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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10화 <Off-the-record>
작성일 : 20-03-10 17:45     조회 : 73     추천 : 0     분량 : 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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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치소 면회장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살벌했다. 그 앞에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둘 사이를 안전하게 가로막은 두꺼운 유리창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너지?”

 “뭐가요?”

 “아무리 봐도 너 밖에 없어.”

 “그니까 뭐가요?”

 

 [꽝!]

 

 분을 이기지 못한 경식이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소리에 면회실을 지키던 간수가 벌떡 일어나 달려와 그를 제지했다.

 

 “이거 유리창, 튼튼해요?”

 “일단 강화유리라... 깨질 일은 없습니다만...”

 “아, 그럼 됐어요. 괜찮아요.”

 

 간수가 경식에게 주의를 주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씩씩대며 수연, 아니, 이제는 안나가 된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차마 마주볼 수도 없을 만큼. 그래서 눈을 내리 깔았다. 최대한 여유롭고 나른하게. 꼰 다리를 까딱거리며 지루한 시간을 때우듯이.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괜찮다. 벽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테니까.

 

 “꽤 괜찮네요. 절대 나를 헤칠 수 없는 사람이 날 죽인다고 발악하는 걸 지켜보는 거. 이게 이런 심정이었구나...”

 “너 이...!”

 

 다시 격해지는 듯한 경식의 목소리에 간수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잘 생각해요. 선고 전 마지막 면회인데... 소리만 지르다 끌려 나가면 아깝잖아요.”

 

 경식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경식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안나를 향한 적의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내일 선고가 열 시던가... 대략 18시간 정도 남았네요. 그리고 그 중 한 시간을... 이렇게 나랑 쓰고 있고요.”

 “......”

 “그러니까 머리를 잘 굴려 봐요. 이 한 시간 동안,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혹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은근하면서도 교묘한 말이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내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던가...

 그러나 딱히 원하는 대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긴장감 속에서 저 사람을 가장 화나고 억울하고 비참하고 서럽게 만들 수 있는 말이라면 아무거나 내뱉고 싶었다.

 

 한동안 꾹 닫혀있던 경식의 입이 달싹거리는 것이 보였다. 안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귀를 기울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 살려줘....”

 “네?”

 “살려달라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실룩 올라가고 말았다. ‘살려달라’는 경식의 말 한마디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웠던 것이다.

 

 저 사람의 생명이 나의 손에 달려있다.

 나의 말 한 마디와 나의 행동 하나에 저 사람은 천국을, 혹은 지옥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둘 다 겪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안에 있는 지도 몰랐던 마음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고양이가 쥐를 죽이기 전, 공처럼 던지며 가지고 놀 듯, 저 사람의 심정을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기. 그리고 이왕 치는 장난이라면 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게 더 재미있겠지.

 어떤 장난이라도 괜찮을 것이다. 튼튼한 유리창과 든든한 간수가 있는 한, 저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나를 공격할 수조차 없다. 기왕이면 발작 같은 것도 좀 일으켰으면 좋겠다. 어차피 저 사람이 무슨 난리를 치든, 유리창 밖에서 말 몇 마디 건넨 게 고작인 면회인이 질 책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간수들은 범죄자와 면회인의 사이의 분쟁에서 당연히 면회인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저 사람이 내게 선사했던 좌절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효하다. 그러니 나에게도 이 정도 분풀이는 허용되어야 맞는 것이다.

 

 “왜 그렇게 살고 싶어 해요? 밖에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아이가... 있어...”

 “아이...요?”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심을 가지는 듯하자 경식은 더욱 필사적으로 유리창에 매달렸다.

 

 “내가... 내가 아들이 하나 있어... 이제 겨우 다섯 살이야. 아직 글도 모르고, 밥도 챙겨먹을 줄 모르는 아주 어린 아들...”

 “......”

 “애 엄마가 작년에 죽었고. 아파서. 그래서 나 혼자서 겨우겨우 밥 해먹이고 씻기면서 키우고 있었는데... 구속되는 바람에 집에 못 들어간 지 한 달도 넘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안나의 눈동자가 살짝, 아주 살짝 흔들렸다. 사람을 보는 법 따위 모르는 안나였지만, 아들이 있다는 말은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내일 형을 받고 수감되면... 그 아이는 혼자 남는 거네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일가친척도 없어서 내가 없으면, 그 아이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어.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이제 집에 먹을 것도 다 떨어졌을 텐데... 아이를... 아이를 굶겨 죽일 수는 없잖아.”

 “그래요...?”

 

 경식이 더욱 간절한 눈으로 안나를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 떨어질 듯 말 듯, 몇 번이나 달싹거리던 안나의 입술이 마침내 떨어졌다.

 

 “그거... 기쁜데요?”

 “뭐...?”

 

 순간, 경식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그의 눈에 비치는 안나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솔직히 좀 짜증났거든요. 난 그 날 이후로 모든 걸 잃고 좌절과 절망, 분노 속에서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떻게든 잊어보려 노력하다 잠시라도 잊으면, 잊었다는 것에 또 자괴감에 빠지며 스스로를 혐오하는데. 그러면서 밤에 잠을 청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을 때마다 내일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빌고 또 빌면서 사는데... 그런데 당신은 고작 감방에서 몇 년 몸빵해서 때우다 나오면 끝? 어이가 없잖아요. 어디서 킬러라도 고용해서 사적 복수라도 도모해야하나... 엄청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힌 둑이 뚫리듯 안나의 입에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7년 전, 수연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안나로서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안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가족과 친구를 살해한 남자에게 복수하는 것. 그 복수의 끝은 법에 심판에 따른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의 범죄는 법적으로 입증되었고, 그에 따라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손해 보는 장사였다.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가족과 친구. 그런데 그를 살해한 남자는 뻔뻔하게도 법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이 규정한 가장 인도적인 방식으로 반성을 촉구 받을 뿐이었다. 그의 몸에는 그 어떤 고통도 가해지지 않았고, 그의 삶은 약간의 제약만을 받을 뿐 여전히 이어지게 되었다.

 안나가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는 고통스러워야 했다. 부모님과 친구가 겪었던 것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아파야 했다.

 

 “그런데... 당신이 잃을 것이 있다니 너무 기쁘네요.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정말 최고의 정보였어요.”

 “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경식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내가 원망스러우면 나를 괴롭혀야지, 왜 죄 없는 내 아들을 괴롭혀! 꼭 내 아들까지 죽여야겠어?!!”

 “아니죠.”

 

 안나의 목소리는 더 없이 차분하고 냉정했다.

 

 “당신의 아들은 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죽는 거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죄를 지었으면 대가가 따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살인을 한 경우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당연한 상식이잖아요. 설마 죄를 지으면서 대가를 치를 거라고 전혀 예상도 못했던 건가요?”

 “너... 너...!”

 “더군다나 혼자 보살펴야 하는 아이가 있다면, 살인을 하기 전에 미리 생각을 해봤어야죠. 징역을 받아서 아이를 보살피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범죄 시나리오는 잘만 짜면서, 왜 사후 시나리오는 생각도 안하셨을까?”

 “너 이 악마..!”

 “잘 들어요. 당신 아들은 당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는 거예요. 결국, 당신이 죽이는 거라고요. 나에게 책임 전가할 생각 말아요.”

 

 좌절과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경식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아요. 아이가 다섯 살이라고 했죠? 혹시 당신 동네에서 그 나이 즈음 되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건 전해줄게요. 장례식은 못해도 기일에 제사는 지낼 수 있게.”

 

 말을 마친 안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면회실을 지키고 있던 간수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표정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안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어차피 저들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을 것이다.

 

 “너지?”

 

 이를 빠드득 갈며 내뱉는 말에 안나는 다시 경식을 돌아봤다.

 

 “네?”

 “이거... 니가 설계한 거지?”

 “설계라뇨?”

 “지난 재판에서 나왔던 그 증거... 7년 전엔 분명히 없었던 증거가 왜 이제 튀어나오냔 말이야! 너... 일부러 그런 거지?”

 

 경식의 모함에 안나가 코웃음을 쳤다.

 

 “큰일 날 소리 하시네.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이 가짜 증거도 구분 못할 거 같아요?”

 

 안나는 유리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면회실을 지키는 간수들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증거가 7년 전에 튀어나왔든 이제 튀어나왔든 증거 능력에는 변동 없고... 사건의 목격자가 증언을 언제 할지는 증언하는 사람 마음에 달렸으니 된 거죠.”

 “너... 누구야?”

 

 경식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안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통성명은 이미 하지 않았나요?”

 “그거 말고! 대체 네 정체가 뭐야??!!”

 

 정체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걸 저 사람이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안나가 다시 출입구를 향해 걸어오자 면회실을 지키고 있던 간부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알죠? 여기서 있었던 말은...”

 “그럼요. 누가 부탁하신 일인데요. 걱정 마십쇼.”

 “이름이... 이형우 씨?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쇼.”

 

 

 다음 날, 그는 예상대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무려 네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탓에 선처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 중에는 7년 전, 군인 일가족이 몰살당한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용히 감방으로 끌려가는 강경식, 아니, 이제는 1092호의 모습. 그러나 뭔가가 못마땅했다. 그리고 많이 부족했다.

 

 복수엔 기승전결이 없었다. 일이 마무리되는 것과 마음이 마무리되는 것은 달랐다. 그 놈이 구속되고 감방에 처넣어지는 순간은 전혀 극적이지도 않았고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평온하고, 너무나 밍숭맹숭했다.

 

 1092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은 그래서였다. 밍숭맹숭하게 막을 내려버리려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클라이막스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지 내 지난한 복수가 끝이 난다.

 

 녹이 슨 대문을 열고 들어선 것도, 그 안에서 쓰러져 죽어가던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살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아무리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나의 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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