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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푸른 잎에 능금
작가 : 목탄
작품등록일 : 2020.8.5

용의 여인이 될 운명을 타고난 능금,
행궁 청소를 하다말고
실수로 세자의 손을 베어버리는 데
지고지순, 능금만 바라보는 홍옥을 남겨둔 채
결국 궁궐로 납치되고 만다.
조선시대 온천과 궁궐 서가를 오가며 벌어지는 용팔이 로맨스,
흑룡과 청룡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지어다.

 
8. 꽁꽁 여민 등짝
작성일 : 20-08-21 15:42     조회 : 349     추천 : 1     분량 : 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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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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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이 품에 두었던 부채를 꺼내 펴본다. 행궁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장다리꽃이 피고, 연등이 매달렸다. 홍옥, 무사한 것이냐. 부채를 보듬던 능금이 뜬금없이 먹을 간다. 오전 내 그리 고생을 하였건만 또 붓을 들려는가 보다.

 “승천을 할 지언정, 눈을 찍어줘야겠구나.”

 장님 용을 보기가 안쓰러웠던가, 붓을 들어 먹을 적신다.

 화룡점정, 눈을 찍자, 잠잠하던 용 비늘이 화르르 일어나고, 부채 속으로 먹구름이 몰려든다. 벼락이 치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성난 용이 솟구쳐 오른다. 부채 밖으로 날아오른 용이 서고를 집어삼킬 듯 용트림을 하더니 열린 문틈으로 이내 사라진다. 그 기세에 놀라, 벌렁 넘어져있던 능금이 뒤늦게 용을 쫓는다. 신비한 푸른빛이 어정 쪽으로 춤을 추듯 날아간다.

 신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내달리던 능금이 어정 문에 서린 기이한 빛에 주춤한다. 무서우면서도, 그리운 이 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능금이 떨리는 손으로 기어이 문을 연다. 구름 속에 든 듯, 상서로운 연기가 어정 가득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옥아!”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내다. 밤마다 낮마다 사무치게 그리웠다. 바람처럼 달려 홍옥의 품에 안기는 능금, 홍옥도 기꺼이 능금을 끌어안는다.

 “그새 여인이 되었구나. 이리 나긋나긋 안기는 것이냐.”

 능금의 뺨에 눈물이 흘러넘친다. 꿈이라도 좋고, 생시라도 좋다. 이리 만나, 네 온기를 느낄 수 있으니. 홍옥의 가슴이 눈물에 젖는 것도 모르고 능금이 하염없이 운다.

 “그만 울거라. 우물에서 짠 맛이 나겠다.”

 “얼마나 그리웠는데,”

 홍옥이 능금의 등을 부드럽게 다독인다.

 “나도 그리웠다.”

 네가 없는 하루가 천년처럼 길어, 그 세월을 견디느라, 피가 마르고, 살이 말랐다. 수척해진 홍옥이 능금의 젖은 뺨에 입 맞춘다.

 “그만 얼굴을 보여주렴.”

 떨어져있는 그 시간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이리 탐스러워지고, 이리 여인의 향기를 피우다니. 홍옥의 눈시울이 붉게 젖는다.

 “나 없는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나 보구나. 오동통 살이 붙었다.”

 “그러는 너는, 어디서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게야? 왜 이리 말랐어?”

 “네가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으니까.”

 “피, 이제야 내 은혜를 알겠네.”

 “그래, 너 없으니까, 굶어죽겠더라.”

 어정을 나와 나란히 걷는다. 손을 마주 잡고, 그토록 그리웠던 목소리를 속살대며 한밤을 걷는다.

 “눈이 없는 용이 너였구나.”

 “너라면 화룡점정을 찍을 줄 알았다.”

 “내가 안 찍으면 어쩌려고”

 “그럼, 평생 부채 속에 사는 거지.”

 “어쩐지 부채 속 용이 꾀죄죄하고 불쌍해 보이더라니,”

 “엄청 늠름하고 용맹스러웠거든. 수염도 멋졌고.”

 능금이 피식 웃는다. 어찌 안 찍을 수 있겠어. 이리 아름다운 눈동자인걸. 푸른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홍옥도 화답하듯 능금의 눈을 들여다본다.

 “네가 손을 덜덜 떨어서 사팔이 될 뻔했다.”

 “나 손 안 떨었거든. 네가 고새를 못 참고 꿈틀댄 거지.”

 “그렇다 치고, 내 눈 괜찮아? 한 쪽이 더 번지지 않았어?”

 “예쁘기만 하다.”

 “정말?”

 마음이 말이 되기도 전에 홍옥이 능금의 입술을 훔친다. 더는 참을 수 없게 탐스럽구나. 더는 견딜 수 없게 달콤하구나.

 이렇게 애가 탄 적이 있을까. 능금이 거칠게 뛰는 가슴을 부여잡는다.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네 야윈 등을 씻기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언제 이리 여인이 된 것이냐.”

 볼이 붉어진 능금이 차마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홍옥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피어난다. 더는 너를 두어선 안 되겠구나. 그 향기에 홀려 나비며 벌이 함부로 날아들겠다. 감히 주인이 있는 지도 모르고 붕붕대겠다.

 홍옥이 능금의 말랑한 손을 쥐고 걷는다. 밤바람이 이리도 간지러웠던가, 속절없이 웃음이 나는 구나. 제 마음을 어쩌지도 못하고 홍옥이 후원을 걷는다. 뒤를 따르는 능금의 얼굴도 발그레 붉다.

 

 서고 먼지를 닦던 소란이 문득 부채를 발견하고는 펼쳐든다.

 “못 보던 부채인데?”

 바닥을 쓸던 능금이 쏜살 같이 달려와 부채를 뺏는다.

 “선물 받았어.”

 “별감나리께서 주셨어?”

 “음”

 “무슨 그림이 저리 생생하대. 용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르겠어.”

 “그럴 리가.”

 “너 더위 안탄다며, 안 쓸 거면 나 줘라.”

 “아, 올 여름은 정말 덥대서, 하나 갖고 있어보려고.”

 능금이 뒤춤에 부채를 숨긴다. 핑계 한번 그럴싸하다. 별감 나리가 준 거라서 그런 거잖아. 소란이 입술을 삐죽인다. 하여간 예쁜 것들은 가만히 있어도 부채가 굴러들어 온다니까.

 “그래, 그 고운 얼굴에 땀띠라도 나면 어쩌니.”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쩌랴. 홍옥을 네게 줄 수는 없구나.

 “자 대신 이거 줄게.”

 능금이 소매부리에서 댕기를 꺼내 건넨다. 혼자만 새 댕기를 매면 이 아이가 서러울 것 같아, 부러 돈을 쓴 것이다.

 “어마, 곱다.”

 부채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고 소란이 댕기를 받아든다.

 “어제 그림을 그려 번 돈으로 산거다.”

 “그 고생을 했는데, 내 것까지 산거야?”

 부채를 안 준다고, 토라질 때는 언제고, 지금은 눈물을 철철 흘리고 서있다. 마음이 가난하여 능금의 속을 헤아리지 못했던 스스로를 원망하는 게다.

 연분홍 댕기가 서가를 누빈다. 댕기 하나에 저리 열심히 할 것까지야. 능금이 숨겼던 부채를 꺼내 펼친다. 잠 들어있던 용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능금을 향해 눈을 찡긋댄다.

 “조신하게 있어.”

 반항하듯 수염을 꿈틀대는 홍옥, 능금이 서둘러 부채를 접는다.

 “아무데나 두면 안 되겠다.”

 하필 숨긴 곳이 꽁꽁 여민 등짝이다. 가슴팍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냐. 청룡이 능금의 등에 얼굴을 묻는다.

 

 “죽은 사람 제사지내다가 산 사람 잡겠다.”

 “그런 불경한 말들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것이냐?”

 화홍이 퀭한 얼굴로 묻는다. 아비가 명한 궁궐 행사를 일일이 찾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삶의 지혜거든.”

 “잘났다.”

 부사가 보란 듯이 부채를 펼쳐들고는 훨훨 부친다.

 “광증이라도 돋는 거냐?”

 쏘아붙이던 화홍이 부채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는 넋을 잃는다.

 “무슨,”

 어찌 저리 푸르게 일렁인단 말인가. 그릇에 담긴 물 밖에는 보지 못한 세자의 가슴에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친다. 신지께가 날아오르나 했더니 이내 물속으로 뛰어들고, 은빛 물보라가 몰려온다. 물비늘이 이렇게 찬란하단 말인가. 파도 소리가 귀를 적시고, 마음을 적신다. 화홍의 등에서 비늘이 화르르 돋아난다. 목덜미를 덮고, 팔을 덮고, 가슴을 덮는다. 저 먼 섬에서 누군가 그를 부른다. 아련하게 그의 이름을 부른다. 언젠가 들었던 그 목소리, 인자하게 그를 보듬던 목소리. 화홍이 그 목소리를 따라 나서는 찰라, 부사가 촤락 부채를 접는다.

 “바다다.”

 “바다…”

 “모든 물것의 고향이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곳이 이리 사무치게 그립구나. 어미가 그토록 물가에 못 가게 막는 것도 이런 연유인가. 그림만 보아도 비늘이 돋고, 발톱이 돋는데, 정말 물가라면 훨훨 날아갈 지도 모르겠다. 그 날 우리가 날려 보낸 풍등처럼 미련 없이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난 게냐.”

 “능금이 그렸다.”

 “능금이”

 “귀신같은 솜씨지. 허나 너는 부탁치 말거라. 그림 속으로 도망 칠 수도 있으니.”

 “역시 넌 변방에 가야해.”

 “옳은 말 하는 놈은 본래 변방에서 썩는 법이지.”

 “이제야 깨달았군.”

 화홍이 머리를 싸매고 일어선다.

 “바람을 쐬어야겠다. 네 덕에 머리가 깨질 것 같구나.”

 고작 그림을 본 것 가지고 이리 동요하다니, 몸이 허하긴 한가 보구나. 화홍이 비틀비틀 후원을 걷는다. 꽃그늘에 앉아 볕을 쬐면 낫겠느냐, 네가 속삭이는 비현각에 들면 낫겠느냐.

 “서고에 가려고?”

 화홍의 마음을 알아챈 부사가 이죽댄다.

 “죽어야 안 쫓아 올 테냐.”

 “귀신이 돼서도 쫓으리.”

 저 지겨운 놈은 그러고도 남는다.

 “내가 공공연히 그 곳에 들면 누군가 그 애를 경계하고 미워할 게 아니냐.”

 “그래서 양상군자처럼 밤에만 드는 것이냐.”

 “그래.”

 능금을 아끼는 마음이 깊구나. 그 마음이 네 역린이 되지 않기를 염원하마.

 결국 정자 그늘에 들어 스르르 잠이 든다. 부사가 부채를 펴 부신 햇빛을 막는다. 파도 소리가 잠잠히 들려오고 먼 데서 부르는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물것의 고향, 언젠가 나도 돌아가고 싶구나. 화홍이 시름없이 잠에 빠진다.

 “네 피가 이리도 바다를 그리워하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부사가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을 내려다본다.

 “같이 가자꾸나. 화홍.”

 “그래.”

 꿈결에 들리는 대답, 그 목소리를 들은 신지께가 울고, 잠잠하던 바다도 덩달아 운다. 하얗게 일어난 포말이 부채 밖으로 떨어져 방울방울 바닥을 적신다.

 “꼭이다. 흑룡”

 

 노곤한 군사들이 꾸벅꾸벅 졸고, 바지런한 궁녀들도 잠들었다. 달빛도 미치지 않는 지붕 위에 그림자 두 개가 나란히 드리워져있다.

 “이제야 뵙습니다.”

 “많이 컸구나. 어정을 통해 온 것이냐?”

 “그러기엔 영력이 부족합니다.”

 “여의주를 찾느라 남은 힘을 다 썼군.”

 “예. 누구처럼 영력을 영영 잃을 뻔 했습니다.”

 “몸만 큰 게 아니라 머리통도 커졌구나. 나를 놀리는 걸 보면 말이다.”

 “설마요.”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은 여인을 품는 게 아니냐?”

 “아무나 품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더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아주 잘 알지. 그 벌로 이리 남아있는 게 아니냐. 허나 너라면 점 찍어둔 여인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한들, 영력을 핑계로 품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낫군.”

 “그 때를 후회하십니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았을 거다. 나를 믿는 백성을 살릴 방법은 그 방법뿐이었으니.

 흑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눈을 감는다. 그날의 화마가 다시금 덮쳐오는 듯, 얼굴이 뜨거워진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불길이었나. 가난한 집 아궁이였나, 동상이 걸린 발치였나, 작은 불이 큰 불이 되어 번지고, 온 마을이 불타고, 온 숲에 불이 옮겨 붙었다. 우물물을 길어 불을 끄던 사람들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갓난쟁이가 타죽고, 늙은 부모가 불길에 갇혔다.

 삼삼오오 개울가로 대피한 사람들이 타오르는 불길을 어쩌지 못하고 넋을 놓는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구먼.”

 “비는 무슨 비, 용의 허리를 끊었으니 비가 오겠어?”

 “용의 허리? 그게 무슨 말이여?

 “우리 마을 이름이 뭐여? 용마루 아니여.”

 “글치.”

 “근데 용의 허리께를 떡하니 끊고 별채를 지었으니 천벌을 받는 게지.”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댜!”

 “우의정 대감이 아니냐.”

 “계집에 미쳐서 나라를 망치는구만!”

 마을사람들이 엎어져서 빈다. 죽은 용이라도 좋으니 제발 비만 내려달라고, 부디 이 산천초목을 지켜달라고 빈다. 그 아우성 속에서 허리께에 피를 흘리며 흑립을 쓴 사내가 지나간다. 비틀비틀 걷던 사내가 어느 집 문간에 쓰러진다. 가마를 탄 여인이 사내를 발견하고는 아랫것들에 일러 급히 집안으로 들인다. 한참을 신음하던 사내가 가까스로 깨어난다. 사내를 구한 여인이 곁에 앉아 무명수건으로 연신 사내의 이마를 식혀준다.

 “내가 누군지 알고, 들인 것이오.”

 “이 마을에는 용이 산다 들었습니다. 그 용이 아니십니까?”

 “어찌 그리 단언하는 것이오.”

 여인이 사내의 목덜미에 돋은 비늘에 눈을 둔다. 비늘을 숨길 틈도 없이 이리 연약하여진 것인가. 아비가 산의 허리를 끊고 별채를 짓는다고 하였을 때 걱정을 했더랬다. 대대로 용을 모신 마을인데, 그 뜻을 거슬러서야 될까, 민심을 잃는 것은 아닐까. 허나 그 걱정이 사실이 되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대가 무슨 힘이 있어 별채를 허물고, 막힌 못에 물을 채우겠소.”

 “못도 메우셨습니까?”

 “아비가 들인 첩은 용이 못 된 이무기요. 심술이 나서 마을을 불 지르고 못을 메운 것이오.”

 “정녕 아무 방법이 없습니까? 이러다가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용이 회복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모든 하겠습니다.”

 “처녀의 몸을 품어야 하오.”

 처녀의 몸, 이미 사주단자를 궁에 보내었는데, 어찌 용에게 몸을 내줄 수 있단 말인가. 여인이 망설인다. 허나 아비가 시작한 일, 누군가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저라도 괜찮겠습니까?”

 “아비의 죄를 대신 갚는 단 말이오?”

 “시간이 없습니다.”

 사내가 검은 눈을 들어 여인을 응시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리 될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아무 의심도 없이 당신을 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여인이 떨리는 손으로 사내의 옷고름을 푼다. 물 것은 이리 아름답구나.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길고 고운 목선에 그 붉은 입술에, 크게 베여 피가 맺힌 허리에, 여인의 입술이 사내의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대가 나를 품는군.”

 사내가 긴 손가락으로 여인의 머리칼을 보듬는다. 그 눈에 떠오른 욕심만 보지 않았던들, 널 사랑했을 것이다. 허나 그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기에 나는 너무 소박하구나. 용이 도포자락을 펼쳐 여인을 눕힌다.

 “그럼, 기꺼이 받겠소.”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하늘이 분노한 듯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타오르던 불길이 꺼지고, 옮겨 붙던 불씨가 죽는다. 낫이며, 괭이며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이나 들고 별채를 부수던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춤을 춘다.

 “용이 다시 사셨구먼!”

 “만세! 만세!”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그래, 이놈의 흉물을 마저 부숴야지!”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별채를 부순다. 겁쟁이 우의정이 도망치고, 못된 이무기가 가슴을 치다가 이내 개울을 찾아 뛰어든다.

 “그리 지키려 했던 사람들을 지금은 어찌 지키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힘을 얻고자, 아무 여인이나 취하였으니 벌을 받은 게 아닌가.”

 “그 아무 여인 때문에 지상에 남으신 게 아니십니까.”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아는 군.”

 한때는 용이었던 사내가 슬프게 웃는다. 그저 아슬아슬 하였다. 그리하여 떠나질 못하였는데, 영력을 잃고 이리 범부가 되었구나.

 “너무 오래 가물었네. 부디 흑룡을 부탁하네.”

 “그리하겠습니다.”

 홍옥과 사내가 회상에 잠겨있을 때 초롱을 든 대감이 교태전으로 들어선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그닥 떳떳한 방문은 아닌 듯하다. 지붕 위의 그림자를 발견한 대감이 침침한 눈을 비비적댄다.

 “어처구니인가?”

 이내 종종걸음으로 중전의 처소에 든다.

 “좌의정 대감 연길이로군.”

 “화홍의 장인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 든 것을 보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불길하긴 하군.

 나비 호롱이 너울너울 흔들린다. 중전의 얼굴에 시름이 깊다.

 “후사가 없어 심히 걱정이오.”

 “다 제 딸이 모자란 탓입니다.”

 “그럴 리가 있소. 동궁의 마음이 저리 차니, 어느 여인인들 다르지 않았을 게요”

 “곁에 두고 은애하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현각 시동 말이군.”

 “사내이긴 하나 꽤나 미색이라지요.”

 “나도 그리 듣긴 하였네.”

 대감이 비열하게 웃는다.

 “그 아이를 이용하심이 어떠신지요?”

 “무슨 방법이 있는가?”

 “교태전 궁녀를 비현각에 보내십시오.”

 “궁녀?”

 “기왕이면 미색이 좋은 계집을 보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미색이 좋은 계집이라, 마침 적당한 아이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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