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직서를 내밀었다. 반장이 묵묵히 바라보다 사
표를 수리했다.
"앞으로 뭐하려고?"
"아직 모르겠습니다."
"남 실장은 잡히지 않았나...."
"............"
"자네 마음이 이렇게 해서 편해진다면 아무 말도 않겠네."
"감사합니다."
형사는 그동안 썼던 책상을 어루만지고 짐을 챙겼다. 동료 형사들도 뭐
라 말 못하고 씁쓸히 바라봤다. 거물인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
인 사건이었다. 범인을 놓쳤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다.
경찰서를 나온 수혁은 눈부신 태양을 올려다봤다.
태양은 부드럽게 디졸브 되어 특급 호텔 발코니로 이어졌다. 9천달러가
넘는 로코코 형식으로 방 두 개, 욕실 두 개 달린 특실이었다. 미령이 젖
은 머리를 말리러 발코니로 나왔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
렸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거부들만 올 수 있는 곳...
미령은 연희동 저택과 원길 주식을 처분해서 모나코로 왔다. 언젠가 다
시 오자고 원길이 약속했었다. 미령이 스스로 그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
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풍경을 감상했다.
모나코는 자동차 경주 그랑프리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미령이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자동차 한 대가 쌩하니 달려나갔다. 미령은 저도 모르
게 휘파람을 불었다.
페라리를 몰고 시내에 나왔다. 여기저기 감시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어 따
로 키를 빼지 않아도 되었다. 미령은 천국에 온 듯 드레스며 보석이며 쇼
핑을 시작했다. 점원들은 그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모나코 다이아를 보
고 극진한 접대를 했다. 흐뭇하게 쇼핑을 마치고 페라리로 돌아왔을 때였
다. 조수석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불쾌한 미령이 다가가
큰소리 칠 기세였다. 그런데 깜짝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날 잡으러 왔나요?"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수혁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오..."
미령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도망칠 거 없소..."
"......?"
"난 당신 마음을 잡으러 왔으니까... 당신과 사랑하러..."
미령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큰일 날텐데... 난 가시를 품은 장미거든요..."
"난 어렸을 때 정원사가 꿈이었지... 벨 것같은 가시는 진작에 잘라버리
지..."
수혁이 차에서 내려 미령 앞으로 다가갔다.
미령이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봤다. 태양빛에 어울리는 듯 구릿빛 피
부... 미령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수혁은 미령의 허리를 휘어감은채 입
술을 마주 댔다. 끈질지게 거부하던 미령의 입술도 퍼붓는 키스에 열렸
다. 두 사람의 심장이 고동치는 파도처럼 마구 흔들렸다. 격렬해진 키스
는 멈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