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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2화 <장막>
작성일 : 20-06-10 00:00     조회 : 73     추천 : 0     분량 : 4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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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좋네요.”

 

 진심으로 튀어나온 감탄이었다.

 으레 손님에게 형식적으로 내놓는 커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원두도 신선했고 로스팅도 훌륭했다. 아마추어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무지막지한 그라인딩과 드립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등급 높은 원두의 풍미가 살아 있었다. 이 정도 원두를 탕비실에 비치해두려면 그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 맘에 드세요? 저희 대표님이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워낙에 미식가이시기도 하고. 그래서 웬만큼 바쁜 때가 아니면 커피 원두를 직접 골라서 로스팅하세요.

 “직접?”

 “네. 특히 취재팀에는 손님이 많이 오니까 절대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면서, 특별히 각 잡고 챙겨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비로소 이 공간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갈색의 커피와 잘 어울리는 내추럴한 커피잔은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이 아니라 물레질로 만들어 가마에 구운 분청사기였다. 혹시나 해서 굽바닥을 손가락을 쓸어보니 인장이 느껴졌다. 그도 익히 아는 인간문화재 사기장의 인장이었다.

 회의실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에서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그의 기준에서 비싼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일반 회사에서 섣불리 고르기 힘든 가구들이었다. 인테리어를 보나 가구의 배치를 보나 구석구석에 놓인 소품을 보나 정말 안목이 있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그야말로 돈 처바른 티 안 나게 처바른 센스 있고 품격 있는 공간이었다.

 뻔한 질문에 시달리겠거니 생각하고 온 언론사에서 예상치 못한 흥밋거리를 찾은 성혁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대표가 아마...”

 “성도현 대표님이요.”

 “아아.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도 TV에 자주 나오던데.”

 

 이제야 기억났다. 이 언론사의 대표가 꽤나 거물이었다는 걸.

 해박한데다 파격적인 언어로 사이다 일침 잘 날리고, 거기다 훤칠한 미남이라 웬만한 연예인 뺨치게 있기 있는 문화평론가. 그러다보니 한동안 TV만 틀면 나오는 수준으로 여기저기 많이 나왔더랬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름 TV를 통해 교양을 쌓았다는 사람 중에는 도현을 모르는 이가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였다. 알 만큼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거물로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비극으로 까마득하게 잊혀진 대기업 ‘안평’ 성우완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이 첫 번째였고, 믿을 수 없는 수완으로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안평의 계열사들을 야금야금 매수해 어느 덧 원래의 규모를 거의 되찾아간다는, 몇 년 전부터 돌던 찌라시가 두 번째였다.

 

 “그래도 한창 바쁘실 때에 비하면 많이 주셨죠. 정말 월화수목금토일 매일매일 촬영 스케줄 있던 날도 있으셨는데...”

 “성 대표, 고정출연하는 프로가...”

 “몇 개 있는데, 시네마토크가 제일 간판이죠. 그것도 원래 주5회 데일리로 했던 걸 바쁘다고 줄여서 지금은 주1회 위클리로 하시는 거니까.”

 

 또 기억났다. 그 만큼 거물이었음에도 성혁에게 존재가 희미했던 이유. 도현은 성혁의 취향이 아니었다.

 한창 성혁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누군지 궁금해서 성혁도 그가 메인으로 출연했던 시네마토크를 챙겨 봤었다. 왕년의 정치사회부 기자였다더니, 지식의 수준이나 비평 논리, 영화를 현재 정세와 연결 짓는 통찰력도 결코 보통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결론이었다. 다 좋은데, 늘 결론에서 이상한 삼천포로 빠졌던 것이다.

 살인자의 심리나 피해자의 눈물 겨운 서사 따위는 절대적으로 성혁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멜로 드라마도 아닌데 스릴러, 역사물에서 왜 구구절절한 감정선을 따져야 하는지... 그나마도 냉철하게 접근했다면 모를까, 도현이 선택한 단어 하나하나에는 늘 감정이 과했고, 그 밑바닥에는 왠지 모를 원망과 연민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러한 도현의 비평을 대중들은 사이다라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며 열광했지만, 안타깝게도 성혁은 대중과 달리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패배자의 감정이었다. 살면서 늘 승리자로 군림해온 성혁이 가장 경멸하고 조롱하는 그 감정.

 

 그래서 안평 성우완 회장의 아들이자, 재계의 암흑의 거물이라는 설정에도 성혁이 딱히 기억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의원님. 그럼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별 일 없나?”

 “별일 많습니다.”

 “내가 알아야 할 건?”

 “아직은 없습니다.”

 “회의실에 누구 있나?”

 “아, 인성혁 의원 와 있습니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도현이 멈춰 섰다.

 

 “왜?”

 “인터뷰요.”

 “아...”

 

 이번에 새로운 기획 코너로 정치인을 데려다 어떻게 해보겠다더니 그것인 듯 했다.

 

 “한 시간 쯤 전에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끝날 때 됐네요.”

 “......”

 “어떻게... 인사라도 하시겠어요?”

 “응?”

 

 잠시 고민하던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거 뭐 있어. 됐어.”

 

 그리고는 대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굳이 아는 척하며 인사를 할 이유도 없었고, 차라리 정식 약속이나 소개를 통해 만난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불쑥 이뤄지는 만남을 도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시나리오는 시작도 전에 사양하는 것이 도현의 룰이었다.

 

 발걸음이 멈춘 것은 대표실 문 앞에 다 왔을 때 즈음이었다.

 

 “인터뷰 거의 끝나 간다고 했지?”

 “네.”

 “인사라도 하지, 뭐.”

 

 어차피 처음부터 이기기 위해 시작한 게임, 온 기회를 피할 이유도 없었다.

 경쾌하게 자신의 말을 번복한 도현은 회의실로 척척 다가가 가만히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갑자기 들어온 불청객에 성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식의 경우 없는 만남을 성혁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다, 무엇보다 계획하지 않은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계에서 나름 연륜을 쌓아온 성혁이었다. 어차피 이 인연, 저 인연으로 얽히게 될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온 기회를 피할 이유도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도현입니다.”

 “반가워요. 인성혁입니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에요, 대표님. 드려야 할 질문들은 다 끝났고요,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만 남아 있었어요.”

 “난 여기 있을 테니, 편하게 끝내.”

 “네.”

 

 마지막 질문이 꽤나 어려웠는지, 성혁의 고민이 길어졌다. 도현은 강 기자의 앞에 놓인 질문지를 슬쩍 훔쳐 보았다. 뻔한 질문이었다.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아... 그 이야길 드리고 싶군요..”

 

 뭐 대단한 말이라도 하려는 건지 뜸이 길었다.

 

 “동기를 주는 건 감정이지만, 결국 사람을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이성이라 생각합니다. 감정을 끌고 다니는 건 패배자나 하는 거죠. 감정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이성의 판단을 따르세요. 그것이 승리자의 행동 방식입니다.”

 

 정말 아무 말이 아니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말.

 하지만 강 기자는 그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네. 그럼 오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 기자의 깍듯한 인사에 성혁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자신의 수첩과 녹음기를 부산스럽게 정리하며 강 기자가 나가고, 회의실엔 성혁과 도현 둘만 남게 되었다.

 

 “인터뷰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예요.”

 “의원님도 엄살이 있으시네요. 더 쎈 청문회도 척척 받아치시는 분이.”

 “청문회가 뭐 어렵나.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만 말하면 되는 걸. 이건 생각을 해서 말해야 하니 더 어렵게 느껴지네요. 마지막 멘트는 좀 괜찮았나요?”

 

 조금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보란 듯이 뱉은 말이었다. 저 사람 좋은 척 하는 평론가씨가 어찌 나올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좋던데요. 감정과잉 사회잖아요. 결국 살아남는 건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사람들일 테니까요. 저는 공감합니다.”

 “그래요? 좀 의외인데.”

 

 뭔가 시원치 않은 성혁의 반응에 도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 인가요?”

 “TV에서 말하는 걸 봤을 땐, 사람이 이성에만 몰두하는 게 패배의 길이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아서.”

 “아... 제가 그런 말을 했군요.”

 “아닌가?”

 

 도현이 어깨를 으쓱 거렸다. 사실 시네마토크는 대부분 안나가 써준 대본에 살을 붙이는 경우였던 지라, 거기서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하는 때가 드물었다.

 

 “방송이야 뻔한 거죠, 뭐.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좋아할 말을 해야하는 거니까.”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의원님 생각이 좀 더 제 생각에 가깝습니다. 감정에 매여 질척거리는 거,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커피를 마시면서도 비슷하게 느꼈지만, 도현이란 사람은 꽤 사람을 놀래 키는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이러면 또 재미있어지는데.

 

 “커피가 굉장히 좋던데.”

 “아.. 제가 어릴 때부터 커피를 좋아해서요.”

 “성 대표 어릴 때면 커피 전문점이 대중화되진 않았을 땐데. 일찍 접했네요?.”

 “집이 부자였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안평 아드님이었다고.”

 “알고 계시네요.”

 “안타까운 기업이죠. 부부가 자살을 하다니, 그런 비극이 생길 줄이야.”

 “자살은 아니었고요,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었죠.”

 

 대수롭지 않게, 그러나 돌직구를 던진 도현은 성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성혁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런 이야긴 처음 듣는데. 뭔가 사연이 복잡했나 봅니다?”

 “저야 모르죠. 어른들끼리의 이야기를 어린 애가 어떻게 알겠어요.”

 “안평 그룹이라... 그 때 뭔가 이슈가 있었던가...”

 

 뭘까? 성혁의 이런 반응은?

 

 철저하게 남의 일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도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가해자로서의 죄책감, 아니 기억이라도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태도였다. 이 반응은 그저, 안평의 일에는 아예 관심도 감정도 없기에 나오는 것이었다.

 

 뭐지? 이 사람?

 

 그 때, 성혁이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무엇가를 생각해내려 했다. 그러다 마침내 생각난 듯 도현에게 물었다.

 

 “인 회장 부부에게 딸도 하나 있지 않았나?”

 “예. 있습니다. 안나라고.”

 “맞아. 그렇게 들었었어. 그러고보니 동생이죠? 성 대표에겐.”

 “네.”

 “동생은 잘 있나?”

 

 혼란스러운 심경으로 도현은 성혁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제 동생이야, 의원님도 오며 가며 보셨을 텐데요?”

 “응?”

 “오피스텔 M. 54층 A호. 거기 살거든요. 제 동생.”

 

 이번에야말로 성혁의 눈의 동그래졌다.

 

 “그 여자가... 성 대표 동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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