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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오리진
작가 : 시리홍
작품등록일 : 2019.9.23

세상의 상냥함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세상의 진실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88화 영웅이 다스리는 도시 (15)
작성일 : 20-06-22 01:48     조회 : 75     추천 : 0     분량 : 9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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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어떻게 할 거라고?"

 "자,잘못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할 거냐고."

 "다,다시는 이런 일이 어,없도록.."

 "하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히이이익! 아,아닙니다! 저,저 자,자잘할 수 이이있어요..!"

  이상한 문답이 오가는 둘의 사이는 어디까지나 반갑게 만난 영웅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일방적인 압박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보고 있었다.

  그건 착각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니까.

  젠은 자신과 시장에게 향했던 모든 마수들을 처리하고, 시은이를 돕기 위해 시은이에게 시선을 돌렸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있었다.

  바닥에 그려져 있던 보랏빛 동심원들은 어느새 지워져있었고, 도주민은 무릎을 꿇은 채 시은이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자연스레 옆의 시장을 쳐다보니,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던 그도,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은님?"

  젠이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시은이가 고개를 돌려 젠을 바라보았다.

 "아아, 다 잡았어?"

  상냥함을 넘어서 산뜻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들떠 있었다. 게다가 저 환한 미소. 젠은 이 순간 다시 한 번 그에게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뭐야,뭐야! 저 미소 뭐냐고!'

  젠은 여러 다른 의미로 눈을 살짝 내리깔을 수밖에 없었다.

 "자, 우린 다시 가볼까?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지?"

  여전히 상냥하게 다가오는 목소리가 무릎을 꿇고 있는 도주민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도주민에겐 전혀 상냥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움찔움찔 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다 전부.. 제가 한 일입니다. 용서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저희 시장님은 저와 다른 분이십니다. 시장님은 정말로 이 도시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쓰신 분입니다. 밤낮없이 일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 모든 벌을 다 저에게만 베푸시고 시장님께는 아무런 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염치 불구하고 제발 그렇게 해주십쇼!"

 "으음.. 나쁘지는 않은데. 뭐랄까 조금 간절함이 부족한데? 으음.. 더 간절해질 수 있게 도움을 조금 더 줄까?"

 "아,아닙니다! 제,제가 연기하는거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 실전에 강한 펴,편이니까! 믿어주십쇼!"

  다른 의미로 발악하기 시작한 도주민이 고개를 들어 시은이를 쳐다봤다가, 섬뜩한 그의 시선에 다시 쭈글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뭐,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잘 못하면 어쩔 수 없지. 그 땐 내가 벌을 내리는 수밖에."

 "히이익! 제발 그것만은!"

  바닥에 기다시피 하며 두 손을 싹싹 비비는 도주민.

 '이 정도면 됐겠지.'

  나름 만족해하는 시은이가, 고개를 돌려 젠과 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교육은 끝난 것 같으니까 돌아가시죠."

 "여,영웅님!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제 아들이.."

  기껏 용기를 내서 시장이 던진 말에 시은이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켜보세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요."

  저 미소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나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을 때가 왔다.

 

 

 "이쪽으로 모이면 되는 건가?"

 "어이쿠. 자네도 왔는가. 보수는 어쩌고?"

 "보수가 우선인가! 영웅님께서 처음으로 전 도시인들을 호출 하셨는데!"

 "아아, 그렇긴 하지. 미안하네 실언이었네."

 "그건 그렇고 이쪽이 정말 맞는거야?"

 "아, 저기 새로운 영웅님 한 분 보인다! 이쪽이 맞나 보구먼!"

  무너져내린 도시를 보수하고 있던 도시주민들이 하나 둘 도시의 중심부로 모여들고 있었다.

  중심부라고 해봤자, 그저 넓은 광장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마수들의 침입으로인해 성한곳이 하나도 없었다.

  돌이 깔려있던 바닥은 곳곳에 금이 가있었고, 어떤 부분은 부숴진 채로 땅 위로 솟아있었다.

  겉보기에도 많이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 주변에 넘쳐났지만, 도시주민들은 개의치 않고, 삼삼오오 새로운 영웅들 중심으로 커다란 단상을 마주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는 나름 깨끗하게 치워놨지만.

 "자자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면 돼요!"

  시야카의 상큼한 목소리에 다들 마음이 정화되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시장님, 이 정도면 얼추 다 온건가요?"

  지상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 있는 커다란 단상에 시은이와 시장, 그리고 베일에 가려진 어떠한 청년이 앉아있었다.

  시장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시은이가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시장에게 묻고 있었다.

 "예..얼추가 아니라 저기 뒤에 오는 사람까지 오면 다 온겁니다만..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이렇게 다 모아놓고.."

 "그럼요. 그나마 아드님께서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죠. 말로 잘 타일러서 안되면 어찌하나 했는데."

  싱긋 미소짓은 시은이의 모습에, 시장은 두려워졌다.

  분명 처음 이곳에 방문했던 새로운 영웅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미소에 시장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에이~! 긴장 푸세요!"

  그런 시장의 등을 토닥여주는 시은이.

 "새로운 영웅님은 참 넉살도 좋으셔!"

 "시장님과 함께 단 둘이 저렇게 있으니 그림이 좀 나오는 구만!"

  도시주민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어있는 시장의 얼굴이 좀체 펴질 생각을 안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시은이가 시장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얼굴 좀 피시라고요."

  그제야 시장의 얼굴이 해맑게 피어올랐다.

 "그래요!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좋아요."

  시은이의 다른 면모를 보지 못한 단보루나 시야카도 그 둘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걸까요?"

 "살다보면 누군가의 알지 못하는 면도 보게 되는 법이지. 우리가 잘 모르는 친화력이 있던 거 아닐까?"

  시야카와 단보루는 아직 시장과 초대 영웅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시은이가 초대 영웅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확정 지을만한 증거를 잡았다고 했고, 그것을 이곳에서 발표할 것이니 사람을 모아달라는 이야기만 전해들었을 뿐이었다.

 "다왔어요!"

  저 뒤에 있던 마지막 주민이 손을 흔들며 젠이 지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같이 손을 흔들고 있던 젠을 확인한 시은이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손을 같이 흔들어주었어!'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고 확신한 젠은, 언젠가 다가올 핑크빛 나날을 상상하며 헤벌쭉하게 풀어졌다.

 '젠은 또 왜저러는 거지..'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시은이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 할뿐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제 할 일을 해볼까.'

  시은이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도시주민들을 쭈욱 한 번 둘러보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불러들여서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시은이가 곧바로 고개를 바짝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자 도시주민들은 너도나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가 죄송합니까! 영웅님께서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는 것이 저희의 존재의의입니다!"

 "옳소! 아무것도 보탬도, 덜어내는 것도, 없이 딱 그 정도가 우리의 삶의 가치이지요!"

  예상된 그들의 반응에 시은이는 천천히 몸을 치켜세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의 부담이 조금 덜어지는군요. 그렇다면 바로 더 이상 시간 뺏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마수가 들끓는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시은이의 확신이 담긴 목소리에 민중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오오! 드디어 마수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새로운 영웅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흥분으로 가득찬 도시주민들의 반응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냅뒀다간 누구 하나 다칠 것 같았다.

  시은이는 곧바로 그들을 제재했다.

 "자자 진정하세요! 여기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청년 하나를 데려왔으니! 다들 그의 말이 끝나기 전까진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이건 부탁이 아닌 명령입니다."

  진지하게 끝맺는 시은이의 말에 모든 도시주민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입을 싹 닫고 시은이의 행동을 주목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모시도록 하죠. 자 나오세요."

  시은이는 단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손바닥을 펴서 중앙을 가리켰다.

  그러자 시장의 옆에 앉아있던 베일에 가려진 청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은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그가 시은이의 바로 옆을 지나갈 때 시은이는 뭐라 속삭였고, 그는 그 말을 듣고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상의 가운데에 위치한 그가 쓰고 있던 베일을 벗어던졌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시장님 아드님이시네! 어디갔다 이제 온거람?"

 "어디갔다왔어?"

 "아니, 어디 갔다기보다는 실종됐었지.."

 "그럼 실종되셨다가 이런 기막힌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신거야? 역시 괜히 시장님 아드님이 아니시군!"

  시은이와 한 약속을 곧바로 까먹어버린것인지 웅성거리는 도시주민들.

  하지만 다 시은이가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예. 저는 시장님의 아들, 도주민입니다..제가 고백할 것이 있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도주민은 천천히 또박또박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은이와 연습했던 대로, 차근차근히 자신이 벌였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빠뜨릴 수 없었다. 그 옆에서 시은이가 두 눈을 온전히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상입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도주민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될 벌에 대해서 생각했다.

  두려웠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이 재능을 깨달았을 때, 그 때는 그저 조금만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멈추려고 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연출된 마수들의 위협에서 마을주민들을 구해냈을 때, 자신에게 감사하며 동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그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고양되고, 부족했던 모든 것이 채워지는 감각.

  마치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그는 충만해졌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하자. 조금만 더 하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서서히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결국 모든 것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는 수준까지 와버렸던 것이다.

  멸망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마수들이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소환하려고 했던 마수들은 인간형 마수들.

  한 마리도 온전히 통제하기 힘든 인간형 마수를 대량으로 소환해내려 했던 것이다.

  단순히 시은이를 죽이기 위해 나몰라라 하며 소환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으로 소환진을 그리고 있던 것이었으니.

  하지만 시은이에게 교육(?)을 받고나서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정말로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었다는 것을.

  시은이의 교육(?)이 무서웠던 것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는 정말로 자신이 모든 이에게 거짓말을 한 죄를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던 것이다.

 '무섭지만.. 난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어.. 내 아버지만이라도..'

  시장인 아버지를 위한 마음도 당연히 있었다.

  사실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하진 않았다. 자신의 재능이 발견 될 수 있었던 것도 열등감 때문이었으니까.

  아버지의 그 태도를 보지 못했다면, 자신은 아직까지도 전혀 발전하지 못한 채 살아갔을 테니까.

  스스로의 가치를 품게 해준 아버지에게 오히려 이젠 감사하고 있었다.

  시은이에게도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의 교육(?)이 없었다면 자기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을 테니까.

 '그래도..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아직 연출에 익숙하지 않았던 7번째로 마수를 풀었던 날.

  도주민은 타이밍을 놓쳐서 마을주민 하나를 구해내지 못했다.

  다 해진 기다란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그 주민.

  그 날 얼마나 자신이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위로했지만, 전혀 그 위로가 닿지 않았다. 결국 그 주민이 땅에 묻히는 모습도 보지 않은 채 그곳을 벗어나 나홀로 밤을 지새웠었다.

  이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왜이렇게 조용하지..'

  당연히 도시주민들의 악에 받친 괴성이 들려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주민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보았다.

  도시주민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

 "청년의 말이 끝난 것 같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있던 시은이가 말 한 마디를 툭 던지자, 모든 도시주민들이 그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건국 영웅님이 저런 쓰레기 같은 녀석이었다니!"

 "아이고야! 내 젊은 돌리도! 내가 얼마나 건국 영웅님을 생각하며 이 도시에 두손두발 다 바쳤는데!"

 "이 몹쓸놈! 네 아비가 그리 키웠드나!"

 "아니지 아버지는 잘하셨지! 우리 시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데!"

 "그래! 시장님을 욕할게 아니야! 저저저 저 썩을놈이 잘못한 거지! 시장님이 잘못하신게 아니잖아!"

 "맞아! 시장님은 자기 아들을 찾으려고 그 때 밤낮을 안가리시며 마을 주변을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셨는데.."

 "난 몰라! 다른 마을 출신이라서 잘 모르는데! 그래도 시장님은 잘하신 거 맞아! 괜히 우리가 데리온촌장님을 시장님으로 내세울 때 왜 반대 안했는데? 우리도 다 아니까 그런거야! 근데 저건 용서가 안되네!"

  도주민은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계속해서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되어서.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시장에게 향하는 여론이 그닥 나쁘지 않아서.

 '그래, 이거면 됐어. 이제 됐어..'

  모든 명성을 잃어간다.

  몇 년을 쌓아온 자신의 위치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갔다.

  그 때였다. 그의 귓가에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모든 명성을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면서 사회적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천년의 대회 참가자의 자격을 잃습니다]

 '어? 이게 뭐야.'

  놀란 것은 도주민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의 시은이에게도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이번 천년의 대회 처음으로, 사회적 죽이기에 큰 기여를 하여 새로운 참가자 제거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알려드리지 않지만, 이번 대회의 처음이시기에 추가설명 드립니다]

 [눈앞에 있는 도주민이라는 참가자가 이번 사회적 죽이기의 대상자였고, 그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이 지금 이 음성을 듣고 계신 김시은 참가자입니다]

 [이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있을 수 있으니 간간히 다른 생각도 해보시며 대회에 임해주십쇼]

 [아무쪼록 건승 기원하겠습니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안그래도 아무런 원한관계없이 다 죽이기에는 조금 미안함 감이 없지않아 있던 시은이에겐 희소식이었다.

 '..사회적 죽음과 자격박탈이라..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그저 꾸며낸 연극을 지속하다가 최근에 갑작스레 참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천년의 대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왕 참가자가 된 김에, 우승을 거머쥐고 싶었다.

  거머쥔 우승으로, 자신이 꾸며왔던 모든 영웅담이 진실이 되기를 바랐다.

  아주 소박한 꿈.

 '하지만 이젠 별 수 없지. 이미 내가 이길 수 없는 녀석이 있었는데.'

  시은이를 보고 바로 포기하기는 했지만, 아쉬움은 언제나 남는법이었다.

 '됐어..이제..'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따금씩 날라오는 돌멩이 같은 것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저 감내하며 맞고 있었다.

 "잠시만요! 다들 멈춰요!"

  중심의 살짝 뒷쪽에서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모든 이가 하던 행동과 말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누구지?'

  돌멩이를 맞으며 고개를 숙였던 도주민이 서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건국 영웅님은 영웅님이에요. 결국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우린 마수덕분에 어지러웠던 마음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고, 공통의 적에게 맞서기 위해 여러 마을들을 규합했죠. 그러다 결국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잖아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건국 영웅 도주민님이라구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궤변이다.

  결과적으로 좋다고 해서 그가 벌인 일들이 다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그는 심각한 거짓말을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고,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모든 주민들을 농락하고 기꺼이 배신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니..?'

  도주민은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소리친 여인에게 닿자, 도주민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다 해진 주황색 원피스. 아니, 이젠 수선을 한 것인지 곳곳이 다른 천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도주민과 시선이 마주친 여인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궤변인거 알아요. 결과가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도요! 하지만, 전 그 날 들었어요. 처절한 진심이 묻어난 후회스런 울부짖음을. 그리고 깨달았죠. 연출된 구원이라도 구원은 구원이라고. 전 그 때 건국 영웅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죽었을 테니까요."

 "아니, 그건 애초에..!"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 지금 말한 당신. 당신이 그 때 절 구해줬나요? 뭐가 됐든 죽을 뻔 한 건 저라고요! 그 뒤론 이런 일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제가.. 제가 살았다고요! 제가!"

  억지였다.

  개인적인 감정을 호소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그들은 흥분을 점차 가라앉히면서 천천히 생각했다.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 무엇인지.

  조금 뒤, 긴 침묵을 깨고 제일 목소리가 컸던 도시주민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지금와서 욕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과정이 당연히 중요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다 좋게 되었는 걸."

 "맞아. 의도가 불순하긴 했지만, 저 청년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이 데리온도시에 있을리도 없지. 난 아직도 변방의 촌에서 농사짓고 있었을 거야."

 "..극형까지는 안하는 것이 좋겠구만.. 그래도 도시를 위한 마음으로 저랬던 거 아닌감."

 "부담감이 컷겠지. 저런 대단한 시장님을 아버지로 두고있었으니 말이야."

  한 명으로 시작된 말은 점차 퍼져나가며 서로를 납득시키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도주민과 시장은 얼이 빠진 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야카와 단보루는 역시 하는 표정으로 시은이를 바라봤고, 시은이는 애써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의왼데.'

  처음에 당연히 분노할 것은 알았다. 그들이 멍청이는 아니니까.

  그렇게 분노가 극에 달할 때, 자신이 나서서 그래도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자는 형식으로 분위기를 이끌려고 했었다.

  하지만 저렇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지.'

  그런 말을 내뱉던 그녀를 바라본 도주민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뭐 어쨌든, 원하던 결말이 아닌가. 이거면 됐지.'

  그렇다. 어차피 도시주민들을 위해 벌인 일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성공도 아닌 대성공이었다.

  게다가 사회적 죽이기라는,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그나마 덜어줄 방법도 알게 되었으니 이거면 됐다.

  시은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어느새 일어나있던 시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시은이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작가의 말
 

 이런.. 늦어버렸습니다..

 일주일에 3편뿐인데 이걸 늦어버리다니,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분량을 챙겨왔으니.. 한 번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ㅎ

 그럼 전 이만.. 자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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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7화 천 년의 대회 (19) 2020 / 10 / 16 298 0 5356   
136 136화 천 년의 대회 (18) 2020 / 10 / 11 322 0 4705   
135 135화 천 년의 대회 (17) 2020 / 10 / 11 313 0 5576   
134 134화 천 년의 대회 (16) 2020 / 10 / 9 292 0 5275   
133 133화 천 년의 대회 (15) 2020 / 10 / 4 335 0 6236   
132 132화 천 년의 대회 (14) 2020 / 10 / 4 311 0 5205   
131 131화 천 년의 대회 (13) 2020 / 10 / 3 327 0 4925   
130 130화 천 년의 대회 (12) 2020 / 9 / 28 313 0 6501   
129 129화 천 년의 대회 (11) 2020 / 9 / 26 305 0 5255   
128 128화 천 년의 대회 (10) 2020 / 9 / 25 314 0 4731   
127 127화 천 년의 대회 (9) 2020 / 9 / 20 318 0 6194   
126 126화 천 년의 대회 (8) 2020 / 9 / 19 299 0 4745   
125 125화 천 년의 대회 (7) 2020 / 9 / 18 318 0 5394   
124 124화 천 년의 대회 (6) 2020 / 9 / 13 326 0 5184   
123 123화 천 년의 대회 (5) 2020 / 9 / 12 299 0 4430   
122 122화 천 년의 대회 (4) 2020 / 9 / 12 304 0 5148   
121 121화 천 년의 대회 (3) 2020 / 9 / 6 318 0 5003   
120 120화 천 년의 대회 (2) 2020 / 9 / 6 290 0 4750   
119 119화 천 년의 대회 (1) 2020 / 9 / 6 311 0 6386   
118 118화 왕과 함께 (3) 2020 / 8 / 30 310 0 4127   
117 117화 왕과 함께 (2) 2020 / 8 / 30 314 0 4839   
116 116화 왕과 함께 (1) 2020 / 8 / 29 306 0 4686   
115 115화 참가자들 (11) 2020 / 8 / 23 301 0 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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