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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이샤 - 사디스트 왕에게 복수하는 법
작가 : 재원이
작품등록일 : 2020.7.31

저주받은 왕녀를 대신해, 침략자 유목민의 볼모가 된 시녀 '아이샤'.
유목민의 군주이자 전쟁광인 '게세르'에게 청혼을 받는다.
게세르는 감시를 위해 근위대장 '무카'를 호위로 붙여놓는데, 아이샤는 사디스트인 왕보다 다정한 호위무사에게 더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한편, 친구인 아이샤를 구하기 위해 하렘을 뛰쳐나온 왕녀 '카야'는 저주받은 힘을 이용해 게세르를 박날낼 계획을 세우는데......!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하는 소녀.
그 소녀를 구하고자하는 왕녀의 고군분투기.

둘의 운명은?

#성장여주, #대형견남주, #순정판타지, #역하렘

seojw1111111@naver.com

 
15화 - 가면을 쓴 두 남자
작성일 : 20-08-21 08:24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7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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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사이 정원수의 잎새에 내린 이슬이 아침햇살에 말라갈 때 즈음.

 앞마당을 거닐던 게세르는 조용히 뒤따라오던 아이샤에게 물었다.

 

 “승마를 배우고 있다지요? 무카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지그시 약혼녀를 향하는 남자의 가면.

 심경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이샤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긍정을 뭉뚱그렸다.

 

 “때가 되면 가르치려 했습니다만, 뭐 상관없습니다. 일러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요.”

 

 정혼자와의 단란한 한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속속들이 끼어있어 대화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흘렀다.

 

 “하지만 아이샤 베키의 적극성은 그리 반갑지 않군요.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나서서 하는 건 제가 바라는 그림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협조하는 자세니까요.”

 

 잠자코 명령에만 따르라는 강압적인 말을 그는 품위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게세르는 금싸라기 같은 예비신부가 뒤처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여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음미하듯 한발 한발을 다가서는 그의 모습.

 아이샤가 뒷걸음질 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도망칠 수 없어서였다.

 

 “군용으로 쓰는 말들은 수컷일 경우엔 거세를 합니다. 왜 인지 아십니까?”

 “……가축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지지 말라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코앞까지 다가선 게세르는 금이 가기 쉬운 옥구슬을 만지듯 머리에 두른 히잡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군마로 태어났으면, 다른 데 정신 팔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 분수에 맞게, 쓰임새에 맞게 살라는 거죠. 군마는 그저 잘만 달리면 그만이니까요.”

 

 천 자락이 흐트러지자, 짙은 갈색 머리칼이 몇 가닥 흘러내렸다.

 아이샤의 옅은 구릿빛 뺨을 쓸고 내려가던 그의 손끝이 머리카락에 닿자 조심스러워졌다.

 

 “아이샤 베키는 제가 오라하면 오고, 웃으라할 때 웃으면 제 역할을 다하시는 겁니다.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군요.”

 

 떨어지기 쉬운 꽃잎을 다루듯 엄지와 검지로 문질러가며 머리칼을 매만지던 게세르는 이윽고 콧대로 가져가 향을 음미하더니 비단실 같은 한 올에 입을 맞추었다.

 

 “때문에 이곳에 모시자마자 불구로 만들어드릴까도 고려했습니다만, 그러다 죽기라도 하시면 모든 게 허사가 되기에 기각했습니다. 숙녀의 몸으로는 위험부담이 클 수 있으니까요.”

 

 에스코트하던 연인을 유혹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어 눈을 맞추는 게세르.

 아이샤는 눈가에 차오르는 물기를 감추듯 싱긋 미소 지었다.

 닫힌 입술 너머로 아래턱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딱딱 소리를 냈지만, 그 마저도 꾹 다물어 묻어버렸다.

 게세르와의 아침 산책은 아직 아이샤가 베키(귀족영애)임에도 카간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은연중에 궁 안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연극이었다.

 둘이서 애틋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만 연출하면 되었다.

 어차피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에게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을 터였다.

 카톤 서임을 받을 때까지 이 짓거리를 반복해야 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소름끼치는 만남이 끝나고 정원을 나서니 먼발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절름발이 호위무사가 맞으러 나왔다.

 몸서리를 주체할 수 없었던 아이샤는 무카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로 통하는 복도를 걷던 중, 샛길이 나오자 모퉁이에 몸을 숨기듯 등을 기댔다.

 창가의 빛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곳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음지에 있어야만 심신이 안정된다니……분명 정상은 아니다.

 벽과 맞닿았던 어깻죽지가 스륵 미끄러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무릎을 끌어안았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조각칼을 침실에 두고 온 게 후회가 되었다.

 

 “……괜찮으십니까?”

 

 한쪽 발을 질질 끄는 발소리,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무카에게는 되도록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의지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없게 되고, 그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었기에…….

 

 “잠깐만……이러고 있어도 될까요?”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

 멀쩡한 척 하기에는 이미 글렀다.

 샛길로 통하는 꺾인 벽을 사이에 두고 무카는 햇볕이 드는 복도 쪽 벽에 기대었다.

 

 “……기다리겠습니다……괜찮아지실 때까지.”

 

 지극히 호위무사다운 대답.

 그럼에도 무카가 한 말이었기에 위안이 되었다.

 

 아이샤를 보내고 홀로 정원에 남은 게세르.

 처소로 이용하는 천막 쪽으로 향하던 중 검은 찰갑을 두르고 곡도를 허리춤에 찬 무장이 그의 뒤를 따랐다.

 

 “메르겐 베키는 잘 배웅해드리고 왔나?”

 “네, 분부대로.”

 

 게세르를 뒤따르며 알란은 고개를 숙였다.

 

 “드디어 갔군. 보기에 거슬리는 낯짝이었어.”

 

 영애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며 잘근 잘근 씹어댔다.

 재수 없던 애완부엉이는 덤이었다.

 게세르는 남부의 인간들을 경멸했다.

 빈약한 군사력 탓에 항상 동부에 빌붙는 주제에, 뒤에선 염탐까지 해가며 정보를 모으고 팔며 중개자인 냥 행세하는 꼴이 늘 심기에 거슬렸다.

 그러나 연맹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미드의 왕녀를 카톤으로 추대할 예정임을 남부의 사신에게 밝혔으니 머지않아 남부를 거쳐 동부의 카간에게도 소식이 닿겠지.

 카간을 따라 걷던 알란은 우수에 찬 얼굴로 입을 떼었다.

 

 “카간이시어, 한 가지 더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메르겐 베키를 감시하던 근위대원들이 살해당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보고가 이어졌다.

 

 “메르겐 베키가 거처하던 침실 옷장에서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타국의 사신을 모시는 숙소는 정원과 맞닿아 있었다.

 삭막한 평원에선 잘 볼 수 없는 정원수를 창문너머로 감상할 수 있었기에 사신을 모시는 데에는 최적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정원 쪽에 숨어 사신의 동향을 감시하는 데에도 용이하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이동하는 족족 움직임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귀족영애 한 명 정도는 감시병 몇 명으로 견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그것이 오판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메르겐이 떠난 뒤 수색을 위해 들이닥친 근위대원들은 잠겨있는 옷장을 여는 것이 여의치 않자 철퇴로 문을 부수었다.

 갈라진 문틈 사이로 피비린내가 흘러나왔고, 젖혀진 옷장에서 시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문지기 한 명에 감시병 두 명.

 없어진 병사들의 수와 딱 들어맞았다.

 문지기였던 이는 목이 졸려 죽은 듯한데 얼굴에 익살스럽게 분이 발라져 있었고, 감시병 두 명은 칼을 맞아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지금 당장 남부 놈들한테 항의를 해! 우리를 파리 목숨으로 아는 거야, 뭐야!”

 

 시키르는 왕좌에 앉은 게세르를 올려다보며 성을 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란이 제지하듯 붙잡았다.

 

 “진정해 시키르, 괜히 일을 크게 만들었다가 서남동부의 동맹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걸 몰라?”

 “동맹은 이미 깨졌어! 저놈들이 우릴 얕잡아보고 있다고!”

 

 두 체르비(근위대장)의 말다툼을 관망하며 게세르는 남부의 귀족 영애가 남기고 간 인상적인 것들을 머릿속에 나열해보았다.

 니힐한 웃음, 부엉이, 은근한 협박과 도발, 살해당한 근위병들 그리고…….

 본래 일정보다 앞당겨진 남부로의 귀환.

 단순한 사신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시체들에게서는 저항한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베키(귀족영애)로 위장한 암살자일 가능성이 컸다.

 

 “저들은 경고를 하는 겁니다.”

 

 나긋한 투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도리어 확신으로 다가왔다.

 

 “만일 감시병을 죽인 것에 항의를 한다면, 역으로 사신에게 감시를 붙였다고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럼 공식적인 신뢰관계가 무너지겠죠.”

 “우리 쪽에서 눈치를 봐야한다는 말이야?”

 “이성적으로 대처를 하자는 겁니다.”

 “부하들의 죽음을 이대로 묻어버리라고? 상관으로서 그렇겐 못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형님. 이건 외교문제입니다.”

 

 시키르의 반박을 단칼에 일갈해버린 게세르는 알란에게 명령했다.

 

 “메르겐 베키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아직 남부를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니 수배령을 내린다.”

 “명을 받습니다.”

 

 알란은 경례를 하고선 시키르에게 물러가자고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저돌적인 그의 남편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세르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아랫사람들의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고 있는 거라고, 알아?”

 

 높아지는 언성에 잠자코 듣고 있던 게세르는 찬찬히 손바닥을 가면에 가져갔다.

 경련이 이는 손길로 선명한 턱선을 따라 얼굴을 훑어 내리던 게세르는 이내 턱을 매만지며 이죽거렸다.

 

 “크큭……”

 

 동생의 비웃음에 시키르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역시 형님은 카간이 안 되길 잘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위치가 딱 분수에 맞으십니다. 어쩌면 후한 걸 수도 있고요.”

 “내 위치 따위는 관심 없는데 말이야. 따르는 사람들 하나 둘씩 쳐내다 너를 지킬 사람이 다 없어진 뒤에 후회나 하지 말라고.”

 

 구구절절이 가소로운 탓에 게세르는 어깨를 들썩이며 폭소를 참아냈다.

 그리고는 이쯤에서 대화를 끝내자는 듯 가면 쓴 얼굴을 턱에 괴었다.

 

 “물러가도록, 시키르 체르비 명령이다.”

 

 ***

 

 울어 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가만히 있어도 마찬가지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한 이상,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카라가나에 왔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

 협박당한다고 해서 이 마음이 꺾일 일은 없다.

 설령 그 상대가 이 나라의 왕이라해도…….

 

 적당한 외침과 함께 고삐를 출렁이자, 종종걸음을 내던 고동색 말이 조금씩 속도를 냈다.

 아이샤는 오초막을 타고서 조심스레 뒤뜰을 세 바퀴 돌아보이고는 무카쪽으로 몰고 왔다.

 제법 능숙하게 고삐를 당겨 애마를 멈춰 세우자, 회갈색 말을 쓰다듬던 무카는 아이샤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많이……좋아지셨습니다.”

 

 쑥스러워하던 아이샤는 그의 손을 맞잡고서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앞꿈치가 위로 솟은 승마용 장화가 땅에 닫자 긴장으로 뭉쳤던 숨이 파악 튀어나왔다.

 

 “이제는……멈출 수 있게 됐어요!”

 

 방긋 웃어 보이는 아이샤.

 구슬땀이 맺힌 환희의 미소를 짓는데, 무카가 빤히 쳐다보자, 뒤늦게 머쓱해져 슬쩍 시선을 피했다.

 게세르와의 산책으로 기가 죽어 있다가 이제 와서 호위무사의 칭찬에 헤실 거리는 꼴이라니……

 기복이 심한 가벼운 여자로 보일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웃는 게……어울리십니다……아이샤 베키께서는.”

 

 느닷없는 칭찬에 아이샤는 더욱 눈치를 보았다.

 전부 뱉어낸 줄 알았던 숨이 다시 뭉치는 것만 같았다.

 묘하게 갈팡질팡하는 감정.

 들뜬 것 같기도 했고, 어수선한 것 같기도 했다.

 단순히 긴장이라 치부하기에는 뒤따르는 것들이 많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무카……덕분이에요.”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들킬 새라 서둘러 발끝을 보았다.

 게세르와 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디……아프십니까?”

 

 열을 재려고 이마를 향해오는 그의 손길에 화들짝 뒷걸음질 쳤다.

 갈 곳을 잃은 손길이 허공에 머물다 내려앉았고, 가면 쓴 얼굴이 숙어졌다.

 

 “……죄송합니다.”

 

 호위무사가 주제넘음을 사죄해오자, 아이샤는 급히 해명에 나섰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놀라서……! 아픈 곳은 없는데, 긴장한 것도 아니고……!”

 

 아아, 말이 정리되지 않았다.

 점점 추해지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저 소년은 자기 탓인 줄 알고 자책하겠지……

 혼자 허둥지둥 대다 결국 한숨으로 속을 가라앉히고는 그가 납득할만한 결론을 내렸다.

 

 “불안해서 그래요……떠난다는 게…….”

 

 어영부영 답한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내일이면 게세르의 명령에 따라 서부의 샤먼을 만나러가야 했다.

 유수프의 말에 따르면 게세르가 서부의 카간으로 즉위한 이래 종교지도자인 샤먼과의 반목이 지속되어왔다고 한다.

 연맹의 서부를 교구로 삼은 주교인 ‘아민’은 게세르 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카간의 말조차 듣지 않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제가……따라갑니다……걱정 마십시오.”

 

 빈말로 느껴지지 않는 그의 말.

 순전히 아이샤에게 맡겨진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옆에 있어준다는 그의 말은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되었다.

 

 ***

 

 타오르는 모닥불만이 어두워진 천막 안을 비추는 가운데 게세르는 간이 탁자 위에 오른 체스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란히 있던 폰들을 전진시키고 피차 서로의 말을 뺏고 빼앗긴 상황.

 검은 말을 쥐고 있던 게세르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있던 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남부 케레이에서 사신이 아닌 암살자를 보낸 것 같습니다.”

 

 고뇌하듯 검지와 중지로 턱과 목울대 사이를 쓸어내리는 게세르.

 마주 앉은 상대는 앞을 가로막던 나이트를 전진시켜 뒤에 있던 비숍이 대각을 통해 게세르의 킹을 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참견을 좋아하니까……남부 놈들은.”

 

 돌아오는 것은 소년의 목소리.

 높낮이가 없는 무미건조한 투였다.

 

 체크메이트란 걸 눈치 챈 게세르는 퀸을 전진시켜 킹을 보호했다.

 그러자 가차 없이 비숍으로 검은 쪽의 퀸을 쳐내는 상대.

 이제 게세르의 킹은 혈혈단신이었다.

 

 “아이샤 베키와 둘이서 가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근위대가 붙는다고는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돼……알잖아.”

 

 게세르는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납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는 눈앞의 소년은 서부를 넘어 연맹 내에서 군신이자 최강의 검신으로 일컬어지는 존재였기에.

 게세르는 상대의 비숍을 피해 킹을 앞으로 전진시켰지만, 이미 상대 쪽에서 한 발 앞서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탁자 너머의 상대는 예비 공격용으로 세워놨던 퀸으로 게세르의 킹을 넘어뜨렸다.

 

 “……늘지 않네……실력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요. 다른 건 다 연기로 속일 수 있지만, 체스 실력까지 따라할 순 없지 않습니까?”

 “……나라도 쉽지 않을 거야……유수프 재상은.”

 

 부슬부슬한 장발을 왼쪽 뺨에 넘긴 맨 얼굴의 게세르는 눈앞에 있는 허여멀건 한 금안의 소년을 응시했다.

 

 “보기에 어떻습니까? 아이샤 베키는.”

 “……솔직해……거짓말을 잘 못해.”

 

 호위무사의 신분으로 아이샤 곁에 있으며 내린 가감없는 견해.

 

 “정치력에 있어서는 안 봐도 뻔하겠군요. 그 편이 더 통제하기 쉽긴 합니다만.”

 “……그리고…….”

 

 말이 이어지는 듯하더니 잠시 끊겼다.

 소년은 부스스 이마를 덮은 흑발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옅은 구릿빛 얼굴에 검은 눈을 가진 왕녀가 쓰다듬고 지나갔던 자리…….

 

 “……따뜻해……아이샤는.”

 “…….”

 

 묵묵히 소년의 말을 듣던 게세르는 쓰러진 체스판 위의 킹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아이샤 베키를 아민샤먼께 보내라고 하신 겁니까?”

 “……아이샤라면……만나주실 거야.”

 

 나직한 확답.

 소년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면을 얼굴에 덮었다.

 

 “……아이샤랑 있을 동안……너는 남부의 암살자를……찾는데 주력해.”

 

 소년은 지시를 내리고는 오른 다리를 절뚝이며 천막을 나섰다.

 게세르의 행세를 하던 가짜는 절름발이 군주의 뒷모습을 향해 자세를 낮추어 예를 갖추었다.

 

 “명을 받습니다. 게세르 카간이시어…….”

 
작가의 말
 

 밤이 되었습니다

 카간은 손을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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