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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23
작성일 : 20-08-17 23:08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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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뙤약볕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무리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땀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달라붙는 저고리며 치맛자락이며 아무리 풀썩여봐도 끈적하게 달라붙은 여름의 더위는 가실 줄 몰랐다.

  “순이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순이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남자가 자신을 부르며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이 찌는 더위에도 그는 도포까지 야무지게 차려입고 순이가 있는 산비탈을 올랐다. 헥헥, 차오르는 숨에도 펄럭이는 도포를 멋으로 여기며 순이 옆에 앉았다.

 “너는 덥지도 않느냐?”

  자리에 앉아서도 여간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방울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 것인지 철렁이는 도포자락을 정리하고 갓을 벗어 순이를 향해 부채질을 하느라 바빴다.

 “순이야 많이 더우냐.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불 대신 고드름을 만드는 법을 알았음 좋았을 것을...”

  자신을 이리저리 살피며 여전히 부채질을 멈추지 못하는 남자에 순이는 그의 팔을 잡아 내렸다. 그리곤 품 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그의 이마를 토닥였다.

 “네 땀 좀 봐라. 이리 덥게 입고..! 널 보는 내가 더 덥다. 열도 많은 이가 어찌 이리 입었어?”

 “그야.. 순이 네가 이 옷이 가장 멋지다 하지 않았니..”

 “그 고집을 내 어찌할꼬. 서양 옷도 꽤나 멋졌다. 너는 키도 크고 씻은 배추줄기 같아 어울리지 않은 옷이 없지 않니.”

 “너도... 순이 너도.. 너도 그러해.”

 누구 하나 모난 구석이 없어 결국 마주보며 웃는 것이 언제나 그 둘의 마무리였다.

 

 -

 

  순이는 올 봄의 초입을 기억한다. 아직 완연한 봄이 오지 않은 봄의 시작. 꽃피는 것을 시샘하여 찬바람이 일렁이는 꽃샘추위. 봄이 옴에 먹을 것이라곤 감자 몇 알인지라 고사리 손으로 봄나물이라도 캐보겠다며 뒷산을 올랐던 봄의 어느 날. 으앙, 으앙, 울어재끼는 어린 남동생 등에 업고 입으로는 오야, 오야, 손으로는 이리저리 봄나물을 캐느라 바빴다. 꽃샘추위에 작은 두 손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캐다보니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서 봄나물을 캐던 다른 이들은 어느새 짐을 챙겨 내려 간 것인지 근방엔 순이 혼자였다. 그에 정신이 번쩍 든 순이는 소쿠리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한쪽 손으로 둥가둥가 어린 남동생을 두들기며 산을 내려갔다. 해가 건너편 산 사이로 숨어들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빠른지 금세 산 너머로 모습을 거의 감추었다. 심지어 내려가는 길에는 나무가 우거져 그나마 드는 빛도 들지 않았다.

 ‘먹을 것 없는 호랑이가 내려온다고 조심하라 하였는데..’

  어둑어둑한 길을 내려가는 순이는 한창 나물을 캐던 나주댁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발걸음이 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작은 발로 열심히 내려가도 내려가도 어인 일인지 동네가 나오질 않았다. 언제 이리 높이도 올라왔담. 본인의 등에 찰싹 붙어 곤히 잠든 동생이 그나마 고마웠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앞으로 쿠당탕 넘어졌다. 자신 앞에 나타난 웬 파란 불에 깜짝 놀라서 말이다. 순이는 넘어지면서 생각했다. 저건 필시 호랑이의 안광이다. 나주댁 아주머니가 그리 말했는데 결국 나는 호랑이 밥이 되어 사라지는 구나. 두 눈을 꼭 감은 채 엎드린 순이는 잠잠한 주위에 기시감을 느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자신이 잘 못 본 것인가 생각했다. 고개를 살짝 들고 두 눈을 깜빡였다. 호랑이는 어디로 갔는지 휑한 눈 앞엔 나무만 보였다.

 “꺄항-”

  아, 동생! 등 뒤에서 들리는 자신의 동생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뒤를 확인했다. 웬 남자가 자신의 옆에 쭈구려 앉아 동생을 향해 강아지풀을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좋다고 웃는 남동생의 목소리였다.

 “으아악!”

  순이는 그대로 기어 남자와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남자와 대면했다.

 “누,누,누, 누구시오!”

  그 와중에도 남동생은 순이 등 뒤에서 고개를 내밀어 아바바, 꺄항, 소리를 내며 남자를 반겼다.

 “미안, 많이 놀랐느냐. 난 그저 어린 아이가 늦은 시간에 산을 홀로 내려 가길래 걱정이 되어...”

  그의 말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행색을 훑었다. 깔끔한 정장차림에 단정한 머리까지 꽤나 있는 집 자제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자신의 행동을 두로 무례하다 하여 죄라도 받을까 걱정이 들었다. 순이가 그러든 말든 남자는 아직도 손에 강아지풀을 쥐고 이마를 긁적였지만.

 “시간이 늦었는데 어찌 아직도 산에 있는 것이야.”

 “그, 그게. 산, 산나물을 캐다보니.”

  그제야 넘어지면서 놓친 소쿠리가 뒤집어져 여기저기 흩어진 나물이 보였다. 아이고 어쩐담. 순이는 주저앉아 주섬 주섬 소쿠리에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에 남자도 따라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나물을 주웠다.

 “괘, 괜찮습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기 무섭게 저 멀리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에 바짝 얼은 순이는 두 눈만 깜박거렸고 본능적으로 무서움을 느낀 동생은 입술일 비죽이며 눈을 울망였다.

 “괜찮다.”

  남자는 강아지풀을 동생 눈앞에 흔들며 단숨에 달래곤 순식간에 나물을 주어 담곤 자리에 일어났다.

 “어서 가자꾸나. 이러다 정말 호랑이 밥이 되겠어.”

  순이는 남자가 뻗은 손을 조심스레 잡고 일어났다. 소쿠리는 여전히 남자의 옆구리에 있었다.

 

 -

 

  순이의 집에는 병이든 노모 홀로 있었다. 남자의 행색에 놀란 것은 그도 똑같았다. 순간 순사와 같이 온 것인가 화들짝 놀랐던 노모는 아이를 도와주었단 소리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남아있던 메밀묵을 대접했다.

 “감사합니다. 비루하지만 집에 있는 것이 이것뿐인지라...”

  비루하다는 말이 무섭게 집어삼킨 남자는 아주 맛이 좋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솜씨가 아주 뛰어나십니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복스럽게 먹어치우는 먹성하며 다 먹고 배를 두드리며 해실해실 웃는 모습이며 그는 두 모녀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 종국엔 그 웃음에 전염된 것인지 같이 마주보며 웃게 되었지만.

 

 “댁이 어디십니까? 시간이 많이 늦어 댁에서 걱정하시겠습니다.”

  아픈 노모를 대신하여 순이가 남자를 배웅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그제야 남자는 순이의 치마에 묻은 피자국을 발견했다. 남자는 허리를 숙였다.

 “아까 넘어졌을 때 다친 것이야?”

 “아, 괜찮습니다.”

  순이는 손을 내저으며 다리를 뒤로 물렀다. 그제야 남자는 순이의 까진 손바닥이며 볼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순이를 마당에 있는 상에 잠시 앉혔다.

 “이것은 나 때문에 다친 것이니 그 값으로 하자.”

  남자는 조심스레 순이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잠시간 후 손을 치웠다. 하지만 여전히 치맛자락에 묻은 피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는 듯 손을 옮겨 순이의 손을 쥐었다. 아까, 갑작스런 푸른 불빛에 놀라 엎어져 다친 것도 있었지만 홀로 고군부투하며 쌓아온 그 짧은 인생이 순이의 고사리같은 작은 손에 담겨있었다. 올해도 추운 겨울을 버텨내느라 부르튼 손은 남자가 손을 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 그 때처럼 고왔다. 순이가 놀라 양손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동안 남자는 이제 마지막 순이의 볼로 손을 올렸다.

 “아주 골고루 다쳤구나.”

  마침내 얼굴에 뻗었던 손도 거둬들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보자.”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글자 그대로 사라졌다. 파란 불빛이 되어서.

 

 -

 

  그날 이후로 남자는 거의 매일같이 순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꽤나 값비싼 물건을 순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가 한사코 거절해도 결국 그 물건은 순이의 집 안방에 놓여 있었다. 대체 왜 주는 것이냐 물어도 남자는 그 때 그 메밀묵이 맛있어서 그랬다며 뒷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순이가 산나물을 캐러 산으로 가면 같이 산으로 바느질삯을 받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면 같이 동네를. 하다못해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집으로 찾아와 큰 눈을 꿈벅이며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

 “이런 귀한 옷이 다 왔네.”

  귀한 비단으로 만든 남자 어른의 한복이었다. 어미의 말에 순이는 도포자락을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난 어렸을 때 이런 옷을 입은 남자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어찌나 멋있던지. 그 말에 그 다음 날부터 남자는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 때가 심지어 초복이었다. 꺄르르 웃는 순이에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삐뚤어진 갓을 순이가 고쳐 씌워줘야 했지만.

 “근데, 너는 이름 없는 게 불편하지 않아?”

  남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남들한테 너를 소개할 때 말이야. 대체 뭐라고 말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안 해. 다들 도깨비라고 그렇게 불러.”

 “도깨비라고 부르는 건 나를 사람! 이렇게 부르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그건 별로야.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어. 너는 어때?”

  남자는 다시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항상 자신은 아이를 순이야, 순이야 하고 불렀다. 그런 순이를 인간아, 사람아라고 부른 다고 생각하니 그러기 싫었다. 그리고 순이도 자신을 그런 식으로 불러야한다면 그닥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본인도 이름이 가지고 싶었다.

 “아니 대체 몇 살인데 이름도 없어 이름이.”

 “아직 백년도 안돼서..”

 “뭐?”

  이름도 안 지어준 건 너무하지 않냐며 종알종알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이 별안간 굳어버렸다.

 “으응. 아직 어려서. 이름이 없어도 그렇게 불편한 건 못 느꼈어. 근데. 나도 이름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이름! 이름 가지고 싶어.”

 “아니, 잠깐만. 백년. 야 완전 할아버지 아니야? 헙! 나 그동안 반말 썼는데...”

 “할아버지라니 우리는 백년도 안 된 도깨비는 어른 도깨비로 안 쳐줘서. 그리고~ 난 반말 좋아. 친우잖아 우리. 친우끼리는 반말해도 괜찮은 거랬어.”

 “그렇지만..”

 “그러지 말고, 나 이름 지어줘 순이야!”

 “이름...”

  그렇게 지어졌다. 그 어린 도깨비의 첫 이름이자 아마 평생을 가지고 가야할 낙인같은 그 이름이 지어진 순간이.

 “넌, 불을 다루고 마음도 따뜻하니까.. ‘열’ 어때? 열이.”

 “열..”

 “응. 별로인가...”

 “아니! 나 좋아. 나 완전 좋아 순이야.”

  그렇게 어린 도깨비 열의 가슴에 꾸욱. 깊은 자욱이 생기었다.

 

 

  그 뒤로도 열은 순이의 집에 거의 반 상주하다 시피 했다. 하루는 순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며 흐트러진 옷에 마당에 놓인 상에 앉아 잠시 자리를 비운 노모를 대신해 새끼를 꼬던 열이 우당탕 거리며 순이에게 달려갔다. 열은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강아지마냥 순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순, 순이야.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거야. 열의 질문에도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며 씩씩거리던 순이는 이내 울망울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였다. 이럴 땐 그 어린 남동생과 똑같았다.

 “우리, 우리 아부지는.”

  순이는 주먹을 꼭 쥐고는 말했다.

 “만주에 갔다 하셨어.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결국 순이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에 열은 더욱 안절부절 못하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그래서 싸웠어? 애들이 너 때렸어? 어디 다쳤어? 그런 열의 질문에 순이는 킁, 코를 들이키곤 대답했다.

 “아니. 내가 다 뚜들겨 패버렸어.”

  그러나 결국 으앙, 서러운 눈물을 터뜨리는 순이에 열은 꼭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줬다. 여리지만 강하고, 강하지만 여린 그런 아이었다. 순이는. 그래서 생각했다. 본인이 꼭 지켜주겠다고 순이가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그 느린 발걸음을 자신이 맞춰 걷겠다고. 열은 순이를 품에 안고 생각했다.

 

 -

 

 “근데 너는 계속 여기 있어도 돼?”

  그새 더운 여름도 끝나고 가을이 왔다. 이리저리 붉게 노랗게 물든 잎들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밤이 되면 쌀쌀한 날씨에 열은 방 안 여기저기 도깨비불을 켰다. 곤히 잠든 아가 옆에도 열심히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옆에도 그리고 자신과 순이 옆에도. 그리고 오늘도 순이의 어머니가 쒀준 메밀묵을 냠냠 먹어치우는 열이는 순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입에 가득 든 메밀묵을 꿀꺽 삼키곤 눈을 꿈뻑였다.

 “나 여기 있으면... 안 돼..? 돈이 문제면, 나 돈 더 줄 수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 만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어?”

 “그 산에.”

 “그 산에 계속 있었어?”

  순이의 질문에 열은 그저 고개를 끄덕할 뿐이었다.

 “그렇구나... 요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너도 알지?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것조차 엄청 살벌한 거. 너가 아무리 도깨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란 말이야. 일본놈들이 얼마나 무서운 대.”

 “내가 순이 지켜 줄 수 있어!”

  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남자에 순이는 푸하하 웃었다. 날 지키라는 게 아니고 바보야. 너 조심하라는 거잖아.

 

  빠듯한 집안 살림에 입이하나 더 늘었지만 오히려 풍족해진 건 늘어난 입 덕뿐이었다. 어디서 돈이며 귀한 것들을 들고 오는지. 덕분에 아픈 어미의 약값에 발 동동거릴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작은 동네에 소문이 퍼지는 건 참으로 쉬웠다. 외지인의 등장은 둘 째 치고 아버지는 어디가고 아픈 어머니 홀로 애 둘을 키우느라 버둥거렸던 그 집안이 때깔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하루 아침에 비단옷을 두르고 다니고 좋은 양옥집으로 이사를 가고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먹는 것, 약값이 해결되기 시작하니 얼굴 피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원래부터 사치를 부리는 성정은 못되었으니 아낀 돈을 차곡차곡 모아 다시 돌려주려 했으나 헤실헤실 웃는 낯으로 하는 거절이 어찌나 대쪽같은지 순이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 항상 메밀묵을 푸지게 쑤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는 돈은 틈틈이 모아 만주의 순이 아비에게 비밀리에 전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리에 조심한다 한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 날은 순이의 어머니가 만주로 돈을 보내는 날이었다. 하필 그날따라 항상 중간에서 돈을 전달해 주던 이가 아픈 것인지 어쩐 것인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분명 시간에 맞춰 온다고 하였거늘. 서울역에는 만주로 향하는 동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어쩐담 발을 동동 구르던 순이 어미는 방으로 들어와 색색 잠을 자는 아기를 등에 업었다. 아픈 몸으로 급히 서울역까지 가는 것은 힘들겠지만 삯바느질한 것을 돌려주러 간 순이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었다. 적은 돈이지만 이 돈이 만주에 있는 자신의 남편과 동포들의 추운 몸을 덥히고 곯은 배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것이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품속 깊이 돈을 숨긴 순이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갈 때였다.

 “어디 가세요?”

  마침 순이의 집으로 온 열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열은 흔쾌히 본인이 가겠다며 건네받았다. 발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순이의 어머니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되뇌었다. 그에 열은 싱긋 웃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런 일은 저 시키셔도 된다니까요. 품속에 돈 봉투를 넣은 열은 순이 어머니와 동생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낮에도 바람이 차요. 얼른 들어가세요. 짠, 이건 따뜻한 도깨비 불. 다녀올게요. 이따 순이랑 같이 밥 먹어요! 제가 올 때 고기 사올게요. 그렇게 열은 집을 나섰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아직 순이 얼굴을 못 보았다. 에이 조금만 일찍 와서 순이 삯바느질 내가 들어줄걸. 날도 추운데. 순이 손 시리겠다. 이따가 도깨비불로 데워주어야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열은 서울역으로 향했다.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순이 어머니가 말한 사람에게 다가가 약속된 말을 하고 돈을 건네주었다. 거의 다 주시네. 맛있는 거 많이 사드시라니까. 다음엔 조금 더 드려야겠다. 입맛을 쩝 하고 다신 열은 순이 볼 생각에 순식간에 날라 순이의 집으로 갔다.

  그게 끝인줄 알았다면 열은 순이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집에 철썩같이 붙어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순이를, 언제나 웃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메밀묵을 쑤어주는 순이의 어머니를 그리고 자신만 보면 방긋방긋 웃는 그 작은 아이를 본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냈을 것이다. 언제나 본인 덕이라 했지만 그 집이 따뜻했던 이유는 그 집의 주인이었던 세 명 덕이었던 것을. 그 따뜻했던 집이 주인을 잃어 온기를 잃었고 집안 살림살이는 전쟁이라도 난 듯 다 뒤집어져 있었다. 그렇게 열이의 마음에 끔찍한 재난이 일었다. 텅 빈 집을 둘러싸고 동네 사람들은 말을 옮겼다. 일본 순사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싹 다 잡아 갔다고. 그 어린 갓난 애기도 뭘 아는지 빼액 울자 천둥같은 소리가 아이를 잠재웠다고. 그렇게 사라진 세 명은 누구는 지하로 끌려갔다 했고 누구는 그 길로 죽어 뒷산 어느메에 버려졌다고 했다. 아니 근데 그 착하디 착한 순이네가 대체 뭔 잘 못을 했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집이었잖아. 아니 글쎄. 그렇게 벌어서 만주에 있는 독립군 자금을 댔다대? 어머 정말? 그러고 보니 그 집 애 아빠가 없는 게 만주에 가서 그렇다며. 아이고 입조심해. 그러다 자네도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고. 누가 와서 순이네 아냐고 하면 그냥 모른다고 해. 그래야 살아. 자네도 우리도.

 

 -

 

  그렇게 사흘 밤낮으로 돌아다니다 겨우 찾아냈다. 순이 엄마와 막냇동생을 먼저 발견해 산 중턱에 무덤을 썼다. 안 그래도 아파 약한 몸이었는데 여기 저기 다 터지고 부르텄다. 둘을 붙잡고 꺼이 꺼이 울다 순이를 찾아다녔다. 도깨비불로 변해 감옥이라는 곳도 가보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보았다. 이번엔 반대쪽에 버려져있던 순이를.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열아. 열아 나 너무 아파. 라고 말할 것 같은데 굳게 감긴 눈은 뜰 줄을 몰랐다. 말라붙은 피딱지와 눈물 자욱이 열의 마을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어서 일어나 다친 곳을 낫게 해달라 하지. 내가 의사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그래도. 열은 순이의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순이야. 순이야. 애닳은 목소리가 혼자 울렸다. 열은 엉엉 울며 순이를 업었다. 업고 그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순이의 엄마와 남동생이 있는 곳으로. 순이야. 순이야. 그러면서도 계속 불렀다. 그러다 한 번쯤은 대답해줄 것만 같아서.

  땅을 파던 열은 차마 순이를 묻지 못하고 여전히 부둥켜안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제발 알려줘 순이야. 너는 나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여기서 너와 살아가는 법도 알려주었잖아. 이번에도 제발 나에게 알려줘. 너가 없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 옆을 지키겠다던 내 마음이 무너진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그만 알려줘. 엉엉 우는 그의 등에서 파란 불꽃이 타닥 타닥, 산발적으로 튀었다. 그의 몸에서 피어난 파란 불꽃은 땅으로 떨어져 작게 불을 피웠다. 타닥, 타닥. 그렇게 자꾸만 조금씩. 타들어갔다.

  그 때였다. 태풍처럼 거센 바람이 그 산을 뒤덮은 것은. 열이 피워내던 파란 불꽃을 다 잠재울 만큼 거센 바람의 주인이 나타난 것도. 그리고 또 다른 연을 맺어낸 것도.

 “온 산을 다 태울 작정이더냐.”

  다름아닌 이화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 거라. 네 품에 안긴 그 불쌍한 아이 몸마저 다 태우지 말고.”

  성큼성큼 걸어간 이화는 열을 밀어냈다. 비켜라. 그러다 장도 못 치르고 날 새우겠구나.

  이화는 마침 전우치의 부탁으로 한양을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박영감이 말했다. 이 동네에 어린 도깨비 하나가 있어. 그래서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잘 살고 있는지만 확인해주어. 그 애가 아마 만주에 있는 김씨네 처자식과 함께 있나 보더라고. 근데 자금 운반책을 하던 이가 배신을 한 모양이야. 고려의 멸망도 본 내가 왕조가 바뀌는 일에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은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사람 잘 못 보셨네. 내가 이따금 전우치를 돕는 것이 내 자의로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줄 아셨소? 이화의 코웃음에 박영감은 희미하게 웃었다. 알지. 알지.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단순히 왕조가 바뀌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너무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죽고 있어. 그것도 꽤나 잔혹하고 또 잔인하게... 그 집이 위험해지면 그 도깨비도 위험해질테지. 꽤나 애틋해 보이던데...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을 다룰 줄 아는 도깨비라 잘 못하면 영묘사 지귀처럼 사위를 다 태우고 지 몸도 집어삼킬 테지. 내가 가고 싶은데. 자네도 알지 않는가. 어찌나 바쁜지. 껄껄 웃으며 박영감은 자취를 감췄다.

 

  무덤 앞,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열은 이화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아이. 용감하고 씩씩했지만, 어리고 약한 애였어. 죽는 것도 남들처럼 무서웠을 거야.”

 “지옥이라도 따라갈 기세구나.”

 “갈수만 있었다면. 죽는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소멸되지만 않는다면... 그랬겠지. 낯선 곳에서 홀로 두려워할 그 아이를 안아주고, 손 붙잡아 같이 걸어가 줄 수 있었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들 난 기꺼이 갔을 거야. 그랬으면 이리 마음이 사무쳐 아리지도 않을 텐데.”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다.”

 “원망스러워.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워. 죽어서도 그 애 곁에 가지도 못하는 내 죽음까지도...”

 

 -

 

  열은 순이의 무덤을 찾을 자신이 없었다. 혹여 전쟁에 먼지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까봐. 전쟁이 터지고도 그 곁을 지키던 자신을 이화가 데리고 결국 이곳에 정착했다. 그렇다고 이화가 원망스럽진 않았다. 저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구미호가 사실은 인정이 넘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이화였어도 자신을 데리고 떠났을 것이다. 산 것이 더 중요하니까.

  떠난 뒤로 다시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두려웠으니까. 또 지킨다는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되어 버렸을까봐. 자신이 떠난 후로 무너져 내린 무덤을 만난다면 열은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살아갈 자신도 그렇다고 죽어 소멸할 자신도. 그래서 차일피일 미뤄왔다. 매해 가을 끝마다 지키지 못한 괴로움에 끙끙 앓으면서.

 

 -

 

  어후, 어후야. 이 산 맞아? 꽤나 정교한 지도에 아이들은 금방 찾았다. 단지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 멀었을 뿐. 근데. 이 산에서 무덤 3기를 찾는 거잖아...? 지금 우리 얼마나 올라왔어? 뭐? 중턱? 근데 무덤을 어디다 썼대. 지도 좀 봐봐. 아니 근데 잠시만 야. 생각 좀 해보자. 무덤. 이야.. 무덤. 일제 강점기 때 무덤이 6.25를 지나 밀레니엄 시대에도 멀쩡할 확률은? 심지어 아무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난 0프로. 빵. 빵이라고 본다. 야이씨 말할 힘이 있으면 빵이나 먹어. 켁, 야 우유도 줘. 아니 근데 우리 진짜 꽃다발 너무 오바 아니야? 이거 약간 김칫국을 궤짝으로 마시는 거 아님? 야 저 자식 내려 보내자. 초를 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야 그래그래 너 먼저 내려가. 우리끼리 보고 갈게. 아, 아니 얘들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왜 또 날 혼자 내려 보내려고, 헐 야야야. 대박사건. 아 왜! 너 또 초치려고 그러지? 아니, 아니! 저기 아니야? 저거 맞는데? 어? 야! 내가 찾았다 대미친! 워후! 야야 언능 꽃다발이랑 뭐야 이거 편지인가 일단 줘줘. 대박 너 술은 어떻게 들고 왔, 이거 뭐야 과일도 들고 왔어? 너네 뭐 제사상 차리러 왔냐?

 

 -

 

  ‘순이에게.

 순이야 안녕. 오랜만이야. 내가 많이 늦었지. 난 지금 지리산에 있는 학당에서 지내고 있어. 공기도 좋고 물도 깨끗해서 예전에 순이 너랑 지내던 때가 생각나서 좋아.

 늦게 온 거, 그리고 내가 직접 오지 못한 거 미안해. 늦게 온 건 용기가 없었고, 직접 오지 못한 건 학당이랑 계약이 걸려 있거든. 계약이 끝나면 가장 먼저 너에게 찾아갈게.

 너무 보고 싶은데 앞으로도 널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너무 괴로워. 나도 사람이 되어 볼까. 그럼 죽어서 저승에 갈 수 있잖아. 그럼 너를 만날 수 있겠지.

 거기는 어때? 막내도 많이 자랐지? 정말 내 팔뚝 만했는데.. 그 곳에선 아버지도 만났겠다. 너희 가족이 목숨 걸고 지켰던 조선은 대한민국이 되었어. 이 편지를 대신 전해주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나라 말이야.

 순이야. 잘 지내지? 난 너의 행복 말고 더 바라는 건 없어.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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