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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21
작성일 : 20-08-02 21:01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10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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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한 낯의 진주가 짐을 고쳐들며 학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침 로비에서 진주를 기다리던 같은 부서 친구가 그를 발견하고 옆으로 섰다.

 “진주야!”

 “나 출장 간 사이에 학당에 일 터졌다며.”

  둘은 나란히 걸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오며가며 진주를 알아본 학생들의 인사에 진주는 가볍게 목례로 답했다.

 “일은 뭐. 밤에 몰래 화개 갔다가 술이 아주 거나하게 취해서 지름길에 쓰러진 애 주워 온 거지 뭐.”

 “뭐야. 그게 다야?”

 “근데, 걔가 눈 뜨더니 자꾸 헛소리를 하는 거야.”

 “뭔 헛소리?”

 “귀신을 봤대.”

 “... 지금 그거가지고 난리인거야?”

  순간 튀어나올 험한 말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안 그래도 기 빨리는 서울 출장이었던 지라 끝나자마자 와서 쉬려고 했다. 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홈 스윗 홈을 생각하던 그의 단 꿈을 방해한 건 다음 아닌 복귀전화였다. 주주무관님에게 따봉을 날리고 행복하게 복귀 전화를 걸었으나. 아니 일 터졌다고 일찍 오라는 게 뭔데. 그럴 거면 그냥 따봉대신 같이 타고 사라질 걸 싶었다. 근데 지금 겨우 귀신 본거가지고 그 난리를 피운 거란 말이야?

 “근데 그 취해서 쓰러진 애가 오복이야.”

 “누구? 돋보기?”

 “아이 왜, 그 특기잔데 귀신만 보면 혼절하는 유명한 집안 자식 하나 있잖아.”

 “아~ 오복이? 걔네 집 장난 아닌데 아직 학당이 멀쩡하네?”

 “야. 말도 마. 아침부터 그 집안 양가 조부모님 싹 다 오셔서 눈으로 로비를 쑥 훑는데, 나 시베리아 한복판인 줄 알았잖아. 어휴! 확실히 대대손손 무당 집안이라 그런지 기가 달라 아주.”

 “대대손손 용한 무당집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푸닥거리 한판 했어?”

 “푸닥거리라면 푸닥거리려나.. 학장님 지금까지 붙잡혀 계실걸?”

 “이럴 때 보면 학장도 할 게 못된다니까.”

  쯧쯧. 진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안녕하세요~”

  서류철을 옆에 끼고 오복이 있다는 층으로 올라왔다. 병실 앞 멀대 같이 서있던 두 남자가 진주의 등장에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병실 문에 붙어있는 노란 부적이 눈에 띄었다. 진주는 눈썹을 긁적였다. 이건 뭐 사람을 봉인해 둔 것도 아니고. 묘하구만.

 “진주님. 오랜만이십니다.”

 “예예. 뭐. 어르신들도 같이 계세요?”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도련님만 계세요.”

  진주의 물음에 철통보안 같았던 병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아니 뭐 귀신보고 놀라서 쓰러진 거 가지고 너무 유난인거 아니야?

 “여어- 오복이! 어휴 이게 다 뭐야.”

  당차게 손을 흔들며 병실을 입장한 진주는 이내 표정을 찌푸렸다. 이게 점집이야 병실이야. 주렁주렁 달린 부적이며 복숭아 가지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거슬렸다.

 “누나!”

  목소리는 들리는데 뭐가 보여야 말이지. 진주 입장에선 꽤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팔을 휘적이며 침대 옆으로 향했다.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은 진주는 힐끗 오복을 쳐다보곤 어이없는 표정으로 병실 안을 둘러봤다.

 “야. 병실에 점집 차렸냐? 아니 무슨 부적으로 도배를 해놨어. 이건 뭐야 복숭아 가진가.”

  진주가 손을 뻗어 톡톡 건들었다.

 “왐마, 누나! 부정 탄다. 부정. 짐 이것도 겨우 막아 둔건데!”

 “부정은 무슨. 근데 막긴 뭘 막어?”

 “귀신... 팔찌 끊어묵었거든. 일단 할머니가 임시방편으로 해두신 거라.”

  오복이 침대 옆 작은 서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열어본 주머니 안에는 구슬이 알알이 들어 있었다.

 “취한 놈이 잘도 주워왔네. 근데 왜 안 끼고?”

 “효험이 사라졌다대. 아마 끊어져서 그런 거 아니겠나.”

 “효험이 사라져...?”

 “웅..”

  진주의 의아한 얼굴을 본건지 만 건지 오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쓰다듬었다. 꽤나 아쉬운지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야이 미친놈아. 내가 술 좀 작작 처마시라고 안 했냐. 너는 애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무슨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더니 아오! 아프다고 누워있는 놈을 줘 팰 수도 없고. 진짜.”

 “누...누나야..! 갑자기 와이카노..!”

  물론 이내 곧 우레와 같은 진주의 승질머리에 놀란 토끼 눈을 하곤 오들오들 떨었지만.

  누나 진정하고 물부터 마셔! 살겠다고 찬물을 진주 손에 고이 쥐어줬다. 이리 저리 바삐도 움직이며 달달한 것들을 진주 앞에 대령했다. 과일이라도 좀 깎아올까? 대답대신 손을 휘휘 내저으며 찬물을 들이킨 진주가 진정을 되찾았다. 그래 사람이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아니 되지. 내가 어? 아무리 2박3일 출장으로 달달달 볶였어도! 아직 출장의 피곤이 풀리기도 전에 사건 브리핑을 귀에 피나도록 듣고 이 자식을 조사하러 올라 왔더라도! 그러면 아니 될 일이지... 암.. 아니 근데 성질이 나잖아!! 어릴 땐 순딩순딩 해가지고 누나야 누나야! 하면서 어? 비록 귀신만 보면 픽픽 쓰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귀여웠던 놈이. 술은커녕 사이다나 마시게 생겼던 놈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뭐에 억압을 받았던 건지. 아니면 주신이라도 씌인 건지. 갑작스런 음주가무 파티에 놀란 것은 진주뿐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애가 어릴 때부터 인싸긴 했는데 말이지.

 “후~오복이.”

 “으엉!?”

  누가 봐도 열 받은 깊은 한숨에 오복이 움찔했다. 애써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혹시 몰라 이불도 끌어올렸다.

 “니 팔찌알은 경귀석이란다? 경귀석은 술에 빠지면 효험을 잃어.”

  오복이 소중히 쥐고 있는 주머니를 가리켰다. 오복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은 건지 일단 오옹,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거리기 바빴다.

 “자, 네가 팔찌를 끼고 있던 순간부터 팔찌가 끊어지기 전까지 귀신이 눈에 보인 적이 있다 없다?”

 “어,없다.”

 “그러면 어설프게 넘어져서 팔찌가 끊어진 적이 있다 없다?”

 “어,없지.”

  그러고 보니 처음 팔찌를 받고 지금까지 끈이 끊어졌다던가 하물며 낡아 교체한 적도 없었다.

 “당연히 없겠지. 백년 묵은 누에고치 명주실에 말피로 염색한 아주 귀하디귀한 물건이니까.”

 “히익-”

 “근데 그 실이 니가 넘어지면서 끊어졌다는 게 말이나 돼? 네가 술에 취해 경귀석을 술에 담궈서 효험은 없어지고, 귀신이 얼씨구나! 하고 끊은 거지.”

  진주의 말에 오들오들 떨던 오복은 눈썹을 한껏 내리고 물었다.

 “그럼 술에 젖은 게 마르면 효험이 돌아오나?”

 “아니. 일회용이란다.”

 “갸악...”

 “이참에 귀신도 좀 익숙해지고 그래봐. 대대손손 무당집안 출신 특기생 가오가 있지. 안 그래도 귀신을 제대로 본 건 너 하나더라고? 기억은 나? 안 나면 어떻게 다시 한 번 보러 가볼까?”

 “누, 누나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안하나. 내 살려도!”

 

  병실을 나온 진주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벌써 밖이 깜깜했다. 출장 보고서도 써야하는데, 이 보고서도 써야하고. 하, 깊은 한숨이 사무실을 채웠다. 아해들이 생각하는 도사는 도술 부리면서 뛰어다니고 편하게 다니는 삶이겠지만. 아해나 도사나 무릇 직장인이란 서류 작업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법. 차라리 수기시절에는 지물 휘두르면 훨씬 편했지. 디지털 시대로 바뀌고 나선 작은 자판을 지물로 섬세히 컨트롤 하는 것에 속이 터져 차라리 손으로 토독토독 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물론 본투비 디지털 세대에겐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수기에서 타자로 바뀐 과장급 인물들만.

 

 -

 

 “원혼인 것 같아요.”

 “원혼?”

  아침 일찍 대회의실에 대외협력과와 민원과가 모였다. 대체 왜 오복이는 뭘 보고 쓰러진 것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모임이었다. 대외협력과가 발로 뛰어 조사한 내용의 결과는 원혼이었다. 한나는 내적하품에 콧구멍이 벌렁였다. 원혼?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때나 귀신에 벌벌 떨었지. 이젠 그런가보다 싶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죽어서 원한 가질 수도 있지 뭐.

 “네. 오복 학생이 정신을 잃기 직전에 들었던 소리가. 억울하다는 말이었대요.”

 “억울해? 뭐가?”

 “그건 차차 알아봐야죠. 지리산 근처로 사건사고가 있었는지.”

 “경찰 측은 뭐래?”

 “공문은 보냈는데.. 소득은 없어요. 애초에 이 근방에 접수된 사건이 아예 없대요. 뭐 발견하면 보내준다고는 하는데..아시잖아요. 요새 서울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도 살인사건 때문에 정신없는 거.”

  주무관의 대답에 과장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후..그럼 일단 우리끼리 해결해 보자고. 알지? 이번에 학장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시는 거.”

  예이 예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 대다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깔끔하게 성불코스로 갈까요?”

 “그러자고. 민원과가 매칭해서 보내는 걸로 할까요?”

  저 놈의 과장은 우리한테 떠넘기네. 말이 성불이지 원혼이 열 받으면 소멸시켜야 할 수도 있는 거 모르나. 그럼 또 똥은 우리가 뒤집어 쓸 텐데. 확. 대외협력과 과장 보내버릴까.

 “한나씨.”

 “느에?”

  대외협력과 과장에 험악한 마음의 소리를 보내던 한나는 혹여 들렸나 싶어 두 눈을 깜박였다.

 “한나씨가 매칭 좀 잘해줘.”

 “하하. 저 분이 민원과 에이스 인가 봅니다?”

 “아휴. 한나씨가 매칭 맡은 사건은 99프로 확률로 성공이죠. 우리 민원과의 자랑이에요. 일당백입니다.”

 “그렇습니까? 이번 사건도 잘 부탁드려요. 한나씨!”

 “아하하.. 네.. 그럼요.”

  일당백이면 월급도 백 명분 주든가.

 

  매칭해서 보내면 끝일 줄 알았다. 학당의 고질적인 인력난에 제대로 된 매칭이 얼마나 되겠나 싶었지만 학당장님이 지켜보고, 고귀한 삼대독자인지 뭔지 빌어먹을 오복의 양가 집안이 노려보고 있어 모든 사건보다 최고 우위로 올라선 이번 사건이 매칭 프리패스가 되었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인가. 한나는 잠깐 생각했다.

 “이번 사건은 한나씨가 직접 가.”

  내가 지금 입사 몇 년 차인데 현장을 구릅니까. 중요하니까 가라는 거 아니야 한나씨.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인가. 한나는 뼈에 아로새겼다. 꼭 짱이 되어야지. 도사청 짱이 되어서 권력의 맛을 뷔페처럼 느끼게 해줄 거야.

 

  누가 그랬나. 원혼이라는 말에 심드렁해진다고. 그건 뽀송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타자를 두들길 때나 하는 소리고. 내가 아해로 태어나서 귀신 한번 안보고 귀하게 자란 몸인데!

 “꾸우우~”

 “으갸-”

  저게 올빼미야 부엉이야. 왜 울고 그래. 물론 입사 초기에 외근을 자주 나갔지만 귀신 퇴치는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아 성불은 있었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할 때 도사청 출신 특기자들도 매번 같이 나가서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어드렸으니까. 또 간간히 귀신을 보는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씩 귀신을 보긴 했는데. 하나같이 어린애들. 당시 한나와 비슷하거나 한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죽지 않고 살았으면 할아버지가 되어 자신이 죽었던 그 나이의 손자 손녀 손을 붙잡고 다녔을 아이들. 슬프지만 하나같이 이젠 웃으며 갈 수 있다고 고맙다 말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따쉬.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앞을 가리네. 이건 지금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때 생각에 슬퍼서 나는 눈물이야.

 “아니 근데 꼭 이렇게 어둡고 야심한 시간에 나와야합니까?”

 “귀신은 음기가 강해서 밤에 잘 보이거든요.”

  미친놈. 그건 내 알바가 아니란다. 내가 야근 수당 못 받았으면 너도 죽였을 것이야.

 “네?”

 “암말도 안했슴다. 어서 가시죠.”

  같이 나온 놈으로 말하자면 사건 매칭도 99프로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개인 능력치도 임무 성공률도 상위 1프로! 도합 100프로~! 뛰어난 인력임에 제주도 현장 뛰고 있는 놈을 잡아왔다. 처음이었다. 매칭률 99프로의 인물을 써보는 것도. 다른 일하는 사람 잡아다가 새로운 현장에 던져놓는 것도! 짜릿해. 권력의 맛!

  첫인상은.. 하, 저 자식이 귀신 잡기는커녕 씌이는 거 아니냐. 했는데. 손에 쥔 이력서에 적힌 그간 화려한 전적을 믿으며 사회생활 셔터 올렸다. 양쪽 입꼬리 바짝 끌어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근데 맞잡은 손에서 느껴진 거야. 스바. 이 새끼. 보통이 아니다. 상위 1프로는 1프로다.

  근데 문제는 물론 이 자식 능력치가 사기캐인 건 좋은데. 인력을 최소인원으로 가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얼굴도 잘생긴 놈이 해사하게 웃으며 저랑 한나씨 둘이 가요! 하는데. 물론 이게 아약 대학교 엠티 담력체험이었으면 야 다 비켜 가즈아! 외치며 손 붙잡고 룰루랄라 산을 올랐을 텐데. 야 지금 우리 원혼 잡으러 가는, 아니 성불시키러 가는 건데?

 “저, 저겨. 뭐가 느껴져요?”

 “아니요. 아직이요.”

  항상 대답할 때 저렇게 해사하게 웃기 있냐. 아니 물론 미남의 미소는 테라피긴 한데 자꾸 저렇게 웃으니까. 그게 또 장소가 깊은 산속이니까. 무섭다고. 너.. 혹시 귀신 아니니? 화개로 향하는 지름길을 걸어 나가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왜, 왜요. 뭔데.”

 “이쪽으로 갈까요? 조심해요. 길이 아닌 곳이라서.”

  또! 또! 그렇게 웃지. 무서워 미친놈아. 한참을 길이 아닌 곳으로 갔을까. 그가 멘 가방에 달려있던 방울이 딸랑- 울렸다. 둘 다 걷던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는데 가방끈에 달려 달랑 달랑 흔들리는 방울이 한 번도 안 울리는 게 이상했다. 그리고 등줄기에 소름이 삐죽 돋았다. 앞에 서있던 그가 몸을 돌려 내게 손을 뻗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그리고 눈이 감겼다. 세상이 암흑이었다.

 

 -

 

  다시 학당으로 돌아온 진주는 이제야 짐을 풀었다. 출장 짐을 풀 시간도 없이 오복이 병실이며 학당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가져갔던 옷이며 물건이며 하나하나 꺼네 정리했다. 빨래 거리도 한 가득이었다. 아이구. 아이구. 캐리어는 끝났고 크로스백을 열었다.

 “뭐야.”

  실종 전단지었다. 20대 초중반 여성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실려있었다.

 “언제 이런걸 받았담.”

  전단지를 앞뒤로 돌려 보던 진주는 그제야 터미널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통화하던 저에게 절박하게 건네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쯧.. 실종신고는 바로 접수도 안 될 텐데... 어? 잠깐만.”

  종이에 적힌 실종 추정 장소는 지리산 인근이었다.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진주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

 

  처음 보는 장면들이 짧게 스쳐지나갔다. 죄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였다. 누구지. 대체.

 ‘할머니! 다녀올게요!’

 ‘가서 무릎에 좋다는 거 있음 내가 다 사가지고 올게.’

 ‘할머니! 지금 내렸어요. 아니 지리산 근처긴 한데 절이야 절!’

 ‘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난 할 말 없다고.’

  짤막하게 스치던 이야기는 휙휙 장면을 바꿨다. 그리곤 이내 투닥이는 젊은 남녀의 모습으로 옮겨갔다. 여자는 분명 혼자였는데 저 남자는 어디서 나온 거지.

 ‘악!’

  외마디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는 쓰러졌다. 아니 넘어졌다는 말이 더 옳겠다. 남자에 의한 움직임이었으니까.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던 이내 곧 여자를 들쳐 업었다.

 ‘헉헉,’

  다시 바뀐 장면은 산속 어디메였다. 낑낑 거리며 산을 오르는 남자의 옆으로 여자와 삽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부엉- 부엉- 산부엉이가 우는 시간. 우거진 나무들로 달빛조차 잘 들지 않는 곳. 남자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살려, 살려줘...’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가 멈칫했다. 분명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아아... 할머니...’

  여자의 목소리가 무참히 흙속으로 사라짐과 함께 한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식은땀에 축축했다. 정신이 든 곳은 병실이었다. 오복학생 욕하다 오복학생과 똑같은 병실행이었다. 잠에서 깼음에도 귓가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살려달라는 목소리. 하지만 남자는 들었을 그 목소리.

  여자는 죽지 않았다. 피를 흘렸지만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말을 듣고도 땅에 파묻지만 않았어도. 산에 오르지만 않았어도. 아니 애초에 여자를 따라와 다투지만 않았어도. 여자는 살았을 것이다. 오랜만의 여행에 여유를 부렸을 것이고.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를 위한 관절에 좋다는 약재를 사갔을 것이다. 한나가 바튼 숨을 몰아쉴 때 병실 문이 열렸다.

 “한나씨 깼어요?”

  1프로가 물병을 들고 들어왔다.

 “그 여자. 살해당했어요. 남자친구인지 누군지 한테 살해당했다고요!”

 “알아요.”

  1프로는 아무렇지 않게 물을 따른 컵을 한나에게 건넸다. 여전히 흥분한 얼굴의 한나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한 번 내밀었다. 스바, 이 인간은 사람이 말하는데. 큼큼. 그러고 보니 목이 마른 것 같기도 하고.

 “한나씨가 본 거 저도 봤어요. 한나씨한테 링크 걸릴 줄은 몰랐는데. 미안해요. 내가 돌아 봤을 땐 이미 걸렸더라고요.”

 “아, 예..”

  링크고 나발이고. 물을 꿀꺽꿀꺽 마신 한나의 컵에 1프로는 다시 물을 채워줬다.

 “아 잠깐만 그쪽도 봤다고요? 그럼 잡았어요? 그 남자.”

 “지금 수사 중이에요. 그보다도 그 여자가 꿈쩍하질 않아서 문제네요.”

 “아니 그쪽 상위 1프로던데. 그게 안돼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알아요?”

 “아이 알죠. 그건 갑자기 왜요.”

 “바보 온달이 전쟁이서 죽고 그의 시신가 꿈쩍 않았는데 평강공주가 와서 달랜 후에야 장례를 치룰 수 있었대요. 그런 거죠.”

  뭐 여하튼 지 손으로는 안 된다는 거잖아. 못한단 소리를 장황하게도 말하네.

 “이미 죽은 지 꽤 되기도 했고 원한도 서린지라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거에요. 물론 지리산 산신령이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땅에 뿌리를 내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성불도 못하고 어디 가지도 못하고 그 곳에 영원이 묶인 지박령이 돼요. 그래도 유전자 감식결과가 나올 때가 돼서, 가족분이 오시면 한결 쉬워지겠죠?”

 

 -

 

  또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물론 뭐 엄청나게 다친 건 아니고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뿐이긴 하지만 나까지 와야 되는가? 사람 쉬는 꼴을 못 봐요. 아주그냥. 퉤. 보고 양심이나 좀 찔리리라고 간호사 양반에게 부탁해서 포도당하나 달고 링겔대 끌고 왔다.

 “아이고 한나씨 몸은 좀 괜찮아?”

 “이거 산재 되죠?”

 “한나씨! 도사청 병원은 도사청 소속 사람들한텐 다 무료라고. 하하!”

 “정신적 피해 청구하려고요.”

 “껄껄 우리 한나씨가 유머감각도 아주 뛰어나? 인재야 인재.”

  과장은 껄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람 말을 헛으로 듣네. 재수 없어. 고소장 날려? 내용증명 날려? 피해 청구서 영수증 날려?

 “자자 회의 시작합시다. 우리 도사청 직원 분들이 열심히 일해주신 덕분에 시신 위치 파악은 되었습니다. 예,, 지금 피의자는... 어 오늘 아침에 공문 보냈다고? 잘했네. 피의자는 경찰청에서 찾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는 그 시신을 수습해야하는데... 그것 참. 꿈쩍도 안한다 하네요. 장정이 달라붙어도 안 되고, 도력도 안통하고. 거참. 그래서 유족을 불러서 천도재를 하든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우리 선생님의 의견입니다. 유전자 감식결과 나왔어? 어어 그래. 저희가 다 치우고 저희 것을 일빠따로 넣었는데 결과는 한 시간정도 더 걸린다고 하네요. 뭐 유전자 감식이 자판기처럼 누른다고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껄껄. 어, 그리고 이건 무슨 전단지죠?”

 “아, 저희 과 직원이 찾은 건데. 실종 추정지와 타임라인이 유사해서 참고 차 가지고 왔어요. 다들 확인한번 해보시죠.”

  진주는 가져온 전단지 복사본을 회의실 사람에게 돌렸다. 회의 자료에 수억 개의 별을 그려내던 한나는 참지 않은 하품을 쩌억 하며 고개를 들었다.

 “엥?”

  한나의 목소리에 회의실의 모든 눈이 그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어진 답은 그 옆자리의 1프로였다.

 “그쪽으로 바로 연락하시죠.”

 

 -

 

  노쇠한 노인 하나가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겹게 버스에서 내렸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던 도사청 직원이 그를 부축해 준비한 차량으로 모셨다. 차량에 올라탄 노인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자신을 부축해준 직원에 물었다.

 “우리 아가 진짜로 죽었다구?”

  이미 처음 도사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설명을 받았던 내용이다. 당신의 유일한 피붙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근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당최 움직이질 않아 당신에게 보내주기 어렵다고. 그러니 당신이 직접 내려와 데려 가야할 것 같다고.

 “죄송합니다. 할머님.”

 “그려.. 그랬구만.”

  노인은 이상의 말은 삼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의 사랑스런 손녀가 걸었을 마지막 길을. 차는 한참을 달려 지리산 근방에 다다랐다. 비포장 길을 오르느라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래봤자 차안 노인의 마음보다 출렁이랴.

 “할머님. 여기부턴 차가 올라가지 못해서. 직접 가셔야해요.”

 “그럽시다.”

  한쪽은 도사청 직원이 다른 한쪽은 그의 손녀가 직접 사주었던 지팡이의 도움으로 힘겹게 산을 올랐다. 평지도 걷기 힘든 팔십 먹은 노인에게 산길은 고행이 따로 없었다. 부들거리는 다리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어가길 몇 번.

 “할머님 이젠 이쪽으로 가셔야 해요. 발 밑 조심하세요.”

  이젠 정식 등산로도 아닌 길로 걸어야 했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스런 내 새끼가 걷기도 힘든 이 곳에 누워있다는 생각에.

 “할머님. 이제 다 오셨어요.”

 “고맙네..”

  비탈 한 귀퉁이, 성인 대 여섯 명이 겨우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평지 아닌 평지에 내 새끼가 누워있다. 미리 와 있던 1프로와 한나가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들거리며 내려오는 할머니를 한나가 얼른 다가가 아래에서 부축했다. 겨우 내려온 노인은 직감했다. 저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그것이 눈에 넣어도 아프질 않을, 이 세상에 단 하나 남았던 자신의 사랑스런 손녀라고. 자식을 잃은 이의 울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 어떤 천둥보다 거대하고 강력했다. 한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노인은 갓 태어난 아기를 쓰다듬는 양 흰 천을 걷어내고 연신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부패한 모습에 이전 그의 모습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런 것은 노인에게 상관없었다. 노인을 제외한 모든 이가 등을 돌리는 것이 그곳에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예의였다.

 “이 낯선 곳에서 얼매나 춥고 무서웠을꼬, 아가, 함미가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아가 함미랑 가자 응? 이 추운데 말고 따순 데로 가자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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