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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스러운비서
작가 : 상혁이
작품등록일 : 2020.5.15

[아~ 정말 못살겠어. 이러다 난 정말 미칠거야...아니, 죽고 말거야]
[또 안?거야?]

 
(7)
작성일 : 20-05-15 14:18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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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를 받아드렸다. 그리고 그 아픔이 지나간 자리엔 또 다른 쾌감이 그녀의 전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그녀의 안에서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입에선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는 처음 겪는 색다른 관능이 자신의 몸을 휘어 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도 이런 느낌으로 여자를 안은 적이 없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자신의 남성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앞으로 질주하고 또 질주했다. 그는 몇 년 동안 자신의 몸 속에 쌓여 있던 갈증이 뜨거운 열기 속으로 녹아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렇게 원색적이고 걷잡을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서로를 탐했다. 그리고 끝없이 질주하며 서로가 지칠 때까지 몇 번이고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

 

 새벽녘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소. 아무래도 내가 당신을 사랑할 것만 같소.]

 그는 자신이 그녀의 첫 남자였다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피곤한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는 그를 보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알몸인 자신을 느꼈을 땐 자지러져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편안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제 서야 그녀의 머릿속에 어제 그와 나누었던 격정적인 밤이 떠올랐다. 헉...그녀는 열정적인 섹스에 빠져 헐떡이던 자신을 떠올리자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녀는 그가 깨기 전에 침대에서 나와 떨어진 옷을 주워 입고 서둘러 그의 아파트를 나왔다. 왠지 다리가 후둘 거리고 욱신거렸지만 복잡한 심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젯밤 달콤한 와인에 취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그를 사랑하고 있긴 하지만 왠지 모를 후회가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렇지... 어떻게.....아마...그도 후회하고 있을 꺼야.

 

 집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마음은 더욱 찹찹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허락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그를 속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나중에 지금의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는 그녀가 일부러 그를 유혹했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으며 그가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처음보다 더욱 두려워졌다. 게다가 오늘아침 다시 그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다행스럽게도 진이는 자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변장을 마치고 출근 준비를 끝냈다. 어느 때보다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며칠 전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모든 걸 밝혔어야 했다는 후회가 물밀 듯이 그녀의 뇌리 속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업 친데 덮친 격이었다.

 

 운 나쁘게도 그와 그녀는 아주 빨리 다시 만났다. 엘리베이터에 급하게 올라선 그녀 앞에 떡 하니 그가 서있었다. 그의 눈과 마주치자 또다시 가슴은 미친듯이 뛰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황하며 어색하게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 한주씨 오랜만이오. 좋은 아침이지 않소? 아참.. 축하부터 해야 하나? 그래 부인과 아기는 건강하오?]

 그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며칠동안 아무 말 없이 결근을 한 거나 마찬가지인 그(그녀)에게 저렇듯 반갑게 맞아 준다는 것이 왠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탄 직원들도 평소 그 같지 않은 모습에 그와 그(그녀)를 힐끔거렸다. 그것을 느낀 그녀는 그들의 시선이 거북스러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그(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 네... 덕분에...저번엔 죄송했습니다.]

 [아.. 아니오. 나도 한주씨 덕분에 즐거운 일이 있었소.]

 [네...?]

 [흠흠..아무것도 아니오.]

 

 몇 안 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내리고 14층을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엔 그녀와 그만이 남았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어색한 침묵이 그들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갑자기 그 좁은 공간에서 그의 강한 체취를 느끼며 서로의 숨을 교차한다는 것이 그녀는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빨리 그에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의 온몸을 조여오는 것 같아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드디어 14층에 도착한 그녀는 그가 내린 후 답답한 숨을 크게 내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도도 잠시... 그가 사무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비서. 밀린 일정을 말해 줄 테니 들어오시오.]

 [네...]

 

 그녀는 떨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며 또 다시 그와의 대면을 위해 단단히 마음을 다잡곤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20편..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한주의 심장은 계속해서 심한 펌프질을 해댔고 다리는 힘이 풀려 후들거렸다.

 

 [앉으시오.]

 외투를 벗어 걸으며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마침 잘됐다 싶어 그녀는 얼른 안착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와 마주보고 앉자 차라리 서서 그를 대하는 것이 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느슨하게 풀어진 타이와 걷어 부친 와이셔츠 소매 밑으로 보이는 그의 살갗을 대하자 왠지 모르게 얼굴 마저 화끈거렸다. 아니, 모르지 않았다. 사실 그의 편안한 모습에 어제의 그 은밀한 밤이 떠오른 그녀였으니까...

 

 그의 입에서 사무적인 어투가 흘러나오기를 30분간... 그녀도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가 보기엔 그녀는 지금 너무나 충실히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허나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갈등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해... 아니... 안돼... 아냐, 아냐...말해야해... 아냐..."

 이렇듯 30분간 그녀는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계속되는 갈등과 진실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늘 퇴근 전에 이번 cf계약 건 서류들 좀 챙겨서 갖다주겠소?]

 [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것으로 그가 말을 마치자 그녀는 서둘러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 한주씨. 오늘 4시 이후론 내 스케줄 잡지 마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휴~~ 그의 사무실 문에 잠시 기대어 숨을 돌리는 그녀였다.

 "말하지 못했어....근데..4시 이후엔 왜 스케줄을 잡지 말라는 거지..."

 

 벌써 여덟 잔 째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었다. 4일의 공백은 그녀에게 점심도 허락하지 않아, 커피와 비스켓로 점심을 때우며 밀린 일 처리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로 인해 그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벽에 달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바늘은 4시를 향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저렇게 됐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 했으나 옆에 있는 전화가 힘차게 울려댔다.

 그녀는 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네. 현성 그룹 고문변호사무실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저 김미희예요. 오빠 있져?]

 [예. 잠시만여. 연결해 드릴게요.]

 

 그녀는 인터폰을 누르고 그에게 전했다.

 [변호사님 김미희씨 전화입니다.]

 [네.. 연결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전화 연결 버튼을 누르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왠지 전처럼 일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시계바늘이 4시를 알릴 때 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한주씨 나 먼저 갈 테니 한주씨도 아침에 말한 서류 내방에 갔다놓고 퇴근해요.]

 [네. 근데 어디 가시는지?]

 그녀는 무의식중에 물었다. 헉.. 미쳤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물어...

 

 [하하.. 내가 그런 것까지 한주씨한테 말해야 하는 건가?]

 [아뇨. 죄송합니다.]

 [후훗.. 죄송할 것까진 없소. 뭐..비서로써 궁금할 수도 있지.]

 그가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다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음... 사실 이거 비밀인데.. 한주씨에게만 말하는 거요. 지금 반지를 사러 간다오. 하하하...]

 어리둥절한 그녀의 표정을 뒤로하고 그는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곳을 걸어나갔다.

 "반지? 반지라니..무슨반지.... 왜 이 시간에 반지를 사러 나가.. 그것도 김미희 전화를 받고 난 후에.... 혹시... 헉..."

 그녀는 머리를 심하게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지우려했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비서가 짓던 어리둥절한 표정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했다. 후훗... 그녀의 오빠니까 그 정도 힌트는 줘야겠지.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 할 생각이었다. 비록 그녀를 만난 건 얼마 되진 않지만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확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녀가 너무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처음 이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보다 그는 그녀에게 책임을 질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 오빠의 상사라는 점. 아직은 그가 나와 그녀사이를 모르는 것 같았으나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땐 그녀와 결혼을 발표한 후겠지....후훗...그리고 꼭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녀와 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막상 결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모든 게 쉽게 느껴졌다. 며칠동안 골치 썩히던 자신의 감정도 신기하게 그녀를 사랑한다는 결론 하에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분명 그녀도 이 결혼을 찬성할거라는 확신을 갖으며 회사를 나와 자신의 포르쉐에 올라탔다.

 

 그가 떠난 후 두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전.. 그러니까.. 그가 김미희 전화를 받고 나가기 전 까지만 해도 척척 풀리던 일이.. 지금은 엉망진창이 되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말한 서류는 일찌감치 끝내 놓았다는 것이었다. 휴... 미치겠군... 그녀는 주먹으로 키보드 판을 꽝하고 내리치고는 의자에 피곤한 몸을 깊숙이 묻어버렸다.

 

 "뭐야.. 이 더러운 기분은...그래..그래... 어차피 그와 그녀가 특별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 치... 근데 그 같은 바람둥이가 날 사랑할지도 모른 다고 믿었다니... 이한주.. 정신 차려... 니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이제야 알았니.. 휴......그래도.. 그래도...."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이 일그러지면서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녀가 얼른 손으로 눈물 자국을 지었다.

 

 [흠흠.... 말도 안돼. 언제부터 이렇게 울보가 되어 버린 거야. 이한주 정신차려.. 어차피 넌 그에게 있어 비서 밖에.. 아니... 사기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거야...]

 그녀는 씁쓰름하게 내뱉었다.

 

 [그래 맞어. 사기꾼...헉.. 난 그에게 사기를 친 거야.. 그리고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아...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이제... 아.. 처음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을 듯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정리한다음 일감을 산더미처럼 들곤 사무실을 나왔다.

 

 다행인지 아닌지 집에 진이는 없었다. 예전보다 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는 목욕가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욕조 가득 받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며칠전의 못생기고 촌스럽던 그녀는 거울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울 속엔 아름답지만 실연 당한 듯한 또 다른 여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가슴을 꽉 조여 맸던 붕대를 풀었다. 그러자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출렁거렸다. 휴..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그녀는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며 눈을 감았다. 뜨거운 기운 때문인지 욱신거리던 다리가 한결 나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듯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자신을 안았다 해도 그녀는 그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원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니까...

 그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려 하자 그녀는 욕조 깊숙이 얼굴을 묻어버렸다.

 

 목욕 가운만 걸친 채 부엌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는데 초인종 소리가 드렸다.

 그녀는 당연히 진이 일거란 생각에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돌아섰다.

 [출판사 갔다오는 거야?]

 그리고 맥주 캔을 따고 한 모금 마시며 그녀는 말없는 진이를 돌아보았다.

 

 푸푹~~헉~~

 [괜찮소?]

 그가 다급히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켁켁켁...여긴.. 켁..]

 

 그녀는 다시금 목에 걸린 사례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니.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 건가?]

 그가 장난스럽게 뻔뻔한 투로 말했다.

 

 [아니..그게 아니고..]

 [근데.. 누가 출판사 갔소?]

 [네? 아..아니요.. 어머 이런..옷..옷 좀 가라 입고 나올게요.]

 그녀는 깜짝 놀라 얼른 상황을 모면할 핑계를 둘러댔다.

 [뭐..나야 이대로도 좋지만.. 당신이 정 그러고 싶다면..]

 그의 시선이 목욕가운을 걸친 그녀의 몸을 맨몸 훑듯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녀는 새빨갛게 붉어져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는 그녀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오빠와 올케는 어디 갔소?]

 [네? 아.. 네. 아..아기 용품 사러 갔어요. 왜.. 아기들은 필요한 게 많잖아요. 하하..]

 그녀 목소리 높여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분명 그가 조금만 더 이 집에 머물게 되더라도 그녀의 거짓말이 다 들통날 거란 생각에 얼른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근데. 여긴 진짜 어쩐 일이에요?]

 [후훗.. 우선 좀 걸읍시다.]

 그는 편안하게 차려 입은 세미 정장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얼굴 가득 후뭇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는 그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 그는 김미희를 만나고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아니, 어쩌면...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몰라...? 그래. 그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가 지금 내 앞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김미희에게 청혼할 남자가 왜 내 앞에 있겠냐고...?

 

 처음부터 이리 될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날카로운 아픔이 그녀의 가슴 헤집는 듯 했다.

 

 [현우씨...]

 한주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불러 세웠다.

 그가 돌아보자 그녀는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현우도 곧 그녀 옆에 따라 앉았다.

 

 어쩌면...그녀 자신은 조금도 후회하고 있지 않는 그 일이 그에겐 부담이 되고 후회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하룻밤의 실수로 인해 헤어짐을 망설이고 있다면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또한 약간이나마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덜 상처받고 싶어서겠지.... 그녀는 그와 아무관계도 아니었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가 홀가분히 그녀를 떠날 수 있도록...

 

 [어제.. 말이 예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뭐.. 남녀가 어쩌다...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져... 솔직히.. 어젠 우리 둘 다..많이 취했고...흠......지금은 둘.... 다 실수였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일로...]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더듬대는 그녀의 말을 대충 알아들은 그는 믿을 수 없는 그 말을 자르고 무척 화난 어투로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그리 생각하오?]

 

 [네?...그러니까... 제 말은...]

 화난 그의 두 눈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며 그녀는 더듬대며 마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의 말이 그녀의 말보다 더 빨리 이어져 나오는 바람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날 이해하니 부담 갖지 말라 말하는 거요? 하... 퍽이나 고맙군.]

 그가 버럭 화를 내며 그녀의 말을 비꼬았다. 그에겐 갑작스런 그녀의 말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고, 고기를 낚으려는 순간 낚시 줄이 끊어진 격이었다. 그러니 버럭 소리를 지르듯 내뱉는 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신은 항상 이럴 거요? 어쩌다 술에 취하면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하고, 그 다음엔 너그럽게 용서를 해줄 거냔 말이오? 그래.. 그럼 상대는 아~주~ 당신의 아량을 고맙게 여기겠군!]

 모욕적이고 경멸 어린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그녀의 귓속과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나 자신의 감정은 무시한 채 아무렇게나 내뱉는 그의 말에 화가 났다. 또한 가슴 한 구석이 시리도록 아파 옴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로 인한 그녀의 감정과 기분은 상관없는지 쉴새 없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래도 난 당신이 가벼운 여자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흠, 당신이 그것에 대해 이렇듯 가볍게 여기는 줄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을 걸 그랬소. 그렇다면 아마도 이틀의 시간 낭비는 없었지 않겠소?]

 그의 얼굴 가득 싸늘한 냉소가 떠올랐다. 평소 그녀에게 지어주던 아름답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는 얼굴이었다.

 

 계속되는 그의 경멸 섞인 어조에 그녀의 두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치솟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핏발이 서리도록 잔뜩 힘을 주며 참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곤 그 모욕적인 발언을 피부와 가슴으로 고스란히 받았다. 물론 그가 열을 내는 만큼 그녀도 화가 났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꼭 움켜쥐며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드디어 그가 벤치에서 일어서며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럼 당신 충고대로 아니, 당신의 그 깊은 아량을 받아드려 당신과 부담 없이 헤어질 수 있겠군. 흠...고맙소.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앞으론 당신의 그 값싼 욕정엔 초대받고 싶지 않구려. 그러니 우리의 만남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오.]

 그는 이렇듯 그녀의 가슴에 깊이 멍 드리고 발길을 돌려 떠나려 했으나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다.. 끝났나요? 그럼 저도 한가지만 묻져. 당신과 전... 어떤 관계였죠? 당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왜 이런 모욕을 들어야 하는 지도...]

 

 가히 초자연 적인 힘을 끌어 모아서 그녀는 입을 열고 그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이렇듯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해도 달자질건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아무 말도 안 한다면 그의 말을 동이 한다는 뜻으로 느껴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자신의 몸을 의지력으로 버티며 그의 앞을 지났다. 뒤에 서있는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다행스런 일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에선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으니까... 그리고, 물론 그렇진 않겠지만 혹 여나 그가 따라와 이 눈물을 들킬까 더욱 빨리 걷는 그녀였다.

 

 그녀가 떠나고 그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홀로 벤치에 앉았다. 아마도 그녀는 그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평생 모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에게 청혼하려 했던 사실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그녀가 프로포즈를 받아드릴 거라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뇌리와 심장에 못을 박았다. 그를 원하지 않는 다는 분명한 뜻으로...기꺼이 아량을 베푼 듯 그렇게 그를 달래며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그의 감정은 생각도 않고서...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그녀의 말이 그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불타오르듯 화나게 만들었는지....그리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심한 말을 내뱉은 것도 어쩌면 그녀보다 거부당한 자신의 감정에 더욱 화가 나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머리 속을 꽉 채운 그 씁쓸한 생각을 억지로 지우며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리곤 차가 주차된 그녀의 집 앞까지 걸었다.

 

 자신의 차에 올라탄 그는 다시 한번 그녀 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방인 듯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었고 그 불빛은 여지없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곳을 응시하다간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 용서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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