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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1화 <리드&팔로우>
작성일 : 20-06-02 19:15     조회 : 66     추천 : 0     분량 : 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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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다시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이미 악몽에 시달릴 만큼 시달린 안나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외치려던 찰나, 겨우 깨달았다. 다행히 꿈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악몽이 끝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눈앞에 보인 것은 익숙한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원목과 베이지색으로 따뜻하게 연출한 인테리어. 바로 도현의 집에 있는 게스트룸이었다. 오피스텔로 독립하기 전, 안나가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이 방이 익숙했다. 더불어 불쾌했다.

 

 오래 전의 일이긴 했지만, 재벌 3세로 자란 도현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의 안목은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보도국 기자 시절에야 그 안목을 발휘할 돈도, 시간도, 기회도, 더불어 의욕도 없었다지만, 문화 전문 기자로 전향한 뒤로 잊고 있던 안목이 다시 꿈틀대며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스타 기자의 반열에 오르고 마침내 자신의 언론사까지 세운 뒤로는 더 이상 억누를 필요도 없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도현의 안목을 차곡차곡 쌓아둔 것이 바로 이 방이었다.

 

 창문을 꾸민 베이지색 커튼과 블라인드, 그 앞의 앙증맞은 인형들은 도현이 보도부에서 문화부로 막 전향했던 시절, 가성비 좋은 동네 마트에서 구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무의 결을 최대한 살린 원목 가구는 도현이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얻은 뒤에 마련해 준 것인데, 해외에서 직수입한 명품이었다. 시간의 간극과 천차만별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원래부터 패키지였던 것처럼 아무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그 조화가 안나의 신경을 묘하게 건드려 왔다. 지난 15년 동안 계속.

 

 “일어났네?”

 

 도현이 작은 쟁반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쟁반 위에는 하필이면 커피와 치즈케이크가 올려 있었다.

 

 “죽을 끓일까 하다가. 근데 생각해보니 아픈 건 아니잖아? 그럼 차라리 기운 나도록 단 게 더 좋을 것 같더라고. 코스트코에 간 김에 샀지.”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일 뿐이었다. 그날의 외출이 치즈케이크를 먹기 위해 커피를 사러 나갔던 거라는 사소한 사실 따위, 어차피 도현은 모른다.

 

 “일은요?”

 “호적메이트 싫다면서. 정작 있으니 편하지?”

 

 도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롱이나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웃음일 뿐인 것이다.

 

 “거 봐. 그냥 내 동생으로 있는 게 네 인생을 위해서도 좋을 거라니까.”

 

 보자보자 하니 정도를 모르고 슬금슬금 선을 넘는다. 물론 그 안에 악의는 없었다.

 

 “일은요.”

 

 꾹꾹 눌러 담은 짜증이 전해졌는지, 도현이 웃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깨끗하게 처리했어.”

 

 도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 이 말은 믿을 만 했다. 일처리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남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던 회사를 야금야금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기에 지금껏 안나의 철저히 위장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안나의 마음뿐이었다.

 

 “축하해. 생에 두 번째 살인이네.”

 

 저 신경 거스르는 말만 없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이번엔 화 안 내요? 전엔 죽어라 내 목을 조르더니.”

 

 가시가 잔뜩 돋은, 악의에 가득 찬 말이었다. 그러나 도현은 안나의 악의 따위,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흘려버렸다.

 

 “그 땐 대가리였고. 지금은 조무래기 한 놈이잖아.”

 “......”

 “저쪽 성질이야 좀 나겠지만, 크게 달라질 건 없지.”

 “조무래기인 건 맞아요?”

 “뭐... 현장 투입되는 놈이야 뻔하잖아?”

 

 

 

 Bz 호텔 35층의 스위트룸은 마치 감옥 같았다. TV도,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방.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 도심을 제외하고는 그 방에선 그 어떤 세상에도 연결될 수 없었다.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방에 한 달만 있어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유진은 어떻게 그 방에서 15년을 지내왔던 걸까?

 

 복잡한 감정이 묘하게 뒤섞여있던 그 때, 안나에게 덤벼든 것은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였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단단한 비수가 안나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칼날이 지나간 부위에 뒤늦게 작열감이 밀려왔다.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안나의 눈이 뒤집힌 것은.

 어느 순간, 남자의 칼은 안나의 손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의 숨이 끊어졌다. 하얀 침대와 벽지에는 어느 새 붉은 장식이 생겨 있었다. 당연히, 붉은 장식은 안나에게도 옮아 있었다. 아까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모두 날아갔다. 그저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피에 젖은 손으로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다 귀찮아진 안나는 전원버튼을 꾹꾹꾹 세 번 누른 뒤, 침대 위로 던졌다. 긴급 상황에 안나의 SOS 메시지는 도현에게 발송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이후엔 도현이 알아서 뭐든 할 것이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켰다. 그리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샤워기 물줄기 아래로 들어갔다. 칼에 베인 목이 따끔거렸다. 손금 사이로 스며든 피를 지우려면 비누를 칠하고 문질러야 했지만 그조차도 귀찮았다. 굳이 공들여 지울 필요가 있을까?

 

 발밑의 하수구로 빠지는 물이 대충 투명해지자 안나는 물줄기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이대로 누굴 마주치게 된다면 큰 소동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상관없었다.

 

 ‘차라리 경찰이라도 와라.’

 

 그래. 차라리 그걸 바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도현이 무마할 것이다. 그러려면 도현이 조금 고생은 하겠지.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주차장에 세워진 안나의 차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안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의 가죽시트가 물에 흠뻑 젖어버린 것 외에는.

 

 그렇게 별 일 없이 안나는 도현의 집에 도착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 혹시 모르잖아. 계속 포기 안하고 누군가를 보낼지.”

 “누가 보낸 건지는 알고요?”

 “누가 보내든. 그게 뭐 중요한가.”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 네가 무사한 게 중요한 거지.”

 

 뭘까, 저 묘한 공백은?

 

 “오늘 바로 나갈게요.”

 “그렇게 서두를 거 있어?”

 “집에 먼지가 많네요. 탁하고 답답해요.”

 

 안나의 말에 괜히 멋쩍어진 도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치운다고 치웠는데도 그러네.”

 

 안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 먼지는 치운다고 치워질 먼지가 아니었다.

 

 도현은 단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었다. 이 집은 그가 태어나서부터 성장한 집이었고, 그의 부모님이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살을 위장해 살해당한 집이었으며, 그의 사랑스러운 여동생 ‘안나’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여온 시간과 사건과 원한이 고스란히 고여 있는 집이었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환기를 한들 옅어질 리 없었다.

 

 “내 전화 줘요.”

 “아... 여기.”

 

 피범벅이 된 채 호텔에 두고 온 스마트폰은 어느 새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내가 자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고요?”

 “음...”

 

 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 기준엔 없었어.”

 “다른 기준으로는요?”

 “메시지가 엄청 도착해있더라.”

 

 도현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메시지를 확인한 안나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유진이 보낸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생각났다. 유진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한 날이 지났다는 걸.

 

 “널 엄청 찾더라고. 우리 회사에까지 전화가 왔더라니까.”

 “네?”

 

 안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피스텔 옆집에 사는 그 아이 맞지? TV에서 날 본 모양이더라고. 우리 회사로 전화해서 네가 연락이 안 된다고, 혹시 소식 아냐고 물어보던데?”

 

 안나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과 수많은 가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 며칠만 더 여기 있을게요.”

 “얼마든지.”

 

 그리고는 유진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강의시간에 보자. 내가 출강하는 학교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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