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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4화 <리드&팔로우2>
작성일 : 20-06-23 23:57     조회 : 90     추천 : 0     분량 : 4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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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어디서 그런 애를 데려 오셨어요?”

 

 하 조교가 호들갑을 떨며 안나의 연구실로 들어왔다. 품에는 학생들의 상담 기록지 뭉치가 안겨 있었다.

 

 “왜?”

 

 안나는 한숨을 쉬며 상담 기록지을 받아 들었다. 이걸 또 언제 채점하나.

 

 “애들 난리 났어요. 애가 엄청 산뜻하게 잘생겨서는 말도 조곤조곤 예쁘게 하고. 완전 수퍼스타라니까요?”

 “상담 윤리는 날려 버린 지 오래지?”

 “에이, 진짜 환자도 아닌데 뭐 어때요. 한창 청춘들이잖아요. 그리고 애가 좀 잘생겼어야 말이죠.”

 “꺅꺅 대는 애들 누군지 이름이나 대. 죄다 F니까.”

 

 안나의 진지한 지시에 하 조교는 입을 꾹 담은 채 삐죽거렸다.

 농담이라고는 모르는 교수님였다. 괜히 학생들의 이름을 말했다가 안 그래도 어려운 수업, F 받고 통곡하는 희생자를 내느니, 자신이 입을 꾹 닫고 교수님의 눈빛을 잠깐 감당해내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다행히 성 교수님은 뒤끝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근데 정말 어떻게 아는 아이에요?”

 “첫째. 아이가 아니라 내담자야.”

 “아, 넵...”

 “그리고 둘째.”

 

 상담 기록지를 대충 정리한 안나가 하 교수를 빤히 쳐다봤다.

 

 “그걸 니들이 알아내야지. 내담자에게 그 정도 이야기도 못 이끌어내서야 되겠어?”

 “네에에에...”

 

 농담기라곤 전혀 없는 진지한 말에 하 조교가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입이 댓발은 튀어나온 걸 보니 적잖이 억울한 표정이었다.

 

 사실 하 조교 입장에서야 억울할 만 했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이 모든 호들갑은 결국 안나가 떡밥을 던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업 중에서도 안나의 수업은 밀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농담 제로, 유머 제로. 다른 교수님들처럼 자기가 상담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나 비하인드 스토리, 하다못해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추억팔이라도 할 만 하건만, 유독 안나의 수업은100% 이론으로만 농축되었던 터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웃음기를 쫘악 뺀 채 전장에 나가는 마음가짐으로 강의실에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해는 오늘도 동쪽에서 떴건만, 안나의 옆에 훤칠하게 잘생긴, 그러면서 갓 소년티를 벗은 앳된 남자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그 훈남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천지개벽에 비유될만한 해프닝이었는데, 거기에 안나가 불을 질렀다. 무려 그 잘생긴 훈남을 내담자로 내놓을 테니, 상담 실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안나 본인이야, 교육자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에 그런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준비했을지도 모르지만, 안나의 수강생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년도 안 된 청춘들이었다. 이제 막 상담에 입문한 햇병아리들이 사심을 100% 없애고 상담에 임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담자는 어때. 자기 이야기를 좀 해?”

 “그게...”

 

 영 신통찮은 하 조교의 답에 안나의 눈이 다시 하 조교를 향했다.

 

 “애가 만만치 않던데요?”

 “애 아니고 내담자.”

 “아, 네. 애 아니고 내담자가요.”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람 경계도 할 줄 모르는 갓 스무 살 된 친구야. 그만큼 쉬운 실습 대상이 어디 있다고?”

 “어? 걔 학교 제대로 안 다녔어요?”

 

 하 조교의 반문에 안나가 한심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피상담자의 학력은 기본 중 기본이잖아. 그것도 파악 안하고 애들 뭐 했대?”

 

 그러나 하 조교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에이,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아무리 전공이라도 이제 겨우 학부생들인데요.”

 “그게 핑계가 돼? 내가 가르쳐 준 게 얼만데.”

 “그래서 말씀 드렸잖아요. 만만치 않더라고.”

 

 어차피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피상담자의 학력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에 안나는 쥐고 있던 기록지를 한 장 한 장 살피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유진을 상대로 했던 상담 실습에서 남긴 기록지였다. 유진이 꽤 성실한 피상담자였는지, 기록지에는 꽤나 많은 내용들이 적혀져 있었다. 오늘의 기분에서부터 학교까지 오는 길에 한 생각들, 요즘의 감정 상태 등등...

 그러나 그 중, 정작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력에서부터 가정환경, 주변 인간관계, 직업, 성장 환경...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걸 물어보면 교묘하게 말 돌리면서 빠져나가던데요? 그리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셨는데, 상식이 좀 없어 보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사람 다루는 연륜은 또 장난이 아니고...”

 “......”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사람을 엄청 경계하던데요.”

 

 예상도 못했던 말에 안나도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름 이 바닥 연차가 쌓이면서 사람 보는 눈은 꽤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되새겨 봐도 유진은 그럴 아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암튼, 애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TMI를 대방출하길래, 저도 처음엔 아무리 그래도 실습대상인데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었거든요. 근데 뭐... 그 친구가 아예 애들을 손바닥 안에서 갖고 놀던데요. 저야, 제3자로 한 발 물러서서 지켜봤으니 겨우 눈치 챈 거지, 저도 상담자로 나섰으면 말 돌리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

 “그래서 저는 역시 교수님 데려온 실습대상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나... 했죠.”

 

 열심히 썰을 풀어내던 하 조교가 문득 안나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서둘러 말을 끝냈다.

 

 “교수님?”

 “어? 어...”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나름 학생들 실습이라고 그 친구가 신경을 좀 썼나 보네.”

 “네, 네. 그런 거 같더라고요.”

 “아무튼 수고했어. 그만 가 봐도 좋아.”

 

 

 

 

 최근 들어 느끼는 우울감. 자신의 이야기를 맘 편히 꺼내지 못하는 불안감. 자신이 아는 것을 공유 할 수 없는 고독감.

 

 학생들이 남긴 상담기록지에 공통적으로 적혀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되는 문제 상황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늘 하루 짧게 이뤄졌던 실습이라, 아직 그만큼의 라포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잘 풀어가다 보면 한 명 쯤은 잡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그 정도 스킬들은 없는 건가?

 

 [똑똑]

 “들어오세요.”

 

 유진이었다.

 안나는 조용히 상담 기록지를 책상 위에 엎어 놨다.

 

 “어때? 대학 와 보니.”

 

 유진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왜, 별로야?”

 “그냥... 별 세계 같아서요. 어리둥절해요.”

 “익숙해져야지. 곧 다녀야 할 텐데.”

 “다녀야... 되나요?”

 

 하긴. 검정고시 생각도 없던 애에게 대뜸 대학을 푸쉬하는 건 무리긴 했다.

 

 “그건 너한테 달린 거지. 필요 없을 것 같으면 굳이 안 다녀도 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응?”

 

 유진이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안나의 책상 앞에 앉았다. 제 집이라도 된 듯 자연스러운 것이 어쩐지 거슬렸다.

 

 “누나가 볼 땐, 제가 대학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가라면 갈 거야?”

 “네.”

 “가지 말라면?”

 “그럼 안 가는 거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유진의 모습에,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게 뭐야.”

 “저 원래 말 잘 듣잖아요.”

 

 원래는 무슨 원래인지.

 유진의 대책 없는 천진난만함에 안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뭐, 이런 앞뒤 안 가리는 돌직구가 사람을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네 인기가 폭발하던데.”

 “그래요?”

 

 별 감흥 없는 말투였다. 그래도 스무 살 쯤 되었으면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 인기 많다는 이야기 들으면 우쭐할 만도 할 텐데. 본인이 잘생긴 걸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감흥이 없나?

 

 “오늘 고마워. 덕분에 애들이 많이 배웠어.”

 “뭐...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한 게 없긴. 이 정도면 훌륭한 실습 대상이지. 적절히 자기 이야기 하면서, 그렇다고 있는 이야기를 다 꺼내 놓는 건 또 아니고.”

 

 안나의 말에 유진이 멋쩍은 듯 웃었다.

 

 “혹시 저 이상한 말 하거나 한 건 없죠?”

 “전혀. 그래도 몇 개 짚기는 해야겠다.”

 

 유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안나는 어느 새, 카운슬러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나온 거, 할 건 해야지 싶었던 것이다.

 

 “가끔 우울해 하는 건 알고는 있었는데, 자기 이야기를 맘 편히 못해서 불안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아는 걸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에서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고.”

 “......”

 “이거 계속 두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특히 너 같은 아이는 우울증 고위험군이라고. 제 때 해소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지도 몰라.”

 

 유진이 안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까까지의 해맑은 웃음은 사라진 채였다.

 

 “남들에게 차마 말 못하는 비밀... 있는 거니?”

 “......”

 

 유진의 침묵이 길어졌다.

 안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말할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주변의 재촉은 오히려 입을 막을 뿐이다.

 

 “있어요.”

 

 마침내 나온 유진의 대답에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꼭 말하지 않아도 돼.”

 “누나는 어때요?”

 “응?”

 

 뚱딴지같은 질문에 안나의 눈이 커졌다.

 

 “누나는... 듣고 싶으세요? 제가 말 못하는 비밀.”

 

 예기치 못한 질문에 안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나를 신경 쓰지 마. 그냥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누나가 듣고 싶다면 말 할게요.”

 “......”

 “누나가 듣고 싶다면 말 하고, 듣기 싫다면 안 할게요.”

 “......”

 “아시잖아요. 저 원래 말 잘 듣는 거.”

 

 이런 상황은 안나의 시나리오에 없었다. 그러나 유진은 이미 칼자루는 안나에게 넘겼다. 이 칼자루를 어디로 휘둘러야 할까?

 

 사실,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안나는 알아야 할 것이 있었고, 그것은 유진의 입을 통해서 밖에 나올 수 없었다.

 

 “... 일단 들어나 보자. 그게 뭔데?”

 

 유진은 의자를 안나 가까이에 끌어다 앉았다. 유진의 몸이 안나에게 기울었다.

 

 “저요,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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