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날 학교를 다녀오고 나서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었습니
다. 당황했죠. 혹시나 멀리 도망치는 건 아닐까하고... 그녀를 봐온 몇
일동안 불안했거든요...]
"어디 간다고?"
성현이 잘못 들은 듯 되물었다.
"몇 번 말해. 귀 먹었어? 일본 간다잖아......"
"거길 왜?"
"교수님 세미나 같이 가는 거야....."
"교수님이 널 데리고 가야한대?"
"말했잖아. 우리 교수님 날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 세미나는 이틀인데
일주일 잡아서 관광도 하자셔....."
"가지마... 못 보내."
"너 자꾸 좀팽이처럼 굴래!"
"너 이렇게 보내면 영영 안 돌아올 거 같아서 그래...."
"야. 이러면 정말 안 돌아올 수 있어!"
미령이 성난 듯 대화를 끊어버렸다.
인천국제공항 J 카운터. 성현이 미령의 짐을 따로 붙였다. 미령이 씁쓸
한 듯 성현을 봤다.
"금방 다녀올게. 걱정마. 꼭 돌아올거야....."
"알았어. 널 믿어..."
미령이 여권을 든 손을 흔들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미령을 보내고 내 신경을 날카로워졌어요. 그녀가 없으니 그녀
방을 뒤지고 싶었어요. 요즘 무슨 생각하고 다니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런
데 뜻밖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서류가 나왔어요....]
이름 : 장원길 (38)
직분 : 삼정그룹 CEO.
지난 6월 前 회장의 별세로 그룹 최고 경영자가 됨.
상속 지분과 함께 46% 대주주. 주력 사업으로 반도체, 나노 기술 개발
中.
학력 : 미 하버드 대 경제학 졸업
서울대 경영대학 박사 학위 수여
취미 : 과학잡지 읽기
이건...
그리고 오려붙인 신문이 보였다.
//삼정그룹 장회장, 일본 오사카 출국 - POA사 회장과 만나기로.....//
성현이 숨조차 쉴수 없을만큼 버거워했다.
그동안 그렇게 바빴던 것이....
형님을 만나기 위해....
뭐가 뭔지 어지러웠다.
성현은 그 길로 오사카행 티켓을 예약했다.
지하철에 탄 미령은 빈 좌석이 보여 그리로 가 앉았다. 원길을 떠올렸
다. 백지장처럼 흰 피부와 위엄이 서려있는 눈.. 온화한 미소... 서른 여
덟이라고 하기에 세상을 꿰뚫어보는 신선처럼 보였다. 젊은 나이와 성치
못한 몸으로 회장 직분에 오른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첫인상 때문이
라 어겼다. 그래도 반은 성공했다면 마음 속으로 자축하는데 옆좌석에서
어깨를 툭 쳤다. 불쾌한 듯 보는데 다름 아닌 성현이 거기에 앉아 있었
다.
"오랜만이네....."
미령이 일그러진 얼굴로 성현을 봤다.
"여길 어떻게 온거야?"
"비행기 타고 왔지......"
성현이 웃으며 미령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