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3화 <방문자>
작성일 : 20-01-22 11:07     조회 : 106     추천 : 0     분량 : 499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타닥거리는 소리가 정신없이 흩날렸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인지, 행복했던 삶이 잿더미가 되어가는 소리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쥐고 겨우 올라온 9층. 짙은 연기와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거대한 그림자가 복도 전체를 삼켜버릴 듯이 벽에 어룽거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건, 모퉁이를 돌아가는 순간 그 암흑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으리라는 강한 예감 때문이었다.

 

 두려운 마음을 붙잡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 벽에 비치던 그림자는 사라졌다.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사이렌소리. 환한 빛과 함께 모든 것이 지워졌다.

 

 

 몸이 무거웠다. 물에 젖은 솜이라도 된 것 마냥, 손 하나 까딱거릴 힘도 없었다. 안나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수 십 년을 반복한 악몽. 지겨울 정도로 끝은 똑같았다. 눈을 뜬 후에 몰려드는 절망감도 여전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꿈을 꾸고 나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울려 퍼진다.

 

 ‘그 걸음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어.’

 

 벗어나지 못하는 악몽은 멈춰버렸던 걸음의 업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이렇게 한 번 시작된 우울은 손끝에서부터 잠식을 시작해 온 몸으로 퍼져간다. 침대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빨려 들어가다 보면 결국엔 땅 속까지 들어갈 지도 모른다. 그럼 자연스레 그곳을 무덤으로 삼을 수 있겠지.

 몸 끝에서 시작한 잠식이 슬슬 머리로까지 번진 건지, 안나의 눈이 다시 감기기 시작했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감각. 어쩌면 30년 전 그날, 그가 받아들였어야 했던 것은 이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걸음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어.’

 

 순간, 안나는 눈을 번쩍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악몽을 꾼 뒤에도 흔들리지 않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길이 있었어야 가지! 씨... 아, 닥쳐!”

 

 자신도 모르게 버럭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쨍그랑거리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안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 깨우려던 건 아닌데.”

 

 도현이었다.

 

 “조용히 잘 자다 소리까지 버럭 지르고... 무슨 일 있어?”

 

 홱,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버린 안나는 터덜터덜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를 꺼내 컵도 없이 벌컥벌컥 마셨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꼭 연락이 있어야만 보는 사인가? 그냥 오면 안 돼?”

 “왜 왔어요?”

 

 안나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겁고, 가라앉아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흩어진 유리파편을 치우는 도현의 행동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사랑하는 동생 보러 왔지. 지나가는 길에.”

 

 그러거나 말거나 안나는 책상에 앉아 흐트러진 책들을 정리하고는 노트북을 켰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에 가까웠다. 원래 오늘은 수업자료를 끝내려고 했는데. 숙취 때문에 하루를 버리고 말았다. 어제 수업 계획을 짜면서 머릿속에 넣었던 것을 타이핑만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정말이지 술이 웬수였다. 어쩐지 간만에 마시는 술인데도 달더라니.

 

 “희한하네. 인간미 없이 칼 같은 게 매력인 애가 오늘은 왜 이렇게 엉망이야? 뭐, 이것도 나름 색다른 매력이긴 하네.”

 “호적메이트면 호적메이트답게 용건이나 말하고 가시죠.”

 

 만사가 다 귀찮은 표정이었다. 도현은 피식 웃고는 대수롭지 않게 용건을 건넸다.

 

 “데이터에 접근한 기록이 있어.”

 

 안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요?”

 “알아보는 중. 답 없는 보고 싫어하는 건 알지만 좀 걸릴 것 같아서. 일단은 알아두라고 말하는 거야.”

 

 설마 오늘 꾼 악몽이 이것 때문이었나?

 

 “그리고 또 하나는-”

 [위이이잉-]

 

 도현이 남은 용건을 마저 건네려는 찰나, 안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현은 빙긋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성 교수, 납니다.]

 “네, 소장님.”

 [그게... 큰일 났습니다.]

 “뭔데요.”

 [그 수감자가... 1092호가 사망했습니다.]

 

 

 * * *

 

 반전은 없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싸늘한 시체는 지금껏 안나가 전담으로 맡아왔던 1092호였다. 안나의 눈앞에서 1092호의 얼굴이 흰 천으로 가려졌고, 어느새 국과수로 향하는 차량에 실렸다. 이윽고 1092호의 몸체가 실린 차량까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우, 씨... 돌겠네, 진짜.”

 

 무심코 튀어나온 안나의 짜증에 소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CCTV를 다시 보시겠습니까?”

 “그걸 봐서 뭐해요? 뭐 남아있지도 않은 거.”

 “그래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필 1092호가 사망한 그 시각, CCTV가 작동하지 않았다. 교도소 정문에서부터 내부의 모든 CCTV가 일제히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를 붙잡아 추궁할 수도 없었다. 알고 보니 전력부터 영상시스템, 보안, 행정까지 모든 부분에서 미스가 있었던 것이다. 1092호 사망의 책임을 따져 문책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교도소 전원을 해고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누군가 은밀하게 완전범죄를 꾸몄다면 혼자 파헤칠 오기라도 생겼을 텐데. 안나는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고, 1092호 유류품이나 가져와요.”

 

 

 1092호의 유류품은 단출했다. 지갑 하나, 신발 한 켤레, 양말 한 켤레, 차키, 그리고 오래 전 단종 된 구형 휴대폰 하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1092호가 교도소에 들어온 이래 수십 번도 넘게 안나가 직접 살펴 본 그 물품들이었다. 그러나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사망했으니 유가족에게 돌려줘야 하는 게 맞지만, 당시에 유일한 유가족이었던 아들마저 실종 상태라... 아마 폐기해야할 겁니다.”

 

 지갑 속에는 유일한 유가족이었던 아들과 찍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안나는 심란한 얼굴로 사진을 흘겨보고는 지갑을 탁 덮어버렸다.

 

 그 때, 무엇인가가 불현 듯 머리를 스쳤다. 알 수 없던 위화감. 그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옷은요?”

 “네?”

 “1092호 옷이요. 체포될 때 입고 있었던 사복!”

 “그, 그게... 그러게 말입니다....”

 

 소장이 어쩔 줄 몰라 유류품 바구니를 여기저기 뒤적거렸다. 그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서, 설마하니... 분실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분실된 건가...”

 

 안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소장의 무능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초월이었다. 마음 같아선 도현에게 말해 바로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1092호가 죽은 상황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었다.

 

 “저... 아무래도 옷은 분실된 것 같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가 관리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보니-”

 “죄송하면 자결이라도 하시든가요.”

 “네? 그게 무슨...”

 “죄송한 소장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그거 말고 더 있어요? 죽은 시체를 다시 살릴 수도 없고, 잃어버린 유류품을 바로 찾지도 못하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 심한 거 아닙니까?”

 “심한 건 소장님의 무능력이죠. 죄송? 죽었다가 다시 환생해 유능해지시면 그 땐 그 죄송한 마음 받아드리죠. 물론, 한 번 죽는 걸론 안 될 테지만 말예요.”

 

 모욕감에 소장의 얼굴이 빨개졌다. 안나는 가방을 낚아채듯 휙 맨 뒤, 보란 듯이 쿵쾅거리며 소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을 쾅 닫으려는 찰나, 어떤 소리가 안나의 손을 붙잡았다. 소장의 한숨소리였다.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한숨소리. 그것으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소장을 돌아보는 안나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안나가 소장에게 다가갈 때마다 소장의 몸이 긴장감에 움츠러들었다.

 

 “소장님.”

 

 완전히 정지된 CCTV. 사라진 유류품. 무능의 연속이 만들어낸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인위적이었다.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무능에도 정도란 게 있는 법인데...

 

 “누구예요?”

 “무... 무슨 말인지 통...”

 “솔직히 말해 봐요. 나 말고, 또 다리 걸쳤잖아요. 누구예요?”

 

 모든 CCTV를 정지 시켜놓고, 보란 듯이 1092호를 죽이고, 유류품마저 가져갔다. 지나치게 대담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희는 감히 날 건들지 못한다.

 

 “나보다... 아니, 내 뒤에 있는 사람보다 그 사람 더 대단한가 봐요? 이렇게 무능을 자처하며 충성하는 걸 보니?”

 “......”

 

 소장의 동공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입을 굳게 닫혀 있었다. 화가 난 안나가 손을 뻗었다. 안나의 손이 소장의 목을 조금씩 조여 갔다. 소장의 숨이 점점 가빠오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안나의 손에 더 강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장의 입이 열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혀를 깨무는 소리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안나는 재빨리 소장의 턱을 잡았다. 닫혔던 입이 다시 열리며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나는 내동댕이치듯 소장의 목을 놓았다. 안나에게서 풀려난 소장은 캑캑거리며 가쁜 숨과 함께 신음을 쏟아냈다.

 

 할 수 없었다. 이 이상 추궁해봤자 얻게 되는 것은 소장의 시체일 것이다. 오늘은 소장이 목숨까지 바칠 수밖에 없는 거물의 존재를 안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의무실이죠? 의사 하나 소장실로 보내요. 봉합수술 도구 챙기고.”

 

 의무실에 건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마친 안나는 1092호의 유류품을 자신의 가방에 쓸어담았다.

 

 “이 유류품은 다 분실 처리하세요.”

 “아이 어어게 으언(아니, 어떻게 그런)..”

 “왜요? 하면 하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분노로 이글거렸던 안나의 눈이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입가에도 다시금 비웃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092호가 처음 수감될 때 가져왔던 유류품을 오늘 폐기하기 위해 확인한 결과, 전부 분실되고 없었다. 시나리오 간단하잖아요?”

 “애아 으어 아어오 이오이아 이이이이아이 아 이으에(내가 그걸 가져온 기록이랑 CCTV까지 다 있는데)...”

 “뭐, 알아서 하셔야죠. 이미 옷도 하나 없어졌는데, 다른 것도 없어진들 대수예요? 여차하면 나보다 더 큰 빽이라던 그 사람 핑계를 대시든가.”

 

 뭐라 항의해대는 소장을 뒤로한 채 안나는 교도소를 떠났다. 다시 이곳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곳에 부임한 것도 철저히 1092호만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머릿속에서 다시 뿌연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안나의 삶을 지배해 온 짙은 안개. 조금만 더 있으면 옅어지고 또 옅어져 모조리 사라졌을 안개였다. 이제 거의 다 갰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 맑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무거운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9 제56화 <땡큐> 2021 / 4 / 9 267 0 4713   
58 제56화 <사살> 2021 / 3 / 5 273 0 3427   
57 제55화 <교차> 2021 / 2 / 19 311 0 3006   
56 제54화 <균열> 2021 / 2 / 12 314 0 3651   
55 제53화 <정리> 2021 / 1 / 28 290 0 3778   
54 제52화 <탱고다운> 2021 / 1 / 20 313 0 3674   
53 제51화 <침입> 2021 / 1 / 14 296 0 3704   
52 제50화 <잔상> 2021 / 1 / 7 311 0 3516   
51 제49화 <진상> 2020 / 12 / 31 329 0 4108   
50 제48화 <경계> 2020 / 12 / 16 339 0 3016   
49 제47화 <회귀> 2020 / 12 / 9 314 0 3901   
48 제46화 <연합> 2020 / 12 / 2 313 0 3496   
47 제45화 <고리> 2020 / 11 / 25 315 0 3400   
46 제44화 <기만> 2020 / 11 / 18 325 0 3514   
45 제43화 <원점> 2020 / 11 / 11 343 0 4159   
44 제42화 <책임> 2020 / 11 / 4 339 0 3159   
43 제41화 <마음> 2020 / 10 / 28 361 0 3442   
42 제40화 <직시> 2020 / 10 / 21 342 0 3666   
41 제39화 <의도> 2020 / 10 / 14 320 0 3291   
40 제38화 <조우> 2020 / 10 / 7 518 0 4263   
39 제37화 <비밀> 2020 / 9 / 23 312 0 3383   
38 제36화 <함정> 2020 / 9 / 16 344 0 4522   
37 제35화 <설화> 2020 / 9 / 9 343 0 4008   
36 제34화 <픽업> 2020 / 9 / 2 316 0 3715   
35 제33화 <유희> 2020 / 8 / 26 344 0 3477   
34 제32화 <반응> 2020 / 8 / 19 358 0 3352   
33 제31화 <꿈과 현실> 2020 / 8 / 11 341 0 4020   
32 제30화 <탐색> 2020 / 8 / 5 341 0 5093   
31 제29화 <기만> 2020 / 7 / 28 351 0 4208   
30 제28화 <환기> 2020 / 7 / 21 343 0 3021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