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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찰스네 서점 : 한국 요괴록
작가 : 정초딩
작품등록일 : 2020.8.1

전직 경찰 현수와
기묘한 서점의 주인 찰스가 만나는
요괴들의 이야기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요괴들, 요괴보다 못한 인간들의 이야기.

 
수뢰인 1
작성일 : 20-08-01 08:52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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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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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시대의 분위기가 바뀔 무렵, 살던 촌 동네에선 흔히 볼 순 없던 방송국 로고가 찍힌 차량이 동네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차들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한창 친구들과 놀던 나는 지나가는 그 영어가 적힌 차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들이 텔레비전에서 보던 방송을 만드는 곳에서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친구도 그 말을 듣곤 그 차들을 따라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친구의 이끌림으로 동네 근처 산으로 둘러싸인 귀신들린 저수지로 우린 발걸음을 옮겼다. 밤에 수영하면 어린아이가 잡아 먹힌다는 소문이 있는 저수지, 위험한 곳이라 어린이들은 잘 놀지 못하는 곳이었다. 애초에 아이들만 물에서 밤에 논다는 것도 무리인 일이지만, 위험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이후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물론 동네 어른의 사망 소식이었지만···.

 

  낮에는 몇 번 논 적은 있었다. 낮에 사람이 빠져 죽을 정도로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기억했다. 차가운 물의 감촉과는 다른 서늘함, 언젠가 경멸하듯 나를 보았던 가족들에게 느낀 것과는, 언젠간 나를 돈으로 여기던 아빠에게서 느낀 것과는 또 다른 이질감을. 그때는 몰랐지만, 인간에게선 나올 수 없는 서늘함이었다. 사람의 검은 속내보다 부정한 무언가를 검은 저수지 물속에서 나는 느꼈었다.

 

  저수지에 도착하자 방송국 사람들은 소문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며 놀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수지를 비웠다. 저수지가 비기도 전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내 저수지는 비워지고 그에 맞춘 것처럼 좋아 보이는 검고 큰 차가 등장했다. 거기서 오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지금에서는 무속인으로 주로 불리지만, 그 시절엔 무당이라 불리던 한 할머니가 내렸다. 무당은 나이와 화장이 능력에 비례하는 것처럼 짙은 화장으로 깊이 파인 주름들을 모두 하얀 분으로 메우고, 억지로 만든 듯한 하얀 점토 괴물 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 하얀 얼굴과 그곳에 찍힌 붉은 몇 개의 원이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아서 무섭기만 했다. 두려움의 기운을 느꼈는지 무당은 나를 바라봤고, 나는 몸을 돌리고, ‘지나가라, 지나가라’ 속으로 되뇌었다. 무당은 나의 마음을 읽지 못했는지 내 뒤를 지나다 귓등에 거친 숨으로 속삭였다.

 

 “너도 느꼈구나?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나이가 들어 걸걸해져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못 할 목소리가 귓등에서 크게 울렸다. 속삭였을 뿐인데 무당의 목소리는 내 마음을 크게 동요케 했다. 느끼던 서늘함의 정체를 등줄기에 차갑게 새기고는 무당은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나를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얼굴에는 내내 한순간도 미소가 핀 적이 없었다.

 

  구급차와 안전 요원들이 분주하게 배치되고, 해가 쨍한 날씨에서 촬영은 시작되었다. 무당의 행동들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하얀 천으로 만든 줄을 무당은 자신의 몸에 엮고 저수지로 무언가를 감싸 던졌다. 바로 무슨 일이 생길 거라 믿었는지 모두 집중했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조용히 시간은 흘러갔다.

 

  점점 날은 저물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고 사람들의 관심이 옅어지는 순간이었다. 하늘에 구름 하나가 태양을 가린 그 순간 일은 벌어졌다. 허공에 사람이 붕 뜨는 모습을 그날 처음으로 보았다. 아니, 평생 한 번 보았을 일이다. ‘붕 뜬다’라는 표현이 실제 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놀랐다. 나는 것 같은 자력이 아닌, 무언가의 억지력으로 허공에 붕 뜬 무당은 하얀 천에 이끌려 저수지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허공에 뜬 상태로 비명도 지르지 않고 태연하게 끌려가는 모습에 구경하던 혹자는 연출된 상황이라 말을 하기도 해서 구경꾼 모두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속에서도 사람이 붕 떴다는 사실만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전에 느낀 서늘함이 남아서였는지 놀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크게 느껴졌다.

 

  안전 요원들의 물장구 소리가 들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오고 가더니 무당은 검은 물 위로 오색 옷의 뒷면을 보인 채 안전 요원 가운데 떠올랐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가까운 아이의 눈을 가렸고, 들리는 비명에 친구들도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턴가 혼자였던 나는, 몸을 돌렸던 처음과는 달리 빤히 그 서늘함을 보았다.

 

  분명히 보았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던 나는 두 눈에 자연스레 ‘그것’이 맺히고 눈을 마주쳤다. 그림자가 짙게 내린 저수지의 구석에 ‘쩍’하는 소리를 낼 것만 같이 힘겹게 뜨는 붉은 눈 하나와···.

 

  뭍으로 올라온 무당은 몇 가지 확인을 받고 안전 요원의 고갯짓에 죽음을 선고받았다. 나는 그 주변을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해치고 무당에게로 다가갔다. 무당이 안겨준 서늘함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처음으로 보는 팔의 단면이었다. 깨끗하게 잘린 건 아니지만, 거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방송국 관계자들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도 그 상처를 가리려는 하지 않았다. 극채색으로 물들었지만, 이미 출혈이 멈춘 기이한 상처를 보며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마치 그 상처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결국, 그 사건은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납량특집으로 촬영하던 팀의 몫이 아닌, 9시 뉴스였다. 영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속인의 화장기 없는 생전 모습과 모자이크 처리된 사후의 모습으로만 등장하며 그저 굿판 도중의 사고라고 뉴스에는 나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저수지에는 수영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영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건이 많은 일로 잊혀갈 무렵, 그 사건쯤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의 충격으로 학교에 나가지 않아 학교생활이 엉망이 돼 혼자였던 내 앞에 전학생 현수가 나타났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요즘 말로 중2병스러운 현수는 금방 나와 친해졌다. 내가 중2병스럽던 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내가 가졌던 심각한 고민이나 망상에 대해 현수는 잘 들어주었다. 우울증인지도 몰랐던 그때의 주절거리는 증상들에 현수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고민을 얘기할 정도의 편안함은 동질감에서 비롯되었다. 나도 현수도 주변에 사람은 없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말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생기는 편한암. 현수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 망상에 그럴듯한 이유와 그걸 뒷받침하는 책을 함께 추천해 주었다. 거기엔 그럴듯한 이유를 현실답게 풀어놓은 해석이 있었다. 흡혈귀를 논하며, 악성 빈혈, 광견병, 포르피린 증후군 등 전문적인 병증을 늘어놓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의학용어가 적힌 책을 건네기도 했다. 내게 그런 현수는 만능의 지식인 같았다.

 

  하루는 현수에게 내가 보았던 ‘그것’에 관해 물은 날이었다.

 

 “혹시 너, 저수지 귀신도 알아?”

 

 “예전에 무당을 잡아먹은 것 말인가?”

 

 “응.”

 

 “자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나?”

 

 “관심보다는…. 그 자리에 있었거든.”

 

 “언제 말인가? 그래서 귀신은 정말로 있었나?”

 

  나의 망설임은 느끼지도 못한 것처럼 현수는 뭔가 망상이 정말 현존한다는 것에 신난 것처럼 내게 물었다.

 

 “그건 귀신이 아니었어.”

 

 “그럼 그건 무엇이었나?”

 

 “...검은, 검은 덩어리···.”

 

  나도 모르게 눈이 아닌 검은 덩어리라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검은 물체, 또는 덩어리라 말하는 경향이 있지.”

 

  현수는 실망한 듯 말하다, 한 번 더 나에게 물어왔다.

 

 “정말 자네가 본 그건 검은 덩어리기만 했나?”

 

 “사실···.”

 

  현수에게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늘이 진 것일까? 바람이 분 것일까? 이유를 찾지 못하고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현수가 오히려 말해왔다.

 

 “무언가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는 듯하니, 다음에 다시 말하세.”

 

  그렇게 말하고는 현수는 어디론가 향했다. 곧바로 같이 앉아있던 자리에 구름이 지나고 빛이 들어왔다.

 

  수능을 치고 억지로 학교에 나온 날, 현수는 나를 이끌고 저수지로 향했다.

 

 “왜 그래?”

 

 “오랜만에 죽었다고 하네!”

 

 “누가?”

 

 “그 저수지에서 말일세! 누군 게 중요하나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확인하러 가보세.”

 

 “뭘?”

 

  누군가는 중요치 않다는 걸 쉽게 동의하고 확인하자는 말에 의문을 품고 물었다. 서늘함을 대할 미래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미리 현수의 답을 원한 것이었다.

 

 “자네가 본 ‘그것’에 대해서.”

 

  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어디서 사람이 죽은 걸 들었는지도 궁금했지만, 어떤 연락책이 있겠지 싶었다. 그 시절엔 휴대전화도 다들 가지고 다녔으니. 후에는 현수에게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신이 난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는 저수지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에 뭔가 안도를 느끼고, 사람들을 뚫고 도착한 폴리스라인 건너편에는 다리 한쪽만 잘린 듯, 덮인 하얀 천위로 다리 부분을 붉은 자국으로 대신하듯 물들이는 시체가 보였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가?”

 

 “뭐가?”

 

  현수는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자네가 본 ‘그것’ 말일세!”

 

  신나 보이는 현수와 그런 현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꼈다. 시체와 사람들 무리, 그리고 현수를 뒤로한 채 도망쳤다. 도망가는 길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를 스친다. 그 아이도 뭔가 현수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에 나는 더 열심히 도망친다.

 

  그 뒤로 한동안 현수를 보지 못했다. 한참 뒤에 다시 만난 현수는, 아니 찰스는 무엇보다 진중한 사람이 돼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는 별다른 것 없는 삶을 살다 전직 경찰이 되었다. 형사는 아닌 그저 민원계와 교통계, 파출소를 전전하다 끝난 조용한 경찰 생활이었다. 아직 젊은 전직 경찰이 할 만한 일은 탐정사무소 정도였다. 탐정이 한국에서는 합법은 아니지만, 작은 심부름과 기이한 일을 해결해 주는 소박한 일거리들로 근근이 벌어먹었다.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찰스의 도움 덕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정말 힘들었을 때 찰스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상담을 해주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꿈이던 탐정사무소를 차리게 된 것도 찰스의 큰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찰스의 공백기에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찰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운영하는 서점이 찰스네 서점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건 설명되는 듯했다.

 

  찰스네 서점으로 가는 길, 자주 지나쳐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안은 많은 것이 변해있다. 골목으로 되어있는 천장이 있는 현대화된 시장, ‘중앙시장’이라는 이름 앞에 ‘삼천포’라는 지명이 붙여놓은 간판,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와 지명과 ‘중앙’이 조합으로 사람들을 모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노력 덕분인지 시장 골목은 소란하다. 장은 아니지만, 손님보다 많은 노쇠한, 작은 바구니나, 매대 뒤에서 옆의 사람에게 큰 소리로 자신의 귀가 먹먹함을 표현하려는 듯 소리치는 시장의 안주인들로 인해 소란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소란이었다.

 

  그 소란을 지나면 나오는 작은 골목, 시장과는 다르게 열십자의 형태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이어지지만, 결국엔 시장이나 시장의 입구와 마주한 큰길로 나올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의 길로 만들어진 골목길 속에 찰스네 서점이 있다.

  서점 골목에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을 여미게 만든다. 골목의 폭에 비해 바람이 많이 부는 걸 느낀다. 마치 이곳에 올 때마다, 찰스를 볼 때마다 느끼던 자연스러운 추위, 싸늘함을 해치고 서점의 문을 연다.

  서점의 형태는 굴곡진 골목에 마치 한 면이 휜 삼각형처럼 내부는 직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보다 좁은 공간으로 느껴지는 이곳, 누군가 우연히 찾아와서 사는 책들보다, 누군가 찾아야만 사는 게 가능한 책들을 모셔다 놓은 공간이 숨겨져 있기에 노출된 공간은 생각보다 좁은 것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찰스는 책들을 숨겨놓은 곳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했다.

 

 “가치 있는 것을 너무 노출하면 누구의 말처럼 시선이 닿기만 해도, 말에 담기만 해도 닳게 된다네. 그러니 이렇게 숨겨두는 것이지. 그런 소중함을 좋아하는 고객들이 여길 찾는 것이고 말이야.”

 

  찰스의 알지 못할 말에 미신을 믿는지 묻기도 했지만, 번번이 미신이라는 것도 종교와 다를 바 없다며 고집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그 고집에 어쩌면 더 믿게 됐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믿는 것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찰스에게 말이다. 오늘도 믿음을 확인받기 위해 걸음 한 것이었다.

 

 “왔는가?”

 

  고어(古語) 투로 반기는 찰스는 2층에서 선반을 보고 등을 돌린 채 내게 물었다. 문에 달린 풍경 소리가 울리긴 했지만, 나인 건 어떻게 안 것인지, 책을 읽는 찰스를 방해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 널린 책들에 손을 뻗어 본다. 소설이나 다른 장르의 신간들이 가득하다. 판매한다는 느낌의 진열이라기보단, 새로 나온 책을 차려놓고 누군가 사지 않으면 자신이 가져가겠다는 열망이 있는 것처럼 학습지나, 신간을 가득 채워놓은 다른 서점들과는 달리 많은 양보다는 많은 수를 항상 고집하듯 진열해 놓는다.

  여기서 팔리는 책은 다시 주문해서 본가로 보내고, 방치된 책도 찰스는 본가로 보낸다. 그게 그의 유일한 낙이라고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찰스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책을 닫는 소리가 들려 찰스를 바라보자, 이미 나를 본다. 손짓을 해 1층으로 오게 한다. 생각보다 간소한 행동이 찰스를 움직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문득 떠올린다.

  찰스는 나와의 어떤 계약이나 개인의 관계, 만남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을 서점에서 본 기억이 없기에 나에게만 통용되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찾아오는 손님의 일을 해결해 주는 역할은 충실히(싫은 티는 심하게 내지만) 수행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지만, 이 삼천포에서 그를 가장 오래 알고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했다. 이유는 이런 설명을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찰스를 나만큼 오래 본 사람도, 보인 사람도 그의 주변에는 없었고, 확신으로 친밀감을 이용해 자연스레 그를 내 일에 끌어들였다.

 

 “뭐 했어?”

 

 “자네가 오는 걸 기다렸다네.”

 

 “연락도 안 했는데.”

 

 “하하. 그런 게 무엇이 필요한가? 자네와 이 몸 사이에는 묘한 동질감이 있지 않은가? 쌍둥이의 텔레파시 같은, 예를 들자면 쌍명(雙名)의 기운이랄까?”

 

  웃음기 없는 눈으로 소리만 ‘하하’하고 웃는 시늉을 하고 초현실에 도달한 대화를 이어가는 찰스, 쌍명이라는 저 독특한 표현도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대로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무언가 통하는 것이 우리에겐 분명 존재했다.

 

  그저 동명이인쯤으로 줄일 수도 있었지만, 찰스는 자신만의 표현을 써가며 우리의 관계를 형용했다. 어쩌면 찰스라는 예명을 쓴 이유도 나와 같은 이름이라는 것보다, 자신의 독자성을 살리기 위해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본 적도 없는 외국에서 부를 법한 가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쓸 만큼 ‘우리’로 묶이는 이름이 싫은지는 모르겠지만.

 

  차림새는 이름과는 또 달랐다. 고교 시절 문학 선생님이 입던 개량 한복의 매력에 빠진 터라 차림새는 몹시 한국인 답지만, 말투는 몹시 조선, 아니 그보다 더 과거인 고려스럽다고 할 만큼 고어를 좋아했지만, 이름은 찰스라고 자신을 지칭하고 그 이름을 서점에 붙이고는 정겹게 찰스‘네’라고 말할 정도로 약간의 가족이나 집에 미련이 있는 거로 보였다. 그만큼 그의 주변에는 가족조차 한 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인의 삶을 추구했다.

 

 “몇 번을 오지만 너의 말투는 적응이 안 돼.”

 

 “적응할 필요도 없다네, 강요도 하지 않네. 그저 이 몸의 어투일 뿐이니 말일세.”

 

 ‘중2병도 아니고 매번 이 몸이라니….’

 

  찰스의 취향 고백은 올 때마다 듣는 기분이지만, 매번 새롭다는 듯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편이라 더는 묻지 않기로 한다.

  말을 삼키고 가만히 있자 찰스가 먼저 묻는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가?”

 

 “아,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

 

 “무언가?”

 

 “고등학교 시절 자네가 나와 함께 보려고 했던 ‘그것’에 대해 기억하는가?”

 

  찰스의 표정은 약간 찡그려진다.

 

 “‘그것’ 말인가? 물론 기억하고 말고 이름도 알게 되었다네.”

 

 “이름?”

 ‘그것’에도 이름이 있나 싶지만, 역시 상상 이상의 답변을 해주는 찰스에게 놀란다.

 

 “‘그것’의 이름은….”

 

 “‘그슨대!’ 맞죠?”

 

  찰스가 말하려는 순간 내 뒤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닫힌 문에 부딪히는 형태로 들려왔다. 목소리를 향해 돌아본 뒤에는 들어오지 않고 우리를 보며 신나 보이는 여자가 유리로 된 문에 하얀 입김을 새기고 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저기 서 있는 거지?”

 

 “아마, 아까 이 몸을 찾던 전화가 있었네만, 그 주인인 것 같구려.”

 

 “전화?”

 

  말투가 고려에서 고구려까지 간 느낌이었지만, 그보다 전화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묻는다.

 

 “그렇다네, 휴. 대. 전. 화. 자네는 없는가?”

 

  얄밉게 끊어 말했지만, 황당함이 더 강하게 올라왔다.

 

 “아니, 있는데 그보다 언제부터 휴대전화가 있었나?”

 

 “초콜릿 폰이 나올 때쯤이니 우리가 20살 무렵부터 있었다네. 그전에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말이지. 이래 봬도 얼리어답터라네, 책을 읽는다는 건 무릇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 그 정도도 따라가지 못해서 어찌 그 시대에 산다고 말하겠는가?”

 

 “아니….”

 ‘그 꼴을 하고, 그 말투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따지고 싶었지만, 중얼거림이 길어질 듯해 줄인다.

 

 “왜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네.”

 

  할 말이 입에 맴돌았지만, 최선의 불만만을 찰스에게 말했다.

 

 “이 몸을 추궁하는 건가? 자네의 질문이 없었다는 점과 또 이 몸의 말투를 따라 하는 점을 꼬집고 싶네만, 일단 저 처자가 추울 듯하니 안으로 모시고 얘기를 듣는 게 먼저일 것 같네만?”

 

 ‘이걸 정말….’

 

 “그러지.”

 

  열고 들어오면 되는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우리를 보던 의문의 여자를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높은 텐션에 찰스는 조금 멀어진다.

 

 “네, 어서 오세요.”

 

 “이현수 씨?”

 

 “어느 쪽을 찾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흰 다 현수랍니다.”

 

 “아니, 이 몸은 찰스.”

 

  그녀를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던 찰스는 뒤로 물러서며 검지를 흔들며 거절하듯 말한다. 방금까지 쌍명의 기운이니 뭐니 하던 찰스가 자신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찌릿하고 눈빛을 보내지만, 더 강한 눈빛으로 답한다. 기운에서 밀려 앞에 있던 그녀에게 다시 시선을 옮긴다.

 

 “아, 네. 그럼 그냥 제가 얘기하면 될까요?”

 

 “현실의 문제라면 저, 아니면 이쪽을 보시고 말씀하시면 돼요.”

 

  찰스를 가리킨다.

 

 “자네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가?”

 

 “그럼 어쩌란 건가?”

 

 “아, 저….”

 

 “예?” “네.” 우리는 그녀의 말소리에 마주 보던 시선을 동시에 옮기면 답한다.

 

 “저 얘기 해도 될까요?”

 

 “아, 네.” “물론.” 우리는 또 동시에 대답한다. 그 답을 듣고 얘기를 시작한다.

 

 “저는 일단 이런 사람이고….”

 

  현수에게 명함을 건네는 그녀, 거기에는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사실과 정시아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아,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분이군요. 근데 저희가 다루는 건 거의 납량특집에 가까울 텐데, 납량특집이라기엔 너무 겨울인데….”

 

 “자네는 그렇게 시대 감각이 없나? 요즘 시대에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네 그리고 이 몸이 왜 허무맹랑한 것에만 적용되는 지식을 가진다고 확신하지? 적어도 진부한 자네가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범주를 익힌 이 몸을 말일세?”

 

 “네, 겨울이죠.”

 

  말을 끊는 찰스와 그 말을 흘리듯 답하는 시아, 말을 이어간다.

 

 “다름이 아니라, 한 사건에 관해 묻고 싶어서요.”

 

 “어떤?”

 

 “십여 년 전, 근처 저수지에서 일어난 익사 사건을 알고 계시는가요?”

 

 “근처 저수지 익사 사건이라면, 이 동네에 오래 살던 사람이라면 지속해서 있던 일이라 기한을 두고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사건 중에 무속인이 한 분 돌아가셨던 사건은?”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나와 촬영을 한다고 소란했던 그 날을 말하는 것 같네만,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지?”

 

  시아와 대화가 오가는 도중 찰스가 끼어든다.

 

 “아, 천을 허리에 매고…. 잠깐 너도 거기 있었어?”

 

 “그랬다네.”

 

 “죄송한데 얘기를 이어가도 될까요?”

 

  찰스의 말에 놀라 너무 크게 혼자 떠들어 버린 내게 시아가 양해를 구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에 이현수 씨의 존재를 알게 돼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이런 분야에 전문이시라고.”

 

 “아.”

 

  아까 사무소로 온 전화를 기억한다. 가끔 기억을 잊는 버릇이 여기로 향한 이유도 잊게 하고 있었다.

 

 “혹시 아까 전화 주신 분?”

 

 “네. 아까 전화를 걸었어요.”

 

 “아, 고객님 일찍 말씀하시지.”

 

 “자네 고객인가? 그럼 난 이만.”

 

  돌아서 2층으로 가려는 찰스를 말로 붙잡는다.

 

 “아니, 아니. 이런 건 자네가 전문이니 도와줘야지.”

 

  간소한 행동에 붙잡힌 찰스에게 묻는다.

 

 “그래서 뭔가? 그 ‘그슨대’라는 건.”

 

 “일단 ‘그것’이라 지칭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리고 대략의 정체는 처자도 아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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