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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2화 술버릇
작성일 : 20-08-01 09:44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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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그림자.

 

 ‘사람이야?’

 

 긴장한 탓에 마른 침을 삼켰는데 “꼴깍”하고 큰 소리가 나버렸다.

 

 이 소리는 상대방이 듣지 않았기를 바란다.

 

 긴장한 게 들통 날 수도 있으니까.

 

 불빛이라고는 발목 정도의 위치에 있는 비상구 등인 녹색 불빛이 다였다.

 

 더구나 얼굴 쪽은 그림자가 져서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얼굴이라도 보고 나면 공포심이 덜 할 거 같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필사적으로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에 얼굴색보다 밝은 머리색이었다.

 

 쭉 뻗은 긴 다리를 보면 분명 사람이 맞지만, 얼굴은 꼭 달걀처럼 눈 코 입의 형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둘은 정지 화면 상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이렇게 있다가는 밤새 이러고 있을 거 같아서 용기를 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귀…귀신이세요?”

 

 내뱉고 나니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풉~ 아닌데요.”

 

 실소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났고, 곧이어 정색한 대답이 이어졌다.

 

 담백하고 낮은 톤의 느린 음성.

 

 “누…누구세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여긴…”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가리킨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전 관계자인데, 우리 여성분은?”

 

 비상계단으로 들어올 때 분명 경고문을 확인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들어온 자신의 잘못이었다.

 

 “우리 여성분은?”

 

 검은 그림자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불현듯 조금 전, 임 상무와 큐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누나는 VIP 중에서도 VIP죠.-

 

 그걸 필터 없이 바로 내뱉어버린 하윤.

 

 “전…전 VIP인데요.”

 

 “풉~”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게 참 힘든 하윤이다.

 

 ‘헉! 비웃었다. 아이고~ 이 멍청아. 이 상황에 VIP가 왜 나와. ㅠㅠ’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하윤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은 걸 알고 있다.

 

 “우리 VIP님이 이런 누추한 곳엔 왜 있는 거죠?”

 

 “지금 막 나가려고 했어요. 그럼… 전 이만…”

 

 쪽팔림을 만회하기 위해 퇴장만이라도 VIP답게 최대한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시크하고 도도하게 문 쪽으로 빙글 돌아섰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 거 같은 찝찝한 기분.

 

 회사도 상사도 이 클럽도 가루가 되어 없어질 정도로 신나게 깠는데 그걸 다 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퇴장하기엔 나 혼자 잃은 게 너무 많아. 사과라도 받아야지. 난 손님이잖아.’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왜 굳이 이 타이밍에 난 걸까.

 

 딱 10초 뒤면 사과라도 받고 싶었던 자신을 고소하고 싶을 만큼 수치심이 들 거라는걸 이때는 몰랐다.

 

 나가려던 걸 멈추고 다시 검은 그림자를 향해 빙 돌아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말한다.

 

 “매너 없게 제 전화 통화 다 엿들었죠?”

 

 “네.”

 

 “네??”

 

 ‘잉? 끝? 저 남자 무슨 캐릭터야?’

 

 예상했던 사과 멘트는 둘째치고, 당당히 엿들었다고 인정하는 남자의 대답에 급 당황한 하윤.

 

 “무…무덤까지 가지고 가세욧!”

 

 한 번 더 생각하고 내뱉는 게 그렇게 힘든가.

 

 또 필터 없이 아무 말이나 던지고는 도망치듯 뛰쳐나와서 룸으로 향한다.

 

 ‘「VIP」도 어이없는데 「무덤」은 또 뭐냐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룸으로 돌아왔는데, 룸의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 후끈 달아올라 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사진 찍고, 술 마시고 춤추고 다들 흥이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제일 기분 좋으신 임 상무는 비틀거리며 마이크를 잡고 일어선다.

 

 “오늘 이거 다 마시기 전에는 아무도 이 방을 못 나가. 알겠어?”

 

 “상무님. 최고~~~”

 

 아기 사원들은 합창하며 대답했다.

 

 ‘저것들이 아주 미쳐가지고…’

 

 이미 양주를 5병을 비웠고, 뜯지도 않은 양주가 아직 3병.

 

 ‘저것만 다 마시면 집에 간다고?’

 

 뭔가 단단히 결심한 하윤은 양주병을 까더니 혼자 열심히 마시기 시작한다.

 

 ‘내가 다 마셔버리겠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얼음에 말아 마시고, 병나발 불고…

 

 

 ***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목도 마르고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안 떠지고 총제적 난국이다.

 

 그러다가 겨우 눈 한쪽을 희미하게 뜨니 뭔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긴… 집이네.’

 

 분명 조금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던 하윤은 순간 이동을 한 것 마냥 중간 기억이 다 날아가고 없는 상태다.

 

 ‘헉!!! 벌써 집이라고?’

 

 아침이 다 되어 귀가해서 거실 바닥에 그대로 잠이 들었던 하윤은 놓고 있던 정신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엄마에게 등짝을 세게 얻어맞고, 언제나처럼 똑같은 레퍼토리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내가 못 살아. 술 좀 작작 마셔. 어제 몇 시에 기어들어 왔는지 기억은 해?!”

 

 “아파~ 엄마.”

 

 “아무리 내 딸이라도 넌 제정신이 아니야.”

 

 등을 스매싱 당한 덕분에 안 좋았던 속이 더 안 좋아져서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붙잡고 실신 직전까지 토하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서 나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집에 왔지? 미치겠네.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소파에 앉아서 산발된 머리를 더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하윤.

 

 “너 회사 안 가?”

 

 “나 회사 다녀?”

 

 “뭐?!!”

 

 엄마는 눈이 찢어지라 노려보며 입 모양으로만 욕을 한다.

 

 “아… 나 회사 가야 하는구나.”

 

 술이 안 깬다.

 

 

 ***

 

 

 거의 기어 오다시피 하며 회사 입구 도착한 하윤.

 

 ‘윽~ 토나와.’

 

 어떻게 씻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과정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생얼에 어제 입은 옷 그대로라는 것이다.

 

 ‘다행히 얼마 전에 회사 경비 아저씨랑 생얼 텄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긍정이」 하윤은 생얼이 마치 출입증인 양 아주 당당히 회사 입구를 통과한다.

 

 그렇게 무사히 출근하는듯하였으나, 사무실로 올라와 가방을 여는 순간, 하윤은 또 화장실로 달려갈 뻔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건 바로.

 

 소.주.한.병

 

 ‘어제 분명 양주만 마셨는데, 왜 소주가 있는 거지?’

 

 “읔~”

 

 ‘아침부터 소주를 보니 또 토할 것 같다.’

 

 하윤은 소주를 당장 책상 맨 밑 칸으로 유배 보낸다.

 

 그 순간, 날아간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4 x 8 = 18.

 3 x 6 = 18.

 6 x 9 = 18.”-

 

 ‘나… 또 술 마시고… 구구단을 한 거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취하기만 하면 구구단을 하는 하윤이.

 

 구구단에 못 외워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술만 마시면 그렇게 구구단을 했다.

 

 그렇다고 산수나 수학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지도 않는데 술만 마시면 나오는 버릇이다.

 

 문제는 그 구구단이 종종 틀린다는 것.

 

 그리고 꼭 무조건 18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다.

 

 이게 첫 번째 기억으로 앞으로 떠오를 기억 중에서 가장 낮은 수위의 기억이다.

 

 “진 대리님. 일찍 오셨네요?”

 

 발랄한 후배들이 발랄하게 웃으며 출근한다.

 

 “너희는 멀쩡하네. 다들 들어갔지?”

 

 “대리님 남친님이 오셔서 저희 다 데려다줬잖아요.”

 

 “뭐?!! 누구 남친??”

 

 “대리님 남자친구분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대반전이다.

 

 ‘기현이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거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되게 잘생기신 거 같던데요?”

 

 “봤어?”

 

 괜히 뿌듯해지는 하윤이다.

 

 “후드 모자를 푹 덮어쓰고 계셔서 얼굴은 정확히는 못 봤는데, 스타일도 좋으시고, 안 봐도 잘생김 뿜뿜 있던데요.”

 

 “그랬니?”

 

 ‘기특하네. 여친 술 마셨다고 데리러 오고…후훗~ 아주 칭찬해~ㅎㅎ”

 

 띠링~

 

 마침, 사내 메신저가 도착한다.

 

 -「진 대리. 어젠 잘 들어갔어?」

 

 「네. 임산부님도 잘 들어가셨죠?」

 

 -「임산부는 나를 말하는 거야?」

 

 임 상무를 임산부라고 쓴 아직 술이 덜 깬 하윤.

 

 「헉!!! 죄송합니다. 오타입니다.」

 

 -「ㅋㅋㅋ 그래. 어제 좀 무리하는 거 같더라.」

 

 「죄송합니다. 제가 끝까지 챙겨야 했는데…」

 

 -「괜찮아. 자기 남친이 와서 다 챙겨줬어.」

 

 「네. 얘기 들었어요.」

 

 -「그 기억도 없는 거야?」

 

 「네… 그게….」

 

 -「자기 남친 괜찮더라. 결혼해도 되겠어.」

 

 「감사합니다.」

 

 사실 최근 권태기인지 기현과의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

 

 전화하는 횟수도 줄고, 전화하더라도 거의 “피곤해.” 가 대부분이었던 시기라 싸우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데리러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라연과 아침에 가까운 새벽에 통화한 게 어제의 마지막 통화 내역이였다.

 

 텔레파시가 통한 게 아니라면, 기현이 클럽까지 하윤을 데리러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하윤은 회사 메신저로 라연에게 물어본다.

 

 「라연아. 어제 새벽에 나랑 통화했어?」

 

 -「새벽 5시쯤? 나도 잠결에 받아서 잊고 있었네.」

 

 「새벽에 왜 너한테 전화를 했을까?」

 

 -「호빵인가? 찐빵인가? 훔쳐먹다가 걸렸다던데? ㅋㅋㅋ.」

 

 「ㅋㅋㅋ 미쳤네.」

 

 -「꿈꾼 거지?」

 

 「아마도…」

 

 -「나한테 전화 한 것도 기억 못 할 정도면… 술 끊는 걸 강력 추천한다.」

 

 「근데. 어제 기현이가 데리러 왔다고 했는데, 연락한 흔적이 없어.」

 

 -「다른 사람 핸드폰이나 가게 전화를 사용한 거 아냐?」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남친한테 직접 물어봐.」

 

 「그래야겠네.」

 

 하윤은 바로 기현에게 문자를 보낸다.

 

 「기현아. 퇴근 후에 잠시 볼까?」

 

 -「오늘 좀 피곤한데.」

 

 「잠시면 돼. 뭐 하나만 확인할 게 있어서.」

 

 -「확인? 무슨 확인?」

 

 「그건 만나서 얘기해.」

 

 -「지금 나 의심해?」

 

 「무슨 의심?」

 

 -「일단 우리 집으로 와.」

 

 「그래.」

 

 핸드폰은 닫으며 없던 의심까지 생긴 하윤.

 

 ‘내가 무슨 의심을 해? 수상하네.’

 

 

 ***

 

 

 퇴근 후, 바로 기현의 집으로 온 하윤.

 

 평소와 다름없이 자연스럽게 도어락을 누르고 기현의 집으로 들어간다.

 

 마침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오는 기현.

 

 “맥주 한잔할래?”

 

 “아니. 오늘은 술만 봐도 토나와.”

 

 “어제 도대체 얼마를 마신 거야?”

 

 기현은 어제 하윤의 상태를 모르고 있는 듯이 물었다.

 

 “혹시 어제 나 데리러…”

 

 “자고 갈 거지?”

 

 하윤의 말 자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기현.

 

 “아니. 집에 갈 거야.”

 

 “여기서 자고 바로 내일 바로 출근하면 되잖아.”

 

 “집에 가서 남은 일도 해야 해.”

 

 “3주 만에 만나서 겨우 얼굴만 보고 간다는 거야?”

 

 순간 징~ 하고 머릿속이 울렸다.

 

 ‘어제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네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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