은 핸드폰을 꺼내어 그날 찍은 사진첩을 뒤졌다.

 

 심령사진 같은 사진 중에 유독 한 장만 어떤 장소의 실내를 찍은 듯했는데, 거기가 여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날 제가 혼자 왔었나요?”

 

 “아뇨. 남자분과 같이 왔어요.”

 

 “혹시 키가 크고, 마스크를 한…”

 

 “맞아요. 그분과는 잘 되어가고 있어요?”

 

 흥미진진해 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하윤의 대답을 기다린다.

 

 “전 남자친구가 있어요.”

 

 “아… 그러셨구나. 잘 어울렸는데 아쉽네요.”

 

 당사자처럼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최명 선배의 친누나이신 거죠?”

 

 “최민이라고 해요. 명이 후배라서 애리랑도 친한 거였군요.”

 

 “아뇨. 애리 선배랑은 안 친해요.”

 

 처음 본 사람한테 본심을 드러내 버렸다.

 

 “성격이 좀 까칠해서 그렇지 애리가 나쁜 애는 아니에요.”

 

 “아뇨. 나쁜 애… 나쁜 선배 맞아요.”

 

 너무 대놓고 까버렸다.

 

 “후훗~ 하윤 씨가 의외로 솔직하네요. 나 하윤 씨가 너무 좋은데 자주 놀러 와요. 난 항상 라운지에 있으니깐요.”

 

 하윤이네 회사의 회장 손녀인 최민은 에스호텔 후계자에게 시집을 왔다.

 

 재벌 집 손녀가 재벌 집으로 시집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큰 이슈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하윤은 「최민」을 검색한 후에야 왜 항상 라운지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에스호텔 며느리 최민 작가 호텔 취직? NO!」

 

 「이번 시나리오는 호텔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를 준비 중.」

 

 「사실적인 집필을 위해 라운지 지배인으로 취임.」

 

 

 ***

 

 

 호텔 지하 주차장.

 

 ‘차를 어디에 댔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쭉 빼서 둘러보는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익숙한 실루엣.

 

 ‘케이다!’

 

 여전히 은빛 머리칼에 마스크, 그리고 오늘도 현실감 제로를 자랑하는 수트핏이다.

 

 그도 하윤을 발견했는지 잠시 멈칫하는 듯 보였으나, 신경 쓰지 않는 듯 걸어왔다.

 

 시원하게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하윤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데 무슨 런웨이 걷는 줄…

 

 주차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한 번씩은 뒤돌아볼 정도였으니 이것만으로 그의 비주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게 입증되었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어.’

 

 며칠 전, 그에게 말실수했던 하윤은 이렇게 만난 김에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사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진하윤이니깐!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를 장착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케이 씨. 안녕하…”

 

 사람 무안하게 모르는 사람처럼 그대로 쌩~ 하고 스쳐 지나가 버린다.

 

 게다가 그가 지나간 자리는 냉기가 돌았다.

 

 ‘아직 화가 안 풀린 거야? 큐가 별일 아니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하윤은 케이를 쫓아가서 양팔을 벌려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요. 케이 씨. 잠시만요.”

 

 가던 길이 막힌 케이는 걸음을 멈추고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면서 하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잠깐이면 돼…요.”

 

 그의 싸늘한 눈빛에 이미 한 방 먹은 하윤은 주눅 든 목소리로 그를 잡았다.

 

 “뭐죠?”

 

 귀찮다는 듯 시큰둥하게 묻는다.

 

 “저 못 봤어요?”

 

 “봤어요.”

 

 “봤으면서 왜 모른 척하고 지나가요?!”

 

 “나와 엮이는 거 싫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여기서 아는 척하면 또 엮이게 되는 거 아닌가?”

 

 속내를 알 수 없게 지극히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뭐지?! 이 적절한 비아냥은?’

 

 사실 다 맞는 말이라 받아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는 철벽이라도 치듯 대화 단절 선언을 한다.

 

 “답했으니 됐죠?”

 

 “네???”

 

 하윤이 사과할 기회를 단칼에 잘랐다.

 

 사과 외길 인생 29년 만에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윤의 대답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막고 서 있는 그녀를 피해 빙글 돌아서 그대로 갈 길을 가는 케이.

 

 ‘나…지금 까인 거야?!’

 

 사과 한마디 못한 하윤은 오기가 생겼는지 꼭 사과를 하고 말리라.고 다짐하고 그의 뒤는 쫓았다.

 

 호텔 안으로 들어간 그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복도 끝에 있는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비상계단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봐요. 케이 씨. 잠깐만요. 지금 피하는 거예요?”

 

 문에는 어김없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출입금지고 나발이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사과를 하고 말겠다는 신념 하나로 그를 쫓아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간다.

 

 “케이 씨! 그렇게 피하지만 말고… 헉!!!!!”

 

 하윤은 들어가다 말고 문 중간에 걸쳐 서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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