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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오리진
작가 : 시리홍
작품등록일 : 2019.9.23

세상의 상냥함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세상의 진실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93화 황금새의 추종자 (5)
작성일 : 20-07-05 21:39     조회 : 70     추천 : 0     분량 : 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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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그럼, 그 이후의 황금회는 어떻게 되는 거야? 네가 교황의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이가 교황으로 추대될 뿐이잖아."

  지금의 교황은 자신의 믿음을 더럽히는 행위를 더 이상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가 주는 부담감에서 내려오고 싶은 것도 있을 터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의 그가 일궜다고 해도 무방한 황금회를 이대로 내버려둔 채 떠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런 옳고 그름을 시은이가 판단해서 요구할 것은 아니지만, 시은이에게 있어서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걸세. 황금새가 돌아오는대로 난 황금회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니까."

  그저 내려온다는 것이 아니었다.

  페르도는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황금회가 패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완전히 끝낼 작정이었다.

  단호한 그 말을 들은 단보루가 그의 앞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보기 드문 교황이로군. 대부분 어떻게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데, 이런 교황은 처음이야. 난 무조건 자네를 돕고 싶네!"

  단보루가 황금회를 싫어했던 것도, 황금회 소속의 사람들이 저지른 일들을 보아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종교, 아니, 이젠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되어버린 곳을 알아서 청소하겠다는데, 기왕 도와주기로 한 거 완전히 몰락시킬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고 싶었다.

 "가능한 거야? 이미 이렇게나 커졌는데?"

  황금회가 개방적인 곳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규모가 상상이상으로 컸었다.

  그런 곳을 교황 한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일까.

 "가능하네. 황금새가 내가 섬기던 황금새가 맞다면, 그도 이렇게 썩어버린 황금회를 기뻐할리가 없네."

 "그렇단 이야기는 지금 황금새가 없어진 건.."

 "역시 그대가 제일 똑똑하군. 맞네. 난 충신들을 의심하고 있네. 아무래도 그들이 술수를 부린 게야."

  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듯 심각하게 표정이 가라앉았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교황의 말대로라면, 이미 이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 있는 황금회신도들 모두를 의심해야했다.

 "근데, 황금새가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평신도들은 모르고 있는 거야?"

 "그들은 황금새를 만난적이 딱 한 번 죽음을 경험했을 때 뿐,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네. 거기서 또 한 번 만나게 되는 경우엔 곧바로 사제의 직위를 받게 되지. 그리고 황금새의 축복을 받아 늙지 않는 몸을 얻게 되네."

  그렇다면 모든 황금회 신도들을 의심할 필요는 없어졌다.

  의심해야 할 신도는 사제 이상.

  그럼에도 아직 많이 남았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네. 그래서 부탁하는 걸세.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

  괜히 모든 참가자의 명단을 넘긴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스케일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은이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잡아 먹을 것만 같았다.

  시은이네가 해야 할 일은 황금새를 찾아내는 것.

  그것만 하면 될 텐데 뭘 그리 고민하냐고 얘기하는 건 젠 정도의 수준.

  황금새를 찾기 위해서는 그가 왜 사라졌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충신들의 소행이라고 의심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일 빠르게 찾는 방법이, 이 일을 주도한 녀석을 찾는 것이고, 그에게서 황금새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심각했던 것이다.

  여전히 젠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단번에 특정지을만한 충신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바로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그런 자가 있었다면 이미 교황이 얘기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까먹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시은이가 고개를 들어, 교황을 쳐다보았다.

 "미안하네만, 특정지을만한 녀석이 떠오르진 않네. 모든 충신들이 의심스러워서 말이지.."

  그의 시선을 정확히 읽어낸 교황이, 역시나 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 조금이라도 더 의심되는 충신들은 없어? 아무리 그래도 교황인데 모든 녀석들이 똑같이 의심스럽지는 않을 거 아니야."

 "으음.. 딱 한 명, 얘는 왜 있는지 모를 만한 녀석이 있다만.."

  교황의 시선이 자연스레 젠에게 향했고, 그의 시선을 따라 젠을 제외한 시은이네의 시선도 움직였다.

 "왜,왜죠!? 왜 저를 다들 쳐다보시는 건가요!"

  모두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애매하긴 하겠다."

 "그렇다네."

 "그래도 여기부터 시작하는게 맞는 거 같아. 어찌됐든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시은이가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자, 단보루와 시야카 그리고 젠도 덩달아 같이 일어섰다.

 "고맙네..아, 한 가지 말 하지 못한 게 있다만..우릴 도와줄 협력자가 한 명 더 있다네."

  어느샌가 우리가 되어 이미 같은 팀이 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교황이, 오른쪽으로 오른손을 펼쳐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짙은 청록색의 기력이 그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황금색 기력을 밀어냈다.

 '이 느낌은..?'

  시은이는 익숙한 기력의 느낌과 참가자의 느낌. 두 가지가 동시에 느껴지자, 경계하면서 머리를 급속도로 굴려내고 있었다.

  시은이가 답을 내림과 동시에, 황금색의 기력을 밀어낸 공간에서 고급스럽게 빛나는 붉은 색의 코트가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상체와 하체가 이루는 황금비율로 인해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이는 키. 그리고 전신을 덮은 매끈한 피부의 끝에 청초함이 물씬 느껴지는 부드럽고 뚜렷한 이목구비.

  지금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고 있었다.

 "..시은? 시은이 맞지!"

  그녀는 망설임없이 바로 달려와 자기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시은이를 꽈악 껴안았다.

  시은이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숨막히는 그녀의 애정표현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뭐,뭐하시는 거죠?!"

  젠은 뒤늦게 반응하며 그녀를 떼어내려 다가가려는 순간, 시야카가 젠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자 젠이 뒤돌아보았고, 시야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는 사이야.."

  시야카도 자신의 손이 부들부들 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은이를 여자라고 알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저건 그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하지만 왠지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시야카가 가만히 있으니, 젠이 뭐라 날뛸 수가 없었다.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시야카가 시은이의 정실이 아닌가.

  젠은 자기도 모르게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즌..어떻게 여길 온 건가?"

  단보루만이 제일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물론 시은이가 먼저 하려던 말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시은이는 시즌의 포근한 품안에 안겨 숨막혀 하고 있었다.

 "..스승..숨.."

  시은이가 팔을 버둥거리며 시즌의 어깨를 툭툭 치자, 그제야 시즌이 팔에 힘을 풀어 시은이를 놓았다.

 "생각치도 못한 반가운 얼굴을 만나서.. 나도 모르게.."

  시즌은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묘하게 눈이 휘어지며 시은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참가자가 되었구나?"

 "스승님도. 혹시나했는데 말이야."

  서로 미묘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한순간 풉하고 웃어버렸다.

 "서로 다 아는 사이인가?"

  어느새 자리에서 내려와 단보루의 곁에 서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 교황.

  단보루는 흠칫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교황은 교황이라 이건가..'

  아무리 이 공간이 교황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단보루의 평소에도 날카롭게 벼려둔 감각을 뚫고 옆에 서있는 것은 감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보루는 자신이 흠칫거린 것조차 교황에게 들켰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 부족하군. 더 연습해야겠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단보루.

  그의 성장의 끝이 어디일지 자신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스타시에서 알게 된 사이네. 나쁜 사이가 아니라 꽤나 서로에게 호의적인 사이니, 걱정하지 말게. 그건 그렇고, 저 자가 우리의 조력자인가?"

 "맞네. 제일 먼저 나의 청을 들어준 조력자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해서, 말도 해둘겸해서 불렀다네. 서로 인사를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더 있는 건 아니겠지?"

 "끝이네."

  단보루는 그제야 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그럼 우린 바로 진상을 파악하러 가겠네."

 "되도록 빨랐으면 좋겠네.. 충신들이 이미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으니까.."

  교황의 낯빛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의심을 넘어서 그의 몸이 어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의심이고 뭐고, 참가자 자격은 그냥 스스로 내려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젠이 불쑥 튀어나와 던진 말 한 마디.

  이상했다. 참가자의 자격을 내려놓는 건, 참가자의 의지에 따라 달린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왜 못내려놓은다고 하는 것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찌저찌해서 황금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거랑 참가자의 자격을 지금 내려놓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건가.

  다들 벙찐 채로 젠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시선.

  왠지 모르게 젠은 콧대가 높아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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