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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과 머나먼 여정
작가 : 설가1
작품등록일 : 2020.3.9

대학 MT를 가던 중 이세계 아르피아 대륙에 떨어진 현희수!
실버 드래곤과 히드라의 혈투 끝에 억울하게 소환된 인간 현희수를 위해 거대괴수들이 손을 내민다.
[미안해, 인간. 우리가 너를 꼭 집으로 돌려보내줄게!]
인간과 실버 드래곤, 히드라, 종족은 다르지만 서로의 우정을 믿으며 그렇게 함께 머나먼 여정을 출발한다!

 
잘나가다 이게 무슨?!
작성일 : 20-03-25 22:02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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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르피아 대륙에서 난생 처음 보는 요상한 탈것에 기대를 잔뜩 품고 앞을 가로막았던 도적들.

 마침 탈것에서 내린 녀석이 별 힘도 없어 보이는 새파란 애송이라 오늘도 평소처럼 보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귀신같은 검술에 냉기를 발생시키는 은발 여기사와 머리 셋 달린 거대한 히드라가 애송이의 친구일 줄 누가 알았을까!

 

 “자식들! 갈 때 가더라도 각자 지니고 있던 쓰레기는 챙겨서 가야지! 이렇게 공중도덕이 없어서야 원…….”

 

 도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연신 투덜대는 현희수. 보기만 해도 살 떨리게 생긴 흉측한 흉기(단도, 철퇴, 몽둥이 등등)들이 그의 손에 들려 저 멀리 휙휙 던져졌다. 혹시나 지나가던 사람 맞지 않도록 인적이 없는 수풀 속으로 던지는 걸 잊지 않고.

 

 “희수.”

 

 흉측한 쓰레기들이 모두 치워진 깨끗한 땅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자동차로 돌아온 희수는, 조용히 자신을 불러 세우는 알카디우스와 눈을 마주했다.

 

 ‘알카디우스,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도적들 상대하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명색이 실버 드래곤인데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녹초가 되었다고? 희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문득 한 가지가 눈에 확 들어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카디우스!”

 “왜, 왜 그래, 희수?”

 

 외마디 소리에 깜짝 놀라건 말건, 희수는 당장 손을 뻗어 알카디우스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 올렸다.

 

 “너 지금, 손등에서 피가 엄청 흐르고 있잖아?”

 “희수, 난 괜찮으니까 이 손 좀…….”

 

 알카디우스의 새하얀 손등 한 가운데에 쭉 갈라진 상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 정작 그녀는 상처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이, 희수가 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어서 놓아주기만 바라고 있었다.

 

 ‘하아! 날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날이 시퍼런 단도를 맨손으로 쳐 떨어뜨리면 어떡해?’

 

 미스릴 갑옷이 감싸주고 있는 다른 부위와 달리, 두 손에는 보호 장비가 전혀 없어 상처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상황. 희수는 알카디우스에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희수. 이 정도는 나뭇가지에 긁힌 것과 비슷한 걸? 그냥 며칠 푹 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아물어질 거야.”

 

 실제로 지금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기사수행을 떠났을 때 긁히고 다치고 한 경험이 한두 번인 것도 아니고. 알카디우스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혼자 있을 때 이야기고, 지금처럼 동갑내기 남자(사람)친구가 있는 상황이라면?

 

 “무슨 소리야, 상처가 꽤 깊어 보이는데? 아무리 실버 드래곤이라도 파상풍을 가볍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고!”

 “파상풍?”

 ‘이놈의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었길래, 파상풍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 거지?’

 

 그건 또 무슨 단어일까? 알카디우스의 루비 눈동자에 진심어린 궁금증이 담겨 초롱초롱 빛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니까 날카로운 물건이나 나무, 모래 같은 이물질에 긁혀서 상처가 나면, 그 속으로 세균이 침투해서 막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심할 때는 목숨까지 잃게 하는 무서운 질환이야.”

 “음, 목숨까지 잃을 정도라면, 확실히 보통 증상은 아니구나?”

 

 호오, 그런 것이 있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알카디우스의 모습이 천하태평 그 자체다.

 

 ‘어휴! 이 답답한 실버 드래곤 아가씨! 그 파상풍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너라고요······.’

 

 원래 드래곤들은 저렇게 태연한가? 워낙 강한 종족이라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급사할 일 같은 게 전혀 없어서?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모습인데? 생각할수록 이제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저기, 설명은 그 정도면 된 것 같고, 일단 치료부터 하자. 리스!”

 

 도적들이 알량한 자존심 지키겠다며 물러가는 척하면서 흉계를 꾸밀 수도 있었기에, 허튼 생각 따위 엄두도 낼 수 없도록 리스가 주변 정찰을 철저히 수행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네, 형님!”

 “트렁크 안에 찾아보면 여러 가지 약품 들어있는 흰색 상자가 있을 거야. 그것 좀 가져와.”

 “형님이 구급상자라 부르던 상자, 그것 말씀하시는 거죠?”

 “자식, 기억력 좋네. 좀 부탁할게.”

 

 리모컨 키로 트렁크를 열어줬으니 알아서 잘 꺼내오리라 믿는다. 이제 희수의 시선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아프게 하는 알카디우스의 손등 상처에 집중되었다.

 

 “일단 알코올로 세척부터 하는 게 좋겠어. 상처 주변이 지저분하면 세균이 침투할 수도 있으니까…….”

 “저기, 희수.”

 “응?”

 

 알카디우스가 무슨 말을 건네고 싶은 건지, 아주 작은 목소리는 그만두고 좀처럼 희수와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미안해.”

 “미, 미안하다고? 도대체 뭐가?”

 

 뜬금없이 웬 사과? 사과라면 우리 서로 처음 만났을 때 아주 질리도록 듣지 않았나? 희수 입장에서 통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적들과 마주쳤을 때, 희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하마터면 희수가 다칠 뻔 했잖아?”

 

 도적 두목을 간단하게 쓰러뜨리고, 이어서 달려들던 부하들마저 제압했지만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는 녀석들이 있으리라곤 생각 못해 자칫 자신을 감싸 안았던 희수가 큰 부상을 입을 뻔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게 꼭 네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바보같이, 희수를 보호해주겠다고 해놓고. 정말 미안해.”

 ‘하아, 강인한 실버 드래곤답지 않게 이게 뭐야? 미안하다, 잘못했다…….’

 

 눈앞을 가로막던 적들을 무찔렀는데 기쁨을 나누지는 못할망정 이 침울한 분위기 어쩔?!

 내가 생각하기에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건네 오는 사과가 영 거북스러워서, 어떻게 분위기 좀 바꿔봤으면 좋겠는데…….

 

 “알카디우스, 다음부터는 미안할 일 없도록 내가 차안에서 팍 웅크리고 있을게. 그러면 되지?”

 “응? 아, 아니야. 그건…….”

 

 차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그게 짐짝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친구가 짐짝으로 전락하는 건 절대 원치 않는다!

 

 “후후, 그건 싫지? 그럼 다음부터는 이런 일로 절대 미안해하지 마. 애초에 내가 자발적으로 나선 건데 네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그래도…….”

 

 희수가 알카디우스의 말을 싹둑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친구들 등 떠밀고 나 혼자 강 건너 불구경하는 그런 비겁한 짓거리, 난 못해.”

 “희수…….”

 “이 낯선 세계에서 너와 리스는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보호자고, 동시에 이번 여행을 함께 떠나는 친구잖아? 비록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나는 이 여행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꼭 해낼 거야.”

 

 희수에게서 숨겨져 있던 단호한 모습에 놀란 걸까? 알카디우스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두 손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친구고, 또 각자 앞가림 정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어른이잖아? 안 그래?”

 “으응.”

 “하하, 삼백 년 가까이 살아온 실버 드래곤 앞에서 감히 어른 타령이라니! 이 대책 없는 인간한테 별소리를 다 듣는다. 그치?”

 “후훗.”

 

 오버가 담긴 목소리와 제스처를 끝으로, 침울했던 분위기에 확실히 변화가 생겨 알카디우스의 입가에 미소 꽃이 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따뜻한 눈빛을 교환하는데.

 

 “형님, 이게 구급상자 맞죠? 제법 깊숙한 곳에 있어서 찾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아, 리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알카디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깜박 잊고 있었다. 트렁크 안에 보관 중이던 구급상자를 가져오도록 심부름 보낸 리스의 존재를.

 희수가 고개를 치켜세워보니, 행여나 구급상자가 찌그러지지 않을까 최대한 힘 조절을 한 채 상자를 물고 있는 오른쪽 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수고했어. 여기에 천천히 내려놓으면…….”

 

 순간 희수의 두 눈동자가 당장 튀어나올 기세로 팽창하고, 입에서는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지금 뭘 꺼내온 거야?!”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현희수. 리스의 입에 물려 있는 저 흰색 상자가 멀리서 보면 구급상자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자동차에 실려 있는 모든 물건을 잘 알고 있는 희수의 시야에서 그것은 절대 구급상자가 아니었다!

 

 “형님, 왜 갑자기 고함을··· 우웃!”

 “아, 안 돼!”

 

 심부름 잘했다는 칭찬은 고사하고 날벼락처럼 고함을 얻어맞은 리스.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가진 머리 세 개에 대한 컨트롤도 꼬여 오른쪽 머리가 물고 있던 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툭!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활짝 개봉된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희수가 살던 대한민국에서 흔한 스마트 IT기기로 불리는 ‘에이패드’! 땅바닥에 나뒹굴며 발생한 충격이 멋대로 전원을 ON 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야아~ 야메떼!”

 “기모찌! 기모찌!”

 

 에이패드 하단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는 가냘픈 여성의 신음소리!

 

 “우와앗! 이 고물 덩어리! 그깟 충격 좀 받았다고 멋대로 재생되고 지랄이야!”

 

 희수가 전원을 끄기 위해 황급히 달려갔지만, 그보다 먼저 알카디우스가 에이패드를 집어 들었다.

 

 “이, 이게 뭐야?!”

 

 선명한 액정을 자랑하는 에이패드는, 놀라움이 가득한 알카디우스의 루비 눈동자에 계속 퍼져 나오는 신음소리의 정체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발가벗은 여성이 이상한 방식으로 밧줄에 묶이고, 이어지는 채찍에 얻어맞는 끔찍한 장면을!

 

 “아하하, 알카디우스. 이건 말이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 흔히 있는 건데, 그러니까 이걸 나한테 돌려주면 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휘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에이패드를 빼앗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알카디우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은 분노와 함께 점점 굳어져 갈 뿐이다.

 

 “하아악! 하악! 기모찌! 기모찌!”

 

 채찍질도 모자라, 이제는 여성의 몸에 뜨거운 촛농을 떨어뜨리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 나온다!

 결국 알카디우스는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불끈 쥐어진 주먹에서 부르르 경련까지 일어났다.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히드라도 웃으면서 용서해준 실버 드래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지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서, 설마, 아니겠지? 응? 알카디우스…….”

 

 짜악!

 

 여자의 손바닥과 남자의 뺨이 접촉하며 굉장히 찰진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으으, 지금 혹시 밤인가? 푸른 하늘에 웬 별들이 이렇게 총총…….”

 

 왼쪽 뺨이 호빵처럼 부풀어 오른 희수는 핑핑 도는 시야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버렸다.

 

 “쿨럭! 아, 알카디우스!”

 

 얼른 일어나야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숨이 콱 막혀와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니, 알카디우스가 배 위에 올라타 무섭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스릴 갑옷의 무게까지 더해져 이대로라면 질식사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스쳐 지나간다!

 

 “아, 알카디우스, 내가 다 얘기··· 으악!”

 “더러워! 더러워! 이 변태! 저질!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알카디우스의 분노가 실린 손바닥이 마구 날아드는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희수가 해명을 내놓을 기회가 허락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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