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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9화 <기만>
작성일 : 20-07-28 23:53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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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세상을 잡아먹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장대 같은 비가 무섭게 내리쳤다. TV에서 말하길, 폭우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못된 것. 자식이란 게 효도는 못할망정, 이렇게 깽판을 치고 가는 게 어딨느냔 말이다.”

 

 빗소리를 뚫고 경자의 푸념이 들려왔다.

 

 유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성혁과 경자는 한바탕 싸우고 난 뒤였다. 성혁은 막 도착한 유진을 슬쩍 아는 체만 하고 바로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그 뒤로 벌써 한 시간 째, 경자의 푸념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유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들, 경자가 자신과 성혁 사이의 민감한 이야기를 유진에게까지 알릴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저 조용히 경자의 푸념을 듣고 간간히 맞장추 쳐주면서 경자가 알아서 화를 풀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유진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이 나이까지 살았다니... 자식 가진 게 죄지, 어미가 된 게 죄지.”

 

 그런데 오늘은 그 푸념이 어쩐지 평소보다 더 길어지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그 녀석을 확!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은데... 내 호적에 없어서 파지도 못하지 뭐니.”

 

 뭔가 수가 틀려도 단단히 틀린 모양이다. 저렇게 옛날이야기까지 꺼내 하소연 하는 걸 보면.

 뭐, 특별한 출생의 비밀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비밀이랄 것도 없는 인씨 집안의 꼬인 족보 이야기였다.

 

 그닥 믿기지는 않는 이야기지만, 40년 전까지만 해도 경자에게 남편이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업을 했던 남편은 꽤나 고지식한 꼰대였는데, 그의 성은 김씨였다. 그렇다면 경자와 그 남편의 자식인 성혁은 당연히 김성혁이 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혁은 경자의 성을 따라 인씨로 살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 뭔가 사회 통념을 뒤집는 혁명적인 발상이 개입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경자의 남편이었던 김씨는 첫째 부인이 있는 상태에서 경자와 사실혼 관계에 들어갔을 뿐이고, 그에 따라 경자는 자신이 나은 아이를 자신의 동생의 호적에 올렸을 뿐이었다.

 물론 김씨는 나름 아버지이자 남편의 책임감으로써, 성혁을 자신의 호적에 올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가 굳이 동생의 호적까지 빌려가며 인씨로 만든 게, 당시 경자의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김씨의 첫째 부인이 사망하며 사실혼 관계였던 둘은 법적 혼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성혁을 다시 입양하기에는 동생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 이후 김씨가 사망했고, 결국 동생도 자식을 보지 못한 채 17년 전 사망하면서 경자와 성혁 둘만 남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처음에 꼬여버린 족보가 지금까지 쭈욱 내려왔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여자 홀몸으로 그래도 자식새끼 키워보겠다고 사내들 틈에서 아등바등 싸우며 살아왔건만, 그 세월을 이렇게 무시하느냔 말이다.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를 아는 짐승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법이다. 안 그러냐, 얘야.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같니?”

 “아녜요. 당연한 말씀인 걸요.”

 “내가 저 녀석에게 한 소리 들을 만큼 세상을 잘못 산 게냐?”

 “그럴 리가요.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데요.”

 “그렇다면 내가 저 녀석을 잘못 키웠던 게지.”

 “아녜요. 아저씨도 할머니를 얼마나 생각하시는데요.”

 “생각은 무슨... 생각 두 번만 더 했다가는 모자의 연을 끊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더라.”

 “아저씨가 순간 욱 하셔서 언성이 높아지셨던 걸 거예요.”

 “성혁이 저 녀석이 얼마나 냉철한 놈인데, 그런 놈이 욱 할리도 없고, 욱 한다 한들 아무 계산 없이 그런 말 내 뱉을 놈이냐? 저 안에 독사가 몇 마리나 숨어 있는데.”

 “에이, 할머니이~”

 

 더 이상 할 말도 막혀버린 유진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자를 달래기 위해 유진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기껏해야 이 정도였다. 경자는 늘 자신과 성혁 탓했고, 유진은 늘 경자와 성혁에겐 잘못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래도 유진이 그렇게 말을 하고나면 경자는 몇 번씩이나 정말 그러느냐 되물으면서 자신과 성혁에게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고 나서야 진정이 되는 것이었다.

 이 루틴이 지난 15년 동안 유진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겪을 때마다 쉬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지쳐만 갈 뿐이었다.

 물론 얻는 것도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도 이렇게 인간다운 면이 있구나를 배웠으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안나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유진도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안나에게 들어야 할 답변이 있었는데... 어영부영하다 결국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안나는 정말 유진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안나가 말했던 그 재소자... 혹시, 정말 혹시 그 사람이 유진의 아버지였던 건 아닐까...

 

 빗소리가 점점 더해졌다. 그리고 경자의 푸념은 점점 잦아들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 궂은 날씨에 널 불러놓고 늙은이 하소연만 했구나.”

 “아녜요, 할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유, 착하기도 해라. 날씨가 이렇게 궂으니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려무나. 성혁이 놈이 마련해 준 집이래 봐야 썰렁하기밖에 더 하니. 나랑 수다나 더 떨자꾸나.”

 “네, 할머니.”

 

 밖에 있던 하우스키퍼가 쟁반에 따뜻한 차를 내 왔다. 그 위에는 라이터 한 개도 같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떨어뜨린 걸 임 비서가 주웠다는데, 혹시 아시는 물건인지 확인해 주십사 말씀드리랍니다.”

 

 자신의 말을 남긴 키퍼가 밖으로 다시 물러났다.

 

 “글쎄... 나도 누구 건지 모르겠는데. 이런 라이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던가? 아가. 넌 혹시 본 적 있니?”

 

 유진이 올 때마다 이뤄졌던 어설픈 연극이었다. 그냥 물건을 내밀면서 유진에게 봐보라면 될 것을, 경자는 늘 이런 상황극을 덧붙이고는 했다.

 

 “주인이 누군지를 알아야 찾아줄 텐데 말이다. 네가 좀 알아봐주련?”

 “네, 할머니.”

 

 유진은 침착하게 경자가 내미는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라이터를 톡톡 쳤다.

 

 뭔가 불길한 예감은 들었다. 그러나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지난 번, 성혁이 도현의 사진을 줬을 때보다 더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티내면 안됐다. 유진은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이 라이터, 낯이 익었다. Bz 호텔에서 봤던 것이다. 잠깐만. 내가 Bz 호텔의 어디서 이 라이터를 봤을까? 라이터가 올려져 있을만한 곳... 호텔의 카운터는 아니었다. 생각났다. 스카이라운지의 Bar Bz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Bar Bz 테이블 위에서 어쩌다 보게 되었지? 손님이 올려뒀던가? 아니다. 거기 바텐더가 있었다. 가끔 유진이 찾아갈 때마다 알콜이 없는 음료나 브런치를 마련해 줬던 바텐더. 이름이... 지원이었던가...

 

 “어떤 사람인 거 같니?”

 “어... 그게요...”

 

 유진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을 애써 주워모았다. 지원이란 바텐더가 어떤 모습이었더라...

 

 “굉장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아마... 호텔에 머무는 사람 같은데...”

 “그러니?”

 

 유진의 정확한 신원파악에 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인 거 같아요.”

 

 사람을 많이 만난다면 분명히...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것도 많을 것이다. 특히, 경자가 관심을 둘 정도의 인물이라면.

 

 “뭔가 아는 게 많아 보이거든요. 중요한 거나... 위험한 것들...”

 “저런... 그걸 누구에게 말하기도 하니?”

 

 그걸 대체 유진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유진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는 게 많아 보인다는 말에 경자는 수긍했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남에게 누설할 지를 물어본다. 아무 근거도 없이 경자가 유진에게 들이미는 인물이 있던가? 경자가 유진에게 봐달라고 했다면 분명 요주의 인물일 것이고, 그렇다면 경자에게 위험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걸 누군가에게 말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입이... 그렇게 가벼운 사람 같지는 않아요. 굉장히 무거운 입을 지닌 사람 같은데... 그런데 그 무거운 입이 누군가에게는 열리겠죠.”

 

 경자의 고개가 다시 끄덕였다. 유진이 대충 지어낸 말에 스스로 납득한 모양이었다.

 

 “이 사람 말이다...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겠니?”

 “글쎄요... 아무 일 없기는 힘들 거예요.”

 “그 말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니?”

 

 유진이 경자를 빤히 쳐다봤다. 경자의 눈도 유진을 향했다. 경자의 눈에는 많은 나이에도 흐려지지 않는 형형한 빛이 살아 있었다. 그 눈빛을 이겨내기엔 유진은 아직 역부족이었다.

 결국 유진은 다시 고개를 떨궜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뭐...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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