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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오리진
작가 : 시리홍
작품등록일 : 2019.9.23

세상의 상냥함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세상의 진실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81화 영웅이 다스리는 도시 (8)
작성일 : 20-06-06 23:37     조회 : 84     추천 : 0     분량 : 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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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 맛있었다!"

 "오늘은 왠일이죠?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주는 걸까요?"

  마수를 열심히 잡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과 도시주민 몇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던 시은이네.

  그들은 평소와는 다른 음식들이 놓여있는 식사자리에 초대 되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시은이에게 시장이 대답하기를.

 -새로운 영웅님께 이러한 대접 한 번 못해드린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언제 어디로 가실지 모르니, 가기 전에 이렇게 융숭한 대접 한 번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드시지요.

  그래서 오랜만에 꽤나 맛있는 만찬을 누릴 수 있었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는 고기부터 시작해서, 환상의 하모니를 부르는 것만 같은 갖가지 채소 무침.

  그리고 밥은 어찌나 물을 잘 맞추었는지, 적당한 찰기에서 윤기가 좌르르 흘러내렸는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그냥 배로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그래서 지금 다들 편하게 풀어진 얼굴을 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은이의 양옆엔 두 꽃이 양팔을 휘감고 있었다. 단보루는 조금 떨어진 채로 걸어가고 있었고.

 "아까 말했잖아, 젠. 한 번 대접해주고 싶었다고."

  오리진에서 이런 흐름 속의 대접이었다면, 왠지 모르게 독이라도 타지 않았을까 의심부터 했을 테지만, 베타이기 때문에 편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선 거짓말을 하는 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참가자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이젠 거의 없겠지.'

  거짓말을 한다는 건, 참가자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공식이 나온셈이었으니까.

  생각이 이 정도까지 잘 정리되고 나니, 오히려 다른 베타 사람들을 대하기가 조금 더 편해진 것 같았다.

  의심병 말기까지 갈 것 같았던 시은이의 마음이 조금 유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변을 향한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참 도움이 되었다.

 "아아! 나 깜빡한 거 하나 있는데, 잠깐만 먼저 숙소로 돌아가 줄래?"

  시은이의 기막힌 연기가 나왔다. 다들 잘 알겠지만, 시은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하는 오리진 사람이다.

  꽃미모를 펼친 시은이의 기막힌 연기로 인해, 다들 껌뻑 죽어버렸다.

 "왜애? 나도 같이 가면 안될까?"

 "무슨 일이신가요, 시은님!"

  다들 이게 연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단보루가 누구인가, 베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아니던가.

  눈치껏, 시은이가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레 거리를 좁혔다.

 "자자, 우린 먼저 돌아가 있도록 하자고, 저렇게 까지 말하는 거 보면, 정말로 중요한 일일 것이야."

  시은이는 고맙다는 시선을 단보루에게 보냈고, 그 시선을 받은 단보루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아..시은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시은님.."

  그들은 마치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껏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 둘의 목덜미가 단보루의 양손에 쥐어지기 전에, 그녀들은 자세를 고치고 손을 흔들었다.

 "늦으면 안돼!"

 "시은님은 너무 예뻐서 늦으면 위험해요! 아..역시 제가.."

 "안돼! 젠은 더 안돼! 안돼!"

  조금 앞서 나가려는 젠의 팔목을 강하게 붙잡고는 시야카가 얼른 단보루를 따라 나섰다.

  시은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것으로 그들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만 나와 이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어둑어둑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원래는 대로변에 가로등을 설치해서 밤 거리에도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 도시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 곳은 아직 공사가 덜 된 바람에 이런 구석진데 까지는 가로등이 들어서지 못했다.

  그 어둠 사이로 사람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시은이에게 다가서며 점점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역시 눈치채고 있었구나. 고마워. 알아서 자리 마련해줘서."

  마을주민 1.

  밋밋함을 개성으로 잡은 초대 영웅이었다.

 "그런 식으로 따라붙으면 누가 모르냐. 다음부터는 조금 더 은밀하게 다가오도록해."

  훈수아닌 훈수를 두는 시은이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초대 영웅은 수긍하기로 했다.

 "..주의하지."

 "그래서, 왜 찾아온 건데? 설마 습격?"

 "에이, 설마. 내가 널 어떻게 습격해. 네가 나보다 강한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인데."

  손사래를 치는 제스쳐마저 마을주민 1이 칠법한 행동이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초대 영웅이라는 대단한 사람이 맞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나저나 저 대답은 의외였다.

  시은이가 강하다는 것은, 시은이 본인만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저 그가 내뿜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 영웅이 조금 쫄아있는 줄만 알았으니까.

 '아니지, 애초에 트러블 같은 것이 생기는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 같았어.'

  마을주민 1, 아니지, 초대 영웅이 해야만 한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진 시은이가 또 다시 질문했다.

 "네가 해야되는 일에 내가 방해되는 거구나?"

  움찔.

 '아... 저거 쫌 어떻게 안될까..'

  무엇인가 들킨듯한 제스쳐 또한, 너무나도 어디서나 볼법한 모습이었다.

  아닌 걸 아는데도 점점 머릿속이 자연스레 복잡해져갔다.

 "으음..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아니지, 무조건 그렇다고 보기도 뭐한데.. 으음.."

  한 손으로는 턱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 팔의 팔꿈치를 받치는 저 행동.

 '아..'

  더 이상 신경쓰다간, 페이스에 휘말려버릴 것만 같았다.

  무시가 답이었다.

 "그걸 방해된다고 하는 거야. 멍청아."

 "뭐, 멍청이? 으음..내가 멍청이였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무시가 답이다.

 "야, 그래서 뭐. 왜 왔냐고."

  왠지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진 시은이의 날선 물음에 자연스레 움찔하는 초대 영웅.

  무시가 답이다.

 "..어어..음, 그러니까. 너희 방금 전에 식사한 거 있잖아. 그거 내가 해주라고 했어."

 "근데."

  예상치 못한 답변인지 다시 한 번 더 움찔한 초대 영웅.

 '저거 혹시 연기 아니야? 대체 누가 저런 식으로 반응하냐고!'

  시은이는 도리어 의심을 걷어냈던 초대 영웅에 대해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연기고, 지금 저러는 건, 혹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니 대비만한다.

  시은이의 양손에 기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기력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약한 초대 영웅이 아니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곧바로 대답했다.

 "어어..? 아니 싸우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 뭐냐, 죽이기전에 밥부터 먹였다, 이런 대사치려고 했던 거 아니야!"

  다급한 초대 영웅의 손사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력을 쉽게 거둘 시은이가 아니었다.

 '뭐야, 저 대사는.'

  그냥 더 짜증이 날 뿐이었다.

 "그,그래! 그 이만 여기서 떠나줬으면 좋겠어! 그, 뭐냐.. 저번엔 조금 쉬다가라고 했지만, 이젠 안 그래도 될 것 같아! 여긴 내가 지킬 테니까. 다른 곳에 가서 그 다른 참가자들 찾아봤으면 좋겠어! 그,그... 그래!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너흴 위해 선물해준 이별식사였어!"

  속사포로 흘러간 초대 영웅의 말에, 그제야 시은이는 가볍게 기력을 거둬냈다.

 "아아, 그 때 얘기했던 거 말하는 구나. 저번에 내가 말했을 텐데. 너 하는 거 봐서라고?"

 "그래, 며칠동안 잘 봤잖아. 나 혼자 잘 막을 수 있어!"

 "뭐라는 거야. 우리가 며칠동안 어디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마수들을 막으면서 다른 곳에서 이렇게나 많이 발생하는 마수들을 네가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다고? 그러다가 도시주민들이 죽으면 어떡할라 그래?"

  마을주민 1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초대 영웅 치고는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시은이가 보기에 정말 불쾌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네가 거기까지 신경쓸 건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시은이의 목적은 천년의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까도 생각해봤듯이, 그저 그렇게 넘겨버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너야말로, 이 도시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그렇게 말할 건 아니지 않나?"

  이것도 맞는 말.

 "좋아해.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야. 너희는 어차피 갈 사람들이잖아. 계속 여기서 지내면서 마수들을 상대한다면, 도시주민들도 너희를 조금씩 더 의존하게 될 거란 말이야. 너희 그렇게 되면, 냉정하게 떠날 수 있어? 그래, 냉정하게 떠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떠나고 난 뒤에 도시주민들은 어떻게 될까? 나로서 만족할까? 아닐 걸?"

  이것도 맞는 말.

  시은이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부분을 염두해 두었기 때문에, 마수들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던 거니까.

 "이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차라리 우리쪽에서 마수들을 뿌리채 뽑아버리는 건 어떨까?"

  시은이가 의심하다가 끝내 내린 결론이었다.

  어딘가 서식지가 있을 것이고, 그 서식지를 완벽히 제압해 버리면, 더 이상 마수들이 들끓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당연히 변수는 있었다.

 "내가 몇 년 동안 여기서 마수들을 막으면서 그런 생각을 안해봤을 것 같아?"

  그렇다. 진작에 그런 것이 있었다면, 초대 영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 나한테 얘기한 것 중에 거짓말한 건 없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몇 가지 가능성이 가능성을 떠나서 사실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 단언컨데 난 거짓말 같은 거 한 적 없어."

  사뭇 진지해진 초대 영웅의 표정.

  물론 그 얼굴을 보면서 그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정확히 갈라 낼 수는 없지만,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가 거짓말을 안한 것 같기는 하다.

  아니, 시은이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초대 영웅이라는 정신적, 육체적 지주가 이 도시에서 무너지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그래, 믿기로 하지.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도 어차피 조금 있으면 떠날 생각이니까, 그 때까지는 터치하지 말아줘. 나도 딱히 너를 터치하진 않을 거니까."

 "조금이 얼만큼인데?"

 "아니, 왜 이렇게 집착이야. 알아서 잘 떠날게. 걱정하지 말어."

 "..일단 알았어."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시주민을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런 초대 영웅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으음..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를 모르니..'

  어차피 나중에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상대다. 더 이상 신경쓰는 것은 뇌공간 낭비였다.

 "아니, 일단이 아니라. 그렇게 알아둬. 네가 얼만큼 잘랐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네 명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까."

  이렇게 딱 잘라서 선을 그어놓아야 한다.

 ".."

  이렇다 할 대꾸가 들려오질 않았지만, 알아들었거니 하고 시은이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초대 영웅의 기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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