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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1화 <되감기>
작성일 : 20-05-26 23:54     조회 : 79     추천 : 0     분량 : 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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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구백구십칠... 구천구백구십팔... 구천구백구십구... 만!”

 

 열까지 밖에 세지 못하던 유진은 어느 새 만 단위의 수도 자유자재로 셀 수 있게 되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십만, 백만, 천만. 아니, 천억도 셀 수 있었고, 조와 경도 셀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세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수연을 처음 만난 날로부터 삼백육십오일째 되는 날이었고,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유진에게 수연이 생일로 삼자고 정해준 날이었다.

 생일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생일엔 축하의 의미로 선물을 받는 거라고 했다. 안 그래도 어제 수연이 돌아가면서 유진에게 말했다. 오늘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줄 테니 기대하라고. 사실 유진에겐 깜짝 놀랄만한 선물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그것이 수연과 함께 온다는 게 중요했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보육원 정문에 나와 수연을 기다리며 시작한 숫자 세기. 그러나 만까지 셌는데도 수연이 오지 않는다. 어느 덧 해는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이 밑으로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엔 일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그늘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유진이었다. 수연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선 채, 내리쬐는 햇볕을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낮인데 졸렸다. 꿈뻑꿈뻑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끼익]

 

 

 

 [딩동]

 

 초인종 소리에 유진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인터폰 화면엔 모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어...”

 [택배요.]

 “아, 네, 잠시만-”

 [탁!]

 

 성혁도, 안나도 아닌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긴 처음이라 어찌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사이, 택배기사는 이미 문 앞에 택배를 두고 사라지고 말았다. 급하게 열어젖힌 현관문에 묵직한 택배박스가 걸리는 탓이 한 번 더 당황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왠지 모를 허탈감이 밀려왔다.

 항상 그랬다. 이렇게 세상과 조금이라도 접점이 생길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모든 상황이 끝나고 말았다. 고작 택배 하나 여유롭게 받지 못하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할 뿐이었다.

 

 유진은 한숨을 쉬며 택배 상자를 들어올렸다. 해외에서 발송한 국제택배였다.

 터덜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온 유진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터억 올려놓았다. 테이블에는 이미 다섯 개의 박스가 더 놓여 있었다.

 

 안나와 면담 아닌 면담을 한 뒤, 결국 검정고시를 보기로 한 유진은 이 결정을 성혁에게 알렸다. 물론, 안나의 이야기는 생략한 채.

 안 그래도 유진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지 못해 안달이었던 성혁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냐며 본인이 더 신나서는, 인터넷서점에서 교재란 교재는 종류별로 다 구매해버렸다. 그렇게 산 교재들이 하나씩 유진의 오피스텔에 도착하기 시작한 게 닷새 전. 그리고 살면서 택배란 걸 시켜본 적이 없었던 탓에, 문 앞에 택배가 쌓이는 것도 몰랐다가 성혁에게 한 바탕 인생강의를 들은 게 바로 엊그제였다.

 

 면도칼도 없어서 부엌칼로 테이프를 잘라낸 뒤, 상자 안에 담긴 책을 꺼냈다. 오늘 도착한 것은 영어 교재인데... 한글이 하나도 없었다. 어쩐지 다른 책보다 한 박자 늦게 도착했다 했더니, 영국이나 미국 서점에서 직접 날아오느라 다른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던 듯하다.

 유진은 괜시리 책을 뒤적거리며 읽는 척을 하다 포기했다. 분명 다 아는 단어들인데, 문장으로 줄줄줄 나열되어 있으니 하나도 해석이 안 된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안나에게 배우기로 했으니까.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한 것도 안나가 가르쳐준대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렇게 안나로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나면, 요 이해 안 되는 문장들도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진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로 했던 안나가 일주일째 오지 않는다.

 

 다시 현관으로 간 유진은 현관문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 하지만 밖에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혹시 집에 있나 해서 문도 두들겨보고 초인종도 눌러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 지금이라면 전화를 받지 않을까?

 유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안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와 함께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역시나 받지 않는다. 일주일 전과 똑같은 음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휴대폰 채팅창을 열어보지만, 메시지 옆에 적힌 1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유진은 아까처럼 현관에 쪼그려 앉아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조용한 적막.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마냥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황. 어쩐지 익숙했다.

 그러고보니 15년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네가 유진이니?”

 

 보육원 대문 앞에 차가 멈추고, 그 차에서 내린 것은 수연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남자 어른이었다.

 

 “어...”

 “가엽기도 하지. 날도 더운데 이 땀 좀 봐. 얘, 성혁아. 나 손수건 좀 주렴.”

 

 성혁이라고 불린 남자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성혁의 뒤에 가려져 있던 남자가 성혁에게 두 손으로 손수건을 건넸고, 성혁은 손가락 두 개로 손수건을 집고는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이제 괜찮다, 아가. 할머니랑 여기 삼촌이 왔으니까.”

 “어...”

 “그래그래. 이제 우리랑 가면 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울지 말거라. 아유, 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좀 봐. 그래, 그동안 이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떨고 있었나 보다. 그럴 법도 했다. 지금껏 자신이 마주했던 어른은 아빠, 아니면 수연이었으니까.

 

 여자 어른의 손에 자신의 몸이 위로 올라갔고, 보육원 현관 밖으로 들려나갔다. 보육원 대문 뒤 흙길엔 검고 길고 번쩍이는 차가 세워져 있었다. 유진의 몸은 할머니와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가 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오늘이 수연이 정해준 유진의 생일이라는 거. 그리고 깜짝 놀랄 선물을 줄 테니 기대하라는 수연은 결국 오지 않았다는 거. 이 두 가지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 안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린 듯, 유진은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날 이후, 유진은 굉장히 크게 아팠었다. 의사조차 손 쓸 수 없을 만큼 고열에 시달리다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고, 한동안 혼수상태였다고 했다. 어쩌다 만난 어린 아이에게 아무런 연민도 동정도 없었던 성혁은 어린이용 관을 알아봤더랬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열이 내렸고, 의식이 돌아왔다. 그렇게 유진은 다시 눈을 떴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유진에게 남들과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유진은 자신과 함께 가자는 경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진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경자의 곁에 있으면 언젠간 수연을 만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Bz에서의 15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직도 바래지지 않았다. 그 어떤 영상보다도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기억.

 악몽은 아니었다. 수연의 목소리가 남아있고, 수연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 어떤 기억도 악몽일 수 없었다. 그저 무척 그리울 뿐이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 날, 수연은 왜 오지 않았던 걸까? 수연이 준다고 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답은 어차피 수연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유진은 이미 수백 번을 곱씹어보느라 더 이상 어떤 단서도 남아있지 않은 수연의 말을 또다시 곱씹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말이 떠오르고 말았다.

 

 ‘나 믿지 마.’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선명한 수연의 목소리 위에,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쳐졌다.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내뱉었던... 똑같은 목소리.

 

 ‘나 믿지 마. 난 네가 믿을 수 있을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유진의 머릿속에서 수연과 안나의 모습이 겹쳐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일치했다. 안나가 바로 수연이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유진의 뇌리를 스쳤다. 경자와 성혁이 건넸던 안나의 스카프와 영수증... 그 때 안나에겐 치명적인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나가 죽을 지도 몰랐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생각에 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이럴 때 자신은 뭘 해야 했더라?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안나를 찾으러 가야 할까? 하지만 어디로? 경찰에 연락해야 하나? 그런데 경찰에 연락해서는 뭐라고 말하지? 그 어떤 생각도 쓸모가 없었다. 어쩌면... 그 모든 상황이 이미 끝나있을지도 모른다.

 

 유진의 눈에 TV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경자가 내민 물건을 집을 때마다 보였던 죽음. 그 죽음이 현실이 되었음을 TV를 통해 알게 된 이후, 유진의 삶에는 TV가 사라졌다.

 

 유진은 서랍 속에 처박아뒀던 TV 리모콘을 꺼내들었다. ‘팟’ 소리와 함께 켜진 TV가 켜지고, 번쩍이는 화면이 가득 펼쳐졌다.

 

 “제 말이 그 말이예요. 인간은 부처도 예수도 될 수 없어요.”

 

 그 속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안나의 집에 간간히 찾아왔던 남자. 아마 오빠였을 것이다.

 

 “네. 지금까지 영화평론가 성도현씨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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