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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13화 오늘은 우리 어디까지 진도 나가볼까요?
작성일 : 20-08-27 10:2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5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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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문을 열어볼까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서는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하윤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악!!!!!”

 

 누군가의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가다시피 끌려들어 간 하윤은 당황스럽긴 했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길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문 쪽에 밀어붙이고 마주 선 이 남자.

 

 브라운 계열의 수트에 눈이 살짝 가려질 듯 찰랑거리는 앞머리. 그리고 검은 마스크.

 

 “……케이 씨?!”

 

 자신의 시그니처 패션과도 같았던 검은 후드티가 아니었기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쉿!”

 

 그는 손가락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잠시 후, 문밖의 통로로 직원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우르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신비주의라고 하더니, 같은 직원들까지도 피해가며 신비주의 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케이가 시키는 대로 숨을 죽인 채 문밖 소리에 집중했다.

 

 바깥 상황을 확인하려는 케이는 상체를 세워 문에 귀를 가져다 댄다.

 

 그녀가 사이에 껴 있는걸 모르는 듯 너무 바짝 다가선 케이의 가슴에 하윤의 얼굴이 닿았다.

 

 쿵.쿵.쿵.쿵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케이의 가슴에서.

 

 ‘이 남자… 얼마나 놀랐길래 이렇게 심장이 뛰어?!!’

 

 문밖이 조용해진 걸 확인한 케이는 상체를 숙여 하윤의 표정을 확인하듯 얼굴 전체를 훑었다.

 

 “많이 놀랐어요?”

 

 “당연하죠. 그렇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면 누구라도 놀라죠.”

 

 걱정하듯 물어본 케이의 질문에 심술 난 얼굴로 새침하게 대답하는 하윤.

 

 이미 밖은 조용해졌는데 그는 하윤과 떨어질 생각이 없는 건지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빤히 바라본다.

 

 “하지 마요.”

 

 “훗~ 나 아무것도 안 했어요. 뭘 하지 말라는 거에요?”

 

 “또 마스크 내릴 거잖아요.”

 

 “내 마스크를 내리려고 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네요.”

 

 하윤은 또 그날 밤의 수치스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일을 우려먹을 거에요?!!”

 

 따지듯 묻는 하윤의 질문에 생글하며 눈으로 웃는 케이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하윤은 그런 시선을 차단하듯 그에게 잡힌 손목을 눈앞에 들이밀며,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라며 빨리 놓아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훗~ 나한테 손목을 너무 자주 잡히는 거 아닌가?”

 

 “그쪽이 막무가내로 잡은 거잖아요.”

 

 하윤은 잡힌 손목을 비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각오는 하고 온 거죠?”

 

 “무슨 각오요?”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진도 나가자고 했을 텐데.”

 

 “아…”

 

 불과 하루 전에 글램핑장에서 케이가 했던 말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어디까지 진도 나가볼까요? 보통 손목 다음엔 허리를 감싸던데.”

 

 그러면서 그녀의 손목을 당기며 더 세게 잡아 쥐었다.

 

 “장…장난치지 마세요.”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만나는 거 같은데. 혹시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접근인가?”

 

 장난을 담은 도발적인 케이의 말에 댕~하고 뒤통수를 묵직하게 강타 당한 거 같았다.

 

 ‘고작 이런 곳에서 일하는 남자한테 내가 계획적으로 접근을 했다고?!!!’

 

 자존심 상하는 건 둘째치고 불쾌하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이봐요! 케이씨. 내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남친도 있고, 이런 곳에 있는 당신 같은 남자들한테는 관심도 없어요!”

 

 “이런 곳에 있는 남자들?”

 

 미간을 찌푸리며 눈동자가 일그러지는 케이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기분 나쁜 단어로 조합해 내뱉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떤 종류의 여자들을 만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 여자도 있다는 걸 알아야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2절, 3절까지 완창할 기세다.

 

 “난 당신 같은 남자들 잘 알아요. 모든 여자에게 호감 있는 듯 행동하며, 상대방이 적당히 오해하도록 만들죠. 자신이 만인의 연인이라도 되는 양 매일매일 여자들을 갈아치우며 같은 수법으로 접근해서, 넘어오면 그게 마치 자신의 경력이라도 되는 듯 영웅담처럼 말하고 다니겠죠.”

 

 숨도 쉬지 않고 폭풍 랩처럼 쏟아낸 하윤은 「난 그런 여자들과 달라.」라는 표정으로 경멸하듯 케이를 바라봤고, 그녀의 눈빛을 읽은 케이는 그녀의 손목을 놓는다.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된 듯 정적이 흘렀고, 그의 눈빛은 시릴 정도로 차갑게 변해있었다.

 

 “진하윤 씨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 보네요.”

 

 갑자기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싸늘한 목소리에 하윤의 눈동자는 당황한 듯 흔들렸고, 시선을 바닥에 깐 채 변명하듯 말을 주저주저 늘어놓는다.

 

 “말이 심했다면 죄송해요. 꼭 그쪽이 그렇다고 단정 짓는 건 아니에요.”

 

 하윤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차라리 같이 목청 높여 따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케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케이의 표정이 보고 싶었다.

 

 마스크 때문에 완전한 표정을 볼 수 없겠지만, 이 남자 눈에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기에 눈만 봐도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으로 향해 있던 하윤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훑으며 올라가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천천히 숨을 토해내며 힘겹게 입을 떼는 케이.

 

 “난… 진심이었어요.”

 

 따지고 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릿해졌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됐어.’

 

 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와 가슴이 꽂혀버린 느낌.

 

 ‘제발 뇌를 거쳐서 말을 하라고!!!’

 

 하윤이 자신을 자책하는 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물러서더니 뒤돌아서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저벅저벅

 

 아니,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 소리가 멈추더니 그는 하윤을 향해 돌아섰다.

 

 “난…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어요. 처음 여기서 만난 그날부터.”

 

 그를 올려다보는 하윤은 낯익은 장면이 기억났다.

 

 계단 위에서 시선을 강탈할 만큼 훌쩍 큰 키에 슈트 빨 죽이는 남자가 그녀를 주시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이 장면.

 

 데자뷔같이 똑같은 장면이 생각난 것이다.

 

 하윤은 놀라며 터져 나오는 소리를 틀어막듯 두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는 돌아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이 클럽에 처음 온 날. 여기서 봤던 그 검은 그림자가 케이였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문에 기댄 채 절망한 듯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아버렸다.

 

 ‘그날부터라고?!! 그걸 왜 지금 말해!’

 

 처음 만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케이와 있었던 일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망연자실해서 쪼그려 앉아 있기를 십여 분.

 

 “하윤 누나!!!”

 

 큐가 계단 위에서 뛰어 내려왔고, 하윤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맹한 눈알로 고개를 들었다.

 

 “큐…씨.”

 

 “괜찮아요? 룸으로 모셔다드릴게요.”

 

 부축 받으며 일어서던 하윤은 아무도 없는 계단 위쪽을 올려다봤다.

 

 “케이 씨를 만났는데…”

 

 “네. 들었어요. 케이가 누나가 쓰러진 거 같다고 데려다주라고 부탁했어요.”

 

 “케이가요?”

 

 죄인이 된 것 같이 마음이 무거웠다.

 

 “누나. 케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하면 안 될 말을 했어요.”

 

 “케이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로 속 좁은 사람 아니에요.”

 

 “상처 받은 거 같았어요.”

 

 “아마 누나 때문이 아닐 거에요. 요즘 회사랑 집안에 일이 많아서 예민해져서 그럴 거예요.”

 

 “회사랑 집안일요?”

 

 순간 번뜩 드는 생각.

 

 “혹시 그 일이 저희 회사 최명 전무님과 연관된 건가요?”

 

 “…아마도 그럴걸요.”

 

 큐는 망설이는 듯하였으나, 곧장 대답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케이와 선배는 서로 아는 사이였어.’

 

 거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왜 둘 다 그 사실을 나한테 숨기려는 거지?’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이 죄다 수수께끼투성이다.

 

 룸으로 돌아온 하윤은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에 땅이 꺼지라 한숨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실 케이를 봤을 때, 너무 반가웠고, 설렜고, 좋았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굳이 해서 케이에게 상처를 준 거 같았다.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만나는 거 같은데. 혹시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접근인가?”-

 

 케이의 이 말이 뭐 그렇게 화가 난다고 그렇게 퍼붓듯 말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케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남의 차에 올라탔고, 그가 있는 캠프장에 스스로 걸어갔고, 오늘 역시 그가 일하는 클럽에 스스로 걸어들어왔고…

 

 누가 봐도 케이를 만나겠다는 계획적인 의지가 강해 보이는 애매한 상황들.

 

 남자친구가 있는데 자꾸 케이가 신경 쓰여서 그 죄책감에 일부러 더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

 

 

 또 새벽 귀가다.

 

 엄마가 제발 잠들었기를 기도하며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하윤.

 

 불이 훤하게 켜져 있다.

 

 이말 인즉, 엄마가 아직 잠이 들지 않았다는 것.

 

 다시 현관문은 살짝 닫으며 뒷걸음질로 다시 나가려는 찰나,

 

 “도망가지 말고, 그냥 곱게 들어와라.”

 

 아주 저기압 때만 들을 수 있는 어금니 꽉 깨문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헤헤~ 엄마~ 안 잤어? 왜 안 잤어? 나 보고 싶었구나~”

 

 애교 섞인 말투로 소파에 앉아서 분노를 조절 중인 엄마를 안고 비비적거린다.

 

 “아이고 못살아. 못살아. 내가 진짜 못살아.”

 

 비비적거린 효과는 하나도 못 보고 또 엄마에게 스매싱을 당한다.

 

 “엄마. 아파!!!”

 

 “내가 아파트 사람들한테 부끄러워 죽겠어. 허구한 날 술에 취해서 새벽에 들어오고, 그게 아니면 집에 안 들어오니깐, 다들 무슨 회사 다니냐고 물어보잖아.”

 

 “우리 아파트 사람들 오지랖 넓은 건 알아줘야 해.”

 

 “내가 남사스러워서 못 살겠어.”

 

 “앞으론 조심할게. 그러니 엄마 빨리 들어가서 자.”

 

 엄마의 등을 떠밀어 방으로 들여보낸다.

 

 “알았어. 그리고 너!! 이번 주 토요일 납골당 가야 하니깐 시간 비워놓고!!”

 

 “당연하지. 곧 이모랑 이모부 제사잖아. 비워둘게.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를 강제 취침시키고, 방문을 닫으며 잔소리를 자연스럽게 차단했다.

 

 

 ***

 

 

 다음 날 아침 회사 휴게실.

 

 전날의 숙취로 골골대며 덜 마른 오징어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하윤과 라연.

 

 “일요일이 너 생일이더라.”

 

 “벌써 29살이네. 실화야?!!”

 

 “이번에도 이모 납골당에 가?”

 

 “응. 올해 제사는 월요일이라 엄마가 토요일에 미리 다녀오자더라.”

 

 “생일 바로 다음 날이 이모 제사라서 편하게 즐길 수도 없겠네.”

 

 “그러게… 집에서 신나게 생일파티를 해본 기억이 없어.”

 

 “생일에는 기현이랑 뭐할 거야?”

 

 “몰라. 아직 연락 없어.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때 마침, 후배 직원이 휴게실 문간에서 고개만 빼꼼 들이밀며

 

 “진 대리님. 부장님이 찾으십니다.”라고 전해왔다.

 

 “응. 올라갈게.”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하윤은

 

 “내가 없으면 이 회사가 안 돌아가.”라고 거만을 떨며 사무실로 올라간다.

 

 “부장님. 찾으셨어요?”

 

 “거래처에 서류를 전해주고 와야 하는데.”

 

 “제가요?”

 

 “거래처에서 진하윤 씨를 콕 집어서 보내 달라고 했으니, 잘 전달하고 와.”

 

 부장은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넨다.

 

 ‘뭐지? 이 찝찝한 전개는?!!’

 

 받아든 서류는 꽤 무거웠다.

 

 “회사 차 내줄 테니까 후딱 다녀와.”

 

 “거래처 어디요?”

 

 “에스호텔 커피숍에 가서 ‘호노카’ 씨를 찾아.”

 

 “아.. 일본 분이세요?”

 

 “만나보면 알 거야. 진 대리가 일본어에 능숙한 걸 알고 지명했나 봐.”

 

 호텔 커피숍 입구에 도착한 하윤.

 

 “손님 중에 호노카라는 일본 분을 찾아왔...”

 

 “진하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옮긴 그곳에 서 있는 그 사람.

 

 ‘젠장!!!’

 

 하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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