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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4화 <새로운 이웃>
작성일 : 20-01-28 22:45     조회 : 87     추천 : 0     분량 : 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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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게... 높네요...”

 

 서울 도심에 자리한 최고급 오피스텔 M. 앞으로 자신이 살게 될 집을 둘러보는 유진의 감탄사는 간단했다.

 

 [뭐야. 그게 소감의 전부야?]

 “일단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원래 거기는 딱 보는 순간 ‘죽인다~’라는 말이 나와야 된다고. 인테리어에서부터 설비까지 기가 막힌 곳이거든.]

 “아... 이런 종류의 장소를 와 본 적이 없어서요. 근데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 진짜 좋은 것 같긴 하네요.”

 

 휴대폰 너머로 킥킥거리는 성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이 지나치게 솔직한 녀석아. 하긴, 뭐 네가 언제 여기저기 나돌아 다녀봤어야 말이지.]

 “그래도 전망은 굉장히 좋은데요? 탁 트여서 시원하고... 마음에 들어요.”

 

 사실 이 오피스텔의 내부는 인테리어며 빌트인 가구, 가전이 최고급으로 채워진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확 트인 전망으로도 유명했다. 거실 벽면이 전면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들어오는 순간 파란 하늘이 마치 스크린처럼 펼쳐졌던 것이다. 안 그래도 건물 높이부터가 주변 건물들보다 배는 높은데다, 심지어 유진의 집은 꼭대기층에 있었다. 그 안에서 거실을 왔다갔다하는 것만으로도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유진의 기분도 조금 업 되어 있었다.

 

 [마음에 든다니 나도 안심이다. 일단, 냉장고에 음료랑 생수 채워 놨어. 그거 마시면 되고, 거기 인덕션이며 오븐이며 세탁기며 이것저것 많거든? 근데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사용법도 모르지? 배고프면 10층에 식당 있으니 거기 가면 되고, 세탁소는 1층이니 전화만 하면 다 알아서 해 줄 거야. 청소도 매일매일 코디네이터가 와서 해주니 그냥 호텔에서 지냈던 것처럼 지내면 돼. 그리고...]

 

 이것저것 챙겨준답시고 점점 길어지는 성혁의 말에 유진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누가 들어도 아들에게나 해야 할 말들을 유진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성혁이 말하는 것에 비추어 봐도 이 잔소리는 2인분짜리였다. 추측컨대, 민우의 사춘기가 더 심각해지는 모양이다.

 

 [... 안쪽에 있는 방에 가보면 컴퓨터 세팅해 놨어. 최고 스펙으로 빠빵하게 맞췄으니 게임이든 뭐든 문제없을 거다. 전원버튼 누르는 법은 알지? 그리고 거실에 TV는 IPTV 연결해놨으니까 그냥 바로 틀어서 보고 싶은 거보면 돼. 아, 아니면 지금 한 번 틀어볼래? 사용법까지 그냥 지금 다 가르쳐 줄게.]

 “아녜요. 그건 나중에 배울게요. 지금 새로운 게 너무 많아서 머리가 어질어질 해요.”

 

 유진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성혁의 말이 2인분을 넘어 3인분을 향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눈치없이 전화를 너무 오래 잡고 있었네. 알았어. 그럼 푹 쉬고, 나중에 집들이 놀러 갈 게. 그 때 보자.]

 “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던 성혁의 목소리까지 사라지자 유진의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도심지에서 흔히 들리는 차 소리조차 차단된 초고층 꼭대기의 오피스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곳에 숨은 기분이랄까?

 

 딱히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TV사용법 따위, 굳이 배울 필요도 없었고 여차하면 설명서를 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TV의 존재 자체가 유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유진이 TV를 보지 않은지도 벌써 10년. 정확히는 TV가 두려워진지 10년이었다.

 

 처음부터 유진이 TV를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15년 전, 다섯 살의 어린 유진은 다른 아이들처럼 TV를 보는 것도 좋아했고, 누구나 그렇듯 배우나 가수가 되어 TV에 나오는 꿈도 꾼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경자가 유진의 예지력을 알아보고 Bz 호텔에서 살게 한 이후로는 TV가 유진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글이 서툴렀던 시절, 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사람 같은 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으니, 유진이 TV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TV와 친구로 지내며 유진은 한 살 한 살 차곡차곡 성장했고, 유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하나 둘 늘어갔다. 그리고 유진이 보는 프로그램도 알록달록한 만화영화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을 위한 뉴스나 시사정보 프로그램까지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뉴스 속보 속, 살인사건 피해자가 입고 있는 옷이 며칠 전 경자가 가져온 옷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유진이 며칠 전, 경자가 가져온 옷의 주인이 가까운 시일 내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죽을 수도 있다고 예언하는 일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반복하여 발생하지만 않았다면.

 경자는 어느 날엔 주인 모를 옷을 가져왔고, 어느 날엔 이름 모를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다. 책이나 서류를 가져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유진은 그것을 만져보며 그 사람의 미래를 예언했다.

 유진이 만져보는 물건 주인들의 미래가 밝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시일 내에 불행을 겪을 예정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커다란 재산 손실을 보거나, 신체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그리고 며칠 뒤 TV를 보면 어김없이 그 사람에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사람은 뉴스 속보로, 어떤 사람은 가십으로,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단신으로. 어떤 사람은 죄인으로, 어떤 사람은 패배자로, 어떤 사람은 신원 불명의 시체로...

 

 유진이 TV를 끈 것은 그 때 즈음이었다. 어차피 TV 속에만 있는 세상이었다. 땅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Bz호텔 36층에서는 절대 부딪힐 일 없는 인간사였고, 전원만 꺼버리면 사라질 현실이었다.

 숨바꼭질 하는 어린아이가 커튼 속에 머리만 집어놓는 것처럼, 유진은 TV를 꺼버렸다.

 

 그렇게 유진의 세상은 닫혔다.

 

 [와장창]

 

 순간, 두꺼운 벽을 뚫고 갑자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나는 소리였다. 유진은 후다닥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그리고는 뒤이어 날 소리를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처음에 들려왔던 그 소리를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투닥거리는 소리든 또 다른 물건이 깨지는 소리든 뭐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바깥은 조용했다.

 

 [아씨... 돌겠네, 진짜...]

 

 다시 거실로 돌아가려던 유진의 발길을 잡은 것은 나지막이 들려오는 욕지거리였다. 잠시 동안 고민하던 유진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현관문을 살짝 열고는 빼꼼히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깨지다 못해 가루가 된 유리병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퀴퀴한 술 냄새도 진동했다.

 

 그러던 한순간, 유진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깨진 유리병들 한가운데 누군가가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그가 누군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안나였다.

 

 “저... 괜찮으세-”

 “거기 스톱!”

 

 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내딛은 발걸음은, 안나의 일갈에 다시 멈춰버렸다.

 

 “가까이 오지 마.”

 

 안나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씻지도 않은 채 자다 나온 듯 꾀죄죄한 얼굴에, 보아하니 아까부터 복도에 진동하던 퀴퀴한 술 냄새도 안나에게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깨진 병조각에 다쳤는지 옷이며 바닥에 피가 흥건했던 것이다.

 

 “그... 그치만 피가...”

 “그래, 피. 그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너도 피보고 싶지 않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바탕 머리를 쥐어뜯은 안나가 마침내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나름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바닥을 짚은 손에 유리 파편이 박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 거라도...”

 

 미간을 찌푸린 채 손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던 안나는 유진을 빤히 쳐다봤다.

 

 “누구?”

 

 유진을 기억 못하는 눈치였다. 어쩐지 서운한 마음에 유진의 말투가 뾰로통해졌다.

 

 “옆집이요. 오늘 이사 왔어요.”

 

 안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이었다. 그런 안나의 모습에 유진은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다친 안나가 걱정되는지 계속 힐끔힐끔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그때였다.

 

 “휴지.”

 “네?”

 “휴지 있으면 좀 가져와줄래?”

 “아, 네!!”

 

 유진은 후다닥 집에서 휴지를 가지고 나와 안나에게 달려갔다.

 

 “아, 가까이 오지는 말라고. 거기 스톱.”

 “근데 이거 드려야...”

 “손을 뻗으면 되잖아.”

 “아...”

 

 유리 파편의 경계에 선 유진이 어쩡쩡하게 팔을 뻗어 건네는 두루마리 휴지를 안나가 낚아채듯 받았다.

 

 “다른 거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이거 치워야 될 거 같은데... 아, 빗자루 가져올게요. 그리고.. 아, 소독약이랑 붕대 같은 거 필요하시죠? 근데 그건 저도 약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금방 갖다올까요?”

 

 나름 유진이 알고 있는 생활 상식을 쥐어짜내 물어봤지만, 안나는 그저 뚱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 뿐이었다.

 

 “생활지원센터죠? 여기 54층입니다. 제가 복도에 유리병을 깼는데, 병원에 가봐야 해서 치울 수가 없네요. 죄송하지만 부탁드릴게요.”

 

 간단하지만 정중하게 통화를 마친 안나는 또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콜택시죠? 오피스텔 M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까지요. 네, 지금 바로 와주세요.”

 

 자신이 애써 생각해 낸 도움이 단 두 통의 전화로 무용지물이 되자 유진이 어쩐지 민망해 고개를 푹 숙였다. 유진이 그러거나 말거나, 안나는 휴지로 피가 흐르는 자신의 발을 둘둘 감았다.

 

 “병원 가시는 거죠? 혹시 필요하시면 같이 가 드릴까요?”

 

 용기를 낸 제안이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사회생활 예의도 모르는 유진이긴 했지만, 피를 뚝뚝 흘리는 이웃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니가 왜?”

 “... 다치셨잖아요.”

 “......”

 “같은 층 이웃인데, 도움 드려야죠.”

 

 알 수 없는 눈으로 유진을 쳐다보던 안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다시 유진에게 내밀었다.

 

 “잘 썼어. 도움 고마워.”

 

 그리고는 유진이 다시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54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청소부가 빗자루와 쓰레기통, 물걸레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복도의 유리파편과 핏자국들을 하나하나 치워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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